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히 진호에게 전화를 해봤지만, 전화는 꺼져 있다.
그래. 전화를 꺼놓는다고 했었지.
다시 문상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헐떡거리는 문상이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헉.”
“야, 무슨 일이야?”
“아니, 헉헉, 내가 물을 소린데.”
“뭐?”
“그, 헉.”
수화기너머에선 잠시동안 부스럭 거리는 소리와 헐떡대는 숨소리만 이어지더니 병실문이 열리고 문상이가 얼굴을 내밀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래요?”
“어? 뭐야? 넌 여기 어떻게 알고 왔어?”
“저야. 헉. 박 형사님 연락받고.”
“박 형사? 근데 넌 뭘 이렇게 헐떡거려?”
“엘리베이터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계단.”
녀석은 말하다 숨넘어갈 듯이 정신을 못차리고 헉헉댄다.
“진짜 어떻게 된 겁니까?”
“당한거지 뭐긴 뭐야.”
“괜찮아요?”
“별 거 아냐. 어설프게 찔러서 상처가 깊지도 않고,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다 머릴 좀 부딪힌건지, 머리는 아프다만.”
“그 정도로 끝난 게 다행이네요. 그나저나 누굽니까?”
“몰라. 이제 찾아내서 잡아다 족쳐야지.”
“거 참.”
“아무튼, 너네 쪽엔 아무 일 없어?”
“우리 쪽? 왜요?”
“진호는 잘 있냐고, 짜샤.”
“걔한테 무슨 일 있을게 뭐 있습니까?”
이렇게나 아무 생각없어 보이는 걸 보면 아직은 무사한 가 보다.
“혹시 모르니까, 조심해.”
“뭘요?”
“체육관에서 봤던 남자 기억 나? 정장입고있던 남자.”
“음. 자세히는 아니지만 대충은...”
“나 이렇게 되기 전에 그 새끼가 날 찾아 왔었어. 그리곤 진호에게 신경끄라고 헛소릴 찍찍 해댔거든. 그리고 그 날 밤에 이렇게 된 거고.”
“아.”
문상이는 뭔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러니까, 신경 좀.”
쓰라고 하려다 몸을 일으켰다. 여전히 등쪽이 욱씬하지만, 못 움직일 정도는 아니다.
“왜 왜요? 뭐 필요한 거 있어요?”
“아냐. 가자.”
“예?”
“여기 누워 있음 뭐해. 그렇게 한가하지도 않아. 다른 쪽으로 빨리 해결해야 할 일도 있고.”
조금 전 꿈속에서 봤던 의정이 떠올랐다. 씽씽클린을 다시 찾아가던 어쩌건 간에 이대로 누워 있을 일은 아니다.
“의사가 퇴원하래요?”
“너네들 칼빵맞고 퇴원할 때는 의사말들었냐?”
“저야, 모르죠. 아우, 난 뭐 뾰족한 걸로 찔리는 그거 너무 싫어서.”
하긴, 그것 때문에 문신도 안한 애랑 할 이야기는 아니다.
“됐어. 내 몸은 내가 잘 알아. 어디 구르고, 뛰고, 난리칠 거 아니니까, 소독만 잘 받으면 될 일이야.”
“아니, 그래도.”
“좀 잡아주기나 해.”
문상이의 팔을 붙들고 몸을 일으켜 침대에서 내려왔다. 걸어다니는 것도 힘들긴 하다. 등쪽의 근육이 당기는 느낌. 거기다 욱씬욱씬 오는 통증.
“젠장.”
혼잣말을 하고 병원복을 벗었다. 내 옷은 서랍안에 잘 들어있는 걸 보니 누군가 갈아입혔을텐데, 박형사인가.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있는데 발소리가 들리더니 간호사 한 사람이 들어와 날 보며 인상을 찌푸린다.
“뭐하시는 거예요?”
“퇴원이요.”
“예? 누구 마음대로 퇴원을 해요.”
“급하게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누워 있을 시간이 없어요. 이거 몇 바늘 꿰멘거 가지고 사는데 지장도 없고. 안 그래요?”
간호사는 당장이라도 날 쏘아붙일 얼굴로 쳐다보다 돌아서 나갔다.
열내면서 무슨 소리를 해봤자 내가 전혀 들어먹지 않을 거란 걸 눈치로 안 거겠지.
옷을 다 갈아입고 문상이 어깨에 손을 올린 채로 귀에다 작게 말했다.
“그나저나 나 좀 도와주라.”
“예? 뭘요?”
“일단, 너 내 사무실까지 좀 데려다 줄 수 있지?”
“아, 그거야. 그정도야 해드리죠. 물론 방향이 반대 방향이긴 하지만, 우리 사이에 그 정도가지고 해주네 마네,”
“또 있어.”
녀석의 말을 끊었다. 녀석은 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 다음말을 기다린다.
“이거. 병원비 좀 어떻게 해줘 봐.”
“아.”
“그렇게 많이 나오진 않았을 거야. 하루치 입원비에 진료지 얼마 나오겠지.”
“참 내.”
문상이는 한심하단 눈으로 날 가만히 쳐다본다.
“왜? 싫어?”
“쯧.”
문상이는 혀를 한 번 차더니 코를 씰룩거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뭐, 그럽시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해달라는 거 다해드리죠. 이 정도로 열심히, 지극정성으로 모시는데, 그만한 대가가 당연히 돌아오겠죠.”
이 녀석이 내게 바라는 건 과거의 행적을 없애주는 것 뿐이다. 실제로 내가 해줄 수 있는 것도 그게 전부기도 하고.
“야. 내가 도움받고 입 싹 닦는 그런 사람 아닌 건 알잖아.”
“뭐, 두고 봅시다. 그런 사람인지 아닌지.”
“너 또 삐딱하게 나올래?”
“그럼, 내가 돈 까지 대신 내주고, 집가지 태워주고, 이때까지 해달라는 거 다 해줬는데, 이 정도로 잔소리하고 생색내는 것도 못합니까? 예?”
“그래. 마음대로 해라.”
문상이가 뭐라고 떠들건 안 들으면 그만이니까.
간호사가 데려온 의사를 만나고, 병동의 카운터에 가서 퇴원수속을 밟았다.
의사는 퇴원을 반대하는 대신에 이틀에 한 번 잊지말고 소독을 하라는 말로 날 보내줬다. 1층 원무과에서 문상이가 카드를 긁어준 덕분에 사무실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 여전히 등은 아프지만 말이다.
문상이는 주차장으로 차를 가지러 갔고, 난 병원 입구에서 가만히 녀석이 돌아오길 기다렸다.
어쩌면 지금 사무실로 돌아가는 게 안전하진 않을 거다.
날 습격했던 놈은 자신의 습격이 내 생명을 앗아갈 정도는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을테고, 만약 놈이 원하던게 나의 죽음이라면 다음 습격을 준비하고 있을테니까.
그 외에도 내 사무실 위치는 여기저기 다 노출되어 있고, 누가 내게 해꼬지하려 한다면 몸도 성하지 않은 내가 맞서 상대하기도 어려울 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 누워있고 싶지 않다. 사무실이 훨씬 위험하다고 하더라도, 돌아가서 움직이면서 일을 해야겠단 생각 뿐이다.
아무래도 내가 지랄맞게 성격이 급한 때문이겠지.
추운 바람을 맞고 있긴 싫었기에 커다란 출입문 앞에서 바깥을 살피고 있으니 문상이의 검은 색 고급 외제차가 입구쪽으로 오는 게 보인다.
조심스레 조수석 문을 열고 차에 올랐다.
“사무실로 가면 됩니까?”
“그래.”
“거기 정확한 주소가 어떻게 되요?”
나는 대답을 하는 대신 자동차 네비게이션에 내 사무실 주소를 직접 입력했다.
문상이가 운전을 시작했고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 진동에 따라 등의 통증도 심했다 옅어졌다를 반복한다.
“야, 좀 살살 가면 안되냐?”
“아무리 이 차가 승차감이 좋고, 내가 운전을 부드럽게 하는 프로지만, 그 상처를 안고 차에 타면 안 아플수는 없어요. 참으시죠.”
“새끼.”
말을 해도 그냥 예 하면 될걸 꼭 이딴 식으로 개겨야 직성이 풀리는 건가.
“아무튼, 너도 나중에 돌아가면 진호 잘 챙겨. 아무래도 나한테 이거 찌르고 끝날 것 같지는 않으니까.”
“걱정마시죠. 나 누군지 몰라요?”
“아니까 하는 소리야.”
“내가 조직에서 그 오랜시간을 버티면서 최전선에서 싸워오면서도, 당한적은 한 번도 없어요. 누구처럼, 어디가서 픽픽 당하고 그런 사이즈가 아니라니까.”
이 새끼가.
“적당히 하자. 응?”
녀석은 내 목소리에서 뭔가를 느꼈는지 날 보고 한번 피식 하더니 더 이상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진 않았다.
덕분에 조용히 사무실까지 올 수 있었다. 등의 상처 때문에 조심하려다보니 허벅지와 허리쪽에 힘이 들어가서 불편했던 것만 빼면 비교적 편안하게 도착한 셈이다.
사무실 건물 앞 도로가에 차가 멈춰섰다.
“어디다 세우면 되요?”
“어? 왜?”
“예? 혼자 올라 가시게?”
“그럼 뭐 안까지 데려다 주려고?”
“괜찮겠어요?”
“됐어. 계속 나따라 다니면서 도와줄 거 아니잖아. 어차피 혼자 있어야 되는데.”
“그럼 뭐.”
조수석 문을 열고 내렸다. 찬바람이 훅 불어오니 온몸이 움찔했고, 덕분에 또 등이 욱씬 거렸다.
“윽.”
“진짜 괜찮겠어요?”
“됐어. 걱정말고 들어가.”
문을 닫고 조심스레 한 발짝씩 움직이며 사무실 건물을 향했다. 입구에 서서 슬쩍 돌아보니 한 동안 도로가에 멈춰 있는 듯 했던 문상이의 차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가랜다고 진짜 가네. 정없는 새끼.”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툭 튀어나왔다.
다시 뒤돌아 계단을 올려보니 괜히 불안하다. 그날 당했던 기억이 아직 강하게 남아 있어 그런건지, 등이 아파 그런건지, 발걸음을 옮기기 무서운 기분.
이럴 줄 알았으면 문상이랑 같이 올라갈 걸 그랬나 싶다가도, 지기 싫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내가 이렇게 약한 인간은 아니다.
이 불쾌하고 불안한 감정은 당연한 것일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손발을 덜덜떨며 이걸 못 올라 가는 건 나 답지 않은 일이다.
계단 난간의 손잡이를 잡고 한칸씩 천천히 오르기 시작했다.
실제로 몸이 불편한 탓에 느리고 조심스럽긴 했지만 의식적으로 발걸음을 멈추지 않으려 노력했다. 한 번 멈춰버리면 다음 발을 뗄 수 없을 것 같았으니까.
이 낡은 건물의 복도는 실내라고 하기 민망할 정도로 바깥 날씨의 영향을 크게 받고 지금 이 순간엔 바깥이나 마찬가지로 영하의 온도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마에서 땀이 맺혀 얼굴을 타고 흐를 지경이다.
2층을 지나 3층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굴러 떨어져 의식을 잃었던 계단참이 보이니 나도 모르게 손이 떨린다.
이를 악물고 눈 앞의 계단만 보며 악착같이 발을 움직인다.
한 발씩 한 발씩 올라 계단참에 도착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고 사무실 문쪽을 올려봤다.
창가에서 들어오는 빛은 달빛인지 뭔지 괜히 스산한 기분이다.
역시나 발을 멈춰버린 탓인지 다시 오르기가 불안해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물고 불을 붙였다. 연기를 뱉으며 계속 사무실 문쪽을 바라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계단과 계단 사이 틈으로 위쪽을 살펴보지만 별다른 점은 없다.
마지막 한 모금의 담배를 빨아드린 후 다시 발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여전히 발이 무겁고, 등의 통증에 머리가 새하얘지는 기분이지만, 그렇다고 하루종일 계단앞에 서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강력계에서 근무하면서 자잘한 부상은 익숙하리만치 많았다.
제대로 칼을 맞은 적은 없지만, 이와 비슷한 부상은 낯설지 않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마의 땀은 바닥에 흐를정도로 흥건해졌을 때, 사무실 문 앞에 도착했다.
슬쩍 뒤를 돌아보고 계단 위쪽을 살폈지만, 인기척은 없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사무실 문을 열었다.
“이런 씨발.”
엉망진창으로 어질러진 사무실.
책상 위부터 바닥까지 엉망으로 어질러져 있고, 가운데의 테이블과 소파까지 뒤집어져 있다.
천천히 사무실 가운데로 걸어 가본다. 컴퓨터를 뒤져본 건지 모니터에 불이 켜져 있다.
“젠장.”
뭔가를 찾아내기 위해 사무실을 뒤졌다기 보다는 이 꼴을 보고 알아서 기라고 하고 싶은 듯 보여주기식 난장판.
겁을 주고 싶었을지 모르겠지만, 덕분에 열이 오르는 게 당장 잡아 족치고 싶은 기분이다.
‘따라라라라.’
내가 사무실로 들어오길 기다린 건지 기가막힌 타이밍에 휴대전화가 울어댄다.
조심스레 주머니에서 전화를 꺼냈다.
어? 문상이다.
“어, 왜?”
“사장님 큰일 났습니다.”
“뭐? 왜?”
“어떤 새끼들이 집으로 들어왔던 것 같은데, 이 씨파.”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