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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 말하라구.
작가 : 랑다정
작품등록일 : 2016.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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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딱 만났네요
작성일 : 16-09-19     조회 : 679     추천 : 2     분량 : 7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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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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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4

 

 

 

 

 

  아픈 곳에 머무른 시선을 회피하듯 거둬내고, 아무것도 모른 채 내 앞에서 해맑은 미소를 드리우는 공대생을 바라보았다. 사실 백이현을 계속 바라보고 있을 수 없어서였다.

 

 

  "산더미 같은 과제가 드디어 끝났거든요. "

  "……………."

 

 

 ​ 하지만 나도 모르게 자꾸, 백이현이 있는 쪽을 힐끔 힐끔 바라보게 되었다.

 

 ​

  "오늘 연락하려고 했는데."

  "……………."

  "여기서 딱 만났네요."

  "……………."

 

 

  쉴 새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던 공대생은 반응이 없는데도 지칠 줄 몰랐다. 오랜만에 만나서 더 반갑다는 식이었다. 아까부터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미동도 하지 않던 이현에게 자꾸만 시선을 쏠렸다. 아랫 입술을 꾹 깨물며, 미간이 찌푸려지고 가슴 언저리 아래쪽이 말도 안 되게 아려온다.

 

 ​

  "어떻게 하필 그것도 여기서 만나냐~"

  "……………."

  "신기하죠. 그쵸?"

 

  우리 인연인가 봐요.

 

  ​조금은 속이 보이는 말이었다. 오히려 오버스럽게 웃으며, 너스레는 떨었다. 그렇게 말하곤 손뼉까지 치고 리액션 하는 소개팅 남 민혁 씨. 날 만난 게 그렇게도 반가운가 보다. 은근 선수 끼도 엿 보이지만 나쁘지 않은 처세술이라고 생각했다. 대인관계에서는 어느 정도 넉살도 있어야 하는 법이니까.

 

  그렇게 대화를 주고받으며, 아니 일방적인 대화에 고개를 끄덕이는데, 건물 내부로 들어가려는지. 출구에 서 있던, 우리 쪽으로 이현이가 한 발 한 발 가깝게 다가오고 있었다.

 

  의외로 빠른 보폭에 조바심이 났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고, 그저 이 상황을 오해 한 이현이의 눈빛이 거슬렸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나도 모르겠다. 하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오늘로써 두 번째 만남인 소개팅 남, 공대생 민혁 씨의 팔짱을 겁도 없이 낀 건.

 

 

  "ㅇ, 우리 어제 본 공연 말이에요. 너무 재밌었어요."

  "네?"

 

 

  앞 뒤 맥락 없이 무작정 하는 말 때문에 민혁 씨의 눈이 커지고 당황한 듯 반문했다. 다급해져선 눈을 찡긋 거리며 신호를 보내자 그제야, 뭔가 대충 감이 온다는 듯 아~ 하면서 다시금 표정이 밝아졌다.

 

  오늘 또 보러 갈래요?

 

  이번에 당황한 건 나였다. 너무 자연스럽게 대답하면서 팔짱을 낀 내 손을 자신의 허리에 두르고, 긴장해서 움츠러든 내 어깨에 손을 감쌌다. 정말 눈치가 빠른 건지, 아니면 선수인 건지. 여자를 다루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정말 연인인 줄 알 정도로 그의 태도는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그전에 우리 밥부터 먹으러 가요. 괜찮은 맛 집 알아요."

 

 

 

  어깨를 자신의 쪽으로 끌면서 가자고 했다. 그러나 대답할 생각은 하지 않고, 나의 시선은 온통 이현에게로 쏠리고 있었다.

 

 ​

 

  어느덧 민혁 씨의 말은 들리지 않았고, 멍하니 나를 바라보던 그는 차가운 눈초리를 돌리고 가던 발걸음을 재촉했다. 성큼 성큼 걸어 훅- 지나가자 그리 가깝지도 그리 멀지도 않은 거리에서 부터 바람이 끼쳐왔다. ​그의 향기가.

 

 

 

  "선배 선배! 이현 선배!"

  "​……??……."

 

 

 

  쌩하니 나를 지나쳐 갔던 그는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자판기 옆 쓰레기통에 무언가를 버리려다가. 교태가 섞인 여자 후배의 부름에 주춤하면서 돌아보았다.

 

 

  "이현 선배. 오늘 안 나오시는 줄 알았어요."

  "… 어, 좀 늦었어."

  "혹시 오늘 시간 되세요? 아님 내일이라두요."

  "무슨 일인데."

 

 

  아, 저희 진 교수님 무지 깐깐 한 거 아시죠. 아무리 해도 저희 힘으론 역부족이고. 능력자 이현 선배가 도와주셨으면 해서요. 내가? 나 능력 없어. 네? 제발요 부탁드려요. 대충 이런 대화가 오고 갔다.

 

  긁으면 긁힐 두꺼운 화장에, 무대분장을 한 건지 데일리 화장을 한 건지 구분이 되질 않았다. 게다가 속이 다 비친다. 속옷만 입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브래지어와 골이 다 보이는 브이라인 블라우스.

 

  저게 정녕 옷 인지 사각팬티인지 정체모를 치마라는 것을 입고 이현 앞에서 알짱대는 꼴이란. 당장이라도 저 기집애의 머리채를 잡고 쓰레기통에 쳐 박아도 시원치 않을 상황이었다.

 

  그래봤자, 나 혼자 부글부글이었지. 후배가 그런 옷차림을 하고 있다고해서 거절하며 돌아설 백이현이 아니었다. 여자들에게 툭툭 말은 던져도, 속은 친절하고 상냥하고 젠틀하며 매너 좋기로 소문이 파다해서 특히나 여자애들이 줄줄 항상 저렇게 따라다녔다.

 

 

  "너, 단거 좋아해?"

  "단 거요? 네! 없어서 못 먹죠!"

  "그럼 이거 너 먹어."

 ​ "네?"

 

 ​

  이현은 방금 버리려던 상자를 여자애에게 던지듯 안겨주었다. 안에 뭐가 들었는지 확인하더니 붉고 인조적인 입술이 벌어지면서 꼴 보기 싫은 웃음을 흘렸다.

 

 ​

 ​ "이게 뭔ㄷ… 우아! 이거 되게 되게 비싼 거 아니에요?"

 

 

  진짜 좋아해요! 엄청 먹고 싶었던 건데.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선배! 그럼 저희 과제 도와주시는거죠?

 

  딱 봐도 싼 티 나게 구는 여자애가 자신보다 먼저 앞서 걷는 이현의 팔짱을 날름 끼고 멀어져 갔다. 목구멍까지 분노가 차올랐다. 부들 부들 떨면서 바라보는 나 자신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한심했다. 지금 내 모습은 좋아하는 사람도 간수 못 하는 천하에 미련한 여자가 따로 없었으니까.

 

 

  '나한테 너 아무것도 아니라고.'

 

 

  후회하고 있었다. 뼈저리게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내가 왜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해서 너와 멀어졌을까…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데.

 

  상관없는 여자들이 들러붙는 것 만 봐도 꼭지가 돌 지경인데. 가슴이 타들어가고 벌써부터 숨이 막혀오는데 말이다. 옆에 붙어서 접근도 못 하게 해도 모자랄 판국에 하이에나 같은 고양이 앞에 생선을 던져 준 꼴이 되어버렸다.

 

  결국 내 기분이 바닥을 쳤다. 결론은 내 복을 내가 찬 꼴이다. 그깟 자존심 하나 때문에.

 

  아니지, 그 상황은 누구나 오해할 만했고 질투가 났었지. 그래. 질투.

 

  어쩌면 그 질투는 이현을 좋아하기 때문에 가진 특별한 감정이었다. 질투심이 짙어져 나를 뒤덮는 바람에 그나마 친구라는 이름으로 곁에 있었던 변명마저 더는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먼저 가볼게요. 미안했어요."

 

 

  정식으로 사과 할 여유가 없었다. 눈앞에서 완전히 백이현이 사라지자, 서둘러 민혁 씨의 품에서 떨어져 나와, 나도 모르게 자꾸만 쉴 새 없이 떨어지는 눈물을 숨기며 말하곤 앞서 걸었다.

 

 

  "아!"

 

 

  얼마 지나지 않아, 오늘 아침 백이현이 남긴 자국에서 통증이 밀려왔다. 아침에 내 손목을 낚아챈 이현의 모습처럼 민혁 씨 또한 내 팔을 꽉 잡고 있었다. 그리고 옅은 비명에 자신이 더 놀라 괜찮으냐고 묻는 이민혁.

 

 

  "아- 네… 괜찮아요. 저… 괜찮…."

 

 

  아니요. 괜찮지 않아요.

 

  말은 괜찮다면서 눈은 괜찮지 못 했다. 결국 괜찮지 않다는 걸 몸소 보여주고 있는 꼴이었다.

 

  미안해요…. 민혁 씨 이런 꼴 보여서.

 

  그 와중에 연거 푸어 사과를 했다. 민혁 씨를 보자마자 내 질투의 연막으로 사용한 걸 포함해서 그냥 다 미안하기도 했지만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창피하기도 했다. 고작 두 번 본 남자 앞에서 알몸으로 주저앉아있는 기분이었으니까.

 

 

  "그렇게, 미안하면. 오늘 하루는 나랑 같이 있어요."

 

 

 

 

 

 

 

 

 

 

 

 

 

 

 

  그에게 이끌려, 온 곳은 다름 아닌. 나름 유명한 막창집이었다. 처음엔 집에 가고 싶다니까. 굳이 못 가게 막으며 사람은 그럴 수 록 밥을 먹어야 한다고 나를 여기까지 끌고 왔다.

 

  기분도 거지 같은데 왠? 막창.

 

  비웃었지만 막상 지글 지글 막창이 익어가는 냄새가 풍기니 허기진 위를 심하게 자극했다. 심지어 위액이 분비돼서 속이 쓰려왔다.

 

 

  "괜히 기분 꿀꿀할 땐, 막창이 최고예요."

  "… 경험에서 나오는 말인가요?"

  "아. 들켰네."

 

 

  또다시 특유의 넉살이 튀어나왔다. 먹기 좋게 익어가는 막창을 골고루 타지 않게 뒤집으며 농담까지 해댔다. 그리곤 잘 익은 막창을 직접 입으로 후후 불더니 나보고 아- 하란다. 민망함에 반문했지만 사양 말고 아 하라는 민혁 씨. 그냥 제가 먹을게요. 젓가락으로 집으려는데, 그 틈은 타 곧바로 내 입으로 넣어버렸다.

 

 

  "양념에 찍어 먹으면 더 맛있어요."

 

 

  또 한번 눈이 휘어지게 웃으며 내 앞으로 뜨거운 막창들을 옮겨 주었다. 그리곤 하나를 집어 자신의 입으로 쏙 넣곤 오물오물 야무지게도 씹어 먹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거 껌이야~'

  '바보야! 그거 아직 덜 익었는데!'

  '으윽, 어쯘지 고소하다 했어.'

  '야. 얼른 뱉어. 백이현 진짜 허당끼 쩌네.'

 

 

  일전에 백이현과 막창 집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와 지금 다를 게 없었다. 지글 지글 맛있게 구워진 막창. 북적대는 사람들. 명쾌하게 부딪히는 잔 소리 사이로 달라진 것이 있다면, 내 앞에 앉아있는 사람. 그게 백이현 네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아줌마. 여기 소주 한 병이요."

 

 

  도저히 맨 정신으로는 버틸 수 없었다. 그날 밤의 잔상과 오늘 싼 티 나는 기집애가 들러붙은 게 자꾸 생각나고, 심지어 막창 집에서까지 백이현과의 기억이 졸졸 따라다니는 게 싫었다. 그냥 취해버리고 잊을래.

 

 

  "안 돼요!"

 

 

  가져다주시는 이모님 무안하게 소리를 빽 지르는 민혁 씨. 그리곤 소주를 탁자에 놓기도 전에 가로채 병에는 손도 못 대게 저지하기까지 한다.

 

 ​

 ​ 왜요! 왜 안 되는데.

 

 

  짜증 가득 묻은 목소리로 반문하고 도로 병을 낚아채왔다. 포기하지 않는 저지하는 손길을 뿌리치고 말이다.

 

 

  "나 말리지 마요."

 

 

  소개팅하고 의도치 않은 두 번째 만남인데, 막무가내 술자리라는 창피함 따윈 백이현 때문에 잊은지 오래였다.

 

  딸 딸 딸. 소리를 내며 채워지는 잔. 내 입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이번엔 잔을 뺏어서 자신이 홀짝 마셔버렸다. 어이가 없어서 흘겨보니, 입가를 소매로 닦고는 크- 쓰다. 콧대를 찡그려 굵은 주름이졌다.

 

  뭐야, 이 사람. 미간을 찌푸리고 쳐다보다 다시 소주병을 잡았다.

 

 

  "첫 잔은 마셨으니 두 번째 잔은 내 거예요."

 

 

  엄포를 놓으며, 민혁 씨에게 쐐기를 박았다. 그런데 민혁 씨는 금세 취기가 오르는지. 손부채질을 하며 얼굴을 도리도리했다.

 

  그 모습마저 백이현 같았다. 민혁 씨 또한 술에 약한 체질인가 보다. 한 잔이 뭐라고 벌써 벌게져. 벌게 지길. 젠장. 우라질. 백이현도 술 못 하는데. 짜증 나. 온 통 백이현이야. 다시 따르려고 잔을 내 앞에 두고 병을 갖다 대자.

 

 

  "2시에 또 수업 있잖아요."

 ​ "그게 지금 나랑 무슨 상ㄱ-!"

 

 

  잔 짜증을 부리며 반박하려다 솜방망이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멍해졌다. 왜냐하면, 2시에 수업 있는 걸 민혁 씨가 알리가 없어서였다. 말 한 적도 없고 말할 기회도 없었을 뿐 아니라 아는 것 자체가 의아했다.

 

  따르려다 만 병을 탁자에 세워두고 민혁 씨를 빤히 쳐다봤다. 어떻게 아느냐는 말을 굳이 하지 않아도 그 이유를 곧 알게 되었다.

 

  검지 손가락으로 이마를 긁적이며 곤란해 하던 민혁 씨가 입을 연 것이다.

 ​

 

  "그게… 아,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말할게요."

  "……………."

  "사실, 눈치챘을 수 있는데."

  "……………."

  "오늘 만난 거 우연 아니에요."

  "……!!……."​

 

 

  그러니까, 우연이 아닌 우연을 가장한 만남이라는 말이었다.

 

 

  "친구한테 부탁했어요. 영원씨랑 수업같이 듣고 싶어서…."

  "… 네? 정말요?"

 

 ​

  ​친구라하면 주선자 친구를 말하는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스토커는 아니니까.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요."

 

 

  풉- 하고 웃음이 터졌다. 술 한 잔이 술술 민혁 씨의 말문이 트이게 한 묘약이었다. 양 볼이 달아올라, 오늘 자신의 꿍꿍이를 모두 털어놓은 꼴이 되었으니,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뭐, 좀 귀엽기도 하고 솔직해서 화끈하니 속 시원해지는 것도 같고. 마음에 들었다. 나도 조금만 더 일찍 이렇게 솔직하게 굴었더라면 우리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진 않았을 텐데.

 

  ​그렇지 이현아?

 

  조금, 아니 어쩌면 많이 씁쓸해지는 마음, 시선을 내리깔고 빈 술잔을 바라보며 물었다. 강의실 에피소드가 떠올라서였다.​

 

 

  "그럼, 다 봤겠네요."

  "뭘요?"

  "창피당하는 거."

  "아… 왜, 창피라고 생각해요?"

  "다들 웃었잖아요. 그건 민혁 씨도 그랬을 테고."

  "아뇨."

 

 

  … 전 오히려 더 좋아지던데. 귀여웠어요. 설렐 정도로.

 

  개구진 얼굴을 지니고 있어서 첫인상은 그냥 그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더 이상도 이하도 아닌 딱 거기. 그런데 오늘 민혁 씨에 대한 생각이 달라질 것 같았다.

 

 

  "영원씨 수업 있으니까. 술은 나중에요."

 

 

 머쓱해지는지 뒷머릴 긁어댔다. 벌게진 얼굴을 문지르며 이어서 말하는 민혁 씨.

 

 

  "나중에 진짜 거하게 술 한잔해요. 우리."

  "……………."

  "이거 다음에 또 만나려는 수작이에요."

  "……………."

 ​ "그 수작에 넘어가줬으면 하는 건 내 진심이고."

 

 

  2년 이상을 알고 지내 온 백이현에게 들어야 할 고백을 단 두 번째 만남에서 받은 경우라니.

 

  너무도 솔직했다. 만난 지 두 번 만에 나에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았다. 당황스럽다기보다는, 그런 민혁 씨가 부러워졌다. 이렇게 말함으로써 상대가 최소한 자신의 마음이 이렇다는 걸 알아줄 테니.

 ​

  지금의 나처럼 속앓이 하진 않았을 게 아닌가.

 

 

 

 

 

 

 

 

 

 

 

 

  민혁 씨 말 대로 곱게 막창구이만 먹고, 2시 수업을 같이 들었다. 전공이 아닌데도 굳이 같이 듣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통에 그러라고 했다. 수업 듣는 내내 나만 보는 눈길에 부담스러워 죽을 뻔한 것만 빼고는 괜찮았다. 그리고 마치고 나오는 길에 문자가 도착한 소리가 울렸다.

 

 

 ​ [4시 정각. 동아리방으로 모이세요.]

 

 

  옆에서 누구냐며 넌지시 물으려다 봤는지, 입을 쏙 넣었다.

 

  나는 곧바로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동아리방은 여기서 걸어서 10분 정도 걸리고, 지금은 3시, 40분이니까. 천천히 가면 딱 맞겠지. 저 이제 가볼게요.

 

  음엔 정말 술 한잔 하기에요. 같이 못 마셔주면 술 친구 안 해요. 농담 반 진담 반을 섞어가며 얘기하자.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다.

 ​

  과연 마시지도 못 하는 술을 얼마나 마셔줄지.

 

 

  "근데, 빨리 안 가봐도 돼요? 느긋하게 늦장 부릴 시간 없을 텐데."

 

 

  바지 주머니에 양손을 찌르곤, 개구지게 쳐다봤다. 마치 동아리 모임 째고 자신과 계속 있어 달라고 하는 것처럼.

 

 

  "4시라 괜찮아요. 여유 있어요."

  "어쩌죠. 영원 씨 시계, 약 갈아야겠네요."

  "네?"

  "지금 4시 넘었-"

 

 

  민혁 씨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민혁 씨 손에 들려있는 폰 시계를 확인하고 다음에 보자고 통보하고 무작정 달렸다. 정기적인 동아리 모임에서는 지각을 하면 벌금을 내야하기 때문에 서둘러가야 했다.

 

  게다가 벌금이 상당히 모아면 회식을 하게 되는데 매번 늦는 쪽에 속하는 나는 회식이 있다 하면, 절대 빠지지 않는다. 벌금을 너무 많이 내서 회식 물주가 된 기분을 떨칠 수 없어서랄까.

 

  젖 먹던 힘까지 쏟아내며 달렸더니 다리에 쥐가 날 정도였다. 근근이 섰다 가다를 반복하며 겨우겨우 건물에 도착했다. 4층 마지막 계단을 숨을 헐떡이며 복도를 지나 다섯 번째, 동아리 방 문고리를 잡고 벌컥 열며 들어섰다.

 

  폴더 접듯이 몸을 반으로 접으며 고개를 들었을 때.

 

 

  "늦어서 죄송합니다!"

 

 

  하필이면,

 

 

  "……………."

 

 

  너랑 눈이 딱 마주칠 게 뭐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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