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이네 집이 털렸다는 건 거기 진호가 머물고 있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뜻인가. 아님, 내 사무실을 털어봤지만 아무것도 안 나오니 문상이네를 털어본 건가.
“진호는?”
“없어요.”
“뭐했냐?”
“씨파, 우리 애들도 지금 당해서 병원으로 가는 중이니까, 일단 이따 다시 이야기 하시죠.”
문상이는 급한 목소리로 말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지금 상태라면, 문상이쪽의 도움을 구하긴 어렵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한 빨리 진호를 찾아내야 한다.
일단 박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한참을 울리고 난 뒤에야 박 형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요? 혼자 병원에 박혀 있으니까 벌써 심심해요?”
“그게 아니고.”
“지금 바쁘니까, 이따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야. 그게 아니고, 내 사무실에 누가 들어왔어.”
“예?”
“엉망이야. 누가 몰래 들어와서 다 헤집고 갔어.”
“그게 무슨 소리래요? 누가 아무것도 없는 그 사무실에, 아니 그보다 그걸 어떻게 아세요?”
“퇴원해서 방금 사무실에 들어왔는데, 엉망이야. 누가 어떻게 들어왔는지 몰라도 개판으로 어질러 놓고 갔어.”
“빈집털이 같은 좀도둑...”
“야.”
“그렇죠. 그럴 가능성이 없진 않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알겠습니다. 좀 기다리세요.”
전화를 끊고 나니 조금 진정이 되고 차분해 진 기분이다. 덕분에 천천히 사무실안을 다시 둘러봤다.
이건 아무리봐도 일부러 어질러 놓았다고 밖엔 볼 수 없는 상태다. 굳이 내 사무실에 숨어 들어온 사람이 책상위의 종이 나부랭이들을 사무실 바닥 여기저기 뿌려 놓을 이유도 없고, 소파나 테이블을 뒤집어서 던져놓을 필요가 없으니까.
그럼 누군가가 내게 경고를 하고 있는 셈이다. 엄밀히 따지면 협박이 더 맞겠다.
그럼 언제?
문상이는 오늘 병원에서 봤을 때 까지만 해도 별 다른 이야기가 없었다. 그 말은 그전 까진 아무일도 없었다는 거고, 오늘 밤에 누군가가 거길 들어가서 진호를 데려갔다는 게 된다.
박형사가 도착할때까지 상태를 그대로 두기 위해 사무실을 나서서 다시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한다. 혹시나하는 마음에 복도, 계단등을 둘러봤지만, 평소와 다른 점은 아무것도 없다.
이 낡은 건물엔 그 흔한 CCTV카메라도 없다. 출입구 쪽에 모형만 하나 달려 있을 뿐이다.
어쩌면 주변에 주차되어 있던 차량의 블랙박스에 뭔가가 찍혀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도 박 형사가 도착한 뒤에 경찰이 나서서 확인해야 알 수 있는 것들이다.
건물의 출입구 앞에서서 담배 하나를 꺼내 물었다.
불을 붙이고 숨을 뱉으니, 연기인지 입김인지 알 수 없는 하얀 공기가 뿜어져 나온다. 눈앞을 스쳐 지나간 하얀 공기는 이내 사라져 버린다.
지금 눈 앞의 많은 일들을 이렇게 날려 버리고 싶은 마음이다.
여러 가지 일들에 손을 댔는데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오히려 날카롭게 되돌아와 이제 날 위협하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까.
“씨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건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는 명확하다. 이것들을 어떤식으로든 다 조져버려야지.
몇 개피의 담배를 피웠는지 모르겠다. 날씨가 추워서인지, 몸이 안좋아서 인지, 약간의 미열을 느끼며 찬 공기속에서 박 형사가 도착할 때까지 건물의 출입구 앞에 서 있었다.
물론 아무생각없이 담배만 피우고 있었던 건 아니다.
지금 이곳주변에 주차된 차량들, 그 중에 블랙박스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 차들을 눈을 훑으며 확인했고, 가까운 곳에 설치된 CCTV카메라가 있는지 살폈다.
그 외에도 혹시 이 건물을 들락거리는 사람을 봤을법한 주변상점이 어떤 곳이 있을지를 살펴봤고, 어떤 식으로건 증거가 될 수 있을 법한 것들을 찾았다.
현 시점에선 아무것도 도움이 될 것 같진 않지만 말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천천히 건물 뒤편을 향했다. 정확한 의도는 알 수 없지만, 내 차까지 건드렸을 지도 모르니까.
건물 옆으로 걸어들어가 차가 서 있는 주차장을 보곤 바로 알았다. 타이어 네 개의 바람이 전부 빠져있어, 꼭 힘빠진 늙은이 같은 꼴을 하고 있었다.
“거지 같은 새끼들, 진짜.”
눈 앞에 있었다면 머리채를 잡고 악소리도 못 낼 때 까지 지근지근 밟아 버리고 싶은 기분이다.
내 차에 설치된 블랙박스 영상이라도 확인하기 위해 메모리카드를 빼서 나왔지만, 이 정도의 일을 하면서 블랙박스에 그대로 찍혀가며 할 것 같진 않다.
꽁꽁 싸매고 정체를 숨겼거나, 카메라에 찍히지 않도록 사각을 노려 이따위 짓거릴 했겠지.
보험사에 전화를 하며 건물 앞쪽으로 오는데 박 형사의 차가 도로가에 멈춰서는 게 보였다. 전화에다 사정을 설명하며 박 형사의 차 쪽으로 다가갔다.
박 형사는 차에서 내려 날 발견하고 역시 내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보험사에서 바로 오겠다는 말을 듣고 전화를 끊었다.
고작 타이어 4개에 구멍을 낸 정도라면 이것도 역시 어떤 치명타를 노렸다기 보다는 당장 움직이기 불편하고, 성가시게 만드려는 정도의 테러다.
“괜찮으세요?”
박 형사가 내 앞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박 형사의 뒤로는 지난번 같이 밥을 먹었던 새 파트너의 모습도 보인다.
“난 괜찮은데... 일단 올라가서 직접 봐.”
박 형사가 앞장서 건물의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고, 새 파트너가 옆에서 날 부축하며 함께 계단을 올랐다.
“어이구.”
사무실 안을 둘러본 박 형사가 짧게 말했다. 그녀의 새파트너도 길게 한숨을 뱉더니 사무실 안을 이곳저곳 살펴본다.
“딱히 도둑은 아닌 것 같네요.”
박 형사는 입맛을 다시며 작게 말했다.
“그렇지. 도둑이 이런 사무실까지 굳이 오는 것도 이상하고.”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휴대전화가 울어댄다.
문상이다.
“어. 병원이냐?”
“사장님. 나 지금 그리로 갈라니까, 좀 봅시다.”
“어?”
“사무실로 지금 간다고요.”
“그래. 근데 왜?”
녀석은 마지막 내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전화를 끊어버렸다.
평소의 능글능글한 목소리가 아닌 걸 보면 이 녀석도 뭔가 생각하고 있는게 있긴 한 것 같다.
“누구예요?”
“어? 아, 조문상이.”
“선배 요즘 걔랑 부쩍 자주 보네요.”
박 형사는 한 쪽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왜?”
“아니, 딱히 선배를 탓하거나, 뭐라하고 싶진 않은데, 걔도 그렇게 질이 좋은 애는 아니잖아요. 굳이 그런 애랑 붙어 다니는 거 보면, 뭐 때문에 그러나 싶기도 하고.”
“야. 너, 넌 날 그런 눈으로 보면 안되지.”
박 형사는 잠시 날 빤히 보다 눈을 감더니 고갤 끄덕이곤 돌아서 버린다.
의정이 느꼈던 그 기분이 이런 거였을까. 당연히 날 믿어줄거라 여긴 사람이 말도 안되는 의심을 하는 것 같은, 찝찝함.
“자세히봐. 혹시 뭐라도 있을 수 있으니까.”
“예.”
박 형사는 새 파트너와 사무실 안을 꼼꼼히 살피고 있다.
두 사람이 나름의 조사를 하는 동안 난 소파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나 역시 이런일은 낯설지 않으니, 나도 그들과 함께 사무실 안을 살펴볼 수도 있겠지만, 굳이 나서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박 형사가 잠깐이나마 내 행적을 의심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두 사람의 일에 내가 끼어들어 월권을 행사할까 우려해서도 아니다.
그냥,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의욕이 전혀 생기지 않았다.
몸은 얌전히 소파에 앉아 있었지만 머릿속, 아니 정확히 마음은 미친 듯이 날 뛰고 있었다.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마음이 시키는 대로 날 뛰기엔 몸상태도 좋지 않다.
박 형사와 그 파트너는 꽤 오랫동안 내 사무실 곳곳을 확인했고, 몇 번의 촬영까지 했다. 아주 형식적인 듯한 질문도 몇 개를 얹었고,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사무실을 정리하지 않겠다는 말에 고갤끄덕였다. 그 파트너가 먼저 내 사무실을 떠난 뒤 박 형사는 내 쪽으로 담배하나를 내밀었다.
“선배. 아까 내가 한 말은 너무 신경쓰지 마요.”
“그래.”
“그리고 선배가 병원에 실려간 순간부터, 나도 이거 대충 넘길 생각은 없어요. 팀장님도 마찬가지고. 어떻게든 잡아낼 거니까, 그 사이에 무슨 일 생기지 않도록 몸조심 하는 거. 알죠?”
“그래.”
박 형사는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더니 내 맞은 편에 앉아 담배 하나를 폈다.
인사를 하고 일어선 박형사는 한번 더 조심하라는 말과 함께 돌아섰다.
“멀리 못 나간다.”
“몸이나 잘 챙겨요.”
박 형사가 떠난 뒤 사무실에 앉아 달빛이 새어 들어오는 창으로 밤하늘만 멍하니 쳐다봤다.
난 그런 사람이었다. 내가 생각한 것, 내가 믿는 것, 내가 옳다고 여기는 것들에 대해선 그 누구의 어떤 말도, 아니 어떤 짓거리에도 꺾인 적이 없다.
그건 이번에도 마찬가지 일 거다. 이런 짓거리를 해대는 놈들이 날 죽이지 않는 한,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아니, 더 심한 꼴을 보여줘야지.
‘쾅.’
문을 부술 듯이 박차고 문상이가 들어왔다.
“뭐야. 놀랬잖아.”
“그 새끼들 어디 있습니까?”
“뭐?”
“이 개새끼들 어디 있냐고.”
문상이는 예전에 내가 알던 그 문상이가 되어 내 앞에서 날 뛰고 있다.
“진정해.”
“지금 진정하게 생겼습니까? 예? 씨발 이 미친 새끼들이 내 집에 들어와서 내 식구들을 건드렸는데?”
“내가 그랬냐? 좀 진정하고 앉아서 다배나 한 대 펴 봐.”
“사장. 에이 씨발. 아니 형님도 알만한 사람이 그렇게 당하고 이렇게 여유롭게 앉아서 이러고 있습니까? 내가 알던 그 강력계 미친 개 이석철 형사가 맞아요?”
“아니야 새끼야. 그 이석철 형사 짤리고 나가 뒤졌어. 그러니까 일단 좀 닥치고 앉으라고. 정신 사나우니까.”
“히야. 변했네.”
“뭐?”
“이제 경찰이 아니니까, 몸사리겠다 이거 아닙니까? 늙은 사자도 죽을 때가 되면 얌전히 등돌리고 간다더니, 그 꼴이네.”
“너 진짜 한번만 더 주둥이 놀리면 뒤진다?”
“됐습니다. 내가 알아서 갑니다. 난 아직 내 식구 건든 새끼들 놔 둘 만큼 퇴물이 아니란 말입니다.”
문상이는 그 큰 덩치로 쿵쿵 사무실 전체를 울리며 밖으로 나가버렸다.
저 성질 드러운 인간은 생각이란 걸 할 줄 모른다. 그게 되는 인간이었으면 다짜고짜 나한테 저딴 소리나 하지도 못했을 거다.
“아, 귀찮은 새끼.”
어쨌거나 지금 나와 함께 싸워줄 수 있는 인간은 조문상이 뿐이다. 그러니, 저대로 미쳐 날 뛰다가 아무것도 못해보고 버리는 패가 되도록 내버려 둘 수도 없다.
“윽.”
소파에서 일어나려니 또 등이 아프다.
힘겹게 몸을 일으켜 사무실 밖으로 나가면서 문상이 놈에게 전화를 걸었다.
“왜요.”
수화기에 댄 귀가 아플정도로 놈은 소릴 질렀다.
“야. 기다려. 지금 내려갈 거니까.”
“됐습니다. 혼자서 갑니다.”
“아 기다리라고 새끼야. 니 말대로면 아무리 젊고 혈기왕성한 사자도 혼자서 적진에 뛰어드는 미친 짓은 안 해, 인마. 기다리고 있어.”
이번엔 내가 녀석의 대답을 듣기전에 전화를 끊었다.
어떻게 될진 모르겠지만, 뭐 움직여 보는 거다.
“그래. 씨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