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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 말하라구.
작가 : 랑다정
작품등록일 : 2016.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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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 그 남자의 (속)사정
작성일 : 16-09-10     조회 : 1,190     추천 : 4     분량 : 5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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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

 

 

 

 

 

 

 

  "후…하…."

 

 

 

 째깍. 째깍.

 

 

 

  시곗바늘 소리만 자그마치 2시간 째 듣고 있었다.

 

  천장만 뚫어져라 쳐다보는데 왜 뚫리지 않는 거지. 5초 단위 심호흡을 하다가, 정서 불안처럼 손가락을 움직였다가, 발가락을 움직였다가, 몸을 비틀었다가. 옆으로 누웠다가, 똑바로 누웠다가, 엎드렸다가,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비비기를 수차례.

 

  뭐-어? 동아리 회원비가 얼마였냐고? 장난해. 생각 할수록 열이 받았다. 사람 떠보는 것도 아니고. 재는 거야 뭐야. 좋아하는 것처럼 굴더니. 시답지 않은 거 물어보려고 전화나 하고 말이야. 막판에 잘 자라고는 왜 하는데.

 

  사실, 별문제 없이 넘어갈 수도 있는 거였다. 근데. 내가 더 좋아하는 것 같아서- 내가 더 매달리고 내가 더 목메고 내가 더 안달 난 것 같아서- 내가 더, 아니 몇 곱절은 손해 보는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하다하다, 자존심까지 상한다.

 

 

  "으으…."

 

 

 잊으려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새벽 1시에 하늘 자전거를 돌리고. 다리를 꼬고 손가락을 머리카락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마구 헝클었다. 얼굴선을 타고 내려온 손은 신경질적으로 볼을 문질렀다.

 

  마구. 사정없이. 결국 벌떡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 침대 아래로 처박아 놓은 휴대폰을 더듬더듬 찾았다. 끄응. 약이 올라 어쩔 줄을 몰랐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게 슬슬 약 오르게 하네. 꼭 백 이현과 나의 사이 같아서 성질이 났다.

 

 ​ 조금만… 조금만 더… 그러다가 꽈당. 몸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으으. 무릎이 시큰 시큰 아팠지만, 열 받는 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손에 쥔 폰의 홀드 키를 재빠르게 ​누르고 전화 아이콘을 눌렀다. 최근 기록 맨 상단에 떠 있는. 10시 59분에 전화 온 주인공.

 

  이따금씩 밀려오는 통증에 한 번씩 문질러주고, 내 눈앞에 있는 마냥 힘껏 노려 본 뒤. 통화 터치를 눌렀다.

 

  '가끔씩 나도 모르게 짜증이나, 너를 향한 맘은 변하지 않았는데.'~♬

 

  절묘하게 내 심경을 담은 컬러링을 무자비하게 삭제하고 싶었다. 이 곡으로 컬러링 해 놓은 백 이현은 또 뭔데. 잘근 잘근 엄지손톱 살을 물어뜯었다.

 

  후…진짜…. 어쩐지 심장이 이상하게 벌렁거린다. 어쭈. 통화 연결 음 10초 이상 흘렀다. 백 이현. 빨랑빨랑 안 받-

 

 

  ─ 여보ㅅ-

  "야!!"

 

 

  전화를 받자마자. 냅다 소리를 질렀다. 겁나게 황당하겠지. 어쩌면 자다가 전화를 받은 걸 수도 있겠지만. 지금 잠이 오냐고! 누구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는데. 차곡차곡 담아놓은 분노가 야! 라는 한 어절로 함축되어 터졌다.

 

 

  ─"……………."

 

 

  자다가 날벼락이었는지 대답도 없는 백 이현. 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용건을 말했다.

 

 

  "안 자고 있지?"

  ─ …어?

  "내가 지금 엄청 급한 일이 생겨서. 우리 집 근처 공원에서 좀 만나."

  ─ ​…응?

  "그럼 내가 너네 집으로 가리?"

  ─ ㅇ,아…아니!

  "도착하면 전화해. 머리 식힐 겸 먼저 나가있을 게."

  ─ 지금 나온다고?

  "나오라면 나와! 끊는다."

  ​─ 아니 그게 아니라-

 

 

 뚝-

 

 

  사정없이 끊어버렸다. 나오라면 나올 것이지. 무슨 말이 이렇게 많은지. 민폐고 황당한 거 아는 새벽 1시이긴 한데. 오늘 밤을 넘기면 나. 평생 잠 못 잘 것 같아.

 

  백 이현.

 

  오늘 네 대답 꼭 들을 거야.

 

 

 

 

 

 

 

 

 그가 말한다. part.1

 

 

 

 

 

 

  지독한 나의 외사랑엔 어째서, 왜. 날개를 달아주지 못 하니. 내가 술을 못 하긴 하는데. 이깟 음료 하나에 취하는 기분은 뭐냐. 가로등에 기대어, 파란색과 붉은색이 섞여 프린트된 음료수 캔을 할 일 없이 구겼다. 그러길 여러 개. 너무 많이 마셨나.

 

 

  "아. 화장실 가고 싶네."

 

 

  부르르르…. 순간 내가 이성을 잃고, 그 자리에서 실례 한 줄 알았다. 더듬더듬. 다행히 보송보송한 바지. 주머니에서 떨고 있는 전화기가 원인이었다.

 

  다행스러운 한숨과 함께 인상이 구겨졌다. 이 새벽에 스팸전화는 아니겠지. 안 그래도 기분 착잡한데, 스팸 전 화면 - 욕 나 올 것 같아. 음료 때문인지, 눈은 말똥말똥 한데 정신은 넋 나간 사람 같았다.

 

  부작용인가 봐. 가까스로 폰을 꺼내들었고, 얼마 안 돼서. 너무 놀라서 바닥에 떨어뜨렸다.

 

  …한 영원…?

 

  분명 밝은 액정 위로 뜬 이름이 그러했다. 다행히 2개로 분리되지 않은 휴대폰은 여전히 울렸고, 정신을 차리고 떨어진 폰을 냉큼 주웠다. 얼른 안 받으면, 영원이 화-

 

 

  "여보ㅅ-"

  ─ 야!!

 

 

 날 텐데… 가 아니라 화났다. 어떡하지. 나 여기 있는 거 눈치 챘나?

 

 

  ─ 안자고 있지?

  "…어?"

 

 

 안자고 있지. 라니, 진짜 아나보다.

 

 

  ​─ 내가 지금 엄청 급한 일이 생겨서. 우리 집 근처 공원에서 좀 만나.

 ​ ─ 그럼 내가 너네 집으로 가리?

  "ㅇ,아…아니!"

  ─ 도착하면 전화해. 머리 식힐 겸 먼저 나가있을 게.

  "지금 나온다고?"

  ─ 나오라면 나와! 끊는다.

  "아니 그게 아니라-"

 

 

  엇- 대답도 듣기 전에 본인 할 말만 하고 끊어버렸다. 성질 급하긴. 이 새벽에 누가 채가면 어쩌라고. 바보야. 먼저 나와 있지 않아도 돼.

 

 

  "내가 먼저 가서 기다릴 거니까."

 

 

  3층. 맨 오른쪽 꺼졌던 방에 불이 켜지고. 분주해진 그림자에 슬쩍 입 꼬리가 올라가고, 푸흐흐. 웃음이 났다. 방광 터지도록 레드 불 마신 보람 있네.

 

  한 30분 걸리겠지?

 

  내가 아는 넌 그렇다. 불투명한 차창 밖으로 이리저리 움직이는 인영이 보였다. 때맞춰 나오면, 그때 호수공원 쪽으로 가려고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넉넉잡고 30분이 걸렸다. 방 불이 꺼진 걸 보고 나서야, 안심하고 조금씩 거리를 두리번거리며 살폈다.

 

  혹시나, 취객이나 갖은 불상사가 생길까 봐 걱정돼서.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내려온 모습에 내가 마신 캔을 치우지도 못 하고 냅다 달렸다.

 

  ​내가 봐도 그렇게 모양 빠질 수 없었다. 젠장, 백 이현. 인마. 이러는 거 아버지 아시면 너 그거 떼야 할지도 몰라. ​엄한 아버지 생각에, 나 자신에게 그렇게 말하곤 소리 나게 웃었다. 그래도, 네가 좋은 걸 어떡해.

 

  날 볼세라, 한참 달리다. 멈춰 서서 문자를 보냈다.

 

 

  [나 도착했어.]

 

 

  숨이 턱까지 차서 전화 받을 목소리가 아니었다. 대충 문자를 찍어 보내고, 마저 달렸다. 거의 도착할 때쯤. '지이잉' 윽- 전화 하랬는데, 문자했다고. 대번에 전화가 걸려왔다.

 

 

  ─ 도착하면 전화하랬지.

  "…으…응?…응…."

  ─ 나 지금 나가. 조금만 기다려."

  "…어헉…어…천천히 와"

 

 

  피할 수 없는 전화가 왔다. 숨을 고르고 태연하게 받았지만 입술 새를 비집고 나오는 거친 숨소리는 너에 대한 내 마음처럼 잘 숨겨지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 휴대폰 액정을 두드리며, 고민에 휩싸였다.

 

  이 새벽에 날 부른 이유는 무엇이며 과연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러는 걸까. 중요한 일이라는 게 대체 뭐지. 저번에 소개팅 했던 공대생 얘긴가. 꽤 맘에 들어 하던 눈치던데. 잘 되고 있는 거였나. 혹시… 고백이라도 받았나. 허공에 시선을 고정하고서 여러 가지 잡다한 생각이 머릿속을 마구 들쑤시고 있는 중에.

 

 

  "…백…이현…​?…"

  "……??……."

 

 

 

 

 

 

 

 그녀가 말한다. part. 2

 

 

 

 

  "이것도. 아냐. 이건 더 아니고."

 

 

  안 돼. 안 돼. 너무 지나치게 신경 쓴 티가 팍팍 나. 요건 보기와 다르게 후줄근해. 그렇다고 저건 너무 지나쳐. 새벽에 느-읒게 나가는 사람치곤,

 

 

  "헐…"

 

 

  한마디로 데이트하러 가는 여자 같달까. 이럼 너무 티 나겠지. 아, 젠장. 왜 이렇게 입을 옷이 없어.

 

 

  "아이씨-"

 

 

  방안에 옷 장 속을 가득 메운 옷 중에서 입을 옷이 없다니? 옷걸이에 걸린 블라우스며, 서랍장에 넣어둔 면 티들이며 하나씩 뒤지다가 꺼냈다가 넣었다가 꺼냈다가 넣었다가, 바닥에 놓고 짜 맞추기를 했다가 다시 옷장을 뒤적이고, 머리를 쥐 뜯고 소리치고 싶었다. 망할, 나 왜 이런 고민하고 있는데-에!

 

 ​ 고백도 안 하고, 좋아하는 것 같은데 어떨 땐 아니고,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늘을 날다가 맨바닥에 처박기 일쑤인데! 새벽 2시를 향해가는 시계를 보고는 후회가 폭풍 쓰나미. 한반도 대륙을 덮었다. 나오라고 소리치고 끊었는데 막상 만날 거 생각하니. 아. 내가 드디어 미쳤네. 이성의 끊을 놓고 일을 쳤어.

 

  드디어 내가 실성을 했구나 싶었다.

 

  이게 무슨 연애 시뮬레이션 어플이야? 아니다 싶으면 다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없던 일처럼. 어플 삭제하듯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하… 내가 순간 꿈을 꿨나. 왜 그랬지?

 

  한 영원. 너 도대체 왜 그런 거야. 곱게 잠이나 쳐 자지. 자는 사람 깨워서 다짜고짜 소리 지르고, 나오라고 명령하고. 나 왜 그런 건데. 이래서 백 이현이 날 조금이라도 좋아해 주겠어? 자다가 뭐 이런 계집애가 다 있나 싶어서-​ 정머리가 뚝 떨어졌을 거야.

 

  이왕 기다린 거. 조금만 더 참고 날 밝으면 맨 정신에 만나. 담판 지어도 되는 거였잖아. 라고 생각하면서도 분명 친구도 못 알아볼 민낯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초크초크 하게 잘 먹은 물광 피부가 눈앞에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 거울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이 와중에도 찍어 바를 생각을 하다니. 그러면서도 무심한 듯 신경 쓸 거 다 쓴 패션을 하고, 야무지게 평범한 운동화까지 신는 치밀함을 보였다. 내가 생각해도 여자는 무서운 생명체다. 30분 정도면 충분히 나오고도 남을 시간이니까. 지금쯤 도착했겠지?

 

 

 

 

 

 

 

 

  "이런, 미친놈들."

 

 

  오피스텔 건물을 빠져나와. 걷다가 발에 채는 쓰레기에 구성진 욕지기가 나왔다. 말이 좋아 오피스텔이지, 오래 된 건물이라 다세대 연립이라고하면 딱 맞을 겉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런 비양심 인간들. 누가 쳐 먹고 안 치운 거야. 세상에 레드 불 가게 차려도 되겠네. 누군지 몰라도, 걸리기만 해봐라. 캔을 주워서 가까이에 있는 분리수거 함에 쑤셔 넣었다.

 

  비행청소년들의 짓이 분명했다. 어지간히 할 일 없었나 보네. 쯧. 혀 차는 짧은 소리와 함께 메시지를 확인했다. 이현이었다. 뭐야. 전화하라니까. 그래 이젠 그것도 귀찮다 이거지. 자다 깨워서 꼬락서니 났다 이거야. 방금 도착했는지, 1분 전에 메시지가 와 있었다.

 

 

  "도착하면 전화하랬지."

  ─ …으…응?…응…

  "나 지금 나가. 조금만 기다려."

  ─ …어헉… 어… 천천히 와.

 

 

  숨이 가득 차오르는지. 급하게 토해내며 대답을 하는 백 이현.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숨소리가 거슬렸다. 전화를 걸었다. 메시지가 왔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전화를 걸었다. 이유는 나도 모르겠어. 어쩌면… 잠깐이라도 먼저.

 

  그냥 네 목소리가 듣고 싶었는지도 몰라.

 

  호수공원에 다다를 수 록 침이 말랐다. 목이 까끌까끌 까끌까끌하고, 손에 땀도 났다. 이상하게 심장 부근이 올라왔다 내려 왔다를 반복했다. 가슴이 막힌 듯 ​숨도 쉬기 불편했다.

 

  괜히, 휴대폰을 꼭 쥐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깊은 심호흡을 했다. 어렴풋이 이현의 실루엣이 보였고,한발 한발 내디디면 내디딜 수 록 불편한 숨도 같이 막혀왔다.

 

  이것은 이현이와 마주하게 되면 언제부턴가 어김없이 찾아오는 이현 병의 초기 증세였다. 전화로는 인정사정없이 지르고 관심 없는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온갖 척은 다해도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백 이현의 인영으로 추정되는 인영. 하나였던 실루엣이 두개로 나누어지는 순간. 차라리 불러내지 말걸. 그냥 수면제 털어 넣고 잠이나 자빠져 잘걸. 너의 생각 따위 하지 않고. 아니. 애초부터 어젯밤 걸려오던 네 전화를 받지 말았어야 해.

 

  작은 것에 끙끙 설레던 내 모습이 후회의 칼날이 되어, 내 심장을 뚫고 헤집어 놓았다.

 

  그리고 그대로 숨이 멎었다.

 

 

로즈마리 16-09-13 10:26
 
여자 주인공 성격이 많이 까칠한가요? 되게 까칠해 보이네요~
  ┖
랑다정 16-09-16 23:59
 
네^ ^ 까칠한 성격입니다. 회가 거듭 될 수록, 성격 변화가 되는 걸 느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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