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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인 목숨 받아드립니다
작가 : venividivici
작품등록일 : 2019.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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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작성일 : 19-10-26     조회 : 282     추천 : 0     분량 : 5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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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춥고 피곤해서 길가 건물 입구에 쪼그려 앉았다.

 

 내가 차를 어디에 세워뒀던 건지 기억이 안 난다. 치매도 아니고, 이게 왜 기억이 안 나는 건지 모르겠다. 더 큰 문제는 지금 여기가 어디인지조차 잘 모르겠다는 거다.

 

 “어이.”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갤 돌려보니, 내게 팀장의 조카 찾기를 하라던 남자가 내 쪽으로 걸어오고 있다. 이번에는 양배추 하나를 들고 있다. 아니 들고 있다기 보단 가슴 높이로 던졌다 받았다를 반복하며 날 보고 웃고 있다.

 

 “너 이씨.”

 “왜?”

 “내가 너 때문에 지금 개고생을 하고 있는데...”

 “개고생?”

 “너 이 새끼. 너. 어? 그 팀장님 조카 찾는 거 하라고 해서 썅. 지금 맨땅에 헤딩을 얼마나 해대고 있는 지 알아?”

 “아.”

 “어디 있는지 알아오겠다더니 코빼기도 안 보이고 너 잘 만났다. 이 새끼.”

 

 난 자리에서 일어나 남자를 향해 다가갔다. 남자는 양배추를 한 쪽 팔에 끼더니 두 손을 펴보인다.

 

 “잠깐만. 진정해. 내가 그래서 지금 왔잖아.”

 “이 새끼가.”

 

 남자는 웃는 얼굴로 날 진정시키려는 듯 손을 아래위로 흔들었다.

 

 “일단 차분하게 이야기 하자. 응?”

 “이 썅.”

 

 남자는 내 앞으로 오더니 조금 전까지 내가 앉아있던 건물입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리곤 퍼질러 앉더니 어서 앉으라는 듯 날 올려봤다.

 

 “어떻게 됐어?”

 

 내가 자리에 앉자 기다렸다는 듯 이야기를 시작한다.

 

 “되긴 뭐가 돼. 날도 추운데 기름 값 아깝게 뺑이나 치고 있구만.”

 “왜? 무슨 문제있어?”

 

 남자는 이제 제법 친한 사이라도 된 것처럼 내 어깨에 손을 올린다.

 

 “문제는 내가 니 놈 말 쳐듣고 이 일 하겠다고 한 게 문제지.”

 “그 조카, 아직 못 찾았어?”

 “야 이씨.”

 

 나도 모르게 욱하는 게 올라왔다.

 

 “내가 그걸 어떻게 찾아, 씨발. 니 놈이 알아준다며 이 미친놈아.”

 “아.”

 

 남자는 웃으며 자신의 코를 슥슥 문질렀다.

 

 “웃어? 지금 웃음이 나와?”

 “난 그래도 당신 능력정도면 벌써 알아냈을 줄 알았는데.”

 “뭐?”

 “아, 난 알아냈거든.”

 “뭐?”

 “시간이 좀 걸렸지? 그 사이에 당신이 먼저 알아냈을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알아냈다고?”

 “그래.”

 “이 씨.”

 

 이 인간은 진짜 정체가 뭐지?

 

 “지금 피씨방에 가면 만날 수 있을 거야.”

 “뭐?”

 “걔네 학교 교문을 등지고 서서 오른쪽. 길 따라 쭉 가다가 첫 번째 사거리에서 우회전하고 걷다보면 지하에 피씨방 하나가 있어. 그 피씨방에서 모니터를 흘끔대며 라면을 먹고 있을 걸?”

 

 난 놈의 눈을 쳐다봤다. 놈은 얼마든지 보라는 듯 어깨를 한 번 으쓱해 보인다.

 

 거짓말 하는 것 같진 않다.

 

 “걔를 집까지 데리고 가는 건 당신 몫이긴 한데, 어쨌든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정도야.”

 “너 진짜 정체가 뭐냐?”

 “그건 당신이 날 좀 더 신뢰 할 수 있을 때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몇 번 이야기를 해보니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어. 일단 그 고등학생 애부터 해결하고, 차분히 이야기를 하자고. 그럼 당신도 내 이야길 더 진지하게 들어주겠지.”

 “너... 사기꾼이냐?”

 “뭐?”

 “나한테 무슨 개수작을 부려봐야 털릴 것도 없어. 돈이 필요하면 다른 사람 찾아봐.”

 “뭐라는 거야. 일단 이거 해결하고 나면, 당신도 날 믿을 수 있을 거 아냐. 그럼 그때 나 좀 도와달라는 것 뿐이야.”

 “썅.”

 

 머리가 복잡해진다.

 

 “아.”

 

 남자는 하늘을 올려봤다. 어째 먹구름이 몰려오는 게 심상치 않아 보인다.

 

 “가봐야겠다.”

 

 남자는 다시 한쪽 팔에 양배추를 끼고 일어났다.

 

 “걔 만나서 잘 이야기 해봐. 나도 걔를 잘은 모르지만, 아마 당신 성격대로 막 지르면 역효과 날 거야. 그러니까 좀 차분하게. 알겠지?”

 “뭐? 야. 씨발 어디가. 이 새끼가.”

 

 남자는 어느새 사람들의 틈에 섞여 뒷모습도 보이질 않는다.

 

 그나저나 비가 올 것 같은데. 내가 차를 어디에 세워뒀더라.

 

 ‘톡.’

 

 “앗 차거.”

 

 이마 위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톡.’

 

 “아.”

 

 이마에 차가운 물이 떨어져 눈을 떴다.

 

 창틀에 서리가 꼈던게 흐른 모양이다. 참, 난방도 안하는데 이정도면 바깥은 얼마나 더 춥다는 말인가.

 

 또 하얀 입김을 뱉으며 이불을 둘둘 감은채로 일어나 앉았다.

 

 그 요상한 꿈을 또 꾼 건가 보다.

 

 늘상 야채를 들고 나타나는 이상한 남자가 나타나는 꿈.

 

 갑자기 또 나타나서는 피씨방에 가보라니... 진짜 귀신이라도 씌인 건가.

 

 그 인간이 나오는 꿈만 꾸고 나면 늘 불안함이 스멀스멀 피어난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장 뭘 해야만 할 것 같고, 가만히 있다간 큰일이 날 것만 같은 불안함.

 

 간신히 이불에서 빠져나와 패딩을 걸치고 담배를 물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사우나라도 가서 제대로 좀 씻어야겠다.

 

 추운 날씨는 더운 날씨와는 조금 다르게 사람을 게으르게 만든다. 내가 게을러서가 아니라 이 놈의 날씨가...

 

 쓸데없는 생각을 할 바엔 그 시간에 씻고 움직이는 게 나을 것 같다.

 

 찬바람 부는 복도를 지나 간단히 세수와 양치질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나마 좀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모자를 눌러썼다.

 

 이 정도면 그래도 수상해 보이진 않을 것이다.

 

 시계의 시침은 10을 막 지나있다.

 

 어차피 움직일 거라면 빨리 움직이는 편이 낫다.

 

 사무실을 빠져나와 차에 올랐다. 그리고 어제 갔던 종혁이란 학생의 학교 쪽으로 차를 몰았다.

 

 이름도 성도 모르는, 심지어 고작 꿈에 몇 번 나타났을 뿐인 남자의 말을 듣고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에 내 자신이 참 한심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더 비참한 건 달리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어느새 자동차는 어제 왔던 고등학교의 교문 앞에 도착했다. 저기 보이는 사거리에서 우회전을 하라고 했던가. 정작 거기 피씨방이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데.

 

 천천히 차를 움직이며 행들을 꺾었다.

 

 그리고 곧 눈앞에 피씨방 간판이 나타났다.

 

 “이런 썅.”

 

 진짜 피씨방 간판이 나타나니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왔다. 지금 이게 뭔지 모르겠다. 갑자기 온 몸에 한기가 느껴졌다.

 

 이제 조금씩 무서워지려고 하는데.

 

 길가에 차를 세워두고 내렸다. 놈의 말에 의하면 피씨방은 지하에 있다고 했는데... 정말이다.

 놀란 탓인지 어이가 없어서인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다. 그리고 한편으론 이 계단을 별로 내려가고 싶지 않은 기분이다.

 

 “하아.”

 

 크게 심호흡을 하고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문 손잡이를 잡는데 오만가지 생각이 든다.

 

 만약, 이 피씨방 안에 그 녀석이 진짜 있다해도 문제가 아닌가. 그게 그냥 꿈이 아니란 거니까.

 

 음. 이런 쓸데없는 걱정과 생각은 좀 있다 해도 되겠지.

 

 한 번 더 심호흡을 하고 문을 열었다.

 

 “어서오세요.”

 

 문 옆의 카운터에 앉아있던 덩치 큰 남자가 인사를 한다.

 

 입구 앞에서 두리번 거리고 있는 내가 거슬렸는지 남자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처음 오셨으면, 저기 옆에 자동...”

 “아, 잠깐 사람 좀 찾으려 왔어요,”

 

 남자의 말을 끊고 대답하자, 남자는 뭔가 말을 더 하려다 말고 어깨를 으쓱하며 다시 카운터에 비치된 의자에 앉았다.

 

 피씨방 전체를 둘러본다. 그리 크진 않지만 오픈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다. 내부가 깨끗하니...

 

 사람이 자릴 잡고 앉아 있는 자리가 1/3정도 돼 보인다. 괜히 침을 한 번 삼키고 천천히 걸음을 옮겨본다. 비교적 어린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헤드셋을 쓰고 뭐라뭐라 떠들어대는 놈들을 지나쳐 구석자리에...

 

 있다.

 

 팀장님의 핸드폰에서 봤던 종혁이란 녀석이 컵라면을 후룩 거리며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하고 앉아있다.

 

 뭐지?

 

 괜히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이다.

 

 난 휴대전화를 꺼내 팀장님이 보내준 사진을 한 번 더 확인했다.

 

 같은 사람이 확실하다.

 

 녀석은 내가 자기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데도 전혀 반응이 없다. 뭘 보고 있길래 저렇게 집중하고 보나 싶어 녀석의 모니터를 힐끔 쳐다봤다.

 

 누군지 모를 사람이 햄버거를 잔뜩 쌓아두고 먹고 있는 모습이다.

 

 뭐지 이건. 화면으로 보며 같이 밥이라도 먹는 건가?

 

 어떻게 해야 하나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뭐, 눈앞에 닥친 것부터 해결하고 생각해봐야겠지. 여기까지 와서 이 녀석을 찾는데까지 성공했으니까, 집으로 돌려보내면 되는 거다. 그 뒤는 다음에.

 

 “저기.”

 

 난 검지 손가락으로 녀석의 어깨를 살짝 두드렸다. 하지만 녀석은 아무 반응이 없다.

 

 “저기.”

 

 한 번 더 두드리자 녀석이 천천히 내 쪽을 돌아본다.

 

 “안녕.”

 

 녀석은 날 뚫어져라 가만히 쳐다보고 있다가 헤드셋을 벗으며 물었다.

 

 “누구세요?”

 “나? 난...”

 

 역시 경찰신분을 벗고 나니 마땅히 소개할 말이 없다.

 

 “그냥, 뭐, 대한민국 국민이지.”

 

 녀석은 날 아래위로 재빠르게 훑어보더니 다시 헤드셋을 쓰려했다.

 

 “잠깐만. 너 윤재웅 팀장님 알지?”

 

 당장 녀석과 나의 연결고리는 팀장님뿐이다.

 

 녀석은 눈만 깜빡 거리며 날 빤히 쳐다봤다.

 

 “그 분이 보내서 온 거거든?”

 “왜요?”

 “어? 너...”

 

 마침 비어있는 녀석의 옆자리 의자를 끌고 와 앉은 뒤 말을 이었다.

 

 “지금 집 나온 거라며? 너희 부모님이 얼마나 걱정하고 있는지 알아?”

 “걱정 안 해요.”

 “뭐?”

 “아빠는 어차피 돈에 신경 쓰느라 내가 집에 있는지 없는지 관심도 없을 거고, 엄마는 어쨌든 아빠편이니까.”

 “야. 그래도 부모 마음이 그런 게 아니야. 어?”

 “됐어요.”

 “안 됐어, 시키야.”

 

 나도 모르게 소리를 친 탓에 잠시 피씨방은 정적에 잠겼다.

 

 “부모님한테 무슨 불만이 있는 것 같은데, 일단 집으로 들어가자. 어? 내가 데려다 줄 테니까, 집으로 가서 부모님한테 이야기 해. 사람은 말이야. 말을 안 하면 다른 사람이 무슨 생각하는지를 몰라.”

 “말 했어요. 충분히. 그래도 달라지는 게 없으니까. 어차피 기대도 안 했지만.”

 “야.”

 “근데, 아저씨가 누군데 이래요? 우리 외삼촌 경찰이에요.”

 “알아. 나도 경찰... 이었어.”

 “아.”

 

 녀석은 잠시 뭔가를 생각하다 날 똑바로 보며 물었다.

 

 “그럼, 외삼촌이 시켜서, 경찰에서 날 찾는 거예요?”

 “아, 아니야. 난 경찰 이었지, 지금은 경찰 아니야.”

 “그럼 내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

 “그건...”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하나.

 

 “그, 너네 학교 위주로 찾다 얻어 걸린 거야.”

 “음.”

 

 녀석은 입술을 삐죽 내밀곤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봤죠?”

 “어?”

 “아저씨가 얻어 걸려 찾아낼 만큼 쉬운 일인데, 날 찾아온 건 아저씨가 처음이거든요.”

 “어?”

 “그러니까, 날 안 찾고 있는 거죠.”

 

 아. 뭔가 말려드는 느낌이다.

 

 “야. 내가 경찰이었다고 했잖아. 이런 게 다 짬에서 나오는 거야.”

 “짬에서...”

 

 녀석은 말을 멈추고 피식 하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튼, 나 잘 있는 거 확인했죠? 그럼 그냥 내버려둬요.”

 “안 돼.”

 “사고를 치는 것도 아니고, 사고에 휘말린 것도 아니잖아요.”

 “언제든지 그럴 수 있는 상황이기도 하지.”

 “그럼, 납치라도 하실래요?”

 “뭐?”

 “난 안 갈 건데?”

 

 요즘 사춘기 애들은 다 이런가.

 

 “너, 혹시 담배 피우냐?”

 “아뇨.”

 “아, 그래.”

 “왜요?”

 “아니야.”

 

 같이 담배라도 피우면서 털어볼까 했더니. 젠장.

 

 간단히 해결 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으니 답답하다. 강제로 끌고 갈 수도 없고...

 

 “일단, 나랑.”

 “저기요.”

 

 말을 이으려는데 누군가 어깨를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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