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로맨스
말해, 말하라구.
작가 : 랑다정
작품등록일 : 2016.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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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말야…
작성일 : 16-10-23     조회 : 400     추천 : 0     분량 : 6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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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7

 

 

 

 

 

  왜, 이제 와… 왜….

 

 

 

  애틋함을 가득 담고, 어깨에 입술을 묻었는지 뒤에 말이 웅얼 웅얼 묻혀 버렸다. 그리고, 방금까지 등 뒤에서 느껴진 온기는 어느새 가슴에 맞닿았다. 눈치도 없는, 심장이 자신의 위치를 알리기 시작했다. 어째, 민혁 씨의 손이 닿았을 땐 움직이지도 않던 게. 백이현 앞에선 주체할 수 없이 반응했다. 혹시 심장이 미친 건가 싶었다.

 

 

  백이현은 이내 풀린 눈으로 나를 돌려세워 눈을 맞추었다. 그의 입술이 갈라져서 버석버석 말라버린 상태였다. 내가 준 립밤은 어쩌고 다니는지.

 

  올라오는 기운이 답답한지 속에서 끌어 나오는 숨 덕분에 몰랐던 술기운이 이제야 가득 퍼져왔다. 그래, 그럼 그렇지. 백이현 네가 제정신으로 이런 행동을 할리 없다.

 

  예고도 없이, 머리칼을 비집고 파고드는 손길에, 평정심을 찾으려 애썼다.

 

  머릴 넘겨주던 그의 손길에 얼었던 마음이 풀어지는 듯했다. 또다시 술 냄새가 풍겼다. 술에 유난히 약한 백이현. 소주 한 잔에도 혀가 말리고, 정신이 몽롱해 초점이 사라지곤 했다.

 

 그래서 과 선배들은 장난삼아 음료수에 술을 타서 먹이곤 했는데… 그렇게 소주 한잔 이상 마시는 날에는 시체가 따로 없었다.

 

  그냥 사람 구실을 못 한다고 보면 된다. 몸을 못 가누는 건 기본이고, 기억조차 없다. 고로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을 못 한다. 그리고 다음날까지 술 병으로 고생 고생해야만 하는 백이현이, 이기지 못 할 술을 마시고 나를 찾아왔다.

 

 

 

 

  "…… 왜 이제 왔냐고-오."

 

 

 

 

  하지만 이쯤, 몸을 가눌 정도라면 소주 반 병. 대신 기억력은 없을 것이다. 한숨을 늘리며,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자, 대답을 강요했다. 끝말을 늘리면서까지, 묻고 있었다. 가끔 발음이 꼬여서 알아들을 순 없었다. 길게 숨을 뱉었다가. 열이 오르는지, 얼굴을 문질렀다가. 여러 번 반복하는 행동을 취했다.

 

  그새 피부가 많이 까칠해졌네. 어젯밤을 밖에서 지새우고 오늘 밤은 술이 떡이 되었다. 잡은 어깨에 깊이 힘이 들어갔다. 무기력하게 눈을 감았다 뜨며, 다시 한숨을 짙게 내뱉고 나를 올려다본다.

 

  안쓰러운 마음의 고운 얼굴선을 따라, 이마부터 쓰윽 훑으며 내려오기 시작했다.

 

 

 

 

  '이현아 넌, 앞머리를 다 내리는 것보다. 약간, 보이게 내리는 게 더 나아.'

  '그래? 그럼 네가 한번 만져줘봐.'

  '에?'

  '직접 만져줘봐. 자- 어서.'

 

 

 

 

  앞머리를 다 내리지도 그렇다고 다 올린 머리도 아닌. 약간 이마가 보이고, 애교스럽게 무심한 듯 약간 흘러내린 스타일이 좋았다. 눈을 감고 만져주는 대로 가만히 있던 모습이 머릿속을 배회했다.

 

  그렇게 만져 준 이후로, 한동안 왁스로 멋내고 다니더니. 오늘은 습기가 축축하게 젖은 날도 아닌데 힘 없이 늘어져 윤기 없이 마른 앞머리가 애처로워 보였다.

 

  그래서, 그대로 훑듯이 쓱 넘겼다. 하지만, 이마가 훤히 보이게 넘겨주어도 스르륵 제자리를 찾았다. 하는 수 없이 눈을 찌르지 않을 정도로만 정돈을 해주고. 볼로 내려와 머문 손이 차가워진 볼을 매만졌다. 하루 정도 면도를 못 했다고 제법 까끌 까끌하게 손끝을 자극했다.

 

  내일이 되면, 어차피 넌 기억 못 할 테니까. 실컷 만져라도 봐야지. 하는 심정이 컸다. 목 울대를 지나 가슴께로 손을 내렸다. 그리고 툭. 다시 제자리로 내렸다.

 

 

 

 

  "이 시간…까지. 뭐하다 오는데…"

  "이현아, 취했어."

  "안 취했어. 하나도 안 취했다고."

  "술 마시지 마. 보기 안 좋아."

  "너는…!…."

 

 

 

 

  몸 가누기가 힘든지 비틀대면서 자신의 팔로 이마를 짚더니, 아- 하는 소리와 함께 긴 탄식이 흘러나왔다.

 

 

 

 

  "아깐 곧 죽어도 선배라고 부르더니."

  "……………."

  "지금은 왜. 이현아… 라고 부르냐."

  "……어. 그건……"

  "알다가도 모르겠다. 한영원."

  "……뭐가."

 

 

 

 

  그 공대생이랑 잘 되나 봐. 둘이 좋아 보이던데.

 

  어눌한 말투로 물어볼 말을 다 물어보는 백이현. 말할 때마다, 술 냄새가 폴 폴 풍겨왔다. 아저씨들한테 나는 술에 찌든 냄새가 아니라서, 그렇다고 짜증 나진 않았다. 술 마시고 우리 집 앞까지 찾아온 게, 그 이유라는 게. 직접적으로 말한 건 아니지만, 느낌상 나 때문인 것 같아서 기분이 묘해졌다.

 

 ​ 그런데. 민혁 씨와 나. 우리, 둘이 좋아 보인다니. 그래 백이현에겐 충분히 그래 보였을 것이다. 과 건물 앞에서도 민혁 씨랑 같이 있었고, 동아리 건물 앞에서 버젓이 차까지 타고 함께 홀연히 사라졌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근데, 그게 왜?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인데."

  "…정말 상관이 없다고 생각해?"

  "민혁 씨한테 관심 있다고 말했었잖아."

 

 

 

 

  백이현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건 너를 떠보기 위한 연막에 지나지 않았다. 소개팅을 다녀와서 홧김에 한 말이었으니까.

 ​

  사실, 소개팅을 한 것도. 관심 있다고 말 한 것도. 다- 너의 대한 마음을 알아보기 위한 나의 계획이었다. 어느 날 생각도 하지 않은 소개팅 자리가 들어왔었다. 평소라면 거절했을 자린데, 그날은 왠지 나가고 싶었다. 이유는 여러 가지였지만 그 모든 이유는 너였다. 결심을 한 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나간다고 했을 때 너의 반응은.

 

 

 

 

  '어? 어… 그래. 잘 갔다 와.'

 

 

 

 

  잘 갔다 오라는 한 마디에, 욱하는 오기로 나갔다. 장난이라도 가지 말라고 했으면 그 말을 빌미 삼아 나가지 않으려고 했는데. 약간의 기대를 한 내 잘 못이지.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남자가 등장해 소개팅 자리를 박력 있게 파토 내거나하는 그런 상상 말이다. 하지만, 로맨스 따위로 치부 되어버린 상상이 무색하게, 현실은 현실이었다. 어느 한 곳. 그 어디에. 코빼기도 안 보이던 백이현이 서운할 정도로 야속하게 느껴졌다.

 

 

 

  "…너네 사겨?"

  "…그건 알아서 뭐 하게."

  "믿을 만한 놈인 거냐고."

  "아무리 보는 눈이 없어도 그 정돈 구분해."

 

 

 

  그리고, 민혁 씨. 너한테 놈이라고 불릴 만큼, 하찮은 사람 아냐.

 

  말을 하면서도 기가 찼다. 지금 내가 누구 앞에서 누구 편을 드는 건지. 마음에도 없는 말을 쏟아내는 내 입을 꿰매버리고 싶었다. 어떻게 생겨 먹은 주둥인지. 난 아무래도 청개구리인가 봐. 그냥 내 맘 알아주면 안 돼? 왜 몰라줘. 눈빛만 봐도 알아줄 순 없는 거야. 어?라고 말해야 하지만. 상황은 언제나 반대로 흘러갔다. 꼭 미련하고 답답한 짓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지. 없는 말을 지어내고.

 

 

 

 

  "얼른 가. 민혁 씨 오기로 했어."

 

 ​

 

 

  아, 이름이. 민혁이냐. 이름 한 번 겁나게 평범하네. 술 취한 주제에 별말을 다 하네. 백이현! 너 취한 거 맞긴 해? 이거 쇼하는 거 아냐.

 

 ​

 

 

  "내가 알게 뭐야."

  "민혁 씨 곧 주차하고 와-"

  "누구 맘대로."

  "상관 말고 가-"

  "아- 나, 보내고 그 새끼 집에 들이려고?"

  "신경 꺼. 그리고, 민혁 씨 그런 사람 아냐."

 

 ​

 ​

 

  얼마나 만났다고. 아무튼 민혁 씨, 착한 사람이야. 이제 만나는 사이라 편드냐. 그래 편든다. 어쭈. 내 앞에서 ​민혁 씨라고 한번 만 더 해봐. 민혁 씨 민혁 씨! 하면 어쩔 건데. 뭐! 뭐!

 ​

 

 ​

 

 "어쩔 거냐고- 읍!"

 

 ​

 

  정신이 아득했다. 정말 순식간이었다.

 

  약간의 빛 같은 게 백이현 주위에 번쩍이더니, 엄청난 속도를 체감했다. 눈 깜빡할 사이. 나의 말 끝을 삼키고, 입술에 뜨거운 게 맞닿았다. 저지할 여력도 없이 기운이 쫙 풀렸다. 곧 주저앉을 듯 위태로웠다. 이럴 땐 당황해서 확 밀쳐내야 하는데, 머릿속이 온통 하얗게 도배되었다.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발끝까지 쿵쾅 쿵쾅 들썩였다. 심장이 터지도록 울리고 이대로 두어도 괜찮을까. 심각하게 걱정될 정도의 울림이 온몸으로 구석구석 뻗었다.

 

  나의 목덜미를 잡고 고정시킨 채 머릿속을 파고드는 손길이 단단했다. 분위기를 타버린 나는 입술 사이로 뜨겁게

 달궈진 숨을 받아들이기 바빴다. 그 틈으로 알싸한 알코올 향이 퍼지면서 빨아들여지고, 듣기에도 민망한 소리가 났다.

 

  그렇게 가볍게 하는가 싶더니 애가 타게 떨어졌다 붙었다를 반복했고, 발끝을 올릴 때쯤 아래 입술을 베어 물었다. 이내 말캉한 게 쑥 파고들었다. 그리곤 입안 이곳저곳 예고도 없이 헤집어 나가기 시작했다. 절대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그의 숨결을 붙잡고, 서로가 서로에게 매달려 끝없는 입맞춤이 계속되었다. 분위기가 서서히 무르익을, 그때. 차가운 손이 등줄기에 닿았고.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

  그때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급하게 떨어지느라 아래 입술이 약간 따끔했다. 미쳤어. 미쳤어. 미쳤어! 한영원! 너 제정신이야? 지금 우리 뭐 한 건데. 내 스스의 입을 틀어막고 백이현을 원망의 눈길로 바라봤다. 날 안고 있던 그는 눈을 감은 채 곧바로 내게 기대 듯 쓰러졌다.

 

 

 

  "으윽-"

 

 

 

  엄청난 무게를 감당해내느라 신음이 났다. 야. 백이현 정신 차려. 일어나. 이 자식아. 지금 잠이 오냐! 야. 안 돼. 나더러 어쩌라고. 절대 소용없었다. 나와의 키스가 잠자는 묘약 따위가 된 기분이었다. 어떻게 끝나자마자 잠이 드는데. 아- 기가 막혀. 현기증 나.

 

 

 

  "아오, 진짜. 겁나 무거워. 아우우-"

 

 

 

  젠장. 백이현. 너 일어나면 두고 보자.

 

  낑낑대면서, 백이현을 들쳐 메다 시피 하고 우리 집이 있는, 3층까지 올라가는 중이었다. 정신을 잃 듯 잠이 든 백이현을 길바닥에 버려두고 올 수 없었다. 그렇다고 집까지 바래다줄 수도 없고. 백이현도 나처럼 혼자 자취하는 걸로 아는데, 비밀번호도 모를뿐더러. 그럴 생각도 나지 않았고. 그나마 제일 가까운 우리 집으로 데리고 오는 수밖에 없었다.

 

 

  정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야.

 

 

 

 

 

 

 

 

 

 

 

 

 

 

 

 

 

  아 땀나. 운동 제대로 하네, 이따금씩 난간 봉에 부딪히고 벽에 부딪히고. 일어나면 백이현 몸에 멍이고 상처고 장난 아니겠다. 약간 미안해져, 푸흐흐. 웃음이 났다. 숨을 고르고, 팔을 으쌰 두르며, 3층까지 겨우겨우 올라왔다. 한 쪽 팔로 백이현을 지탱한 채, 비밀번호도 반대편 손으로 간신히 누르고.

 

 

 

  "아휴- 무거운 자식. 골로 갈 뻔했네."

 

 

 

  침대에던지 듯 눕혔다. 제대로 맛이 가 인사불성에 시체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너무 힘을 빼 갈증을 느낀 나는 물컵 한가득 물을 부어 벌컥 벌컥 원샷을 했다. 캬- 입 주위를 옷소매로 훔치며 침대로 다가갔다. 내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는 너를 보니, 갑자기 씁쓸해졌다. 아까 일 기억도 못 하겠지. 백이현은.

 

  그럼 이건 나만의 비밀이 되는 건가. 비밀이 하나 더 늘었네.

 

  술기운을 빌려 하게 된 키스였지만, 내가 단세포인 건지. 아무 생각 없이. 단순히 좋았다. 그동안의 상처를 보상받은 것 같은 기분…. 하지만 또다시 상처로 얼룩지겠지만…

 

  목이 간지러운지 목 부근을 벅벅 긁고는, 끙끙대는 소리를 냈다. 또 맘 약해지게. 요물 새끼가. 휴…. 움찔. 추운지 몸을 웅크리고 손으로 이곳저곳을 더듬 더듬거렸다. 나도 모르는 한숨을 쉬고, 발치에 있던 이불을 끌어올려 가슴께까지 올려주었다. 그리고, 자연스레 나를 삼키던 너의 입술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아깐 박력이 넘치더니.

 

 

 ​

 

  지금은, 보듬어 주고 싶은…

 ​ 애기 같아.

 

 ​

 

 ​

 

 ​… 이현아. 난 너의 이런 모습에 반한 걸까.

 

 

 

  달빛에 의지한 채 보송 보송한 솜털이 여과 없이 드러났다. 언제 뜰지 모를 눈. 한 올 한 올 길게 뻗은 속눈썹. 살랑살랑 손가락으로 건드렸다.

 

  꿈틀 꿈틀. 간지러운지 손으로 눈을 마구 비비더니. 그 손이 그대로 나를 잡았고,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 잠깐의 거부할 기회조차도 없이, 얼떨결에 백이현에게 안겨버렸다.

 

 

 

 

  "… 너 자는 거 아니었어?"

  "……………."

  "… 야, 장난치지 마. 어? 야아- 백이현!"

  "……………."

  "이렇게 어물쩡 넘어가는 거 재미없다."

  "……………."

 ​ "설마, 진짜. 잠꼬…. 정말 가지가지 한다."​

 

 

 

 

  잠결인 것 같았다. 나의 말 소리가 허공으로 흩어졌다. 새근새근. 조용한 숨소리가 대신 답을 했고, 정수리 부근에 궤어진 백이현의 턱 밑으로 불어 고스란히 닿았다. 정말 여러 가지하시네요. 백이현 씨. 이 요물 새끼. 어디서 떨어진 거야. 넌! 사람 마음 쥐 흔들어 놓고, 다음날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넌 아무것도 모를 거 생각하니 가슴이 울렁이고, 목이 막혀. 코끝이 찡해지는 게.

 

  또다시 울컥했다. 백이현 가슴께에 영락없이 코를 박고 눈물을 삼켰다. 뜨거워진 눈시울을 두 손으로 가린 채. 몸이 들썩였다. 흐느끼는 통에 그랬다. 이런 내 맘을.. 넌 아는지 모르는지. 더 조여오는 틈에 어디로 나갈 수도 없었다. 몸을 틀 수 록 더욱더 단단히 잡고 있었다. 하여간 웃긴 놈. 백이현 이 새끼는, 나를 안고 자는 인형쯤으로 여기나 보다.

 

 ​

 ​ 백이현. 냄새나. 좋은 냄새.

 

 

  편안해졌다. 느슨하게 이완되면서. ​잠자코 있으니, 숨을 쉴 때마다, 그의 심장 소리가 여과 없이 들렸다. 규칙적인 움직임에 나도 모르게 자꾸만 눈이 감겨온다.

 

  뻑뻑한 눈을 느리게 떴다 감으니… 하품이 나왔다. 눈이… 눈이… 너무도 무겁다….

 

 

 

 

 

 

 

  오늘 밤은 이렇게, 같이 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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