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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치단결식구 [一致團結食口]
작가 : 폭력햄스터
작품등록일 : 2019.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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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치단결식구 [一致團結食口] #08
작성일 : 19-11-08     조회 : 334     추천 : 0     분량 : 5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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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이에요?"

 "어떻게 된 건데요? 지금 어디 다녀온 건데."

 

 바다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던 영한은 곧 성진의 물음에 뭐라고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안 잡히는지 머리를 거칠게 털어 넘기며 인상을 썼다. 여주의 뒤를 따른다고 정신없이 뛰었다. 마지막으로 여주가 아르벨 집으로 들어오기 전 살았던 집으로 향했지만 결국 얻어낸 대답은 지금 집에서 없는지 고요함 밖에 없었다.

 

 "여주집에 다녀왔는데, 아무 소리도 안 나더라."

 "그걸 믿냐? 일부로 안 만나려고.."

 "차라리 그런 거면 좀 낫게요?"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여주가 걱정이 되는지 안절부절못하는 채하와 생각 외로 차분한 분위기인 희욱이었다. 하지만 역시 걱정되는 건 마찬가지인지 휴대폰을 몇 번 만지다 카펫이 깔린 거실 바닥에 휴대폰을 내던지며 낮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일단은 자고 내일 다시 찾아가 보자. 하, 여주 이 녀석 핸드폰도 책상에 두고 가버려서 위치추적도 안 되고."

 "위치추적 못하면 윤학이 시켜서 사람 푸는 한이 있어도 꼭 찾아낼 거야. 사림파 새끼들 김여주 손끝 하나라도 건드려봐, 다 죽여버릴 거니까."

 

 희욱은 그 말을 끝으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고 여전히 걱정되는듯한 채하는 아무 말 없이 입술만 깨물다 영한을 한번 바라보곤 자신도 방으로 향했다. 큰형들의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이월은 한숨을 내쉬었고 잠깐 집에 들른 현우는 급하게 전화를 받고 다시 나가버렸다. 아르벨이 지내는 집은 여주의 부재로 예전과 같지만 예전과 같을 수 없는 분위기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다음날, 일찍 일어난 영한은 항상 가던 운동은 뒤로한 채 운동복 대신 정장을 차려입고 현관문을 향한다. 갑작스러운 인기척에 부엌에서 분주히 움직이던 성진은 얼굴을 거실로 돌리며 인기척의 행방을 찾았다.

 

 "어디 가요?"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냐?"

 "…아무도 밥 안 먹을 거 같아서. 오늘은 확실하게 챙겨주려고 일찍 일어났죠, 뭐. 잠도 안 와서 밤새워 뒤척였어요."

 

 뒤척거렸다는 성진의 말에 피곤해 푸석해진 자신의 얼굴에 마른세수를 한번하고 걱정스러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성진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주고는 집을 나선다. 차에 올라탄 영한은 당장 어디로 가야 여주를 만날 수가 있을지 답답한 듯 깊은 한숨을 내쉬며 운전대를 잡았다. 아르벨이 운영하는 가게, 집, 학교, 재훈이가 죽기 전 함께 살던 곳,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곳은 주이와 재훈이가 있는 곳. 고속도로 갓길에 차를 세워둔 영한은 속이 불편해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다. 평소 잘 피지도 않는 담배인데도 유난히 당겨 결국 입에 문 것이다. 그것도 곧 핸드폰이 울리자 다 타지도 않은 담배를 바닥에 비벼 꺼트렸다.

 

 "왜, 뭐 알아낸 거 있어?"

 "형님, 여주가 평소 자주 가던 곳 알아요?"

 "…내가 이미 다섯 군데나 돌았어. 마지막으로 가볼 때가 있는데."

 "그럼, 거기 다녀와서 연락 좀 줘요."

 

 경찰서인지 조용한 듯 소란스러운 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흘러나왔고 곧 현우를 찾는 목소리에 전화는 급하게 끊겼다. 영한은 끊긴 전화기를 양복 안주머니에 넣고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남매가 있는 곳으로 둘이 아닌 혼자 향한다. 항상 둘이었기에 어색한 건지 차에서 내리기 전 잠시 머뭇거리던 그는 곧 어제 여주의 뒷모습을 생각해내곤 남매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있었으면 하는 바람과는 달리 냉기만 흐르는 자리에 영한은 망연자실했다. 실망한 기력이 역력한 영한은 곧 납골함에 붙은 포스트잇을 확인했다. 단박에 여주가 남긴 메시지임을 알아차린 영한은 바빠 전화를 끊은듯한 현우에게 다시 통화를 걸었다. 역시 바쁜 거였는지 한참이나 전화를 해도 받지 않던 현우가 전화를 급하게 받았다.

 

 "형님, 찾았어요?"

 "아, 아니. 여기 주이 있는데 거든? 여주가 남겨놓은 쪽지를 찾았어. 아무래도 여기가 마지막으로 왔던 데가 아닌가 싶은데."

 "알았어요, 형님. 일단 서울로 올라와서 봐요."

 

 역시 바쁜 건지 이름이 열댓 번이 울리고 나서야 끊으려는 현우에게 그러자면서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납골함 옆에 놓인 남매가 밝게 웃고 있는 사진을 보곤 입술을 깨물었고 손에 잡힌 여주의 쪽지를 한번 다잡고는 양복 안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는 급하게 차로 향했다. 근처에 있는 터미널로 가면 혹여나 뭔가를 알 수 있지 않을까 해서다. 딱히,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냥, 이렇게라도 바쁘게 돌아다닌다면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더 빨리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어리석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차 문을 열기 전에 여주가 항상 했던 것처럼 건물을 아쉬운 표정으로 한번 바라보았다. 마치 곁에 없는 여주를 대신하듯이 말이다.

 

 

 *

 *

 

 

 보름이나 지나 적응이 됐을 법한 일은 아직인지 몸이 고된 건 어쩔 수 없나 본지 베개에 머리를 묻자마자 잠이 들었다. 누가 밟아도 모를 것같이 잠이 들어있던 여주는 누군가의 손길에 의해 쉽게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건 할머니였다.

 

 "할머니?"

 "..한준이."

 "예?"

 

 잠결이지만 갑자기 시작된 한준이의 이야기는 허투루 들을 수 없었다. 피곤함에 떠지지도 않던 눈꺼풀은 할머니의 한준이 이야기의 시작과 동시에 괜찮아졌다. 또, 자신도 잠깐이었지만 이곳 사람들과 이미 정이 많이 든 상태였고 알고 싶고 궁금한 점도 많았기 때문이다.

 

 "한준이는 그 흔한 가족도 없는 녀석이다. 누가 무책임하게 마을회관 앞에 한준이를 두고 갔어. 심한준. 녀석 이름이라고 쟤 부모가 새겨놨는지 포대기에는 그렇게 자수가 남아있었어. 있는 거라고는 개, 닭, 소 이딴거밖에 없는 동네에 한준이는 태어나서부터 줄곧 지냈지. 또래 친구들을 만나려면 버스를 타고 나가야 겨우 만날 수 있었어. 알다시피 이 동네에 있는 노인네들 가족이라고는 식구라고는 우리 서로밖에 없는 것들이야. 죽으면 서로 슬퍼해 주고 서로 울어주고 마지막엔 결국 한준이만 남게 될 거야. 그 마지막이 되기 전에 한준이 서울로 데리고 올라가."

 

 만난 지 보름밖에 되지 않은 사람에게 15년을 키운 손자 같은 녀석을 맡긴다는 게 이해가 안 되는지 여주는 네? 하며 되물었다.

 

 "…약속해, 한준이 데리고 서울 올라가. 우리 마지막 모습 보여주고 싶지 않아. 분명 혼자라는 생각을 하게 될 거야. 우리야 잠깐이지만 녀석은 남은 생이 길잖아. 적어도 60년을 살 게 될 녀석한테 그런 기억을 남겨주고 싶지 않아."

 "할머니, 그래도 그건 아니에요. 지금 보호자는 할머니예요. 한준이한테는 진짜 가족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은 할머니뿐인데 억지로 갈라놓는 건 아니, 한준이도 저 따라가려고 하지 않을 거예요."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여주가 하는 말을 들으시던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다 방을 나선다. 할머니가 나가신 뒤에도 여주는 한참 동안이나 다시 잠들지 못했다. 저의 오빠도 이런 마음으로 저와 주이를 보낸 걸까 생각이 드는 밤이었다.

 

 

 *

 *

 

 

 요즘 들어 같은 꿈을 반복해 꾼다, 실제 장면일 리 없지만 검은 차 한 대에서 여러 사람이 내려 회관 앞에 포대기를 올려두고 가는 장면이 말이다. 오늘 새벽에도 마찬가지로 그 꿈을 꿨고 뒤척이며 일어났다. 유난히 더 뒤척이다 빨리 일어난 개운하지 않은 느낌에도 씻고 옷을 갈아입고 아침을 먹으며 평소와 다르지 않게 행동을 했다. 그 흔한 심부름도 없어 무료하고 따분한 시간을 또 둘이 강가에서 보내게 됐다. 노을져 붉은 하늘이 강가에 비춰 사진으로 찍고 싶을 만큼 이쁜 모습을 눈에 담았다. 평소라면 해가 기울 때 밥을 먹으라며 찾으러 오시는 할머니는 이미 해가 져 싸한 찬 바람만 부는 지금에도 좀처럼 찾으러 오시지 않았다. 그냥 다른 건 그뿐이었기에 별생각 없이 집으로 향했다. 한걸음, 한걸음 닿을 때마다 안 좋게 바뀌는 여주의 얼굴을 본 건지 한준도 주위를 둘러보며 이상하다며 나지막이 이야기한다.

 

 "…컥,"

 

 그때였다. 작은 소리지만 이질감이 느껴질 만한 낯선 소리에 여주는 조심히 두리번거리다 대충 눈에 띄는 비닐하우스로 발걸음을 돌렸다.

 

 "심한준, 누나가 왜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 이야기해 줄 테니까. 대신 누나가 부를 때까지 여기서 나와서는 안되."

 "왜?"

 "술래잡기, 그니까 나오지 말고 숨어있어. 응?"

 "알았어, 빨리 와야 해?"

 

 아직 어린 한준이는 무슨 상황인지 정확히는 몰라도 자신이 꼭꼭-, 숨어있어야만 한다는 걸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그래서 이 말도 안 되는 술래잡기에 응하겠다고 고분이 대답한 이유도 다 그 이유다. 여주는 한준을 숨기고 아까 낯선 소리가 난 그 장소로 달렸다. 이미 보름 동안 수십번은 들락거렸던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 익숙한 누군가가 쓰러져있었다.

 

 "할머니!!"

 

 할머니의 상태를 확인한 그녀는 집으로 무조건 뛰었다. 달리면서 어렴풋이 본 검은 차 2대. 막 진입하기 시작한 차와 정차되어있는 차가 있었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누구든 간에 확실한 건 아르벨일리가 없다는 것이다.

 

 "생각보다 늦었네? 내가 일 처리 다 끝날 때까지 안 올지는 몰랐네, 이럴 줄 알았으면 쉬엄쉬엄할걸."

 "…."

 "설마 나 기억 못 해?"

 

 미간을 찌푸리는 모습에 화가 난 듯 보였지만 곧 능청스럽게 웃으며 같지도 않은 말을 뱉으며 신경을 건드린다.

 

 "김희욱이 가르치던? 아양 떠는 꼴 좀 봐,"

 "어떻게 알고 왔어?"

 "…글쎄,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그리고 내가 너 같은 년 하나 못 찾아서 쩔쩔맬 줄 알았나 보지?"

 

 당장이라도 육두문자가 입에서 튀어나올 것 같았지만, 지금은 마을에 피해를 덜 입히는 게 목적이다. 어떻게 해서든 여기 말고 다른 먼 곳으로 가야만 했다.

 

 "찾아오는 건 괜찮아. 근데 왜,"

 "아직도 모르겠어? 자꾸 방해하잖아."

 "닥쳐, 그리고 나 아르벨 소속인 거 알고는 이래?"

 "그래서 더 포기 못 해."

 

 순간일 뿐이지만 번뜩 변해버리는 그의 얼굴은 공포였다. 아르벨이긴 하지만 여주는 아직까지도 자신과 친한 누군가가 죽음을 맞는 건 감당할 자신이 없어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달칵-, 하는 익숙한 장전 소리에 여주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말을 했다.

 

 "차라리 죽여."

 "진짜 죽여도 돼?"

 

 얄밉게 되묻는 그에게 체념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또다시 바뀌는 표정.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난 애초에 널 죽이러 온 사람이야. 왜, 불쌍해 보여서 내가 살려줄 거 같아?"

 "…너야말로 착각하지 마. 누가 살려 달랬어? 죽여달라잖아.“

 

 소리침과 동시에 총소리가 들렸고 깨갱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뒤를 돌자 총알은 강아지를 향했던 것인지 바닥에 주저앉아 하얀 털의 색과는 대조되는 붉은 피를 흘리고 있었다.

 

 "방심하지 마, 다음은 너야."

 "누나!!"

 

 상당한 힘에 밀려 넘어진 여주는 고개를 들어 자신을 밀쳐낸 한준에게 얼른 나가라며 소리를 쳤다. 한시가 급한 여주를 아는지 모르는지 불안한 기색을 띄지만 그래도 도망가지 않을 생각인지 좀처럼 움직임이 없는 모습이 보였다.

 

 "안녕, 남경후?"

 "아빠!"

 "딸, 오랜만이지?"

 "잡담 떨 시간 없을 텐데?"

 

 또 한 번의 총성이 들렸고 보고 싶었던 그리웠던 영한의 뛰어오는 발소리를 마지막으로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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