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입김이 새하얗게 나오던, 추운 겨울날이었다. 조별 과제가 끝난 후 술 한잔하러 가자는 말에 다들 흔쾌히 수락을 했다. 어차피 집에 가면 돈 아깝다고 난방도 제대로 안 할 텐데, 주머니 사정 뻔히 아는 대학생들은 이렇게 오금이 저리게 추운 날에 값싸게 몸에 열을 내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어차피, 술 한잔하고 싶어서 대는 핑계거리이지만.
"역시 겨울에 막창에 소주 한 잔이지."
"다들 과제하느라 수고했어. 건배합시다!"
"어이, 이현이 잔 비었잖냐."
"어. 그래, 이현아. 술도 마셔 버릇해야 늘어."
다들 알콜이 적당히 들어가 몸 안에서 좋은 기분이 피어오를 때쯤 취기가 올라 볼이 붉게 상기된 동기 하나가 내게 술을 권했다. 고개를 저으며 됐다고 사양했다. 한 잔도 못 하지만 분위기 맞추려고 따라온 거였는데. 주위에서 마시라고 성화였다.
한 잔도 치명적인데, 음료수 잔에 한가득 부어주며 다 마시란다. 난감해서 어쩔 줄 몰라 했지만, 그렇다고 완강히 거절하기도 뭐 한 상황이었다.
후폭풍이 두려웠지만, 죽기야 하겠어하는 심정으로 눈 질끈 감고 반잔만 벌컥 벌컥 마셨다.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어지럽더니 앞이 캄캄한 게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눈앞이 빙글 빙글 돌더니 순간 탁자에 머리를 받았고, 그 후론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눈을 떴을 땐 동기들에게 부축을 받으며 가게를 나서고 있었다. 아무래도 쓰러지고 몇 시간 정도가 지난 것 같았다. 해산하는 분위기에 따라 친구들을 택시를 태워 보냈고, 약간 술기운도 도는 것 같아, 이대론 집에 가고 싶지 않았다.
정처 없이 술집이 즐비한 거리를 걸었다. 추워서 그런지, 느낌상 금세 술이 깨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개운하지 않은 속 때문에 근처에 보이는 약국에서 숙취음료를 사서 마신 후 도로변 벤치에 앉아서 찬 공기를 들이쉬었다.
"아, 그러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재수 없지 않아? 4학년 보다 2,3학년이 더해- 1년 차인데 유난은."
"그러려니 해. 대학도 작은 사회라잖아."
"웃겨. 신입생들이 선배들 종살이하려고 비싼 등록금 내고 다니는 거 아니잖아. 돈 내고 종살이하는 경우도 있냐?"
"… 별 수 있어? 우리가 늦게 태어난걸. 조금만 참자."
"야야. 웃기지 말라 그래. 알고 보니까. 젤 나대는 것들은 빠른 이더라?"
"… 휴. 아서라 아서. 그럼 뭐 해…. 이미 선배잖아. 학번이 왜 있는데. 아더 메치라고 아니 꼽고 더럽고 메스껍고 치사한 게 직장 상사랑 선배라더라."
반대편 술집에서 낯익은 목소리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바깥 야외에 앉아있는 두 여자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내가 아는 그 한영원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밝은 낮이 아니어서 식별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아직 술기운도 남아 있어서 더더욱. 길을 건너 얕게 실눈을 뜨면서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 봤다. 확인 차원에서 시도해보는 보험 같은 행위였다. 혹시나 아니면 안 되니까.
신호음이 가고 몇 미터 앞에 있는 두 여자 중 아무도 휴대폰을 보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 잘 못 봤나 보다 하고 끊으려는데,
"어? 내 거는 아닌데, 네 전화인가 보다."
"응. 하여튼 빠른 것들은 다 없어져야 해. 아주 족보 꼬이게 하는데 뭐 있다니까. 최고 싫어. 개 짜증나."
앞에 앉은 여자가 툭툭 건드리며 가방을 가리켰다. 여전히 선배를 씹으며 전화기를 찾는 듯 보였다. 진동으로 되어있었는지. 여기까지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확실히 전화가 온 모양이었다. 신랄하게 선배를 씹는 거 보니까 대학생은 맞는 것 같은데.
그리고, 잠시 후. 확실한 증거가 되었다. 앞에 앉아있던 여자의 목소리가 고스란히 수화기로 들어왔기 때문.
"어? 선배. 무슨 일이세요."
"그럼 말, 놓던가."
"네?"
"족보 꼬이는 거 싫다며, 말 놓으라고."
가까이 다가가 전화기를 흔들며 웃으니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두 여자가 사색이 되어서 날 쳐다보던 그날은 하나의 에피소드가 되었다. 어이없게도 그날 있었던 일을 계기로 말을 텄는데. 그 자리에서 맥주 1500cc를 더 마시고 나서야 나에게.
"그럼 나 말 놓는다. 변 선배 네가 놓자고 한 거야. 나중에 딴 소리 하기만 해봐…."
"이미 놓고 있네."
"아우씨. 그리고! 쌍둥이면 쌍둥이다 말을 해야지. 그쪽은 백이현. 이쪽은 변 누구세요?"
"그쪽도 백이현, 이쪽도 백이현."
"아무튼-! 말 놓기로 한 거니까. 친구지? 친구!"
허공에 대고 하는 헛소리와 함께. 인사불성이 된 한영원의 모습도 보게 되었다. 그 일을 두고두고 놀려 먹고 싶었지만. 기억도 못 하는 거 놀려 먹으면 뭐 하겠나 싶어서 나만 아는 에피소드가 되었다.
늘 영원이는 존대를 쓰고 나만 반말을 써서 오히려 내가 불편했는데. 약간 어색하고. 그래도 말 트고 난 후부턴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그래서 우리 사이는 친구라기엔 가깝고 애인이라고 하기엔 그런. 애매모호한 관계가 되긴 했지만.
근데 우린 어디서부터, 언제부터 이렇게 오해가 쌓여 왔던 걸까.
"집엔 어떻게 가려고. 지갑 없잖아."
어디가냐는 끈질긴 질문에 겨우 발걸음을 멈추었다. 동아리방을 뛰쳐나오는 한영원이를 곧장 따라왔지만, 등을 돌리고 선 영원이는, 너무도 차가웠다.
평상시에 차가운 모습과는 아주 다른 차가움이었다. 다신 나를 안 볼 수도 있겠다는 불안함이 엄습해왔다. 신경 쓰지 말라며, 내게 존대를 쓰고 있었고. 깍듯이 선배라는 호칭도 덧붙였다.
도대체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나에게 이렇게도 모질게 대하는 거지? 정이라도 떼려는 사람처럼. 내 눈에 비친 너는 그랬다.
"한영원."
네가 가지 앉았으면 좋겠어. 날 등지고 서있지도 마.라고 말하고 싶었다. 날 보고 있지 않는 너에게서 불안함 이상의 느낌을 받았다. 마음이 아파서 이따금씩 말문이 막혔다.
영원이 집 앞에서도. 아까 과 건물 앞에서도. 심지어 동아리방에서부터 막무가내로 행동하던 네 모습도 모두 다 이해가 되질 않지만, 이해하려고 애썼다. 그래서 동아리방을 박차고 나가던 너를 따라 나온 거고, 이대로 보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
"춥게 입고 다니지 말랬잖아. 아침저녁으론, 아직 쌀쌀해."
해가 저무는 시간대라, 쌀쌀함이 여전했다. 얼어붙은 네 마음을 녹일 수만 있다면 좋겠다. 내게 차가운 모습만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또 생각했다. 천천히 다가가 내가 입고 있던 가디건을 벗어, 여전히 뒤돌아 있는 네 어깨에 살포시 얹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몸 생각하라고."
"……………."
"너 그날이면 일어나지도 못 하고 누워서 끙끙 앓잖아. 아침에 너 보내고, 편하지 만은 않았어."
편할 수가 없다. 절대로 편할 수가. 이유를 모르기 때문에도 그렇지만, 의문 투성이었다. 특정한 이유조차 설명해주지 않고, 일방적인 행동에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기 때문이다. 내가 멍청한 건지. 어젯밤 상황이 이해가 안 돼. 왜 그랬던 건데. 이유가 뭐야.
"말하면 뭐가 달라지는데요."
"… 전처럼, 말 편하게 할 수 없어?"
"전 이게 편해요."
"난 불편해."
"선배랑 더는 얘기하고 싶지 않아요."
내가 둘러 준 가디건을 벗어 다시 내게 내밀었다. 손끝에 매달린 가디건이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곧 떨어질 것 같은 게 꼭 내 마음 같았다.
너의 말에 상처받고 위태로워진 내 마음처럼. 그래도 꼭 알아야겠다. 내가 싫어진 거라면 차라리 그 이유라면 널 좋아했던 내 마음 정리해 볼 게. 힘들겠지만.
난 해야겠어. 혼자 있고 싶어요. 내가 데려다 줄게. 아뇨, 싫어요. 너 정말!
"… 왜요. 화라는 게 나세요?"
"……………."
"그래요. 우린 처음부터 아니었나 봐요."
"……………."
"버거웠다고요. 나한테 선배."
"……………."
"차고 넘쳐요. 잡히지 않아."
"……………."
"이젠 같이 다니는 것도 부담 돼요. 그 정도로만 알아두세요. 그게 이유에요."
참았던 사람처럼 막힘없이 퍼부었다. 갑작스러운 말들에 한동안 멍했다. 그리고 나서야 이해를 했다. 한영원에게 백이현은 버겁고, 차고 넘치고, 부담된다. 라고 말하고 있었다.
우린 처음부터 아니었다고? 그럼 아닌 이유가 뭔데. 버겁고 차고 넘치고 부담된다니. 나한테 너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한영원은 내게 늘 편한 사람이었고, 친한 절친보다도.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보다도 너를 더 챙기고 아끼고, 없으면 안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도와주고 싶었고 지켜보고 싶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마음을 섣불리 말할 수 없었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내가 언제부터 너를 좋아했는지 확실하지 않아서, 이 마음이. 걷잡을 수 없는 마음을 네게 말했다가 오히려 지금처럼 도망칠까 봐. 그리고… 그리고… 가장 큰 이유는, 그 아이에게 미안해서.
부담을 주려는 게 아니었어. 내 마음은 그게 아니야.
"난 아니야. 아니라고."
"……………."
"내가! 너를!"
"……………."
지금이 기회다. 이것마저 놓쳐버린다면, 영영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목울대 저 깊숙이 나오지 않는 말을 꺼내려 주먹 쥔 손 아귀로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는 네게-
"한영원, 너를…… 좋-"
"한참 기다렸어요."
갑자기 나타난 차 한대에서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내 말을 가로챘다. 저놈과는 무슨 악연이 있길래. 이렇게 자꾸 엮이는지. 헛 웃음이 났다.
머리를 짚고 꾹 쥔 주먹을 내리며 눈에 힘을 주었다. 아니, 어쩌면 이건 다 내 잘 못이다. 강준 선배 말 대로 우리는 계속 어긋나고 어긋나고 어긋났다.
"민, 민혁 씨?"
"문자 못 봤나 봐요. 기다린다고 했는데."
"……………."
"오늘 하루는 나랑 같이 있자고 했잖아요."
"……………."
힘이 잔뜩 들어갔던 몸이 서서히 풀렸다. 나와는 달리 당당하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던 그 남자에게 자격지심 같은 게 느껴졌다. 주춤- 뒤로 물러난 나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못 했다.
잘 진행되고 있는 두 사람 사이에 불청객처럼 껴있는 느낌이었으니까. 저 남자가 아닌, 내가 말이다.
그래서 그 남자의 차를 타고 가는 네 뒷모습을 바라보기만 해야 했다. 그때의 나 자신이 얼마나 쓸모없고 형편없는지 깨달았다. 널 좋아하는 게. 아직은 용기가 없는 건가. 자꾸 망설이는 난. 아직 너를 좋아할 자격이 없나 봐.
"야. 백이현, 너 왜 이래 인마!"
"……………."
"술이라곤 입도 못 대는 놈이!"
"……………."
"어쩌자고 대책 없이- 마셔대!"
안 죽어. 설마 죽기야 하겠어….
괜찮다고 했지만 혼자 있다는 말에 부리나케 달려온 서강준 선배. 우리 형. 오자마자 병나발 불고 있는 나를 뜯어말리느라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벌써 다 비운 첫 번째 병은 이미 바닥에 널브러졌고. 내 입으로 이미 반이나 들어가는 소주 병을 겨우 뺏어갔다.
참 이상하지. 과거에는 컵으로 반컵이나 마시곤 바로 뻗었는데. 반컵이 뭐야. 한 잔만 마셔도 오락가락하는데. 심적으로 미치게 괴로운 현재는 소주 한 병 반을 마셔도 멀쩡하네. 어이없는 실소가 터졌다.
취해서 아무 기억도 못 했으면 좋겠는데, 그랬으면 좋겠는데. 그놈이 널 데려가는 걸 지켜만 보던 나 자신을…
"기억 따위… 못 했으면…."
… 좋겠어.
그대로 고개를 푹 숙이고 눈물만 떨궜다. 그제야 자리에 털썩 앉아, 무슨 일이냐고 넌지시 묻던 형은 내가 입을 열 때까지 지켜봐 주었다. 묵묵히, 아무 말없이. 다시 천천히 고개를 들고 눈물에 젖은 눈시울로 형을 바라보았다. 낮은 목소리로 천천히 불렀다.
"선배… 아니 형…"
"어."
"… 진희는 내가 밉겠지? 아니 원망스러울 거야."
"너… 그게 무슨…."
"… 날 좋아해 줬는데. 마지막까지 그랬는데…. 내가 안 받아 준 거…."
… 그거 두고두고 갚나 봐. 그렇지?
형이 들고 있던 소주 병을 가져와 마시려 하자 다시 낚아챘다. 그 손길에서 화가 잔뜩 배어있는 걸 보니 형도 기억하는 게 분명했다. 탁자에 소리가 나게 쾅 하고 올려놓고는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형의 손에 힘이 가득 실어져 어깨를 꾸욱- 눌렀다.
"네 잘 못 아니야. 그걸 여태… "
"… 형은 몰라. 내가 얼마나 나쁜 놈이었는데."
"…… 나쁜 놈까진 아니고, 철없던 놈으로 해두자."
"진희 마음 받아 줬다면, 아니 들어라도 줬다면…."
"……………."
"… 그랬다면, 그날. 진희가 죽지 않았을까?"
내게도 숨기고 싶은 과거이자, 남들 다 겪는 사춘기 시절은 존재했다. 철없고 막무가내였던 어린 시절 말이다. 아마 그 일이 내 인생의 크나큰 반환점일 것이다. 현재의 백이현이 될 수 있었던. 지금과는 정반대의 성격이었던 내가.
갖은 사고를 치고 다니던 때라, 여기저기 다치기도 많이 다쳐 병원에 입원했을 때 만난 아이였는데, 이름이 윤진희였다. 늘 휠체어를 타고 다녔고, 내가 있던 병원 공원에서 만나면 사소한 말이라도 걸곤 했다.
귀찮아서 몇 번 대꾸해줬는데. 같은 또래다 보니 심심한 병원에서 심심찮게 말벗 상대도 되었고, 늘 병원에만 있던 그 아이에겐 내가 유일한 친구였다. 자신의 몸도 불편하면서 나를 더 챙겨주던 아이이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정도 회복이 된 나는 퇴원을 했고, 어떻게 알았는지 내 휴대폰으로 연락이 닿아 가끔씩 연락을 주고받았다. 내게 크게 의미는 없어, 그저 단답으로 답을 해주는 게 다였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 진희에게 연락이 오지 않으면 궁금해질 무렵이었다. 내게 할 말이 있다며, 자신이 있는 병원으로 와달라고 했었다. 하지만, 친구들과 놀러 가기로 했던 터라 다음에 가겠다고 말하고 결국 가지 못 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후 생각이 나서 찾아간 병원에선 뜻밖의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나에게 할 말이 있다고 했던 그날. 진희는 세상을 떠났다고. 그렇게 어린 나이는 아니었지만, 죽음이라는 현실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저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사람이 더는 이 세상에 살지 않는다는 게.
그리고 알게 되었다. 종이에 빼곡히 적힌 편지 속에 담긴 진희의 마음을…
"진희는 그저, 마지막까지 널 좋아한 거야."
"……………."
"넌 그걸 늦게 안 것뿐이고."
"하지만, 진희한테는 숨이 다하는 마지막이었어. 내가…."
"네가… 마지막이라서 행복했을 거야."
"안되겠지. 난 영원이도 좋아하면 안 되는 거지. 진희를 생각하면…"
"… 이현아, 죄책감 그만 내려놔."
마음이 저릿하게 아파왔다. 자꾸만 조여오는 가슴이 답답했다. 죽음까지 나 때문이 아닌 걸 알면서도 다 내 탓 같았다. 도저히 미안함이, 가시질 않았다.
생명의 불씨가 꺼져가는 상황에서 나를 찾았는데, 나는 그것도 몰랐다. 그 아이의 마지막을… 할 말이 있다고 와달라고 했던 그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던 게, 마음을 받아주지 못 한 거. 아니, 들어라도 주지 못 했다는 것 자체가 늘 마음 한구석에 자리했다.
세월이 많이 지나 잊혀 질 때가 되었지만, 의식하지 않는 잠재의식 속에서 은연중에 작용했는지도 모르지. 영원이를 좋아하면 자꾸 생기는 진희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쉽게 다가가지 못 하고, 항상 머뭇 머뭇대게 됐던 결정적인 이유일 것이다.
상처가 많아 보인 영원이에게 다가간 것도 진희가 생각나서 그랬던 걸까. 이쯤에서 더 뻗어가는 마음을 접고, 지우고 싶지만…
… 지금도 한영원, 네가 너무 보고 싶어. 너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