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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인 목숨 받아드립니다
작가 : venividivici
작품등록일 : 2019.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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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작성일 : 19-11-02     조회 : 321     추천 : 0     분량 : 5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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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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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전석에서 내리자 문상이가 내 어깨를 짚으며 작게 말했다.

 

 “무슨 생각인지 뭘 물어도 대답도 안하고, 그냥 보내달라고만 하는데요.”

 “다른 건?”

 “없어요. 그냥 빨리 보내달라는 말 밖에 안 해요.”

 

 이쯤되면 내가 가서 무슨 이야길 한다해도 직접적으로 효과가 있을 것 같진않다. 그래도 이야기하면서 녀석의 표정을 잘 보면 뭔가 보일지도 모르니까.

 

 문상이의 검은 외제차는 문상이네 애들이 각 문앞을 막아서서 지키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진호혼자 뒷좌석에 앉아 고갤 숙이고 있는게 보였다.

 

 뒷자리 문을 열고 차에 탔다. 녀석은 내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고개를 숙인채 꼼짝도 않는다.

 

 “우리 두 번째 본다. 그치?”

 

 역시나 아무 대답이 없다.

 

 “전에도 말했지만, 우리가 나쁜 사람이 아니거든. 그리고 무작정 너 붙잡아두고 아무데도 못가게 하는 것도 아니야.”

 “보내주세요.”

 

 녀석은 꼼짝하지 않은 채로 말만 그렇게 했다.

 

 “보내줄 수 있지. 얼마든지. 근데 그러려면 너도 우리에게 무슨 이야길 해줘야 하지 않겠어?”

 “보내주세요.”

 “그러니까, 왜 보내달라는 건지 어디로 보내달라는 건지 정도는 알아야 어떻게 할 거 아니냐.”

 “그냥 보내주세요.”

 “우린 지금 널 보호하려는 거야. 그날도 너 엄청 위험한 데서 구해온게 우리야. 아니야?”

 “보내주세요.”

 “이런 씨.”

 

 순간 욱해서 한 대 칠 뻔 했다. 이 놈은 내가 무슨 말을 하건 보내달라는 말밖에 안한다.

 문상이가 굳이 내게 와서 이 녀석이 보내달라고만 한다던 말을 괜히 한게 아니네.

 

 “그러니까, 너도 뭘 좀 알려줘야 하지 않겠어?”

 “보내주세요.”

 “어딜?”

 

 녀석은 잠시 말이없다 작은 소리로 다시 말했다.

 

 “보내주세요.”

 “잘 들어.”

 

 크게 심호흡을 하고 최대한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난 나쁜 사람도 아니고, 널 도와 주려고 지금 이 추운날 여기서 이 개고생을 하고 있는 거야. 근데 태생적으로 그렇게 좋은 사람도 아니거든? 일부러 나를 화나게 만들려는게 아니면 무슨 고장난 라디오처럼 똑같은 말만 하지 말고, 그 게임회사 사장과 수많은 고삐리들과 너의 고나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는 게 맞지 않을까?”

 “보내주세요.”

 “야 이 개새꺄.”

 

 나도 모르게 욱해서는 욕과 함께 손이 올라갔다.

 

 이럴 땐 박형사가 있었다면 잘 구슬려서 입을 열게 만들었을 텐데, 아무래도 난 이쪽으론 어렵다.

 

 “아무튼. 좋은 게 좋은 거 잖아. 너 너네 부모님이 얼마나 걱정하고 마음아파 하시는 지 생각해봤어?”

 

 계속 고개만 숙이고 꼼짝않던 녀석이 처음으로 움찔했다. 아주 미세하게 들썩였을 뿐이지만, 내 눈은 못 속인다.

 

 아무래도 이거였나 보다.

 

 “부모님 생각해서라도, 문제를 해결해야 될 거 아냐. 그러려면 말을 해야 하고. 안 그래?”

 

 이번엔 그 지겨운 보내달란 말도 않는다.

 

 “자. 아무리 긴 이야기도 다 들어줄 거니까, 차분하게 말해봐. 도대체 무슨 일에 엮여 있는지. 걔네들은 다 누구인지, 왜, 어딜 자꾸 보내달라고 하는건지.”

 “그냥.”

 

 녀석은 들릴락 말락한 작은 소리로 말했다.

 

 “어?”

 “보내주세요.”

 

 또 험한 말이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고삐리 하나 못다뤄가지고 이게 무슨 꼴인가 싶기도 하다만, 정말 열올라서 졸도해버릴 거 같은 기분이다.

 

 답답한 마음에 담배하나를 꺼내 물고 차에서 내렸다. 더 이상 저 꼴을 보고 있으면서 보내달란 소릴 들으면 얌전히 있을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너무나도 차가워 몸이 아플 정도의 바람이 불었지만, 머리를 식히기엔 딱 좋은 기분이다.

 

 “뭐래요? 이야기 좀 해요?”

 

 문상이가 내 옆으로 다가와 붙어서서 똑같이 연기를 뱉으며 묻는다.

 

 “이야기를 하는데 내가 이러고 나와서 담배나 물고 있겠냐?”

 “계속 보내달라고만 하죠?”

 “사고칠 뻔 했다.”

 

 문상이 녀석은 다 알겠다는 듯 눈을 지긋이 감고 고갤 끄덕이며 내 어깰 두드렸다.

 

 “이제 어쩌실 거예요?”

 “어떻게든 알아내야지.”

 “뭐, 고문이라도 해요? 이 날씨면 밖에 세워놓고 찬물 한 바가지만 부어도 술술 불거 같지 않아요?”

 “시끄러. 일본 순사같은 새끼야.”

 “에? 아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합니까? 내가 설마 진짜 그럴거라고 생각해요? 아니, 농담도 정도란게 있지, 어떻게 그런 심한.”

 “알았어, 알았어. 정신 시끄러우니까 좀 조용히 해봐. 방법을 생각해 봐야 할 것 아냐.”

 

 녀석은 그제야 코를 씰룩거리며 손에 든 담배를 입으로 옮겼다.

 

 “애들 데리고 우리 옛날에 쓰던 창고에 데려가서 겁 좀 줄까요?”

 “쟤가 왜 아무말 안하는 것 같냐?”

 “그야. 하기 싫으니까?”

 “이 답답한 새끼야. 존나 무서우니까 아무말 안하는 거야.”

 “뭐가요?”

 “뭐가 무서운진 나도 모르지. 말을 안하는데.”

 “그럼 우리가 더 무섭게 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당장 담궈버릴 것 같은 정도로.”

 “그럼 될대로 되란 식으로 굴겠지. 너 한테 담궈지건, 쟤가 무서워하는 것들한테 당하건 별 차이 없을 테니까.”

 “아.”

 “그렇다고 우리가 확실하게 보호 해줄 수 있다는 보장도 없으니까. 하긴, 나라도 너나 내 행색보고 순순히 믿음이 갈 것 같진 않다.”

 “왜요? 우리 행색이 어때서...”

 

 녀석은 자신의 아래 위를 훑어보며 옷을 툭툭 털어보인다. 말도 안되는 하얀색 트레이닝 복에 털이 잔뜩 달린 무스탕을 입고서 할말은 아닌 것 같다고 해주고 싶었지만, 진심으로 자기가 보기 좋아보인다고 믿는 것 같아 더 말하진 않았다.

 

 “그럼 이대로 그냥 보내줘요?”

 “미쳤어?”

 “그럼 어떡해요?”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지.”

 

 난 피우고 있던 담배를 바닥을 향해 튕겨내고 내 차쪽으로 걸어갔다. 조수석에서 종혁인 얌전히 앉아 정면을 향해 한숨만 푹푹 뱉고 있었다. 창문을 똑똑 두드리자 날 돌아보더니 고갤 끄덕이고 내리는 종혁이.

 

 “어디로 왜 보내달라는 건진 몰라도 계속 보내달라는 말만 하고 있으니까, 가서 잘 좀 이야기 해봐.”

 

 녀석은 옷깃을 한 번 여밀뿐 내말엔 대답도 하지않고 문상이의 차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내가 늙은건지 어떤건지 요즘애들은 왜들 이렇게 다들 싸가지가 없나 몰라. 어른이 무슨 말을 하면 대답부터 해야지. 젠장.

 

 “쟤는 또 누구예요?”

 “쟤가 이 모든일을 계획한 장본인이시다.”

 “쟤가 그럼 학교 통 정도 돼요? 그렇게 잘 치게 생기진 않았는데.”

 

 굳이 모든 걸 설명하기도 귀찮아 그냥 내비뒀다. 차 앞에서 우뚝 서서 꼼짝도 않는 종혁이를 발견하고 문상이의 차 쪽으로 걸어갔다.

 

 뒷좌석 문을 열었지만 여전히 진호는 꼼짝도 않는다.

 

 “도저히 나한테 말 못하겠으면, 니 친구랑 이야기해봐.”

 

 차문에서 한 발 물러섰다. 뒷좌석에 오르려는 종혁이 팔을 붙들었다. 녀석은 차에 타려다 깜짝 놀란 듯 내쪽을 돌아봤다.

 

 “여기서도 아무말없이 저렇게 비협조적이면 더 이상 나도 어쩔 수 없어.”

 

 종혁이 놈은 또 내 말에 아무런 대꾸없이 문상이의 차에 오르더니 뒷좌석 문을 닫아버렸다.

 

 아, 난 아무래도 얘네가 싫다.

 

 “쟤가 정말 해결할 수 있을까나요?”

 

 문상이 놈은 어느새 내 옆에 들러붙어 자신의 차 뒷좌석을 가리켰다.

 

 “낸들 아냐?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지.”

 “음.”

 “저게 안 통하면 더 이상은 나도 몰라.”

 “아, 그럼 이제 시마이 하는 겁니까?”

 

 문상이가 활짝 웃으며 날 보고 있다.

 

 “좋냐?”

 “아니, 좋다기 보다는 어쨌든, 사장님도 나도 본업이란게 있으니까. 사장님은 단골이 없으니 잘 모르시겠지만, 우리 같은 경우는 하루만 닫아도 영업에 타격이 크다 이말이죠.”

 “어이구, 그러냐?”

 “이 바닥도 경쟁이 이만저만이 아니거든요. 듣고 싶은 얘기 해주는 사람이야 지천에 널렸으니, 하루 이틀 문닫아버리면 또 어디 용하다는 사람 찾아가버리기 바쁘고... 우리도 힘들어요. 사장님 같은 경우야 뭐, 한 번 왔다가면 다시 찾을 일도 없지만 우린 한번 고객이 곧 영원한 고객이 되기 때문에 중요하다고요.”

 “어, 그래.”

 “벌써 며칠이나 문닫고 영업을 못해서, 아마 한동안 고생 좀 할 겁니다. 사장님은 잘 모르시겠지만.”

 “야.”

 “예?”

 “뒤질래?”

 “예? 아니, 왜 또 갑자기 눈을 그렇게 무섭게 뜨고 사람을 봅니까?”

 “하아. 됐다.”

 

 더 말하기도 성가셔 그냥 돌아서 담배를 하나 꺼내물었다. 문상이 놈이 불켜진 지포라이터를 쑥 내밀기에 불을 붙이고 연기를 뱉었다.

 

 “사장님.”

 “왜?”

 “이런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아무래도 병원이나 어디 한 번 가보시는게 좋지 않겠어요?”

 “병원?”

 

 녀석은 자기 입에 담배하나를 물고 불을 붙인 뒤 말을 이었다.

 

 “요즘은 우울증 같은 거 말고 갱년기 같은 것도 병원 많이 간다더만요.”

 “뭐?”

 “사장님 예전에도 성격이 지랄, 아니 불같았긴 했지만, 요 며칠 보면 점점 더 심해지는 거 같아요.”

 

 어이가 없어 녀석의 얼굴을 가만히 보고 있었더니 이 놈이 신이 났는지 팔까지 걷어붙이고 설명을 하려든다.

 

 “그게, 갱년기가 되면 무기력이 오기도 하는데, 감정 기복도 디게 심해진다 합디다. 내가 또 고객들이 주로 나이가 좀 있는 사람들이다 보니 이야기하면서 알게 된 건데, 그거 가만히 놔둬도 무사히 지나가는 경우가 있기도 한데, 심해지면 아무래도 힘드니까, 병원을 가보는 게 좋다더라고요. 물론, 본인은 아무렇지 않겠지만 주변사람들이 많이 힘들어진다, 뭐 이런거죠. 그러니까, 사장님도.”

 “야.”

 “예?”

 “너, 너네 신령님이 아주 신통하다 했지?”

 “예? 아유, 말해 뭐합니까. 그냥 신통한 정도가 아니죠. 뭐든 확실한 복채와 정성만 있으면 정확하게 짚어내시는 분이십니다.”

 “근데. 그 신령님이 니 미래는 안 알려주디?”

 “예?”

 “뒤지게 쳐 맞을 거라고?”

 “누가요? 제가요?”

 “그래 인마.”

 

 난 녀석의 등짝을 세게 후려쳤다.

 

 “아. 아니, 왜 이러세요?”

 

 꽤나 세게 친다고 쳤는데 옷이 워낙 두꺼워서 그런지 별로 아프진 않은 것 같다. 괜히 내가 더 약 오르네.

 

 “너 자꾸 쓸데없이 입 놀리면 그땐 진짜로 맞는다.”

 

 녀석은 날 빤히 보더니 고개를 작게 흔들었다.

 

 “이거 봐, 이거. 아무래도 갱년.”

 “야.”

 “예? 예.”

 

 놈은 내 앞에서 한발 물러서며 어깨를 들썩인다. 아오.

 

 거의 다 타버린 담배를 또 한 번 바닥에 튕겨내고 문상이 차 안을 살폈다. 썬팅이 드럽게 잘 되어 있어 자세히 보이진 않지만 대략 진호는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고, 종혁이는 정면을 향해 고갤 들고 있는 것 같다.

 

 둘이 무슨 이야길 하고 있는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때까지 둘 중하나가 튀어나오지 않고 있는 걸 보면 이야기가 진행은 되고 있나보다.

 

 가만히 서 있기엔 너무 춥고 그러하고 차로 돌아가 앉아 기다리기엔 신경쓰인다.

 

 주변에 어디 잠깐 들어가 있을 만한 곳도 안 보이고 둘의 대화가 언제 끝날지는 더더욱 알수가 없다.

 

 문상이 놈 쫄을 쳐다봤다. 놈은 두터운 지방으로 몸을 감싼대다 두꺼운 무스탕까지 걸치고 있어 그런지 전혀 춥지 않다는 듯 어슬렁 거리며 내 눈치를 살피고 있다.

 

 앉았다 일어서 보기도 하고,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어보기도 하고, 온몸을 쓸어도 봤지만 춥다. 너무 춥다. 미칠 것 같다. 욕하고 싶다.

 

 “아저씨.”

 

 고갤 돌려보니 문상이 차 뒷좌석이 열려있고 종혁이가 고갤 빼꼼 내밀고 있다. 어떤식으로든 이야기가 다 끝난 모양이다.

 

 “왜?”

 “잠깐 와보실래요?”

 

 일단 차에 타야겠단 생각밖에 안 들었다. 어떻게든 이 찬 바람을 피하고 싶으니까.

 

 조수석 문을 열고 차에 오르자 곧 문상이 놈도 운전석에 올랐다.

 

 “아저씨 약속 지켜줄 수 있어요?”

 “어?”

 

 난 문상이를 쳐다봤다. 잠깐 눈이 마주쳤고, 문상이는 눈을 깜빡거리다 곧 종혁이를 보며 소리쳤다.

 

 “우리가 약속하나 못 지킬 사람들 같이 보여? 걱정마.”

 

 문상이놈이 크게 소리치자, 종혁이가 진호를 흘끔보곤 다시 말했다.

 

 “지금부터 진호가 이야기하면, 다 듣고 무조건 해결해주셔야 해요.”

 “야. 이거 안 보여? 뭐가 문제야?”

 

 이번엔 시키지도 않았는데 문상이가 자기 주먹을 치켜들며 소리쳤다.

 

 “알겠어요.”

 

 종혁인 고갤 끄덕이며 진호의 무릎을 툭 건드렸다. 그러자 하루종일 고갤 쳐박고 있던 진호가 천천히 고갤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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