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 모습을 차승민 일행은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다.
“한희수? 조의 말이 맞았군요. 한희수 일행이 이곳에 와 있었습니다.”
“음... 그렇군. 방태수와 나은민도 보이는군. 그리고 나머지들은... 놀랍군. 인산 광역시장과 소속 국회의원, 거기에 지검장과 지방경찰청장까지... 아주 대단한 인물들은 다 모여 있군.”
“나머지 녀석들은 면면을 보니 조직의 보스들처럼 보이는군요. 예상대로입니다. 한희수는 이 암흑의 도시에서 하나의 최종보스 같은 존재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데리고 각 기업과 회사들을 겁박하여 정치자금을 뜯어내 왔던 것이지요.”
조는 빠르게 정황을 파악하며 결론을 내렸다. 이에 김다니엘은 눈을 번득이며 휴대폰을 꺼내서 한희수 일행이 놀고 있는 장면을 찍었다. 그 모습에 조는 흠칫 놀라면서 손을 뻗어 김다니엘의 휴대폰을 잡고 내렸다.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뭐 하냐니. 이것 자체가 비리잖아. 명색이 정당의 대표란 자가 지역의 유력 인사들과 함께 저런 향락 파티를 벌이다니... 이것을 폭로한다면 한희수 세력에게 크게 먹일 수 있을 거야.”
“뭐라고요? 하아~ 이렇게 한심할 수가... 그런 것 찍어서 백날 폭로한들 뭐가 달라질 것 같습니까. 살인을 자살로 포장할 만한 힘을 가진 놈인데 이깟 사진 몇 장. 이 정도로 잡을 수 있다고 보았습니까.”
“그래도 어느 정도의 타격은 줄 수 있겠지. 사실 이 인산 광역시는 엉망인 것이 한둘이 아니야. 그것들을 세상에 알려서 바로 잡는 것만 해도 큰 성과일 거야. 저런 폭력 조직들도 일망타진하고 말이야.”
김다니엘은 굳건한 눈빛을 하며 조에게 맞섰다. 이에 조는 이마를 짚으면서 고개를 흔들고는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말하였다.
“김다니엘 님의 말씀대로 모든 것이 잘 풀렸다고 칩시다. 한희수에게 어느 정도 타격을 주는 데 성공하고 저 조폭 세력들을 모조리 쓸어버렸다고 치지요. 그런데 그렇게 해서 우리에게 이득이 될 게 무엇이지요?”
“이득? 그것은...”
“김다니엘 님. 전쟁이란 것을 왜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전쟁 후에 들어오는 것, 즉, 전리품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얻은 것 하나 없이 한희수 세력에게 타격을 주는 것에서 그친다면... 이것은 제3자인 이시원 세력만 좋은 일입니다.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싶으십니까?”
그간의 공부를 통해 자유정의당의 내부 세력구도를 파악한 조는 바로 맥을 짚으며 김다니엘을 몰아붙였다. 이에 김다니엘은 반박을 하지 못했고 차승민이 대신 나서서 물었다.
“그럼 자네는 다른 방법이 있는가?”
“네. 있습니다. 이 악의 도시 인산이 한희수가 가진 힘의 원천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대략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도 파악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 도시를 한희수의 것이 아닌 차승민 의원님의 소유물로 만들어드리겠습니다. 후후.”
조는 악마처럼 사악하게 웃으면서 말하였다. 이에 차승민은 거부감을 느끼면서 고개를 저었다.
“으음... 이런 상태의 도시를 가지고 싶지는 않은데... 예의와 도덕, 정의가 모두 무너진 상태로 저런 더러운 인물들과 어울리면서 도시를 다스리고 싶지는 않아. 내가 자네를 신뢰하기는 하지만 이것은 좀...”
“그러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차승민 의원님의 고결한 인품에 그것은 무리겠지요. 그것은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아주 완전한 세탁은 안 되겠지만... 그래도 지금보다는 상당히 나아진 모습으로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뭐? 어떻게 말인가?”
“지금 진도에서 너무 자세히 알려드리는 것은 무리입니다. 아무튼... 이제 그만 서울로 돌아가시지요. 두 분 모두 말입니다.”
조는 차승민의 물음에 귀찮다는 듯이 손을 내저으며 말하였다. 그런 제스처에 김다니엘은 발끈하며 물었다.
“뭐라고? 우리 없이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그냥... 지금으로서는 두 분은 그냥 방해만 되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멋대로 주먹질을 하지 않나, 들킬 수도 있는데 사진을 찍어대질 않나. 이런 무리들 사이에서 그랬다가는 제 명에 못 죽지요.
제가 구상해둔 그림이 있으니 알아서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림의 주인공들은 대략 알아두었으니 말입니다.”
조는 그리 말하고는 그들을 루시퍼 클럽 밖으로 떠밀었고 그대로 문을 닫고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그러면서 그는 시선을 돌려 누군가를 바라보았다. 그는 바로 얼마 전에 만났던 민호였다.
‘호오~ 확실히 조직들 사정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싶더라니 다른 조직에 속해 있었던 것이군. 그런데 하는 꼴을 보니 바텐더 같은 것은 아닌 것 같고... 누군가를 경호하는 것인가?’
조는 눈썰미를 통해 민호의 위치와 하는 일 등을 파악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민호의 주변에 있는 이들 중에 뭔가 분위기를 풍기는 존재를 찾아냈다. 그 존재는 3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여성이었는데 섹시하면서도 쉽게 범접하기 힘들 것 같은 포스를 뿜고 있었다.
그녀는 한희수 일행이 신나게 즐긴 후 쉬어가는 타임을 가지자 여유롭게 걸으면서 그들 앞에 섰다. 이에 민호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그녀를 따라갔고 그녀를 발견한 이민식은 자리에서 일어나 소개를 했다.
“하하. 역시 우리 호스트가 타이밍 잡는 것은 기가 막히지. 대표님. 소개하겠습니다. 우리 안하무인 휘하 클럽인 루시퍼의 여주인인 ‘이은빈’입니다.”
“음? 여어~ 우리 인산 시의 여걸 은빈이가 왔구만. 어때? 오늘 이 오빠랑 침대에서 면담 좀 해야지?”
“너 까짓 게 내 상대가 되겠니? 낄 데 구분하고 나서라?”
이은빈을 알아본 파이어리츠의 커터는 음담패설을 하면서 말을 걸었고 이에 이은빈은 경멸어린 눈빛으로 그를 가볍게 물리쳤다. 그 모습에 한희수는 껄껄 웃으면서 이민식을 보았다.
“아니. 이런 여걸을 어디에 두었다가 지금 보여주는 건가.”
“하하. 원래 진짜는 나중까지 아껴두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루시퍼의 여주인께서 대표님을 위해 준비한 무대가 있다고 하니 한 번 즐겨보시겠습니까?”
“당연하지. 원래 호의를 거절해선 안 되는 것 아니겠나.”
이민식의 나긋나긋한 말에 한희수는 마음이 동한 듯 재촉을 했다. 이에 이민식은 음악대에게 손짓을 했고 그들은 남미 풍의 야릇한 음악을 연주하였다. 그에 맞춰서 이은빈은 천천히 춤을 추었다. 그녀는 다른 직원들에 비해 전혀 노출이 과하지 않았으나 그럼에도 풍기는 섹시함은 60세가 넘은 한희수를 매료시키고 있었다. 아슬아슬한 선까지 상의와 치마를 올릴 때마다 모두는 눈을 번쩍이면서 탄성을 질렀다.
그리고 민호는 이를 바라보면서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바로 그 때 누군가가 민호의 어깨를 짚었고 그는 움찔하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 자는 바로 조였다.
“뭐지? 아직 이 도시를 떠나지 않았나?”
“헤헤. 왜 여기를 떠나야 하지? 이런 도시는 나에게 아주 딱인데 말이야. 내가 젊었을 때 딱 이러고 놀았었거든. 무뢰배들은 나의 절친이나 다름이 없지.”
20대로 보이는 조가 그렇게 말을 하자 민호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흔들며 답했다.
“너도 정상은 아닌 놈이었군.”
“응? 이거 이상하군. 그 말은 민호 너는 정상이라는 뜻인데... 그런 녀석이 왜 이런 폭력 조직에 속해 있는 것이지?”
“우리 안하무인은 단순한 폭력 조직은 아니다. 다른 자들처럼 약자를 괴롭히지는 않지. 그리고 강자에게 굽실거리지도 않는다.”
“엥? 내가 알기로 저기 한희수의 옆에서 굽실거리는 자가 네 보스인 이민식 같은데... 너는 굽실거린다는 단어 뜻을 잘못 알고 있는 것 아닌가?”
조는 능글맞게 웃으면서 민호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이에 민호는 약간 짜증을 느끼면서도 답변을 해주었다.
“저것을 그렇게 보았다면 너는 인산 시에 대해서 몰라도 한참 모르는 것이다. 이 도시는 완전히 미쳐 있다. 기업이고 회사고 직원들을 착취하는 데에만 혈안이고 영세 상인들은 조직 놈들에게 수익의 반 이상을 내야 하지. 이를 막아줘야 할 시청, 검찰, 경찰 등은 오히려 비호만 하고 있고 진실을 말해야 할 언론은 힘 있는 자의 편이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 안하무인은 나름의 정도를 가지고 담당 구역을 다스리고 있다. 최소한 우리 구역에서만큼은 너희가 보았던 그런 추악한 모습은 나오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우리 보스인 이민식 님과 이은빈 누님의 공헌이다.
비록 지금 저렇게 어울리고는 있지만 만약 우리 클럽이 아닌 다른 곳에서 저런 자리가 생겼다면 더욱 추악한 모습이 펼쳐졌을 것이다. 보스는 그것을 막기 위해서 저렇게 적당히 어울려주는 것이다.”
민호는 자신의 소속 조직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한 듯 눈을 빛내면서 답하였고 이에 조 역시 눈빛에 이채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안하무인이라... 그 말의 뜻은 대단히 오만하고 건방진 모습을 말하지만... 달리 말하면 상대가 누구이든 당당하게 자신의 뜻을 관철한다는 것이기도 하지. 그래서 말인데... 나와 함께 일을 해보지 않겠나?”
“뭐?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내가 보기에 너는 이 도시를 꽤 사랑하는 것 같아서 말이야. 아마 이곳에서 나고 자란 것이겠지. 그렇기에 이 도시의 현실에 대해서 매우 한탄하고 있어. 그렇다면 나를 돕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나는 이 도시를 좀 더 밝게 만들고 싶거든.”
조는 강한 자신감을 보이면서 말하였다. 이에 민호는 이상하게 신뢰감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곧 고개를 저으면서 답하였다.
“미안하지만 나는 해야 하는 일이 있다. 너를 도와줄 여유는 없어.”
“후후. 그 해야 하는 일이란 것이 저 이은빈이란 여인을 지키는 것인가?”
“뭐? 그걸 어떻게... 흠흠. 맞다.”
“그것은 네가 너무 신경 쓸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대략 보아하니 저 여인이 이 안하무인 조직의 2인자 같은데 지킬 사람은 너 말고도 많을 것 같고 말이야. 괜히 네가 오버해서 그녀를 곁에서 지키려고 하는 것 아닌가?”
“!”
조의 말에 민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의 말이 하나같이 정확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민호의 표정변화에 조는 실소를 터트리면서 종이쪽지를 주었다.
“내가 묵고 있는 숙소야. 내일 시간 될 때 찾아오도록 해. 그럼 나는 간다.”
“이, 이봐.”
조는 할 말을 다 하자 쿨 하게 사라졌고 민호는 그를 잡으려 했으나 그 순간 이은빈의 공연이 끝이 났다. 이에 민호는 쪽지를 주머니에 넣고 이은빈에게로 시선을 돌려야 했다.
<남의 힘 가지기>
다음날 조는 호텔에서 일어나 간단히 샤워를 하여 정신을 차리고는 커피포트로 물을 끓여 홍차를 만들어서 향을 음미하였다. 그렇게 그는 느긋하게 잔을 들이켰고 시계를 보았다. 그리고는 갑자기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5, 4, 3, 2, 1...”
‘딩동’
그가 카운트다운을 마치자마자 현관의 벨이 울렸고 조는 피식 웃으면서 현관으로 가서 문을 열었다. 그 밖에는 민호가 서 있었다.
“후후. 너라면 시간관념이 정확할 거라고 보았지. 역시나 실망을 시키지 않는군.”
“흥! 오래 자리를 비울 수 없으니 용건이나 빨리 말해라. 이 도시를 어떻게 정화시킬 생각이지? 이 도시에 빛을 가져올 수 있는 방안이라도 있나?”
“에이~ 이은빈은 너 말고도 지킬 사람이 많다니까 그러네. 아마 그녀는 너를 신경도 안 쓰고 있을 거야. 그러니까 괜히 혼자 오버할 필요 없어.”
“시끄럽고 답변이나 하시지.”
조는 이죽거리면서 대화 방향을 돌렸고 이에 민호는 발끈하면서 으름장을 놓았다. 그런 민호를 재미있다는 듯이 바라보며 조는 답을 해주었다.
“그것은 간단한 거야. 작은 것부터 바꿔가는 것이지. 그렇게 하면서 종국에는 이 도시를 올바른 이상을 가진 자에게 주는 것이다.”
“그 올바른 이상을 가지고 있다는 자가 그 때 주먹질을 해댄 국회의원 차승민인가? 네 주인으로 보이는 자 말이다.”
“응? 그 분의 정체를 알고 있었나? 후후.”
“당시에는 몰랐지만 어디서 본 것 같은 얼굴이어서 생각을 곰곰이 해보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보게 되면서 확신을 했지. 그 때 함께 있었던 자는 수석보좌관인 김다니엘이고... 너도 보좌관 중 하나인 것 같은데... 맞나?”
민호는 총명한 듯 바로 상대의 정체를 다 파악해내면서 물었다. 이에 조는 역시 자기가 파트너를 잘 골랐다고 생각하면서 답하였다.
“제대로 보았다. 그런데 반은 틀렸다. 이 도시를 받아서 지배하게 될 상대는... 차승민 의원님이 아니라... 바로 민호 너이다.”
“뭐? 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조가 민호를 가리키며 말하자 그는 잠시 멈칫하였다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지금 농담을 하는 것이냐. 나는 안하무인 조직에서도 간부 급 밑의 위치에 있다. 나 같은 것이 이 도시를 다스린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후후. 삼국지의 유비는 일개 평민에 불과하였다. 정확히 따지면 무뢰배였지. 그런 자가 민중을 현혹시켜서 인기를 끌고 그 기세를 바탕으로 한 개 주를 지배하여 스스로를 왕이라고 칭할 정도의 위치까지 올랐다. 지금 어떤 위치에 있느냐는 하나도 중요한 것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나는 살아오면서 수많은 영웅들을 보아 왔다. 그래서 그들에게서 풍기는 특유의 기운을 알고 있다. 민호여. 너는 남의 밑에 오래 있을 그릇이 아니다. 왜냐하면 스스로 강력하게 믿는 이상과 신념, 그리고 철학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을 잘못 보았군. 내게 그런 것은 없다.”
“훗.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곧 생길 것이다. 내가 사람 보는 눈은 아주 정확하거든. 너는 지금은 안하무인의 이민식과 이은빈 밑에서 일하고 있지만 그들이 네가 가진 철학과 달리 움직이려 할 경우 분명 내적갈등을 통해 알을 깨고 나오게 될 것이다. 그 때가 바로 네가 이 도시를 가지게 될 날이다.”
“!”
조는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을 하면서 예언과도 같은 말을 하였다. 그런 조에게서는 상당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고 민호는 이를 느끼면서 왠지 모를 위압감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