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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 말하라구.
작가 : 랑다정
작품등록일 : 2016.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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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간지러워져
작성일 : 16-10-23     조회 : 400     추천 : 0     분량 : 5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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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열심히 열강을 토하시는 교수님, 나이가 지긋하심에도 저렇게 열정적이실 수 있는지 존경스러웠다. 하지만 수업이 반 이상이 진행된 상황인터라, 곳곳에서 졸거나 아예 고개를 숙인 학생들이 더러 있었다. 다들 집중력이 떨어진 상태라는 게 여실히 드러나고 있는 와중에 나는 졸릴 틈이 없었다. 이유는,

 

 

 

 

  '영원아, 이거 봐, 봐.'

 

 

 

 

  소곤 소곤 말하는, 백이현이 창가 쪽 가까이에 앉고 바로 옆에 내가 앉아있어서 고개를 돌리면 온전히 백이현만 보였다. 나무 그늘로 햇볕이 강하기보단 은은하게 비춰 들어오고, 덕분에 백이현이 앉아 있는 모습은 한 폭의 잘 나온 사진 같았다.

 

  수업 내내 공책에 무언갈 열심히 끄적이더니, 팔꿈치를 가끔씩 쿡쿡 찔러서 이것 좀 보라고 하는 백이현 덕분에 당최 졸릴 틈이 없었다.

 

  이번엔 교수님을 그렸다면서 보여주는데, 짙은 송충이 같은 눈썹에 큰 안경. 이마가 훤하신 대 머리를 포인트로 캐리커처같이 그려 놓아서 웃음이 강하게 터졌다. 교수님 목소리와 필기하는 소리. 이따금씩 대답하는 소리만 들리는 강의실에서 개인적인 웃음소리는 치명적이었다.

 

  순식간에 이목이 쏠리고, 고개를 푹 숙이자. 본인도 웃음보가 터지려는지 백이현은 손을 모으고 입을 막은 채. 책상과 딱 붙어 하나가 되어있었다. 혼자만 치사하게.

 

 

 

 

  "……………."

  ​"……………."

 

 ​

 ​

 

  근데 솔직히 그 모습이 귀여워서 죽을 뻔했다. 잔망스러운 백이현.

 

  시시하고 유치한 장난이라도, 수업시간에 하는 금지된 장난은 괜히 스릴 있고, 그 어떤 장난보다도 가장 꿀잼인 법이었다.

 

  다행히 그냥 넘어가 주신 교수님. 잠잠해지고 또다시 수업이 진행됐다. 필기를 하는데, 정면을 보고 있어도 옆에서 하는 짓이 보였다. 고개도 안 들고 열중하는 것 같아 한쪽으로 머리를 쓸고 그대로 턱을 궤어 백이현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아까보다 한층 더 따사로워진 햇살에 눈이 시거웠지만 백이현 동작 하나하나를 급하게 쫓았다.

 

  사람은 누구나, 누군가 날 보고 있으면 은연중에 눈빛을 느껴지기 마련이다. 백이현이 곧 고개를 들고 나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멍하더니. 배시시 수줍은 듯 웃었다.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백이현 입술에 입을 맞출 뻔했다.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는 말이 여기에 적용되나 보다. 고개를 도리도리 젓고, 애꿎은 입술을 살큼 물고 이성을 차렸다. 눈을 비비고 양쪽 뺨을 살짝 톡톡 쳤다.

 

  그러는 와중에, 백이현이 종이를 쓰윽 밀었다. 이게 뭔데. 입 모양으로 뻐끔거리자. 내가 그린 너. 란다.

 

  한쪽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턱을 궤고 백이현을 보는 모습의 나였다. 자연스러운 느낌의 스케치가 맘에 쏙 들었다. 다만, 온전히 나만 느끼는 부분이었지만. 널 바라보는 내 눈빛이 고스란히 담겨있어서 내 마음이 들킨 것 같아 부끄러웠다.

 

  그렇다고 굳이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만약에 내가 너에게 한 고백으로 인해 친구 사이라도 될 수 없을까 봐.

 

 

 

 

  '너무 잘 그렸다. 고마워.'

 

 

 

 

  입 모양으로 말하자. 대답 없이 빙그레 웃더니 흘러내린 내 머리카락을 쓸어 한쪽 귀로 넘겨주었다. 그리곤 한참을. 백이현의 눈빛이 내 얼굴 안에서 멤멤 돌았다.

 

 

 

 

  '…나… 어떡…하냐.'

 

 

 

 

  한참 바라보기만 하던 백이현이 입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목울대가 꿀렁이면서 또박 또박 한 글자씩 천천히 말하더니 잠시 주춤했다. 자세히 보기 위해 실눈 아닌 실눈까지 뜨며 보았다. 왠지 모를 두근거림과 함께.

 

 

 

 

  '…… 좋아.'

 

 

 

 

  응…?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고개를 갸웃 거리자, 심호흡하던 백이현이 다시 뻐끔거렸다.

 

 

 

 

  '네가 점점 좋…ㅇ.'

  "자,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입니다. 수고들 했어요. 다음 시간에는 -"

 

 

 

 

  강의 종료를 알리는 교수님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어수선한 분위기로 삐걱대는 책상 소리와 끼익 소리를 내며 의자를 미는 소리가 한데 뒤엉켜 여러 가지로 가방 챙기는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순식간에 학생들이 빠져나가고, 달랑 우리 둘 만 남았다. 앞머리를 비벼 털듯이 올린 후 백이현은 말없이 가만히 앉아 미동도 없었다.

 

 

 

 

 

  "이현아, 아까 무슨 말-"

 

 

 

 

 

  RRRRRRR……rrrrrrr

  진동으로 해놓은 휴대폰이 책상 위에서 떨리고 있었다. 진동으로 인해 약간 돌던 폰의 액정 위로 뜨는 건.

 

 

 

  민혁 씨.

 

 

 

  세 글자가 뚜렷하게 보였다. 백이현이 힐끔 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내가 받아주길 기다리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니, 백이현 앞에서는 받고 싶지 않았다. 수화기 너머로 들릴 민혁 씨 목소리를 백이현이 듣지 않았으면 하니까. 굳이 네 앞에서 받을 이유도 없고.

 

 ​

  한번 울림이 끊어지고, 진동이 두 번째 울리고 있었다. 도저히 안 되겠던지 백이현이 말했다.

 

 

 

 

 

  "전화 안 받아?"

  "……………."

  "얼른 받지 그래."

  "… 나중에 다시 하면 돼."

  "너 기다리는 것 같은데."

 

 

 

 

  괜찮아, 안 받아도. 신경질적으로 집어서 볼륨키를 낮췄다. 진동이 끊기고 무음으로 변경된 휴대폰의 액정은 물음표가 둥둥 떠있는 채로 여전히 환했다.

 

 

 

 

  "큼…."

 

 

 

 

  적막감에 몸이 꼬였다. 무슨 말을 해야 하는데,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변명을 하기에도 웃기는 일이었다. 무슨 말을 해도 얼버무리는 변명일 테고, 그런 말을 왜 나한테 하느냐고 한다면 그에 대한 대응할 말도 마찬가지로… 마땅히 없었다.

 

  이러저러한 생각에 머리가 지끈 아파왔다. 엄지 손으로 관자 쪽을 지긋이 누르고 가볍게 마사지했지만 통증은 가시질 않았다. 어쩐지 몸도 으슬으슬 추워지고 목도 컬컬해지는 게 다년간 겪어 본 바로 몸살이 오려나보다.

 

 

  뭐 했다고 몸살이와, 오긴.

 

 

 

 

 

  "그 사람 만나야 돼?"

  "어?"

  "만나자고 연락 온 거지."

  "……………."

  "오늘 저녁은…."

  "……………."

  "나한테 시간 내주면 안 될까?"

 

 

 

 

 

  고개를 들고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맘속에서만 울리는 내 대답은 무조건 너였다. 지금 나한테는 무조건 백이현이다. 민혁 씨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민혁 씨 전화를 안 받기 잘 한 것 같다. 수락할 명분도 생긴 거고. 거절할 이유가 없었지만…

 

 

 

 

 

  "왜? 왜 그래야 하는데."

 

 

 

 

  괜히 한번 튕겨보는 거. 여자의 마지막 자존심이다.

 

 

 

 

  "시간 내줄 거지?"

  "……………."

  "그런 걸로 알고, 이제 내 맘대로 한다."

 

 

 

 

  백이현은 이미 다짐했나 보다. 뭘 할진 모르겠지만, 나의 대답이 yes 이든 no 이든, 애당초 대답 따윈 필요 없는 듯 보였다. 자신의 말을 마침과 동시에 내 손목을 잡고 빠른 속도로 학교를 빠져나와, 택시에 몸을 실었다.

 

  아직 전용 자가용이 없는 우리가, 타고 이동할 수 있는 교통수단 중 하나였다. 바람이 창문 틈 안을 비집고 들어오는 특유의 소리가 났지만 머리가 날려 한 손으로 고정해야 하는 번거로움에도 창문을 닫지 않았다. 또다시 찾아올 적막감이 싫어서.

 

 

 

 

 

 

 

 

 

 

 

 

 

 

 

 

 

 

 

 

 

 

 

  음식점이 즐비하고 번화한 시내를 지나, 한참 들어와서 우리가 탄 택시가 멈추었다. 택시에서 내린 나는, 어디서 본 익숙함에 어? 여긴.. 저번에... 하고 혼잣말을 했다. 백이현이 쳐다보며 와봤냐고 물었다. 이곳은, 민혁 씨와 연극을 보러 왔던 곳 같았다. 이내, 눈에 띄는 홍보용 현수막이 추측을 확실하게 만들었다.

 

 

 

  러브 액츄얼리.

 

  사랑, 달달하지 만은 않아. 근데 자꾸 땡겨…!…

 

 

 

  간이 홍보 간판을 기준으로 소극장 건물을 향해 쭈욱. 전보다 더 많은 인원이 줄을 지어 서 있었다. 백이현은 그런 줄에 서 있을 생각하지 않고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자신감이 푹 죽은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이 연극 봤어? 본 거면, 안 봐도 되고."

  "……………."

  "꼭 봐야 하는 건 아니니까."

  "………………."

  "영화랑 다른 거라는데. 본 건 줄 알았음 괜히 왔다."

  "누가 봤대?"

 

 

 ​

 

  안 봤어. 안 봤다고. 줄 서자 얼른. 시무룩해진 백이현의 표정에 짜증이 났다. 그렇다고 열받을 정돈 아니었다. 내가 봤다 안 봤다 말도 안 했는데, 단정 지어 버리는 게 어딨어. 남자가 소심해 가주고. 어디다 써먹을래. 씩씩대며 안 봤다고 질러버렸다.

 

 

 

 

 

 

 

  민혁 씨랑은 봤어도 백이현 너랑은 아직 안 봤으니까. 맞는 말이었다. 교묘하게 나 자신에게 합리화를 시켜 스스로를 다독였다.

 

  축 처진 백이현 팔에 팔짱을 끼고 무거워진 발걸음을 억지로 끌었다. 뭘 아는 사람처럼 왜 이런데. 사람들이 서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기고, 그제서야 표정이 풀어졌다.

 

  러브 액츄얼리. 영화를 감명 깊게 봤는지. 한동안 러브 액츄얼리 얘기만 했던 백이현이었다. 그 당시에 나는 사랑에 대해서 정의를 내리지도 못 한 상태였고, 너를 향한 내 마음을 알아가기에도 벅찼었다.

 

  그래서 알쏭달쏭. 깊이 와 닿지 않은 영화였지만, 다른 각본으로 풀어나가는 연극을 너와 함께 하면서 느껴보고 싶어졌다.

 

 

 

 

 

 

 

 

 

  '익숙함에 속지 않고, 소중한 걸 잊지 않는다면 말이에요.

 그런다면 그 연애는 깨지지 않을 단단한 믿음이 되겠죠.'

 

  '결국에 소홀해져서 서운해지고 싸우고 다투는 것도 서로가 사랑하니까. 그런 거 아닌가.'

 

  '그만큼 서로가 서로에게 간절히 확인받고 싶으니까. '

 

 

 

 

 

 

 

 

 

  전에 민혁 씨와 연극을 본 날. 차 안에서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여기서 민혁 씨의 말이 떠오른 건 지극히 아이러니한 경우지만.

 

  간혹 좋아하는 마음을 숨기고, 네게 매정하도록 차갑게 군 건 서운함 때문일 거라고. 그 서운함은 너에 대한 갈망 일 거고. 그 갈망은 너를 간절히 원하기 때문이겠지. 원하는 마음은 널 좋아하니까 드는 것이고. 확인받고 싶은 거야. 내심. 날 싫어하지 않아 주었으면.. 좋겠고,

 

  무엇보다, 나와도 같은 마음이길…

 

 

 

 

 

  "잠깐만, 잠깐만 기다려. 금방 올게."

 

 

 

 

 

 

 

  야! 백이현. 어디 가. 어디 가는데! 뒤통수에 대고 소리쳤지만, 손에 쥐여준 입장 표만 덩그러니 남고. 급하게 뛰어가는 백이현의 꽁무니는 금세 사라지고 없었다. 어딜 그렇게 급히 가는 건지. 다리에 모터라도 달렸는 줄 알았다.

 

  그렇게 몇 분이 흘렀을까. 기다림에 초조해진 나는, 신발 앞굽을 의미 없이 바닥에 콩콩 찧었다. 손목을 잡은 손도 톡톡 치면서 초조함이 더해졌다. 어느새 입장을 시작해 기다리던 줄도 반이 줄어 들어갔다. 서른 명… 스무 명… 열 명… 다섯 명… 앞사람의 숫자가 점점 낮아졌다. 전화를 걸어도 받지를 않네.

 

 

  백이현 도대체…! 어딜 간 거야-

 

 

 

 

  "표 보여주시고, 입장하세요."

  "아, 저… 일행이 아직 안 왔거든요."

  "지금 입장해주셔야 해요. 공연 시작하면 입장 불가하거든요."

  "금방 온다고 했어요… 금방. 그러니까. 잠시만요."

 

 

 

 

  뒤에 늘어진 줄을 보라면서 스텝은 다급하게 말했다. 언제 이렇게 내 뒤로 사람들이 늘어져있었지. 놀라는 것도 잠시. 스텝은 얼굴을 찡그리며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 지금 입장 안 하시면 못 들어가세요.

 

  조급하게 조여오고 다급함에 입술을 깨물었다. 그럼, 다음 공연은 언젠가요. 이번이 마지막 공연입니다.

 

 

 

 

  사랑, 달달하지만은 않아. 근데 자꾸 땡겨…!….

 

 

 

  손에 오그려 쥔 표 위로 띄는, 문구를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마지막 공연이라는 말에 실망감이 훅 밀려들었다. 마지막이라니, 하필 오늘이. 백이현과 함께 하고 싶은 순간이. 마지막 회차였다.

 

  그래도 너랑 함께 한다는 의미에 설렜는데. 그 설렘을 포기해야 한다는 게 조금은 서글퍼졌다. 그리고, 알았다며 고갤 끄덕이고 돌아서는 발걸음을 뗐다.

 

 

 

 

 

  "영원아!"

  "… 백이… ㅎ…."

  "…오래…기다렸지. 아후, 최대한 안 흘리게 온다고 왔는데…."

 

 

 

 

 

  그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뭉그러졌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내 앞에 팝콘과 음료가 든 용기들을 불쑥 내밀었다. 혀까지 내밀며 숨을 고르던 백이현을 번갈아보며 얼떨결에 받아들었는데, 기분이 이상하게 일렁인다.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감정들이 몰려와 감당하지 못 할 울림이 북받치고, 목이 막혀왔다.

 

  누가 먹다 남긴 것처럼 절반만 담긴 팝콘 용량. 음료 용기에 비해 현저히 가벼운 무게. 얼마나 쉬지도 않고 뛰어왔길래….

 

 

 

 

 

 

 

 

  "이런 거 볼 때 먹는 팝콘 좋아하잖아.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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