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이가 죽고 나서는 아르벨의 주택에 들어갔고 가게를 도왔다. 이곳 사람들과는 4개월 남짓 지냈는데 벌써 졸업을 코앞에 뒀다. 고등학교도 다니며 뭔가 진짜 평범해진 것만 같아 기분이 좋았다. 그날 역시 일을 도우며 하루를 나는 게 평소와 다를 것 없었다. 손님이 없는 시간이라 카운터에 앉아 멍을 때리고 있었을까 요란히 울리는 휴대폰에 놀라 확인했다. ‘네 동생이 죽었는데도 너는 잘사는구나. 곧 네 목숨도 가지러 갈 테니 그때까진 행복하게 지내.’ 오늘인 것 같은 제 사진까지 첨부되어있는 메시지에 놀라 휴대폰을 바닥에 던졌다. 마침 테이블을 치우고 나오던 영한이 놀라 다가왔지만 벌벌 떨리던 손을 감추며 벌레가 팔에 붙어서 그랬다는 이상한 핑계를 대며 탈의실로 들어가 버리는 그녀였다. 그날부터였다. 어디서 지켜보고 있는 건지 매일 그런 문자와 사진이 날라왔다. 저녁마다 잠자리에 들지 못하는 그녀를 제일 이상하게 여기는 건 영한이었다. 통 잠에 못 드는 그녀 때문에 날마다 우유를 데어 와 재웠다.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예? 아, 아니에요."
"이제 혼자 아니야. 혼자 해결하지 않아도 돼."
오늘도 건네는 따듯하게 데운 우유를 마신 여주는 억지로 잠을 청했다. 불안한 마음에 그동안 한 번도 꾸지 않은 악몽까지 꾼 여주는 아직 어스름한 새벽에 눈을 떴다. 번쩍이는 휴대폰에 몇 개월 전 일이 떠올라 침을 꿀떡 삼키며 확인했다. 현재 날짜와 시간이 찍힌 아르벨 주택 사진이 날라왔다. 어서 이 집에서 나가지 않으면 가족들에게 해코지하겠다는 내용의 문자에 눈을 꼭 감고 다짐했다. 이번에는 자신이 가족들을 지키겠다고. 아침이 밝아왔다. 평소보다 더 괜찮은 척 하루를 맞이했다. 하루 만에 바뀐 여주에 영한은 당황한 듯 보였으나 아무렇지 않은 그녀가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그녀를 대했다.
"먼저 퇴근해봐도 될까요?"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먼저 퇴근해도 되냐는 여주의 물음에 성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니폼을 갈아입은 여주가 손을 흔들곤 가게를 빠져나갔고 서빙을 하고 온 영한은 잠깐 사이 카운터에서 사라진 그녀의 행방을 찾았다.
"여주 먼저 들어갔는데요?"
"왜?"
"이유는 모르는데."
"이유도 안 묻고 애를 보내?"
"아, 여주가 애도 아니고. 무슨 일 있어요?"
되묻는 성진을 두고 옷을 갈아입은 영한이 채하의 차를 타고 오라며 차 키를 들고 나가버렸다. 영문을 모르는 성진이는 설거지만 할 뿐이다. 홀 내에 부산스러움을 감지한 희욱이 사무실에서 나왔다. 평소처럼 카운터에 앉아있어야 될 여주가 안 보여 성진이에게 묻자 먼저 퇴근했다는 말 뿐이었다. 한편, 집에 도착한 여주는 방안 곳곳을 뒤지며 온통 어질러놨다. 눈에 보이는 대로 닥치는 대로 가방에 쑤셔 넣었고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올려놓은 휴대폰을 두고 가방을 들었다. 택시에 오른 뒤 여주는 당연하다는 듯이 익숙한 곳을 목적지로 말했고 곧 택시는 출발했다. 납골당에 도착해서도 다음 목적지를 정하진 못했다. 딱히 아는 곳도 생각나는 곳도 없었다. 찬주가 있는 일본으로 가지전까지만 버틸 곳이 필요했다. 실내에 들어서자 조금의 따듯함을 느낀 여주는 주이와 재훈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 등을 대고 스르륵-, 기대앉았다. 그냥 진짜 멍하니 앉아있기만 했다. 들고 있던 짐도 무거웠고 갈 곳도 없고 딱히 생각해둔 것도 없었기에 그냥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곧 집에 들러 자신의 부재를 깨달은 그가 이곳으로 달려올 거라는걸 아는 여주는 가방을 뒤져 팬과 포스트잇을 꺼내 들어 쪽지를 써 내려갔다. ‘일본으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제발, 다치지 말고 잘 지내세요.’ 그 포스트잇을 납골함에 붙여놓았다. 몇 번이나 떼어낼까 말까를 고민하던 여주는 깊은 한숨을 몰아쉬고 아까 사 온 과자를 한 줌 집어 올려둔 뒤 납골당을 빠져나왔다. 다시 잡아탄 택시는 가까운 버스터미널로 진입했고 무거운 짐가방을 바리바리 떠안은 그녀는 매표소 앞에 서서 두리번거렸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음, 여기서 가장 먼 곳이 어디죠?"
"속초행 괜찮으세요?"
솔직히 속초에 뭐가 있는지도 잘 모른다. 그냥 갑자기 가보고 싶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고 곧 표를 받아 아직 좀 남은 시간에 의자에 앉아 멍하니 앉아있었다. 하루에 한 번씩 보는 아르벨 식구들을 보지 못한다는 생각에 벌써 그리워지는 것 같은 느낌을 애써 무시하고 매표소 옆에 있는 시계를 보며 그저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렸다. 시간에 맞춰 버스에 오르고 몇 번 자다 일어나기를 반복하자 아예 낯선 곳에 버스가 정차했고 여주는 무거운 짐을 낑낑대며 아무 버스나 올라 아무 곳에나 내렸다. 일정한 걸음걸이에 일정하게 소리를 내며 드르륵-, 거리는 짐가방을 들고 걷다 문득 주위가 깜깜해짐을 깨달은 여주가 주머니를 뒤적이기 시작한다. 아무리 찾아봐도 나오지 않자 그제야 영한과 함께 지낸 방 책상에 있는 자신의 휴대폰을 떠올리곤 한숨을 푹 내쉬며 웅얼거린다.
"아, 아까 두고 왔지? 몇 시지?"
"11시!"
혼자만 있는 줄 알았던 공간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자 놀란 여주가 어억-!! 하는 희괴한 소리를 내지르며 넘어졌다. 그러자 목소리의 주인인 녀석이 여주에게 다가가 일으켜주며 옷에 묻은 흙은 털어주며 배시시-, 웃는데 여주는 어안이 벙벙한 채로 서 있다.
"우와-, 어디서 왔어요? 여기서 처음 보는데."
"아,"
"여긴 어떻게 왔어요? 아는 사람 있어요?"
"…네? 아니요."
아니라는 말에 잠시 당황한 듯 보이는 그 아이는 곳 손뼉을 치며 여주의 팔을 잡아당겼다. 힘없이 끌려가던 그녀는 그제야 자신의 짐이 생각나 헐레벌떡 되돌아가 짐가방을 챙겨 들었다.
"서울 살아요?"
"살았었죠, 근데 지금은 여기 왔잖아요."
"왜, 왔는데요?"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것 치고는 꽤 때가 묻지 않은 듯한 눈과 얼굴이었다. 나쁜 사람일지도 모르는 자신에게 선뜻 말을 건 것도 신기하지만 흔쾌히 자신의 집으로 가자며 손을 이끄는 모습이 마치 서울 사람들과는 다르다고 느꼈고 그 안에서 아르벨 식구들이 겹쳐 생각나기도 해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 이런 질문은 좀 그런가? 그럼, 몇 년 살았어요?"
"네?"
"거참, 말뜻을 이해 못 하시네. 몇 살이냐고 묻는 거예요."
이 아이의 말대로 말뜻을 이해를 못한 건 아니었다. 다만 처음 보는 자신을 살갑게 대하는 이 아이가 그저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23살이라며 그녀가 자신의 나이를 밝히자 웃고 있던 얼굴이 한층 더 밝아지며 뺏어 든 그녀의 짐들을 내려놓더니 와락 껴안았다.
"ㅇ, 어!"
"나보다 누나다. 누나!! 나는 심한준, 16살."
말도 없이 와락 껴안는 녀석에게 당황해 살짝 밀어내자 그제야 배시시-, 웃으며 동네 사정 이야기를 한다. 이 동네에는 거의 대부분이 도시로 나가서 아이라고는 자신밖에 없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동네 집, 집마다 인사를 하고 돌아다니는 한준이 신기하기도 했다. 다른 집들과는 다르게 언덕을 올라야 하는지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비장한 표정으로 성큼성큼 올라가는 한준을 따라 열심히 올랐다. 곧 철로 된 대문이 보였고 왕왕-, 짖는 강아지 소리가 났고 커다란 진돗개 한 마리가 뛰어나왔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해 뒷걸음치던 여주는 한준과 친해 보이는 강아지의 모습을 멀뚱히 바라보았다.
"아, 잠깐만. 할머니한테 이야기하고 올게. 평상에 앉아있어."
한준이 집안으로 들어가 버리자 뒤쫓던 진돗개는 여주에게 관심을 보였다. 그런 강아지가 싫지는 않았는지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살짝 웃는 그녀다. 할머니의 허락을 받은 한준은 방에서 나오다 평상에 앉아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보일 듯 말듯 웃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다.
"할머니가 이 방에서 지내래."
제일 끝에 있는 방문을 열고 짐가방을 넣으며 말하는 한준의 말에 강아지에게 웃어 보이던 여주는 곧 표정을 지우고 한준에게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오는 여주를 이끌어 방 안으로 들어가 바닥을 만져보더니 그 위에 이불을 깔고 들고 들어온 짐가방은 제일 구석에 두고는 웃는다.
"밥 먹었어?"
한준의 물음에 그제야 자신이 아무것도 먹지 않은걸 깨달았고 곧 뱃속에서는 꼬르륵-,하는 민망한 소리가 나왔다. 그 소리에 한준은 잠깐만 기다려보라며 나간 뒤 바구니를 한 아름 껴안고 다시 돌아왔다.
"뭐야?"
"아까 점심에 구운 감자랑 고구마인데, 아마 식어서 맛은 없을 거야."
"아,"
"여기도 과자는 있어! 근데 아까 강에 가서 혼자 다 먹고 와서 그렇지."
그저 배만 채우면 된다는 생각에 바구니 안에든 감자와 고구마를 반갑게 맞이했는데 혼자 이 동네에도 과자는 있다며 횡설수설하는 녀석을 이상하단 눈으로 한번 보고는 바구니 안에 얌전히 있는 고구마를 잘 까서 한입 베어 물었다. 여주의 반응이 궁금했던 건지 눈으로는 얼굴을 따라가며 고개가 움직일 때마다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안 쓴 지 좀 오래된 방이라서 차가워, 그래도 불 때면 곧 따듯해질 테니까 그때까지만이라도 이불 이렇게 뒤집어 쓰고 있어."
추운지 빨개진 손으로 고구마를 연신 까며 맛있게 먹고 있는 여주에게 한준이 말하곤 불을 때러 방을 나선다. 쌩하니 나가버린 한준덕에 오슬오슬-,한 냉골이었던 방이 더 춥게 느껴졌다. 고구마 없애기를 줄줄이 3개째하고 있었을 때였다. 점점 바닥은 따듯해지고 한준이 말대로 뒤집어쓰고 있던 이불이 답답해져 한쪽으로 치우곤 고구마 먹기에 집중을 했다.
"내일 뭐 할 거야?"
"어? 내일은 일 도와드려야지."
"옷은 있어?"
"짐가방이 저렇게 큰 데 없겠어? 하다못해 학교 체육복이라도 있겠지…"
멍하니 앉아있는 한준에게 보여줘? 하고 묻자 한준은 바구니를 들고 잘 자라며 급하게 방을 나가버린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한 여주는 멍하니 앉아 눈만 끔뻑 되다 문을 걸어 잠그고 옷을 갈아입고는 한준이 펴준 이불속으로 파고든다.
*
*
꼬끼오-,하고 닭 우는 소리보다 날 먼저 깨운 건 시원하다 못해 얼어버릴 것만 같은 차가운 바람이었다. 간밤에 한준이가 불을 때 줘서 따듯한 방에서 잠을 청할 수가 있었는데 순간 찬바람에 눈이 확 떠졌다. 눈을 뜨자 보이는 건 처음 뵙는 할머님이셨다. 아무래도 한준이의 할머님인 거 같아 벌떡 일어나 인사를 드렸다.
"공짜로 먹여주고 재워 주는 거 아니야. 지금은 좀 자두고 조금 있다가 한준이랑 같이 개밥 주고 같이 밭에 갈 거니까 그렇게 알아둬.“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방문을 닫고 먼저 나가버리는 할머님 덕에 몰려오던 잠도 다 달아나버렸다. 그렇게 눈만 꿈쩍거리며 서울에 있을 아르벨 가족들을 생각하자 또 그리움이 밀려왔다. 한 방울, 한 방울. 흐느끼고 있을 때 방문이 다시금 방문이 활짝 열렸고 이번에는 할머님이 아닌 한준이가 당황한 표정으로 눈을 끔뻑이고 있었다.
"울어?"
"…큼, 안 울어."
이미 잠길 대로 잠겨버려 목소리는 제대로 된 소리가 만무했다. 갈라져 듣기 싫은 목소리가 나오자 여주는 조용히 입술을 깨물었다. 어제 만난 낯선 이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준 게 어지간히 싫었나 보다. 그런 그녀를 알아차린 건지 한준은 뒤돌아나가며 말한다.
"할머니가 강아지 밥 주래. 얼른 일어나, 씻고 밭에도 가야 하는데…"
이미 다 갈라진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지 뒤를 돌아 보이지도 않을 한준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곤 따라나선다. 어제 여주가 앉아서 강아지를 쓰다듬어주던 평상 위에는 사료 포대가 얌전히 올려져있었고 바닥에있는 슬리퍼를 아무렇게나 신고 강아지 밥그릇으로 보이는 곳에 적당량을 덜어주었다. 그러자 숨도 쉬지 않고 열심히 먹고는 강아지.
"누나, 우리 밭에 갔다 와서 오락실 갈래?"
"오락실? 재미있어?"
"한 번도 안 가봤어? 얼마나 재미있는데!"
놀란 듯 눈을 똥그랗게 뜨고 말하는 한준의 말에 여주는 아주 조금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고 밥 먹으라는 할머니의 소리에 부엌을 향해 걸어간다. 부엌으로 들어가자 작은 밥상 위에 많은 반찬은 아니지만 꽤 먹음직스러운 반찬들이 모여있었다. 한준이 먼저 앉아 자신의 옆자리에 눈짓을 하자 여주는 어정쩡히 엉덩이를 붙였고 할머니는 쳐다도 안 보고 식사를 하시면서 어쩔 줄 몰라 허둥대는 여주에게 한마디 한다.
"밥 먹어라, 일찍 나가야 하니까."
"아, 잘 먹겠습니다!"
도시 밥상에서 쉽게 보지 못했던 더덕이나 도라지무침 따위가 올려져 있는 밥상에도 여주는 맛있는지 아주 즐거운 표정으로 밥을 먹기 시작했다. 입맛에 맞을는지 걱정하던 한준은 맛있게 수저를 뜨는 여주를 보며 어이없는 헛웃음이 나왔다. 할머니도 아침 식사를 다 마치신 건지 나갈 채비를 하고 여주도 부른 배를 이끌고 부엌을 빠져나와 편안한 트레이닝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마당으로 뛰어나온다. 아무래도 아침에 든든히 먹은 밥에 기분이 많이 좋아진 듯 보였다. 할머니를 따라 일을 하며 많은 동네 사람들이 살갑게 대해주었고 금방 친해질 수가 있었다. 역시 인심 좋은 곳임이 틀림없었다.
"할머니, 나 누나랑 시내 한 바퀴 돌고 올게!!"
"하, 다녀오겠습니다‥“
저녁이 돼서야 끝이 난 일로 지쳐서 방으로 기어가다시피 하는 여주를 억지로 끌어당겨 아침에 이야기했던 오락실을 가자며 혼자 신이 난 한준이다. 처음 해보는 고된 일에 자신이 눈을 뜬 건지 감은 건지 구분이 안 되고 좀비처럼 서 있는 여주는 잔뜩 신이 난 한준의 눈에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오락실 진짜 한 번도 안 가봤어?"
"응."
"그래? 나는 학교 끝나고 맨날 가는데, 재미있어!!"
재미있다며 펄쩍펄쩍-, 뛰며 말하는 한준의 말에 쉬고 싶다는 생각은 애써 접고 따라나선다. 이번 기회에 색다른 경험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신이 난 듯 먼저 앞서서 걷는 한준의 뒤 꽁무니를 열심히 따라가 버스에 올랐고 벨도 있는데 내리겠다며 소리치곤 기사 아저씨께 인사를 하는 한준을 또다시 따라 내렸다. 익숙한 듯 여기저기 골목골목을 배회하던 한준은 어느덧 발을 멈추고 따라오던 여주를 뒤돌아보며 씨익-, 웃어 보였다.
"안녕하세요."
"왔어? 오늘은 새 친구야?"
"네! 잔돈으로 바꿔주세요."
아무렇지 않은 듯 통 크게 만원을 건네며 잔돈으로 바꿔달라 말했고 주인아저씨는 지퍼백을 한준의 손에 들려주었고 처음 보는 여주의 얼굴을 힐끗 바라보다 한준의 귀에 대고 속닥거렸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지도 모른 채 여주는 두리번거리며 오락실 내부를 관찰할 뿐이었다.
"누나, 뭐 할래?"
"흠, 뭐가 재미있는데?"
그건 한준도 생각해보지 않은 부분인지 멋쩍게 웃으며 어느 오락기 앞으로 향한다. 그 앞에 자연스럽게 서서는 돈을 투입하고 자세를 잡는다. 포즈만 봐도 한두 번 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고 여주는 한준의 실력이 궁금한지 옆에 바짝 붙어서며 관심을 표했다. 곧 오락기에서는 알 수 없는 말들이 나왔고 한준은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총을 들고서 쏘고 있었다. 총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을 보니 어딘가 모르게 영한이가 생각이 나는 듯 싶었다. 자꾸만 생각나는 아르벨 생각에 입술을 짓누르며 고개를 숙이자 한준은 하던 오락을 마치고 아무 말 없이 여주의 옆에 있어 준다.
"누나."
"어?"
결국 괜찮아지지 않는 여주의 상태에 한준은 말없이 다시 동네로 가는 버스에 올랐고 집 방향이 아닌 샛길로 빠져나갔고 곧 큰 강가가 보였다. 아무 말 없이 먼저 앞장서서 걷던 한준은 곧 강가에 먼저 털썩-, 주저앉아 계속해서 서 있는 여주를 올려다봤고 여주도 마지못해 옆에 자리를 잡았다.
"누나는 서울에서 그냥 왔어?"
한준의 의미 모를 질문들에 여주는 쉽게 답을 찾지 못하고 그저 입만 달싹이며 답을 찾고 있었다. 답을 찾지 못하고 입만 벙긋대는 그녀를 한준은 빤히 바라보다 금방 웃으며 강물에 다가간다.
"난, 이 동네에서 여기가 제일 좋아. 누나한테 보여주고 싶었어."
해가 기울어지는 저녁노을이 강물이 비치자 꽤 그럴싸한 모습이었다. 그런 장면이 여주의 마음에도 드는지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외롭게 살다가 7년 만에 가족이라는 게 생겼어."
"근데 왜 여기에 왔어?"
"없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어, 애초에 나 같은 거에 가족이라는 건. 근데 막상 생기니까 다르더라."
노을이 비쳐 붉은색을 띠는 강물을 빤히 바라보며 무의미하게 뱉어지는 여주의 말에 한준은 괜스레 찡-, 해짐을 느꼈다. 하지만 왜 왔냐는 질문에는 교묘히 대답하지 않는 게 의문인지 골똘히 생각한다.
"왜 내려왔는지는 이야기 안 해줘?"
"…글쎄, 나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