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로맨스
말해, 말하라구.
작가 : 랑다정
작품등록일 : 2016.8.29
  첫회보기
 
사랑의 두께 [백이현 외전: 外傳 7]
작성일 : 16-10-31     조회 : 529     추천 : 0     분량 : 8000
뷰어설정열기
기본값으로 설정저장
글자체
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22.

 

 

 

 

 

 ​ 오래간만에, 좋은 꿈을 꾸었다. 생각은 잘 나지 않지만 분명히 기분이 굉장히 좋은 꿈이었다. 눈을 감고서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가는 그런 꿈…. 엊그제는 밤을 새워서 그런지 몸이 너무 고단했는데, 덕분에 푹 자서 몸이 개운… 개운? 꿈과는 달리 눈을 뜨자마자 밀려오는 건 깨질 듯이 아픈 머리였다.

 

  관자놀이를 꾹 누르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찌릿 온몸을 타고 흐르는 통증에 곡소리가 절로 나왔다. 목덜미와 관자를 가볍게 마사지하고 눈을 떴을 때. 아직도 꿈을 꾸는 줄 알았다. 전혀 본 적도 와 본 적도 없는 곳에 그것도 혼자 누워있다는 사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못 볼 거라도 본 사람처럼 침대에서 뛰쳐나왔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모텔이라던가. 호텔 룸처럼은 보이지 않는 내부가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뒷걸음질 쳤는데, 뭔가 툭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

 

 

  "한영…원…?

 

 ​

 

 

  눈이 뒤집힐 만큼 놀라서 주웠던 물건을 다시 떨어뜨렸다. 다시 주워서 확인했다. 내 눈이 어떻게 되지 않고서야. 영원이 모습이 담긴 액자를 내가 들고 있을 리가 없잖아.

 

  아무리 봐도 한영원이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화장대며 전공서적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현실에 마른 세수를 하며 침대 끄트머리에 걸터앉았다. 이대로의 전개라면 여긴 한영원 집이었다.

 

  어째서 내가 왜 여기 있는 거지. 영원이는 어디 간 거고. 아냐 이건 꿈이 분명하다 꿈이야. 꿈. 하지만 꿈이라고 하기엔 내 눈앞에 펼쳐진 생생한 증거들이 난무했다. 복잡한 머릿속은 엉켰고, 내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내가 기억나는 거라곤 동아리방에서 뛰쳐나가는 널 따라갔다가 쓰디쓴 상처만 받고, 나 자신이 한심해서… 그래 술! 술을 마셨었다. 형 얼굴도 얼핏 기억나는데, 영원이 집까지 오게 된 경로가 도무지 생각나질 않는다.

 

 ​

 

 ​

 

  "아, 젠장. 안 끊겨야 할 필름이 제대로 끊겼네-"

 

 ​

 

 

 

  어제 일을. 정확히 술을 마신 후를 전혀 기억 못 할 정도면, 엄청 마셨다는 건데. 죽지 않고 깨어난 게 다행이었다. 그런데 무엇보다 내가 이곳에 있다는 게 생각할 수 록 신기했다.

 

  그동안 집 근처나 집 앞까지는 와봤지만. 집 안까지 들어오긴 처음이었다. 그리고, 여자 집 자체가 처음 인터라 왠지 모를 기분이 샘솟았다.

 

  어제 일을 생각한다면 어떻게 다시 너를 봐야 할지. 게다가 틀어진 우리의 관계를 어디서부터 바로잡아야 할지도 막막했는데… 어쩌면, 내게 다시 주어진 기회일지도 모르겠다.

 

  영화에서 보던 타임 슬랩처럼 말이다.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든 간에. 술 취해서 온 나를 길바닥에 버리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희망의 씨앗이었다. 지 푸라지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제부터라도 다시 시작하면 되잖아. 그럼.

 

 

 ​

 

  "샤워부터 해 볼까?"

 

 

 ​

 

  역시, 여자 집이라 그런지 모든 게 깔끔했다. 세안용품부터 없는 게 없고, 보디용품은 컬렉션을 이루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종류별로. 처음 보는 것들도 많아 신기한 나머지 감탄사까지 내뱉으며 구경하고 있었다.

 

  그리고 제일 마음에 드는 보랏빛 나는 바디워시를 집어 들었다. 세면대 위에 올려두고 수납 장을 열어서 보니 새 칫솔이 눈에 들어왔다. 뭐, 하나 정도는. 나중에 새 거 사다 놓지 뭐. 그렇게 양치와 세안을 마치고. 샤워를 하려고 자연스럽게 옷을 벗어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는데.

 

 

 

 ​

 

  히익-! 이, 이게 뭐야. 왜 이래!"

 

 ​

 

 

  푸르뎅뎅한 무언가가 내 몸 이곳저곳에 자리했다. 그 모습을 보곤 나 홀로 집에 캐빈이 아빠 스킨을 바르고 소리 지른 것처럼 외마디 비명이 터져 나왔다. 호들갑을 떨며 거울에 가까이 다가갔다.

 

  이것의 정체는 대체 뭐야. 어? 피부병에 걸렸나? 문질러 보다가 꾹 누르니 통증에 악 소리가 나왔다. 그것의 정체는 다름 아닌, 멍 자국이었다. 어떻게 된 거지. 갈비뼈 쪽이며 허리 쪽이며 곳곳에 퍼져있던 멍들은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술 취해서 가파른 경사길에서 구르기라도 한 건가. 아님 정신없다고 사람을 막 두들겨 패기라도 한 건가. 한영원이라면 그러고도 남았을 것이다. 만나면 물어봐야지. 이지경으로 패냐. 패길. 아무리 미워도 그렇지. 그래서 받아 준 건가.

 

  뭐 받아 준 거라고 할 순 없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너랑 가까이 있을 수만 있다면 아무렴 상관없지만… 이거 은근히 아프잖아….

 

 

 

 

 

 

 

 

 

 

 

 

 

 

 

 

 

 

 

 

 

 

 ​

 

 

 

  "오, 여자 화장품이 더 좋다. 좋아."

 

 ​

 

  충격적인 샤워를 마치고 나와서, 좋은 향기가 폴폴 풍기는 몸으로 화장대 앞에 앉았다. 음 향이 좋네.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 향기가 퍽 맘에 들었다. 바디워시 향에 감탄하며 당겨오는 피부에 보습감이라도 주려고 이것저것 찾다가. 로션이라고 적힌 병을 집어 들었다.

 

  일전에 동기들이 여자화장품이 남자 꺼 보다 더 순하고 좋다는 말을 들은 적은 있었는데. 써보다 정말 그랬다. 남자들 거는 독하고 따가운데. 콧 노래까지 부르며 얼굴에 바른 로션을 문질렀다.

 

  근데, 지금 몇 시지? 두리번거리며 시계를 찾으니 거실 벽면에 붙어 있었다. 시곗바늘은 8시를 가리켰고, 오늘의 첫 수업까진 1시간 반 남았다는 뜻이었다.

 

  휴대폰, 휴대폰 어딨지? 다행히 침대 옆에 고이 모셔져있는 휴대폰의 홀드 키를 눌렀다.

 

  배터리가 달랑달랑해서 화면이 어두웠다. 마침 충전기가 보여 꽂아놓고, 고개를 들자. 아깐 보이지 않았던 포스트잇이 눈에 들어왔다. 거기엔,

 

 ​

 

  내 걱정은 하지 마.

 

 ​

 

  달랑 이렇게만 쓰여있었다. 너무하네. 어디를 간다 정도는 써 놔야지. 나를 데려다 놓고, 저는 나가서 잔 꼴이라니. 민폐 손님이었군 내가. 미안한 마음이 드는 동시에, 나쁘지만도 않았다.

 

  날 싫어하지만은 않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어서. 믿고 자신의 집까지 내게 내어준 거니까.

 

  근데, 나가서 잤다니. 여자가 집에서 자야지 어딜.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말이야. 만나기만 해봐라. 가만 안 두겠어. 손에 들고 있던 포스트잇을 이마에 딱 붙이고 다시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그리고 휴대폰을 켜서 익숙하게 패턴을 누르고 귀에 갖다 대었다.

 

 ​

  "어. 형! 난데-"

  ─ 너 인마! 술이 떡이 돼선 갑자기 사라지고 연락도 없고!"

  "미안…. 사연이 좀 길어. 나중에 설명할게. 그건 그렇고 부탁하나만 하자."

 

 

 ​

 

 

 

 

 

 

 

 

 

 

 

 

 

 

 

 

 

 

  벌써 수업 15분 전이었다. 과음으로 인해 속이 너무 쓰려 근처에 국밥집에서 가서 급한 대로 속을 달래고, 전철에 택시까지 번갈아 가며 타고 빨리 온다고 왔는데도 1시간이나 소요됐다.

 

  출발 직전에 전화를 걸었는데. 보기 좋게 거절을 당했다. 뭐야, 왜 전화는 안 받아.

 

  그래서 더 급하게 학교로 왔다. 분명 오늘 수업이 있기 때문에 학교에 왔을 게 분명했다. 캠퍼스 안을 이잡듯이 다 돌아다니다 라커룸이 있는 건물로 들어왔다.

 

  잠시 거칠어진 숨을 고르려고 무릎에 손을 얹어 땅을 향해 숨을 내뱉고 고개를 드는데 익숙한 실루엣이 눈에 띈다. 땀을 닦으며 일어났다. 후, 드디어 찾았다.

 

 ​

 

 ​ "야! 한영원!"

  "……………." ​

  "왜 그렇게 연락이 안 돼!"​

 

 ​

 

 ​ 숨을 채 고르기도 전에 다시 달려갔다. 하루 사이에 네가 이렇게 달라 보일 줄이야. 오늘은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딱 네 앞에 멈춰 서 터질 것 같은 심장을 부여잡고 헥헥 숨을 내뱉기 바빴지만, 밤에 어딜 그렇게 돌아다니냐를 비롯해서 잠을 집에서 자야지.

 

  휴대폰은 왜 그렇게 안 받느냐며. 있는 없는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꼭 여자친구 단속하는 남자친구라도 된냥 기분은 꽤 괜찮았다. 그런 나와는 달리 점점 얼굴이 굳더니, 미간이 구겨지고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아주 소문을 내라, 너 우리 집에서 잤다고."

 

 

 

 

  아, 목소리가 너무 컸나?

 

  그러자 내 팔을 잡고. 구석진 곳으로 데려갔다. 나 지금 실수 한 건가. 뭐 남들이 우리 대화만 엿듣는 것도 아닌데. 아무튼, 구름 위를 걷는 듯. 뭐든 긍정 마인드가 된 나는 모든 상황들이 신경 쓰이지 않았다. 이유야 어쨌건.

 

 

 

  "아침에…. 일어났는데, 나 깜짝 놀랐어."

  "… 왜?"

  "여자 집 처음이거든. 나… 정말 처음이야."

  "앞으론 술 먹지 마. 술도 못 이기는 게- 그러다, 아무 여자 집에서 잘라."

 

 

 ​

 

  그러다, 아무 여자 집에서 잘라.

 

 

 ​ 이 말은 분명, 내 걱정을 한다는 말로 들렸다. 그렇게 듣고 싶은 건지도 모르지만. 난 그렇게 해석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게 말을 놓고 있었다. ​

 

 

 

 ​

  '그래요. 우린 처음부터 아니었나 봐요.'

 

  '버거웠다고요. 나한테 선배.'

 

  '차고 넘쳐요. 잡히지 않아.'

 

  '이젠 같이 다니는 것도 부담 돼요. 그 정도로만 알아두세요. 그게 이유에요.'

 

 

 

 

 ​ "… 괜찮아."

 

 ​

 

 

 ​ 선배 호칭과 존대를 써가며 매물 차게 나를 대하던… 그토록 차갑던 어제의 한영원은 없었다. 내 앞에 있는.

 

 ​

 

 

  "넌 아무 여자. 아니잖아."

 

 ​

 

 

  아무 여자가 아닌. 내가 좋아하는 유일한 한 사람. 한영원이었다.

 

 ​

 

 ​ "어…?"

  "고마워. 재워줘서…."

  "… 됐어. 인사 받자고 한 일 아냐."

 

 

 

  한층 누그러진 말투가 나를 안심시켰다. 그리고 느낌적으로 확실히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게 분명했다. 막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도 알 건 알아야 하니까. 별거 아닌데. 괜히 긴장이 되어 입술이 바짝 말랐다.

 

 ​

 

  "그리고, 어젯밤에 말인데…."

  "됐다고. 모른 척할게. 너도 신경 쓰지 마."

  "…어?…ㅁ-"

  "바빠, 수업 있어. 먼저 간다-"

 

 ​

 

  끝까지 들어 보지도 않고, 훽 돌아 몇 발자국 앞서가버렸다. 뭐가 이렇게 급하시나. 아직 수업 시작하려면 조금의 여유는 있는데.

 ​

 

 

 

  "잠깐만. 묻고 싶은 게 있어서 그래."

  "……………."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손목을 그렇게 세게 쥔 것도 아닌데 아프다고 괜히 핑핑거렸다. 이러니까 되게 되게 수상하네. 잠깐 물어보자는데 왜 이렇게 피하는 거야. 뭔가 걸리는 사람처럼. 사람 심리가 피하고 안 알려 주면 캐고 싶어지기 마련이다.

 

  궁금함이 증폭되어 더 집요하게 굴었다. 그러자 얼굴도 빨개지고 쿵쿵 심박동이 손목을 잡은 내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혹시, 나를…."

  "……………."

  "계단에 굴렀다거나, 구타를 가했다거나…. 물론 네가 그랬으리라곤 생각 안 해. 근데-"

  "……………."

  "아침에 샤워하려는데, 몸에 멍이. 멍이 그렇게 많이 들었더라고."

  "……………."

  "한번 볼 래? 난, 처음에 무슨 심각한 피부병 걸린 줄 알았어."

 

 

 

  티셔츠를 올려서 보여주자, 눈이 커다래지더니 순식간에 고개를 돌리고 올리는 팔을 내리라고 성화였다. 아니 고개를 돌리지 말고 봐야지. 멍이 왜 이렇게 많이 든 거야.

 

 

 

  "솔직히 말해, 다 굴 당한 거지. 나….

 ​ "……………"

  "얼른 말해줘.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한참을 생각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더니, 아예 멍한 표정이었다. 날 굴렸든 간에 아니든 간에 날 바라보는 네가 다시 돌아와서 기쁘다.

 

 

 

  "어이. 멍 때리지 말고. 솔직히 불어라."

  "너. 내 거 썼지?"

 

 

 

 

  내 거 썼지.

 

 

  이 말 한마디에 모든 상황이 종료되었다. 민망한 웃음이 났고, 그 와중에 그런 말을 한다는 한영원도 엉뚱하고. 뜬금없는 말이었지만. 쓴 건 사실이니까. 순간 머뭇대다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말했다.

 

 

 

 

  "어? 아…. 네 물건 신세 좀 졌다."

 

 ​

 

 

  그리고, 내가 쓴 목록을 내 입으로 차근차근 일러주었다. 주인도 없는 집에서 잔 것도 모자라. 물건을 마음대로썼으니. 고운 눈으로 날 바라볼 리 없는 영원이는 그래도 귀여웠다.

 

  어차피 진짜 내가 미워서 그렇게 보는 것도 아닐 테니. 바디워시 얘기가 나와서 많이 나? 역한가. 난 좋은데. 하며 반문하자.

 

  말이 없어진 네가 빤히 날 쳐다보기만 한다. 어디선가 모르게 향기가 터지듯 코끝에 스며들었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맡으니 영원이에게서 오는 향이었다. 귀 옆까지 바짝 다가가니 향이 더 짙어졌다. 오늘 아침에 내가 고른 그 바디워시에서. 그리고 지금 내 몸에서도 …

 

 ​

 

  영원아,

 

 

 

 

  "나한테, 네 향기 나."

 

 

 

 

  아까부터 나더러 떨어지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다가가면 뭐라도 묻을세라 도망치듯 한 걸음 물러난다. 그렇게 가까이 걷는 것도 아닌데 신경이 곤두서는 모양이다.

 

  오해 하긴, 누가 오해한다고. 툴툴 거리며 더 바짝 다가갔다. 괜히 심술이 나서 대범하게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가만히 있을 리 없는 영원이가 소리를 빽 질렀다.

 

 

 

 

  "야, 백이현. 손 내ㄹ-."

  "한영원. 아직도 백이현한테 선배 취급 안 하냐."

 

 

 

 

  어? 뒤돌아보니 거기엔 강준 형이 서 있었다. 언제부터 졸졸 따라온 건지. 한껏 여유까지 부리곤. 혹시나 우리가 말을 튼것에 태클을 걸까 봐. 악수를 하며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이미 선배이 눈초리는 영원이에게 향했고, 영 곱지만은 않았다.

 

 

 

 

  "선배님! 아침 식사하셨어요? 안 하셨으면 같이 하실래요?"

  "아냐, 지금 약속 있어서."

  "오~ 인기쟁이."

 

 

 

 

  괜히 안 할 말도 했다. 정말 내가 생각해도 속이 울렁거린다. 후배 앞에서 가오 잡으면 좋냐. 서강준. 내 사촌이지만 이럴 땐 콱 꿀밤이라도 먹여주고 싶다. 내가 영원이 좋아하는 거 뻔히 알면서 툭툭 말로 영원이를 건드린다.  

 

 

 

 

  "안녕…하세요…."

 ​ "보면 참 능력 좋아."

  ​"…네?"​

  ​"선배들 깔보는 능력."

  "……………."

  "어디, 나한테도 해보지."

  "……………."

  "서강준이라고, 불러 봐."

 

 

 ​

 

 ​ 지금처럼 말이다. ​신입생 때부터 남다른 철판 패기로 선배들에게 따곡따곡. 따져 버리는 성격 탓에 선배들에겐 그리 좋은 인상을 심어주지 못 한 영원이의 불찰도 있지만. 그렇다고 영원이가 모두 다 잘 못 한 건 아니었다.

 

  우리 과 선배들이 좀 무모하고 참 생각이 짧다 싶을 때도 더러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중간에 낀 나만…. 영원이는 아직. 형이 내 사촌 형인 걸 모르니까. 변새우는 오늘도 등이 터진다.

 

 ​

 

 

  "선배님? 제가 그렇게, 불러봐도 되겠습니까."

  "겨 오르냐. 가만히 나 있으면."​

  "네. 알겠습니다."

  "하여튼, 넌​… 아휴, 팔불출 새ㄲ-"

 

 

 

 

 

 

  '어. 형! 난데.'

  ─ 너 인마 어젯밤에 어디 간 거야. 술이 떡이 돼선 갑자기 사라지고 연락도 안 되고.

  '미안…. 사연이 좀 길어. 나중에 설명할게. 그건 그렇고 부탁하나만 하자.'

  ─ 필요할 때만 찾지.

  '​요즘, 형 선배들이 러브 액추얼리 공연하신다면서.'

  ─ 표 구해달라고?

  '그렇지! 역시 척하면 척이야.'

  ─ 공짜는 없다.

  '뭐든 말만 해.'

  ─ 한영원. 걔랑 보러 가려고? 팔불출 새끼 하여튼. 노답이다. 노답.

  '어? 영원이랑 보러 간 다곤 안 했는데.'

  ─ 내가 너를 몰라? 우리가 한 두해 보냐.

 

 

 

 

  팔불출이라는 말에 아까 통화했던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입을 틀어막기라도 하듯 잽싸게 달라붙어 선수쳤다.

 

 ​

 

  "아아! 맞다. 선배님. 저한테 주실 거 있으시죠오~?"

  "내가 이거 구하느라 안 하던 아부까지 다하고…."

  "역시 선배님 밖에 없어요. 나중에 찐하게 한 턱 내겠습니다."

 

 

 

  나중에 또 보자.라고 영원이에게 말하는 모양새가 거슬려, 또 이상한 소리를 해댈까 봐. 최대한 영원이와 떨어지게 했다. 아무튼 형 여자친구한테나 잘 할 일이지. 그리고 나중에 이 사실을 영원이가 알게 되면 어쩌려고 이러실까.

 

  형. 영원이한테 잘 해줄 수 없어?

 

 ​

 

  "내가 왜."

  "형 애인하고 제일 친한 절친이잖아."

  "그래서."

  "그래서라니, 후안이 두렵지 않아?"

  "두렵진 않은데. 노력은 해 볼게."

  "고마워 형…."

  "그럼, 잊을래? 그렇게 하면 잊을 수 있겠어?"

  "어? 그게 무슨 말이야."

  "… 아냐, 아무것도…."

  "표 고마워. 꼭 보답할게. 언제 한번 정식으로 형수 소개해줘."

 

 ​

 

 

  형수라는 말에 피식 웃으며, 내 어깨를 툭 쳤다. 영원이가 있는 쪽을 슬쩍 보곤 나를 번갈아 가며 보다가 의미심장하게 눈썹이 치켜 떠지며 묻는 형.

 

 

 

 ​ "백이현. 한영원이 그렇게도 좋냐."

 

 ​

 

  형에게 할 대답으로 앞으로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앞으로 절대 나 자신에게 실망하는 일. 두고 두고 후회하는 일 만들지 않을 게. 설령, 영원이가 네가 나를 밀어낼지라도… 어제처럼 내 눈앞에 두고 놓치는 일은 없을 거라는 다짐도 함께 마음에 깊이 되새겼다.

 

  형이 한 질문에 처음으로 확고하게 대답하고, 다시 영원이가 서 있는 곳으로… 설레는 마음을 안고 네가 달려간다.

 

 ​

 

 ​

 

 ​

 

 ​ 아니. 아주 많이… 사랑하고 있어.

 

 

 

 ​

 

 
 

맨위로맨아래로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22 사랑의 두께 [백이현 외전: 外傳 7] 10/31 530 0
21 과거의 올가미 [백이현 외전: 外傳 6] 10/31 391 0
20 멀어진 시간 [백이현 외전: 外傳 5] 10/31 348 0
19 너만 몰랐던 진실 [백이현 외전: 外傳 4] 10/31 364 0
18 함께 할 수 있는 것들 [백이현 외전: 外傳 3] 10/31 673 0
17 그날의 우리 [백이현 외전: 外傳 2] 10/31 385 0
16 그날의 너 [백이현 외전: 外傳 1] 10/30 387 0
15 같은 공간 다른 행동 10/30 594 0
14 보고 싶으면 10/30 482 0
13 그래도 될까? 10/30 347 0
12 서투른 마음 10/27 383 0
11 그때부터 일까 10/27 351 0
10 마음이 간지러워져 10/23 401 0
9 강아지보다 귀여워 10/23 427 0
8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말해 10/23 412 0
7 사실, 나는 말야… 10/23 401 0
6 사랑, 달달하지만은 않아. (4) 9/23 794 2
5 버거웠다고요. 나한테 선배. 9/20 743 2
4 여기서 딱 만났네요 9/19 680 2
3 오해의 발단 9/16 586 2
2 그 여자, 그 남자의 (속)사정 (2) 9/10 1191 4
1 prologue 9/9 1763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