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사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게 무슨 게임회사랑 관련이 있는 것 같거든요?”
“게임?”
“게임만드는 회사는 아닌 것 같은데, 게임하고 관련이 있는 것도 같고.”
순간 경찰서로 오는 동안 종혁이 했던 이야기가 스쳤다. 분명히 진호 녀석이 무슨 게임에 빠졌다고 했었다.
“무슨 게임인데?”
“그게 모르겠어요. 그냥 뭐 총 쏘고 그런 게임도 아니고, 소개 글을 읽어봐도 뭐하는 건지 모르겠더라고요.”
종혁이도 그렇게 말했었다. 설명하기보단 한 번 해 보는게 어떻겠냐고.
이쯤되면 그 게임과 진호가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건 확실한데.
“그렇다고 게임이나 하고 있을 수도 없고, 엄청 찝찝하긴 한데 막상 뭘하기도 애매한 그런 거 뭔지 아시죠?”
“그야.”
“그만한 시간도 없고.”
“그렇겠지.”
“선배가 한 번 알아봐요. 어차피 한가하잖아요.”
“뒤질래?”
“그럼 전 이만.”
박형사는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곤 계단을 뛰어내려갔다. 아무래도 그 남자와 게임 회사에 뭔가 있긴 한 것 같다. 근데 게임회사랑 그 많던 고삐리들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
내 차로 돌아가서 종혁이 놈이 아직 있으면 좀 더 물어보는게 좋을 것 같기도 하다. 한편으론 모른 척 이 일에서 멀어지고 싶기도 하고.
복잡한 머리로 계단을 내려와 건물을 빠져나왔다. 멀리 보이는 자동차. 창 안의 조주석이 비어보인다.
여전한 강추위를 뚫고 주차장 한켠의 자동차 운전석에 다다라 문을 열고 올랐다. 비어있는 조수석을 보니 괜히 뭔가 아쉬운 기분이다.
윤 팀장님이랑 밥이라도 먹으러 갔을지도 모른다. 아님 용돈 좀 받아서 그걸 쓰러 어디 가버렸는지도 모르지.
에라. 일단 오늘 하려던 일부터 제대로 하는 게 낫겠다 싶다.
시동을 걸기전 주머니에 휴대전화를 꺼내 연락처 화면을 열었다.
분명 어딘가 조진구의 연락처가 있을 거다. 몇 번이고 휴대전화 연락처를 정리했지만, 언젠가 도움이 될 법한 경찰 동료들의 연락처는 지운적이 없으니까.
한참을 뒤적여 조진구란 이름을 찾아냈다.
괜히 조심스러운 마음이 들어 담배 하나를 물고 불을 붙였다. 전 동료이자 동기인데 왜 긴장이 되는 건지 모르겠다.
통화버튼을 누르고 짧은 통화연결음이 이어진 후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 돌쇠야.”
녀석은 고맙게도 내 예전 별명을 부르며 반갑게 반응 해준다. 이렇게 까지 기대하진 않았는데.
“어. 잘 지냈냐?”
“그럼. 나야 뭐, 별거 있나. 공무원이 다 그렇지.”
“너 보려고 왔더니 너 없더라?”
“아, 그랬어? 한 일주일 됐나? 뭐, 하는 일도 똑같고 뭐 있나.”
녀석은 언제나 이렇게 여유있고 털털한 태도로 일관한다. 예전부터 쭉 그랬다. 어쩌면 그래서 이 녀석과 더 깊게 친해지지 못한 건지도 모른다.
이런 성격은 상당히 가깝게 관계를 시작하지만, 이상하게 더 가까워지긴 어렵거든.
내가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갑자기 날 왜 찾았대? 어디서 사고라도 났어?”
“어? 아, 뭐, 그런셈이긴 한데.”
“근데. 뭐가 잘못됐어? 합의 안 해준대?”
“아니, 그런건 아니고.”
“그럼?”
“뺑소닌데.”
“아이고. 똥 밟았구만.”
“그렇지. 너 지금 사무실에 있어?”
“지금?”
잠시 말을 멈춘 녀석은 옆사람과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속닥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지금 밥 먹으러 갈라했는데.”
“아, 그래? 그럼 내가 갈까? 지금 출발하면 얼추 시간 맞출 수 있을 것 같은데.”
“오려고?”
“어. 이야기도 좀 하고.”
“됐어. 너 어차피 뺑소니 그거 때문에 그러는 거 아녀?”
“어? 아, 그렇긴 한데.”
“그럼 그냥 문자로 찍어. 내가 알아보고 연락줄게. 너 와봤자 네가 하는 이야기 듣고 바로 대답할 수도 없는 거 아니겠냐?”
틀린 말은 아니다.
내가 녀석에게 부탁하고 난 뒤엔 이 녀석도 그 사건을 알아볼 시간이 필요하니까.
그 동안은 몰랐지만, 짧게나마 도움을 청해보고 나니, 이 녀석과는 좀 더 가깝게 지내도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럴까 그럼?”
“그래. 뭐 필요한 거 문자로 찍어놔. 그럼 알아보고 연락할테니까. 나중에 술이나 한 잔 사고.”
“고맙다.”
“뭘. 들어가.”
“어, 그래.”
전화를 끊고 바로 김의정과 관련된 뺑소니 사고에 대해 내가 아는 그대로를 문자 메시지로 진구에게 보냈다.
진구가 그 쪽 고나할 서로 발령나기 전에 있었던 일이니 다시 연락이 오기까진 시간이 좀 걸릴게 분명하다.
그럼 이제 뭘 해야하나.
잠시 멍하니 앞을 보고 있었더니,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려온다. 그러고 보면 오늘 아무것도 먹은 게 없다.
뭘 먹긴 해야 할 텐데, 박형사는 아까 일보러 나갔을 테고. 괜히 또 비어있는 조수석이 아쉬운 기분이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종혁이 놈과 같이 밥이나 먹고 보내는 건데.
배가 고프니 뭐라도 먹긴 먹어야 겠다. 하지만 밥을 먹더라도 이 근처에서 먹고 싶은 생각은 안 든다. 이 시간에 이 주변엔 아는 얼굴이 너무 많다. 혼자 밥을 먹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아는 얼굴들 말이다.
시동도 걸지 않고 운전석에 가만 앉아 있으니, 괜히 또 게임이니 뭐니 하는 잡생각이 들려 해서 얼른 시동을 걸고 경찰서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잠깐 편의점에 들러 빵하나와 우유하나를 사서 돌아오니 예전 생각이 난다. 이런 식으로 끼니를 때우는 게 낯선 일이 아니다. 다만, 조수석에 누군가 없다는 점이 조금 허전하긴 하지만.
빵을 뜯어 씹어 먹으며 다시 시동을 걸고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든 일은 현장에서 시작한다. 이 일을 하기 전에 필요한 도움 요청은 이미 해뒀으니 내가 해야 할 일은 김의정이 차에 치였다는 그 곳. 그 사고 현장에 가보는 것이다.
사실 교통사고, 그것도 뺑소니 사고에다 2주 이상 지난 지금, 뭐가 남아 있을까 싶지만, 혹시 모른다.
뭐, 내가 주로 해오던 강력계 일과는 전혀 다르기 하지만 그래도 모든 일은 현장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말은 다르지 않다.
어울리지 않게 자꾸 감상적으로 생각이 뻦치는 거 보면 이거 진짜 갱년기인가 싶기도 한게 기분이 나쁘다. 이럴 틈도 없이 바쁜 일상이 오길 기다려야 하나 싶기도 하고. 생각이 많아지면 항상 기분이 엿 같아 진다.
의정에게 들었던 사고현장으로 가는 동안 먹던 빵과 우유로 배를 채우고, 쓸데없는 생각 몇 가지를 더했다. 그리고 의정이 말했던 그 도로로 막 진입했다.
그가 새벽시간 도로가 조영했다던 이야기는 점심시간인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그 사고가 있었을 때처럼 차 한 대 다니지 않을 정도로 조용하진 않았지만, 진행에 전혀 어려움이 없을 정도로 도로는 한적했다. 한쪽으론 공장이 모여 있었고, 한 쪽으론 드문드문 상가건물들이 나타났다.
정확한 사고지점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2주 전 있었던 그 사고의 목격자를 찾는 다는 현수막이 친절히 알려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고 현장 근처에 차를 세우고 내렸다.
바람을 막아줄 만큼 커다란 건물이 없기 때문인지, 괜히 으스스한 느낌 때문인지, 더 추운 기분이다.
입고 있던 패딩의 지퍼를 끝까지 채우고 하얀 입김을 뱉으며 도로 가장자리에 섰다. 2주라는 시간동안 도로위의 흔적은 이미 모두 지워져 버리고 난 뒤라 특별한 것은 없었다.
적어도 양 쪽으로 100여 미터 이상 직선코스였고, 주변에 특별히 시야를 방해할만한 무엇도 보이지 않았다.
아직까지 아무 흔적도 없다는 말이 이해가 될 만큼 주변엔 CCTV카메라도 없었고, 딱히 그 시간에 목격자가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2-30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상가 건물 하나가 보이긴 했지만, 저 건물에 사는 누군가가 사고 장면을 봤다 한들 이 사건을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진않다.
막상 현장에 와보니 더 막막하다.
이렇게 되면 이 사건을 수사중인 교통과의 진구가 무슨 좋은 정보를 물어다 주길 바라는 수 밖에 없다.
찬 바람에 몸을 움찔 대며 자동차로 돌아가려는데 전화가 울렸다. 화면에 뜬 윤팀장님 번호를 확인하고 전화를 받았다.
“예, 팀장님.”
“어디야?”
“일 좀 보고 있습니다.”
“밥은 같이 잘 먹었고?”
“무슨 밥이요?”
“어? 너 종혁이랑 같이 밥 안 먹었어?”
이건 또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린가.
“걔랑 밥을 먹다니요? 팀장님이 같이 밥먹으러 가신 거 아니에요?”
“뭔 뚱딴지 같은 소릴하는거야.”
이거, 생각이 통했다고 기뻐하기라도 해야하나.
“아니, 차에 없던데요?”
“뭐? 왜?”
“왜라뇨. 팀장님이 데려가신 거 아니었어요?”
“밥 먹었냐 물었더니 아무말 않길래 너한테 맛있는 거 사달라 하라고 했지.”
“제가 무슨 돈이 있다고 저한테... 아니, 그게 중요한게아니고, 그럼 걘 어디갔대요?”
“그걸 지금 나한테 물어보면 어떡해.”
이래서 난 애들이 싫다.
“뭐, 한 두 살 먹은 애도 아니고 알아서 잘 갔겠죠.”
“너 니 애 아니라고 쉽게 말 할거야?”
“그렇게 걱정되시면 직접 밥이라도 먹이셨어야죠.”
“뭐?”
“그리고, 애를 그렇게 못 믿어요? 이야기 좀 해보니까 뭐, 자기가 알아서 잘 하겠던데 뭐가 걱정돼서 그렇게 끙끙 앓아요, 어울리지 않게.”
“야.”
“주변에서 믿어주셔야죠. 그래야 애가 잘 클 것 아닙니까.”
“너야말로 어울리지도 않는 소리 하지 마. 종혁이 한테 무슨 일 생기면 각오해.”
“안 생겨요. 걱정 마시라니까. 아니, 그것보다 그걸 왜 제가 각오해야 됩니까.”
“시끄러.”
팀장님은 신경질을 내며 전화를 끊었다.
통화중에는 성가시기만 했는데 막상 전화를 끊고나니 또 신경쓰인다. 그럼 얘는 혼자 어딜 간 걸까?
뭐, 알아서 잘 하겠지. 방금전에 믿으라고 소리친 사람은 나다. 그리고 무엇보다 걔가 어떻게 되건 말건 내가 알 게 뭐야. 당장 뺑소니 사건도 문제고, 그것보다도 추워 죽겠는데.
담배하나를 꺼내 물고 자동차로 돌아각 위해 돌아섰다.
‘냐앙.’
돌아서는 내 발목이라도 잡으려는 듯 너무 또렷이 들린 고양이 울음소리에 고갤 돌렸다. 길위에서 조그만 고양이 한 마리가 내 쪽을 보며 앉아있다.
그러고보니 의정이 사고날 적에 고양이를 보고 차에서 내렸다고 했었다.
고양이는 꼼짝도 않고 그 자리에서 날 빤히 보기만 한다.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은 걸까.
물고있던 담배를 손으로 옮기고 고양이에게 다가갔다. 어찌된 건지 이 녀석은 도망가지도 않고 가만히 앉아 날 보고 있다.
녀석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이 고양이가 그 고양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조그만게 엄청 귀엽다.
그래. 의정도 보기드문 미묘였단 말을 했었다.
그럼 모든 문제의 발단이 이 고양이 녀석인가. 그 사고의 유일한 목격자일지도 모르겠다.
근데 그렇다 한들 고양이한테 뭘 어쩐단 말인가.
가만히 녀석을 보다 손을 내밀었다.
녀석은 눈만깜빡일 뿐 내 손을 피할 생각도 없어 보인다.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보들보들한게 느낌 좋네.
어떻게든 이 사건을 해결하긴 해야 할텐데.
조문상. 그래. 녀석은 신내림 받은 애니까, 혹시 이 고양이의 몸에 들어가서 뭔갈 해줄 수 있지 않을까.... 같은 되도 않는 생각이나 떠오르는 걸 보니 나도 어지간히 답답하긴 한가보다.
“저기요.”
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깜짝 놀라 고양이를 빤히 쳐다봤다. 설마 고양이가 말한 건가?
“저기요?”
뭔가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다시 말해 고갤 돌렸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날 내려보고 있었다. 미친... 고양이가 말을 할 리가 없지.
잠시 내 어이없는 생각에 고갤 흔들고 남자를 보며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