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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치단결식구 [一致團結食口]
작가 : 폭력햄스터
작품등록일 : 2019.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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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치단결식구 [一致團結食口] #14
작성일 : 19-11-08     조회 : 299     추천 : 0     분량 : 9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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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주가 뭐라고 대꾸하기도 전에 바닥에 던져놓듯 놓고 남자들이 나간 후 바닥에 주저앉은 여주는 패기 넘치던 눈은 어디 갔는지 잔뜩 겁에 질린 눈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온통 분홍색, 그걸 보고 더 겁을 집어먹은 여주가 어쩔 줄을 몰라 한가운데에서 그저 떨고 있었다. 겁이 든 여주가 결국에는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그러다 구석으로 기어가 무릎을 접어 끌어안고 몸을 최대한 웅크린 자세로 바들바들 떨었다. 너무 싫었다. 영한이 사준 티셔츠의 색깔이라서 분홍색을 좋아하게 됐는데 지금은 그저 무섭게만 보였다.

 

 "어라, 울고 있네? 이거 곤란하네. 울긴 왜 울어, 여주야."

 

 남경후가 방에 들어오며 구석에 앉아있는 여주를 보곤 미소지었다. 남경후를 보고는 더 겁에 질린 여주는 발버둥을 쳤다. 결국은 남경후가 여주의 바로 앞에 자리를 잡았다.

 

 "울지마, 예쁜아. 앞으로 내가 많이, 많이 이뻐해 줄 텐데 처음에 이렇게 울면 어떡하니."

 "꺼져."

 "욕은 하지 말고. 웃어야지, 내가 이렇게 이쁜이를 위해서 방까지 직접 꾸며놨는데."

 "손 치워."

 "한번 일어나서 봐. 응?"

 "꺼져!"

 

 비명을 지르다시피 하는 여주를 무시한 채 어깨를 잡아 일으켜 방 한가운데로 나왔다. 여주의 양어깨를 두 손으로 잡고 억지로 둘러보게 했다. 눈물로 가득 찬 여주의 눈에 그런 것들이 보일 리가 없었다.

 

 "어때? 맘에 들지?"

 "돌려보내 줘."

 "앞으로 네가 지낼 곳이야. 뭐, 가끔은 내 방에 와서 지낼 일도 생기겠지만."

 "집에 보내줘."

 "집? 네 집이 여긴데 무슨 얘기를 하는 거야?"

 

 남경후의 말에 여주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리고 줄곧 머리 머릿속에 떠나지 않는 그를 찾았다.

 

 "으응? 누구?"

 "영한이 형님."

 "영한이? 아, 걔 이름이 영한이었던가? 네 집은 여기라니까."

 "아니야. 난, 영한이 형님이랑 살 거야. 빨리 데려다,"

 

 번쩍하는 느낌과 함께 여주의 몸이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눈앞이 아찔해진 여주가 결국 참지 못해 눈물을 흘리며 몸을 더 심하게 떨기 시작했고 그런 여주를 가차 없이 일으킨 남경후가 한 손으로는 여주의 멱살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여주의 볼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여기가 앞으로 너의 집이야. 김여주의 집이라고."

 "윽,"

 "너랑 어울리는 단 하나의 집. 너만큼 예쁜 단 하나의 방. 여기가 네가 있을 곳이야. 알아듣겠어?"

 "으윽, 싫어."

 "영한이? 걔는 잊어. 아예 그 집을 잊으란 말이야. 알았지?"

 

 여주가 싫다며 고개를 젓자 험악한 표정이 된 남경후가 여주를 거칠게 침대로 던져버렸다. 순식간에 침대에 눕혀져 버린 여주가 일어나려고 하자 그런 여주의 목을 잡아 눌러버리고는 미소를 지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계속 이러면 재미없다, 여주야. 그 이쁜 얼굴에 흉터 남는 거 싫으면 얌전히 있어."

 "으윽."

 "아, 진짜. 내가 꼭 말을 해줘야 알겠어? 웬만하면 말 안 해주려고 했는데 너희 형님들의 속셈을. 너 지금 나한테 팔려 온 거야. 그거 아니?"

 "켁,"

 "너 그거 알아? 내가 영훈이 녀석한테 킬러 제의 한 거 그거 거절한 대가가 뭔 줄 알아?"

 

 얼굴이 빨개져서는 아직도 눈물을 흘리는 여주에게 가까이 다가간 남경후가 씩 웃었다.

 

 "널 우리 집으로 데려오는 거였어."

 "콜록콜록,"

 "근데 거절했어. 그것도 무참히. 그래서 난 얘기했지. 며칠 뒤에 데리러 갈 테니까 연락 기다리라고. 넌 버려진 거야. 알겠어?"

 

 여주의 눈이 커지며 몸이 굳어버렸다. 그 전에 가족이 되어달라고 말했던 희욱이 생각나 여주는 그들이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걱정하지 마. 내가 받아줄 테니까. 자, 이제 조금씩 적응을 해볼까."

 

 남경후가 여주의 입술을 만지작거리다가 점점 아래로 내려가 여주의 티셔츠를 만지작거린다.

 

 "ㅅ, 싫어!"

 

 여주가 순간적인 강한 힘으로 남경후를 밀쳐내자 뒤로 넘어질 뻔한 남경후의 얼굴이 험악하게 굳었다.

 

 "그래, 어디 한번 해보자. 이쁘다 이쁘다 해줬더니 첫날부터 이래?"

 "하지 마, 저리 가! 싫어!"

 "가만히 있어."

 

 남경후에게 양 손목을 잡혀버린 여주가 발버둥을 치는데 그 다리마저 남경후가 깔고 앉아버린다. 온 힘을 다해서 발버둥을 치는 여주가 우스운지 웃는데 여주가 갑자기 행동을 멈췄다. 퉤.

 

 "예쁜아."

 "놔줘."

 "앙탈이 너무 심하다."

 "하지 마."

 "오늘 끝을 보자, 어디 한번."

 

 얼굴에 침을 뱉어버린 여주의 행동에 정말로 열이 받았는지 무작정 여주의 목덜미를 물어버렸다. 아픔에 비명을 지른 여주가 버둥거렸지만 소용없었다.

 

 "아악, 싫어!"

 "가만히 있으라 했지."

 "으윽, 으!"

 

 여주의 입에 티셔츠를 물려버린 남경후가 잡힌 손목을 세게 쥐었다. 한참을 버둥대던 그녀는 온몸에 힘을 빼며 체념했다. 눈을 감아버리는데 여주의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저 멀리서 들렸다.

 

 "비켜, 씨발! 너희들한테 관심 없다고!"

 "이거 미친놈 아니야? 끌어내!"

 "놔, 이 씨발 새끼들! 혀 잘라버리기 전에 빨리 말해! 남경후, 개새끼. 그 미친 개새끼 어디 있냐고!"

 

 영한의 목소리에 여주가 번쩍 몸을 일으키려고 하는데, 자신에게 겹쳐있는 남경후의 몸 때문에 그러지도 못했다. 막힌 입 때문에 제대로 소리도 내지 못하고 애타게 문을 쳐다봤다.

 

 "이 씨발, 비키라고 했다."

 

 순간적으로 칼의 날카로운 소리가 나더니, 푹 하는 소리와 함께 얼굴도 모를 남자의 고통스러운 앓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남경후도 행동을 멈추고 문 쪽을 쳐다봤다.

 

 "잡아. 뭐 하는 거, 윽.."

 

 잊고 있던 칼이 사람의 몸을 관통하는 소리가 나고, 사람의 몸이 쓰러지는 소리까지 여러 번 나자 남경후가 벌떡 일어나 문 쪽으로 다가갔다.

 

 "으으, 형니임."

 

 덕분에 팔이 자유로워진 여주가 입에 물었던 티셔츠를 빼며 눈물 고인 눈으로 문 쪽을 쳐다보는데 남경후가 문을 벌컥 열었다.

 

 "여주, 어딨어."

 "너 지금 무슨 짓을,"

 

 하얗기만 하던 복도의 벽이 빨갛다. 어디서 그렇게 나온 건지 엄청난 피가 하얀 벽을 적시고 있었다. 이미 숨이 끊어진 듯한 남자의 멱살을 잡고 있는 영한이 남경후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데 순간적으로 남경후는 물론이고 여주까지 온몸에 소름이 돋아버렸다.

 

 "어디 있냐고. 여기있냐?"

 

 얼마나 찔러댄 건지 깔끔하던 얼굴은 비도 모자라 피를 뒤집어썼다. 손에 잡고 있던 남자의 멱살을 팽개치듯 놔버린 영한이 한 손으로 남경후의 어깨를 잡아 옆으로 밀어내며 방에 들어섰다. 덕분에 남경후의 어깨에는 진한 피가 잔뜩 묻어버렸다.

 

 "여주야."

 "형님."

 "씨발,"

 

 여주의 상태를 보고는 석고상처럼 굳어있던 영한이 낮은 목소리로 욕을 내뱉으며, 고개를 돌려 남경후를 쳐다봤다. 순간적으로 남경후의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렇게 그동안 잠잠했던 영한의 본모습이 드러나 버렸다.

 

 "고개 들어. 아직 안 끝났어."

 "미쳤구나."

 "네가 지금 누굴 건드렸는지 아냐?"

 

 어느새 피투성이가 되어 바닥에 쓰러진 남경후의 머리채를 잡아 일으킨 영한이 속삭이듯 말했다. 그리곤 낮은 목소리로 묻는데 남경후는 그저 거친 숨을 내뱉으며 대답이 없다. 그 바람에 짜증이 난 건지 인상을 찌푸린 영한이 이를 악물고 다시 물었다.

 

 "대답해봐, 씨발아. 어? 네가 지금 누굴 건드렸는지 아냐고 묻잖아!"

 "형님."

 "말해 봐. 지금 저기 울면서 나 부르는 애. 그게 누구냐고. 쟤 이름이 뭐냐고."

 

 여주가 울먹이며 영한을 불렀다. 여주의 부름을 들었는데도 돌아보지 않고 여전히 남경후에게 묻는 영한이 여주에게는 너무 낯설었다. 남경후가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로 천천히 대답하는데 이미 그는 살아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만신창이었다.

 

 "김, 여주."

 "그래. 근데 하나 알려줄까? 쟤 그냥 김여주가 아니거든. 무슨 말인지 알아? 그냥 김여주가 아니라 내 김여주다. 네가 건든 사람. 아르벨 김여주라고. 알아듣냐?

 

 씩 웃으며 그렇게 속삭이는 말에 남경후의 몸이 굳어버리는데 영한은 그저 여유롭다. 여주는 멀리 떨어져 있는 탓에 영한의 낮은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입술만 깨물고 있다. 낯선 영한의 모습에 결국 겁을 먹었던 거다.

 

 "너 지금 잘못 건드린 거야. 감히 누굴 건드려. 주제넘은 행동을 했으니까,"

 

 영한이 손에 들고 있던 지저분한 칼은 버리고 주머니에서 새로운 칼을 꺼내며 웃었다.

 

 "죽어줘야겠다."

 "ㅎ, 형님!"

 

 이번에는 영한의 목소리를 똑똑히 들은 여주가 자기도 모르게 급히 영한에게 달려가 허리를 끌어안아 버렸다. 남경후의 멱살을 잡고 칼을 높이 들려던 영한이 여주를 돌아보고는 그 상태로 멈칫했다.

 

 "여주야."

 "형님, 무서워요."

 "ㅇ, 여주야."

 

 여주는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가 죽고 죽이는 전쟁같은 상황에서 벗어난지 너무 오래였다. 결국에 다시 터져버린 여주의 눈물에 그제서야 정신이 든 건지 남경후의 멱살을 팽개쳐버리고 여주에게 몸을 돌렸다. 그에 마음이 놓인 여주가 눈물을 쏟아내며 피가 잔뜩 묻은 영한의 품에 안겼다. 그 피들이 여주의 맨몸에도 옮겨 묻었지만 상관없다는 듯 더 파고들며 영한에게 매달렸다. 아까의 그 사람이 맞는지 모를 정도로 순식간에 눈빛이 바뀌어버린 영한이 그런 여주를 더 꽉 끌어안았다.

 

 "여주야, 미안. 미안해."

 "형님, 으으."

 "울지마. 괜찮아. 응? 형님이 미안해. 여주야."

 "무서웠어요. 무서웠는데 지금은 형님이 더 무서워요. 그만 해요. 응?"

 "으응, 미안해. 괜찮아. 무서워하지 마. 미안해."

 

 자신 때문에 운다는 것을 알아차린 건지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안심시킨다. 여주가 영한의 가슴팍에 눈물범벅인 얼굴을 부비적거리는데 순간 영한의 눈에 여주의 목덜미가 들어왔다. 붉게 부어오른 걸 자세히 살펴보니 누군가가 문 듯한 자국이다. 욕을 내뱉으려던 영한이 꾹 참고 여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여주야, 이거 누가 그랬어."

 "네?"

 "이거 누가 그랬어? 응?"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프지 않아?"

 

 다시 남경후한테 화낼 줄 알았는데 자신을 걱정해주는 말에 여주가 다행이라고 생각하고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여주의 생각과는 다르게 그 자국을 어루만지던 영한이 다시 이를 악물며 뒤에 쓰러져 일어나지도 못하고 있는 남경후를 쳐다봤다. 영한의 주먹이 다시 꽉 쥐어졌다.

 

 "네가 그랬냐? 후우, 여주야."

 "네."

 

 화를 억누르려는 듯 한숨을 쉬더니 나지막하게 불렀다. 다시 무서워진 영한의 모습 때문에 굳어있던 여주가 고개를 살짝 들자 여주의 눈물젖은 볼에 입술을 가까이 가져간 영한이 무서워하지 말라는 듯 작은 목소리로 속삭여주었다.

 

 "잠깐만. 잠깐이면 돼."

 "형님?"

 "잠깐만 이불 뒤집어쓰고 있어. 그러고 조금만 있다가 형님이랑 집에 가자."

 

 그렇게 말하고는 여주를 침대로 데려가 앉혀놓고 티셔츠를 다시 입혀주며 이불을 머리까지 씌워주었다. 따뜻한 손길에 차마 아무 말도 못 한 여주를 가만히 이불을 뒤집어쓰고 말았다. 이불을 뒤집어쓴 여주를 몸을 벽 쪽으로 돌려놓고 뒤에서 한번 끌어안아 준 영한이 다시 남경후에게 다가갔다.

 

 "우리 여주가 비명 들으면 안 되니까 특별히 고통 없이 해줄게."

 

 다시 남경후의 멱살을 잡아챈 영한의 칼을 든 손이 허공으로 올라가는 순간, 누군가가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영한아!"

 "형,"

 

 영훈이었다. 영한과 마찬가지로 비를 흠뻑 맞은 모습인데 밖에서 싸우다 겨우 들어온 건지 피가 군데군데 묻어있었다. 급하게 뛰어 들어오느라 급해진 숨을 겨우 몰아쉬며 단호한 목소리로 영한에게 말했다.

 

 "칼 내려놔."

 "싫어."

 "내려놔, 꼭 죽이지 않아도 되잖아!"

 "죽여야 해. 나 이 새끼 용서 못 해."

 "김영한!"

 

 자신이 말리는데도 영한이 다시 칼을 높이 들자 영훈이 달려가 영한의 손목을 잡아버렸다. 영한이 그 손목을 뿌리치려고 했지만 잘못하다가는 영훈이 찔려버릴 것 같은 위험한 자세여서 결국은 언성을 높인다.

 

 "형, 왜 이래!"

 "네가 지금 죽인 게 몇 명인지 알아? 안 그러겠다며!"

 "여주가 다쳤잖아!"

 "여주가 무서워하잖아. 그렇게 여주만 챙기는 새끼가 여주 벌벌 떠는 모습은 안 보이냐?"

 

 영훈이의 말에 영한이 멈칫했고 그 틈을 타 영훈이 칼을 빼앗아 드는 순간. 영한의 앞에 쓰러지다시피 앉아있던 남경후가 순식간에 영훈이의 손에 들린 칼을 빼앗아 들고 소리를 지르며 무작정 어딘가를 찔러버렸다. 그에 찔린 사람의 피가 튀었고 굳어버린 영한이 몸처럼 굳은 목소리로 그 사람을 불렀다.

 

 "혀엉."

 "으윽,"

 "형, 혀엉!"

 

 칼을 꽂은 채 엄청난 양의 피를 흘리는 영훈이 바닥에 힘없이 쓰러져버렸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엄청난 상황에 영한이 당황해서 그저 영훈이를 부르기만 하는데 영훈은 고통스러운 신음만 뱉을 뿐 아무 대답이 없었다.

 

 "형, 형."

 

 그때까지도 영한이 하라는 대로 이불을 뒤집어쓰고 떨며 울고만 있던 여주도 뭔가 상황이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깨닫고 뒤를 돌아보고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영훈이 또다시 칼에 찔렸다.

 

 "형, 형! 일어나봐, 형. 형!"

 

 영한이 영훈을 잡고 흔들었지만 이미 영훈은 정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정말로 당황해버렸던 건지 영한이 그저 영훈을 흔들기만 하는데 마찬가지로 피범벅이었던 희욱이가 방으로 뛰어 들어와 빠르게 상황 파악을 하고는 급하게 영한을 밀쳐냈다.

 

 "너 미쳤어? 흔들기만 하면 뭐가 된다고 그러고 있어?"

 "혀엉, 형, 형이."

 "영훈아. 정신 차려. 정신 똑바로 차려. 숫자 세. 정신 잃으면 안 돼."

 "...혀, 형..ㄴ..."

 "말은 하지 말고. 정신 잃지 마. 정신 놓으면 안 된다."

 

 희욱이가 영훈의 볼을 툭툭 쳐가며 주위를 살피다가 바다가 방으로 들어오는 걸 보곤 바다에게 말했다.

 

 "바다야! 얼른 여주 데리고 집으로 먼저 가!"

 "형, 형님.."

 "얼른, 곧바로 따라갈 테니까 여주 데리고 빨리!"

 "네!"

 

 쓰러져있는 영훈을 보고 놀라서 굳으려던 바다가 정신을 다잡고 여주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울면서 떨고 있는 여주의 팔을 잡아당겨 등에 업고 울먹이며 빠르게 방을 나갔다. 그걸 확인한 희욱이가 옆에 주저앉아버린 영한의 머리를 세게 한 대 치고는 말했다.

 

 "정신 차리고 영훈이 네가 데려가."

 "형님."

 "방금 여주 집으로 가는 거 봤지? 그니까 걱정 말고 무조건 뛰어. 들어가서 어떻게 해야 되는지는 네가 많이 찔려봤으니까 잘 알지? 난 지금 따라갈 테니까 얼른 먼저 가!“

 

 그 말에 영한이 벌떡 일어나 영훈을 안아 들고 방을 뛰어나갔다. 아직 방에 남은 희욱이 잠시 쉬더니 옆에 쓰러진 채 얼빠져서 웃고만 있는 남경후를 보며 비웃음 조의 목소리로 말했다.

 

 "어디 우리 멤버를 위자료로 써먹어? 미안하지만 우리 멤버들은 너무 비싸. 그깟 위자료보다 몇만 배는 더."

 

 대답이 없던 남경후를 보며 피식 웃은 희욱이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말을 이었다.

 

 "..앞으로는 나타나지 마라. 더 이상 만나지 말자. 나는 당신이랑 일했던 멍청한 김희욱이 아니야. 벌써 많은 세월이 지났잖아? 잘 있어라. 진짜로 다신 만나지 말자."

 

 그렇게 미련 없이 말한 희욱이가 천천히 걸어 방을 나갔다. 그리고는 영한이 복도에서 죽여버린 무수한 시체들을 지나 아까 영훈, 바다와 같이 때려눕힌 남경후의 부하들을 지나 천천히 대문을 나가버렸다. 몸도, 정신도, 조직도 모두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남경후가 그저 웃기만 했다.

 

 "여주야, 몸은 어때? 다친 데는 없어?"

 "네, 없어요."

 "많이 놀랐지? 아빠가 미안하다."

 "아, 아니에요."

 

 방에서 걸어 나온 여주의 몸을 살피던 희욱이가 여주에게 웃어준다. 같이 웃어주는 여주의 표정이 어딘가 굳어있다. 그러던 중 여주가 영훈이가 누워있는 방을 보며 묻는다.

 

 "영훈 형님은 괜찮으신 거에요?"

 "그럼, 저 녀석이 어떤 녀석인데."

 "평소처럼, 지내실 수 있는 거죠?"

 "그러엄, 똑같이 먹고 똑같이 싸고 똑같이 웃고 할 수 있어."

 

 아직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희욱이는 웃어주며 여주에게 말했다. 그럼에도 여주의 표정은 여전히 풀어지지 않는다.

 

 "만약 영훈이가 어떻게 되었어도 여주가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여주가 그런 것도 아니잖아.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아니요. 저 때문이잖아요."

 "여주야."

 "제가 바보같이 잡혀가는 바람에,"

 

 여주가 희욱의 앞에 섰다가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는다. 희욱이가 왜 그러냐는 듯한 표정으로 여주를 내려다보고 옆에 앉아있던 영한도 여주를 쳐다본다.

 

 "제가 잡혀가지만 않았어도 바보같이 그렇게 잡혀있지만 않았어도 제 탓이에요. 저 때문이에요."

 "그래서?"

 

 듣고만 있던 영한이 입을 열자 여주는 눈물 한 방울을 툭 떨구며 말했다.

 

 "책임질게요. 제가 나가겠습니다."

 

 여주의 말에 희욱과 영한 그리고 지금 막 방에서 나오던 바다까지 단숨에 굳어버린다. 희욱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어색하게 웃으며 다시 묻는다.

 

 "여주야, 뭐라고?"

 "제가 나갈게요."

 "어디를? 산책이라도 하고 오려고?"

 "아르벨을 나가겠습니다."

 

 여주의 입에서 기어코 우려했던 말이 튀어나오자 희욱이 한숨을 쉴 기력도 없이 고개를 푹 숙인다. 바다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친구를 쳐다보고 있는데 그들과는 다르게 웃기지도 않는다는 듯 피식 웃어버린 영한이 여주에게 말한다.

 

 "다시 말해봐."

 "나가겠습니다."

 "어디를."

 "아르벨을 나가겠,"

 "김영한! "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영한이 벌떡 일어나 여주의 멱살을 잡아 거칠게 일으켜버린다. 그 탓에 여주의 고개가 들리고 영한과 눈이 마주쳐버린다. 희욱이 영한의 이름을 불러보지만 들리지 않는다는 듯 여주에게만 시선을 맞춘다.

 

 "내가 하는 말 그대로 따라 하면 없었던 일로 쳐줄게, 여주야. 제가 장난친 거에요. 죄송해요. 따라 해."

 

 따라 하라는 영한의 말에도 그저 영한의 눈을 피할 뿐 아무 말이 없다. 그 모습에 영한이 낮은 목소리로 차갑게 말한다.

 

 "여주야, 나 화가 난 것 같은데."

 "죄송해요."

 "그 앞에 말은."

 "제가, 나가겠습니다."

 

 고개를 돌리고 한숨을 푹 쉰 영한이 다시 여주를 쳐다본다. 끊임없이 흔들리는 눈동자를 어쩌지도 못하고 그저 영한의 눈을 피하기만 한다. 결국은 완전히 화가 나버린 영한이 언성을 높이고야 만다.

 

 "김여주. 너 미쳤어? 아르벨을 나간다고? 지금 내가 들은 게 맞냐? 내가 제대로 들은 거 맞냐고."

 "네."

 "진짜, 골 때린다. 김여주, 다시 생각해."

 

 거칠게 손을 놔버리자 여주의 몸이 힘없이 바닥에 쓰러진다. 그런 여주를 희욱이가 일으켜주려고 하자 영한이 손을 들어서 막는다. 영한의 목소리가 무서울 정도로 차분했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는 못했다.

 

 "그때, 일본 가겠다고 할 때 말리지 말걸. 이게 뭐야, 제기랄. 변태한테 잡혀가서 이상한 몹쓸 짓이나 당하게 하고 이럴 거면 남는다는 너 안아주지 말걸. 웃는 모습 보고 싶다고 욕심부리지 말 걸 왜 이 지랄이냐고 한심하다, 진짜."

 

 어느새 자책으로 바뀌어버린 영한의 혼잣말이 공감되는지 희욱이가 고개를 숙여버린다.

 

 "내가 망친 것 같아서 항상 미안했어요. 그래도 좋았어. 어설프게나마 웃었으니까 아직은 힘들어 보였지만 웃어줬으니까. 처음 웃는 모습 보고 고맙기까지 했었는데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살면서도 이쁘게 웃어줘서 고마웠는데 그런 이쁜 애를 내가 너무 망쳐버린 것 같아서 너무 미안해."

 

 혼잣말이 희욱에게 하는 말로 바뀌고 결국에는 영한이 눈물을 흘려버린다. 얼굴을 바닥에 묻어버린 여주가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그저 울기만 한다. 영한의 말을 듣던 여주가 겨우 고개를 들고 울며 영한의 다리에 매달린다.

 

 "잘못했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죄송해요, 형님. 잘못했어요."

 

 아무 말 없이 여주에게서 다리를 빼내더니 여주의 앞에 앉는다. 눈물범벅이 된 여주의 눈가를 손가락으로 살짝 닦아주고는 여주에게 묻는다.

 

 "일본으로 돌아가고 싶어? 대답해봐. 돌아갈래?"

 

 영한의 젖은 눈동자를 보며 여주가 또다시 눈물을 흘려버린다. 그러면서도 고개를 세차게 흔든다.

 

 "아니요, 안 돌아갈래요. 저 아르벨에 계속 남을래요."

 "고생할지도 몰라. 힘들지도 모르고."

 "그래도 좋아요. 그래도 행복해요. 제발, 저 여기 있게 해주세요. 앞으로 다시는 이러지 않을게요."

 

 여주가 두 손을 모으고 울며 잘못했다고 빌자 영한이 그 두 손을 한 손으로 감싸 잡아주며 입을 연다.

 

 "여주야."

 "흐으, 형니임."

 

 여주가 그대로 영한에게 안겨버리고 여주를 안아주느라 무릎을 꿇어버린 영한이 여주의 두 손을 더 꼬옥 잡아주며 달래주듯 등을 토닥여준다. 그제야 희욱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바다는 아예 주저앉아버린다. 방에서 잠자코 듣고만 있던 유빈이와 영훈도 웃는다.

 

 "죄송해요, 제가 죄송해요."

 "미안해, 여주야. 내가 다 미안해."

 

 그렇게 둘은 한참 동안 서로를 끌어안고 울었고 여주는 그렇게 목이 쉬어버릴 때까지 영한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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