“네가 조를 데려온 것은 다 이런 이유 때문이야. 그간 우리가 국정을 농단하는 세력들에게 이기지 못했던 것은 이상만을 바라보고 현실의 길을 걷지 않았기 때문이지. 이제는 그런 패착을 거두고 승리의 길을 걸을 필요가 있어. 그리고 조는 우리에게 승리의 길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겠지.”
“의원 님...”
차승민의 말을 김다니엘은 이해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그는 왠지 가슴이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올바르다고 믿는 길을 거침없이 걸어갔던 차승민은 조를 데려온 후 뭔가 변해 있었다.
‘정확히 따진다면... 강형욱 형사의 부인과 김재훈의 어머니가 한희수 세력으로 인해 사고를 당해 죽거나 식물인간이 되면서부터... 그 때이겠지. 자신으로 인해 억울한 이가 고통을 받았다는 생각에 기존의 방식을 바꾸기로 하신 거야. 그래서 조와 같은 자를 인재로 들이신 것이고... 그를 중용하신 것이다. 면목이 없구나. 내가 잘 보필을 하였다면 이런 가슴 아픈 변화를 겪지 않으셔도 되었을 텐데...’
“그렇다면 조에게 묻도록 하지. 내가 전에 말했던 이 스타넥 클럽 사건. 이것은 어떻게 실마리를 잡아야 할까? 어떻게 해야 이 사건을 해결하고 진범들을 잡아서 처벌할 수 있을까?”
김다니엘이 속으로 가슴앓이를 할 동안 차승민은 조에게 질문을 했다. 이에 조는 어깨를 으쓱하며 답하였다.
“스타넥 사건은... 해결할 방법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뭐라? 지금 농담을 하자는 것이냐!”
조의 대답에 김다니엘은 다시 발끈하며 외쳤다. 이에 조는 태연한 얼굴로 그를 보며 말을 이어갔다.
“듣자 하니 스타넥 사건의 진범이 한희수 패거리라고 하셨는데... 언론과 경찰, 검찰, 국회가 모두 한희수의 편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가진 것이라고는 개뿔만큼도 없는 상태에서 그런 자와 정면으로 싸워서 이길 생각을 하셨습니까? 전쟁이란 것은 혈기가 아니라 머리로 하는 것입니다.”
“훗. 그럼 조는 한희수를 이길 방법이 있는 것인가?”
“당장 이길 방법은 없습니다. 모든 권력을 다 쥐고 있는 자를 하루아침에 이길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천천히... 그 자의 힘을 파악하고 그 근원들을 알아내서 없애가야 합니다. 단순히 없애는 것을 넘어서 우리의 힘으로 가져온다면 더 좋고 말이지요. 스타넥 사건을 해결하고 억울하게 희생당한 이들의 한을 풀어주는 것은 힘의 우위를 점한 후에 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조는 청산유수처럼 말을 이어갔다. 이에 김다니엘은 코웃음을 치며 물었다.
“흥! 말은 잘 하지만 실속이라고는 없군. 한희수의 힘의 근원이라면 뻔한 것이 아닌가. 국회의 의석 다수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어떻게 가져올 수 있다는 거지?”
“하하. 그 자의 힘의 근원... 그것은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국회 다수 장악이 가능했던 것은 그에게 막강한 자금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원래 이 나라 정치판이란 것이 캐쉬 싸움인 법인데 그것에서 압도적인 우위가 있기에 많은 정치인들을 자기 사람으로 부릴 수 있는 것이지요. 또한 그런 자금력을 바탕으로 언론과 경찰, 검찰을 포섭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금력? 물론 제1정당이기 때문에 자금력이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이긴 하지. 그런데 그게 그 정도로 압도적이란 말인가? 설마 대기업 재벌들로부터 비자금이라도 받고 있는 것인가?”
김다니엘은 자기가 미처 몰랐던 사실이라 궁금해 하며 물었다. 이것에 조는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아닌 걸로 확인되었습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그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지요. 대기업들은 모든 정당에 같은 액수로 후원금을 내고 있습니다. 물론 한희수 정도 위치에 있는 자가 원한다면 대기업으로부터 비자금을 받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그 자는 그 쪽으로는 전혀 손을 뻗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른 곳에서 충분한 액수의 정치 자금을 조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곳이라면... 어디를 말하는 건가?”
“그것은 저도 모르겠습니다.”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은 조의 말에 이 자리의 모두는 몰입을 하였다. 이에 차승민은 진지한 눈빛으로 물었고 조는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그러자 김다니엘은 다시 발끈하였다. 언제나 침착하고 분위기가 있는 존재인 김다니엘은 유독 조의 앞에서는 흥분하는 모습을 자주 보이고 있었다.
“지금 장난 하자는 것이냐.”
“확실하게 팩트를 잡지 않고 확언을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단서는 찾아냈습니다. 제가 해킹을 통해서 한희수의 비밀 일정을 알아낸 것이 있습니다. 이 자는 지금까지 매년 4회씩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곳이 있더군요. 외부에 알리지 않고 말입니다.”
“뭐? 그곳이 어디지?”
“바로 한국의 제7 광역시인 인산 시입니다.”
“엥?”
인산 시의 이름을 들은 차승민과 보좌관들은 뜬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곳은 광역시 중에서 가장 인구가 적고 남쪽 끝에 있어서 그리 특별한 지리적 위치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상당한 규모의 기업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 대단할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그냥 아는 사람이 있어서 그러는 것이 아닐까?”
“한희수 정도 되는 사람이 아는 사람 보려고 매년 같은 시기에 4회나 방문을 하지는 않겠지요. 그곳에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그, 그것도 그렇군요. 아는 사람이 있다 해도 그 자가 한희수 대표를 보려고 와야지, 대표가 그 멀리까지 갈 일은 없지 않겠습니까.”
조의 말에 다른 보좌관이 동감을 하며 맞장구를 쳐주었다. 김다니엘도 그 말을 들으며 뭔가 이상함을 알게 되었다. 인산 시는 한희수의 고향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떠오른 게 하나 있습니다. 인산 시를 광역시로 만들 때 그것을 주도했던 사람이 바로 한희수 대표였습니다.”
“음? 맞아. 나도 기억나는군. 창원도 광역시가 안 된 마당에 뜬금없이 남해안 주변의 도시들을 통합하여 광역시를 만들겠다는 것에 모두가 의아해하긴 했었지. 그런데 자유정의당의 힘을 앞세워서 밀어붙여 기어코 만들기는 했고 말이야.”
그 당시를 기억하는 보좌관들의 말에 조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차승민을 보았다.
“그렇습니다. 이 인산 시는 분명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인산 시를 제대로 알아보는 것이 한희수를 치는 것의 밑거름이 될 거라고 봅니다. 그를 위해서 제가 당장 내일 인산 시로 가보겠습니다. 한희수의 비밀일정에 따르면 그 자도 곧 인산 시로 갈 것이니 말입니다.”
“헛! 직접 가서 탐색을 해볼 생각인가?”
“네. 꽤 오랜 시간이 걸릴 듯 한데 그를 위해서 경비나 두둑하게 주시면 될 겁니다.”
조는 씨익 웃으면서 말하였다. 그것에 차승민은 잠시 고민하더니 같이 미소를 지으면서 답했다.
“그럼 나도 같이 가도록 하지. 마침 할 일도 없고 말이야.”
“네? 의원님. 국회 내 소속되신 위원회의 회의도 있고 다른 스케줄도 많이 있습니다만...”
“그 회의야 내가 없이도 지들끼리 알아서 멋대로 하는데 굳이 시간낭비 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리고 다른 스케줄도... 다 허례허식에 지나지 않지.”
차승민은 김다니엘의 말을 가볍게 물리치며 조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논의하였다. 그것에 김다니엘은 차승민이 많이 변했음을 느꼈다.
‘예전에는 사소한 것까지 다 열심히 하시고 챙기셨는데... 저 녀석과 함께 하면서 점점 달라지시는구나.’
김다니엘은 그리 생각하면서 굳은 표정을 하고 차승민에게 다가갔다.
“그럼 저도 같이 하겠습니다.”
“음? 자네는 이곳을 지키는 편이...”
“어차피 다른 보좌관들도 많이 있지 않습니까. 제가 경호 역할을 해줘야 의원님도 든든하시지 않겠습니까. 하하.”
“훗. 그것도 그렇군. 뭐 김다니엘 보좌관이 함께 해주면 나야 좋지.”
그렇게 차승민과 김다니엘, 조의 파티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수수께끼의 도시인 인산 광역시로 향하게 되었다.
인산 광역시... 대전, 대구, 부산, 광주, 인천, 울산에 이은 대한민국 제7의 광역시이다. 남해안가에 위치한 전라남도와 경상남도의 도시들을 통합하여 만든 이곳은 면적은 넓었지만 인구는 100만을 겨우 넘기는 작은 광역시였다.
광역시로 정해질 때부터 많은 전문가들이 의문을 가졌던 이곳은 광역시가 된 이후 예산 배정 등을 더 받았을 뿐 특별한 변화는 없었다. 그렇기에 모두의 관심에서 바로 사라져갔고 차승민 등도 이곳에 대해 아는 바는 별로 없었다.
그런 상태에서 인산 시에 들어선 차승민 일행은 예상외의 현실에 경악을 금치 못하게 되었다.
“그야말로... 향락의 도시이군요.”
인산 시 내부의 번화가에 발을 디딘 김다니엘이 가장 먼저 한 말이었다. 이에 차승민도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봄이 되어 날씨가 따스해지면서 많은 이들이 술집 밖까지 나와서 음주가무를 즐기고 있었다. 개중에는 매우 민망한 행위를 하고 있는 자들도 이었다.
“음... 내가 법에 대해서 잘은 몰라서 하는 말인데... 이거 불법 아닌가?”
“정확히 공연음란죄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관계를 보니까 일반적인 연인은 아닌 것 같은데... 성매매를 금하고 있는 현행법에도 저촉됩니다. 이건 뭐... 정상적인 도시가 아니군요.”
차승민과 김다니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하였다. 반면 조는 달랐다. 그는 만면에 미소를 가득 띠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야~ 한국에도 이런 천국이 있었군요. 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저는 이 나라로 온 후 왜 그리 절제를 하고 사나 의문이었는데 이곳은 다르군요. 하하.”
“이 나라? 강원도 고성에서 온 것으로 아는데 그곳이 이런 향락의 도시라고?”
“음? 하하. 조의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차승민이 조가 던진 말을 주워 담으려는 순간 어디선가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차승민은 그곳으로 걸어갔고 곧 폭력배로 추정되는 무리가 노인에게 소리를 치며 겁박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 망할 노인네가! 이 길로 지나다니지 말라고 했지! 어딜 술 맛 떨어지게!”
“하... 하지만 다른 길로 가려면 한참 돌아가야 돼서... 한번만 봐주게. 오늘따라 리어카가 특히 무거워서 어쩔 수 없었네.”
“리어카? 하아~ 그래. 무거워 보이기는 하네. 깡마른 노인네가 끌고 가기에는 확실히 무거워. 하하.”
노인의 사정에 폭력배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긍정의 신호로 안 노인은 함께 미소를 지으려고 했고 그 순간 폭력배는 눈을 번득이며 발로 리어카 위의 폐지들을 걷어찼다.
‘팍 파앙 팡’
“헉! 이, 이게 무슨 짓인가...”
“왜? 무겁다고 했잖아. 그래서 내가 가볍게 해주려는 거지. 어때? 이 정도면 충분히 가벼워지지 않았어?”
“그, 그만 하게. 나는 이걸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이라네. 그러니 제발...”
노인은 그를 말리기 위해 달라붙었다. 그러자 폭력배는 짜증이 더해진 듯 팔꿈치로 노인의 명치를 치며 떼어냈고 노인은 바닥에 나뒹굴면서 고통스러워했다. 그 모습에 김다니엘은 발끈하면서 나서려 했다.
“저 놈이...!”
“그만 하시지요. 저런 피라미 하나 잡아서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뭐라고? 웃기지 마라. 비리비리하게 생겨가지고 겁을 먹은 것 같은데 내가 알아서 하겠다.”
“훗! 비리비리하다라... 저와 일대일로 싸우면 당신이 이길 수 있을까요?”
조는 김다니엘의 말에 씨익 웃으면서 도발을 했다. 이에 김다니엘이 뭐라 하려는 순간 그들 사이에 있던 차승민이 몸을 날려 달려갔다. 그리고는 노인을 구타하는 폭력배의 볼에 주먹을 휘둘러 그대로 정타를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