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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 말하라구.
작가 : 랑다정
작품등록일 : 2016.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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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될까?
작성일 : 16-10-30     조회 : 346     추천 : 0     분량 : 5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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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외간 남자와,

 

 

 

 

  "격정의 키스신을 찍었다던가."

 

 

 

 

  음식을 먹다, 사람이 당황을 하거나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대게는 입안 가득 들어있던 음식물이 튀어나오는 게 당연시되는 이론이다. 그리고 이런 장면이 드라마에서 흔히 볼 법한 상황인데.

 

  나는 정반대로 물컵을 들고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그것도 모자라서 물통의 물을 컵에 콸콸콸…… 붓는 수준이 아니라, 둘러업는 수준으로 입으로 부은 뒤. 컵의 바닥까지 한 번에 싹 비웠다.

 

  기도를 진입한 물이 위로 흘러 들어가는 동안 컵을 탁자 위에 쾅 하고 내려놓았다.

 

  그리고,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던 백이현이 의심의 눈초리를 쏘기 시작했다.

 

 

 

 

  "설마, 만약이. 사람 잡았냐?"

 

 

 

 

  인상을 파싹 구기며 말하는 백이현. 가만가만. 듣자 하니 저 말뜻은, 제3인칭 시점이라는 말로 들렸다. 쉽게 말하자면. 고로, 백이현은 나와의 키스를 전혀 기억하지 못 한다.

 

  가만히 생각하니, 기가 막혀 억울하고 분하기까지 했다. 어차피 키스 따위 기억하는 일은 기대도 안 했지만, 어떻게 의심하는 눈초리로 쳐다보는 건지 화가 날 지경이다.

 

 

 

 

 

  "내가 너랑 무슨 말을 하겠어."

 

 

 

 

  냅킨을 뽑아, 입을 야무지게 닦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먹다 남은 많은 양의 떡볶이를 남기는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디 가, 먹다 말고. 생각 없어 피곤해. 가방을 들고 가게를 나섰다.

 

  오늘 저녁시간 자신에게 내주면 안 되겠냐고 하더니, 연극 보고 코피 쏟고 끝. 그래 뭐, 팝콘은 감동이었지. 손잡은 거랑… 안아준 것도… 에이씨 생각해보니 한 게 많아서 욕도 못 하겠네.

 

 

 

 

 

  "이렇게 가버리면 어떡해."

  "뭐가 더 남았어?"

 

 

 

 

  급하게 계산을 하고 나온 백이현이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 나를 잡아 세웠다. 잡고 있던 팔을 잡아 빼고, 흘러내린 가방을 다시 어깨에 멨다. 용건이 남아있냐구. 똑바로 쳐다보자 미간이 꿈틀대는 백이현.

 

 

 

  "그럼 설명해봐. 오늘 보니까 입술에 상처도 있던데."

  "그게 왜."

  "누가 낸 거야. 상처."

 

 

 

 

  자세히도 봤네. 덩달아 어이없는 실소가 웃음으로 터지려는 걸 꾹 참았다. 완벽하게 기억을 하지 못 하는 게 분명했다. 해도 해도 너무하지. 술이 떡이 되게 취해서는, 누구랑 키스했는지도 모른다니.

 

  그럼 그날 우리 집에 오지 않았다면 다른 여자와도 했을지 모르겠다. 괘심해지는 생각에 서운함이 밀려왔고, 이대로라면 백이현에게 무슨 말을 할지 몰랐다.

 

 

 

 

  "나도 너한테 말할 의무 없어. 별일도 아니고."

  "난 알아야겠어."

  "무슨 고집이 그래. 별일 아니라는데."

  "별일 아니라면 말해 줄 수 있잖아."

  "그게 왜 궁금해. 너랑 무슨 상관인데."

  "끝까지, 아니라곤 안 하네. 어떤 새끼냐."

  "새끼? 너 지금-"

  "아. 그 새끼냐. 이민혁."

  "하… 됐다. 그만두자. 기억도 못 하는 사람 붙잡고 무슨 얘길 해."

 

 

 

 

  서로 감정이 격양되어, 현재 우리 상태론 좋은 말 나오지 않을 게 뻔하니까. 막말로 상처 주기 싫기도 했고, 지금은 말을 섞을 상대가 되지 않는 것 같다고 판단됐다. 말을 말자고 손사래를 치며 버스 정류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 순간 어찌나 가슴이 아리던지. 나만 기억하는 키스였다는 게 왠지 비참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너 그날 밤에 뭐 한 거냐. ㅇㅇㅇ.

 

  나 자신이 한심해. 힘이 추욱 빠진 채로 몇 발자국 겨우 내디디며 걷는데 거칠게 나를 돌려세웠다.

 

 

 

 

  "반드시 꼭 알아야겠어."

 

 

 

 

  되지도 않는 고집을 부렸다. 민혁 씨가 그런 거라고 생각 하나 보다. 근데 백이현 네가 왜 화를 내. 나한테 뭐라고, 막상 가지려니 싫고 남 주긴 아깝기라도 해? 난 너한테 그런 존재일까. 머리가 어지러웠다.

 

  코피를 쏟아서 그런지 기운도 없을 뿐 아니라, 이길 수 없는 피로감이 몰려들었다.

 

 

 

 

  "말하면 알아? 기억할 수 있어?"

  "무슨 기억…?"

  "봐, 기억 안 나잖아. 모르잖아. 내가 말해도 넌 모를 거잖아."

  "… 그러니까 그게 무슨 말인데."

  "네가 우리 집에 왔던 날. 너도 봤어."

  "뭐?"

 

 

 

 

  됐지. 갈게 붙 잡지 마.

 

  너는 날 보고 입 맞췄으니까. 분명 봤으니까…. 아니라고 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라고 한다면 그날 너와 입을 맞춘 나 자신은 사라지는 것 같아서. 설레는 부푼 마음 안고, 가슴 터지도록 뛰는 심장을 느꼈던 나는 무의미해지는 거라서.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 동안 정말 붙잡지 않았다. 귀찮게 계속 묻지도 않았다. 멍하니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은 넋이 나갔었다. 어떻게 집까지 왔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했다. 머릿속이 온통 하얘서 멍해질 뿐…

 

 

 

 

 

 

 

 

 

 

 

 

 

 

 

 

 

 

 

 

 

 

  '톡-'

 

 

 

 

  정수리로 차가운 무언가 떨어졌다. 뭐지. 무심코 하늘을 바라보았다. 전깃줄에 있는 물이 떨어진 건가. 기분 나쁘게. 손으로 정수리 부근을 문질렀다. 그러자 손 위로 또다시 톡 하고 떨어졌다. 뭐야, 자꾸. 짜증이 훅 올라와 발걸음을 재촉했다.

 

  다시 하늘을 보니 심상치 않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깨로 팔로 물이 후드득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내 바닥이 검은 점박이로 뒤덮이더니 물이 흥건해졌다.

 

  우산도 없는데. 하필이면 지금… 비가 오려면 집 도착해서 내리던가. 타이밍도 거지 같네.

 

  아쉬운 대로 가까운 건물로 몸을 피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그새 머리카락이 다 젖었다. 어깨 축도 축축해서 찝찝해졌고 허탈한 기분에 손끝에 힘을 실어 물기를 털어냈다.

 

  그러기를 10분이 지났을까. 도저히 멈출 비가 아닌 것 같아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빗속을 뛰어들었다.

 

 

  기분도 뭐 같은데, 이미 젖은 거 가서 그냥 샤워해야지. 가방으로 머릴 받치고 뛰어든 빗속. 발과 물이 닿을 때마다 물 소리가 났다.

 

 

 

 

 착.착.착

 

 

 ​

 

  그 소리에 익숙해져 있을 때쯤. 쏴아아아 하는 소리가 두꺼운 소리로 바뀌었다.

 

 

 

 

  '투…투두둑…'

 

 

 

  등 뒤로 인기척이 느껴졌다. 머리 위로 더 이상 빗물이 쏟아지지도 않았다. 빨랐던 걸음이 우뚝 멈췄고,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내 옆으로 다가오는 느낌이 들었다. 보송 보송한 옷감이 살에 닿았고, 흠칫하며 올려다보자.

 

 

 

  "가라고 하지 마. 집 도착 전 까진 절대로 안 가."

 

 

 

  하나도 젖지 않은 백이현이었다. 우산을 씌워주며 바짝 다가왔고 그런 백이현에게 무언의 반항으로 어깨에 힘을 주고 빼려 했지만, 빼내 줄 생각이 전혀 없는지 더욱 세게 어깨를 잡아 고정시켰다.

 

 

 ​

  "이미 젖은 거 상관없어. 혼자 갈 수 있다고."

  "좋아. 이대로 두고 가 버릴까?"

  "그러던지."

  "그렇게 말하면, 네 맘이 편해져? 난 아닌데. 두고두고 생각나고 후회할 것 같거든."

  "……………."

  "그럼 넌 계속 불편해. 나 편하자고 하는 거니까."

 

 

 

  무어라 반박할 힘도 없었다. 노곤함을 견딜 체력도 서서히 바닥이 나는 듯했다. 비를 맞아서 더욱 상태가 좋지 못 했다. 그래서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느새 백이현에게 기대고 있는 나였다.

 

 

 

 

  "가."

 

 

 

 

  오피스텔 앞까지 바래다준 백이현을, 말하지 않아도 갈 그에게 굳이 가라고 엄포를 놓았다. 머뭇대는 게 꼭 집까지 기어들어 오고 싶어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내 우산을 접더니 오피스텔 입구로 뛰어 들어오는 백이현. 깜짝 놀라 커진 눈으로 바라보았다.

 

 

 

 

  "집에 먹을 거 있어?"

  "뭐?"

  "비 맞아서 춥다. 뜨거운 국물이 생각나는데…."

  "……………."

  "날씨도 이런데, 라면 먹고 가라고 안 해?"

  "라면? 라면 같은 소리 하네. 도착하면 간다며!"

  "도착하기 전 까진 안 간다고는 했지. 간다 곤 안 했어."

 

 

 

 

  허- 어이없는 실소가 터져 나왔다. 뻔뻔한 자식.

 

 

 

  '좋아. 이대로 두고 가 버릴까?'

  '그렇게 말하면, 네 맘이 편해져? 난 아닌데. 두고두고 생각나고, 후회할 것 같거든.'

  '그럼 넌 계속 불편해. 나 편하자고 하는 거니까.'

 

 

 

  우산 씌워줄 때부터 뻔뻔함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뻗었다. 백이현에게 이렇게 뻔뻔한 면이 있는 줄은 오늘 처음 알았다. 머뭇대는 게 혹시나 같았는데, 역시나였어.

 

 

 

 

  무지막지하게 따라 붙은 의지의 한국인 백이현은 결국 우리 집까지 입성했다. 쏘아보는 눈빛도 철판을 깔고 무시하는데 막아서는 힘도 무리 없이 제압해서 집으로 진입한 백이현이 지금 부엌을 차지하고 있었다.

 

  얼른 들어가서 씻고 옷 갈아입으라며, 욕실로 밀어 넣었다. 벨도 없냐. 너란 남잔. 내가 그렇게 못 돼게구는데 한 마디 말 빨도 밀리지 않고, 어째 한치의 주눅이나 물러섬도 없는지.

 

  이렇게 다정하고 한결같은 네가,

 

  나는 가끔씩은 두렵다.

 

 

 

 

  "어서 와서 앉아."

 

 

 

 

  뜨거운 물로 차가운 몸을 녹였더니 피로감이 좀 풀린 기분이었다.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감싸고 나오는데, 음식 냄새가 집안 가득 퍼졌다.

 

  백이현은 기다렸다는 듯 팔을 휘휘 저으며 식탁에 앉으란다. 욕실에서 듣자 하니 나름 요리를 하는 소리가 들리긴 했었다.

 

  살림살이나 안 깨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가까이 식탁으로 가보니 그새 된장찌개에 계란말이까지 만들어 놓고 있었다. 정갈하게 차려놓은 밥상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으니.

 

 

 

  "밥은 있는 거 데웠고, 국이랑 찬은 냉장고에 있는 걸로 만들어 봤어. 맛은 없겠지만…."

 

 

 ​

  성의를 봐서라도 먹어주라.

 

  백이현의 말에 울컥해졌다.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말하는데도. 가슴이 찌르르한게… 뭐랄까. 코끝도 시큰하고, 목구멍으로 뜨거운 게 차올랐다. 눈이 붉혀 질까 봐 감쌌던 수건을 얼른 풀고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렸다.

 

  얼마 만에 먹어보는 집밥인가 싶기도 하고, 생각지도 못 한 상차림에 감동을 받았나 보다.

 

 

 

 

  "뜨거울 때 먹어. 비 맞아서 몸 따뜻하게 해야 돼."

  "……………."

  "아, 참!"

 

 

 

 

  주머니를 뒤적이던 백이현이 내 앞으로 무언갈 내밀었다. 애써 밀어 넣은 눈물을 위태롭게 달고 있던 터라 고개를 들지 못 했다.

 

 

 

 

 

  "연고야, 구내염 연고. 상처에 바르라고…."

 

 

 

 

  병 주고 약주고. 근데 약치곤…… 쓰지 않다. 속마음과는 달리 아무 말 없이 받아들곤, 된장찌개를 푹 떠먹었다. 입으로 머금는 순간 결국 눈물이 흘렀다. 들킬세라 손등으로 빠르게 닦아냈다.

 

  숟가락을 뜨는 모습을 본 후 자신도 먹기 시작하는 백이현. 한 입 먹어 본 된장찌개에서 따뜻한 백이현의 냄새가 느껴졌다.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감정들이 내 몸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이현아…

 

 

 너라면, 믿고 의지해도 될까?

 

 

 

 

 

 

 

 

 

 

 

 

 

  설거지로 한참 실랑이를 벌이다가 진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설거지하는 이현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면 언제나 있는 듯 없는 듯 내 곁에 있어준 것 같았다. 신입생 때부터 줄곧, 어려울 때마다 힘든 일을 같이 겪어 주며 힘을 주었다. 도와달라고 말하지 않아도.

 

  그만큼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의미도 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백이현은 내가 저 자신을 좋아하는 것도 알고 있을까? 무릎을 가슴으로 당겨 안고 그 위로 얼굴을 기댔다.

 

  백이현이 우리 집에 있다니, 그것도 저런 모습으로…

 

 

 

 

 

  "그래서 내 뒤통수가 뚫리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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