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판타지/SF
마녀와 함께 시골일상을!
작가 : 포죠
작품등록일 : 2019.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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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시간을 엉터리로 달린 마녀(1)
작성일 : 19-11-05     조회 : 281     추천 : 0     분량 : 5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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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을 엉터리로 달린 마녀(1)

 

 “김사부 이놈아!! 아버지가 머랬어!! 한 번 만 더 이불 뒤집어쓰고 요상한 짓거리하면, 쫓아낸다고 했지!!! 여동생도 있는 놈이 아침 댓바람 방구석에서 그렇게 흔들댈 거냐!?!”

 

 노발대발하며 이불을 냅다 걷어 차버리는 아버지의 발길질.

 엘프누나의 향긋함이 이불의 펄럭거림 한 번에 사그라든다. 엘프누나가 나를 보고 속삭인, 소중이를 꺼내어 달라는 그 매혹적인 말들이 전부 거친 사투리가 섞인 아버지의 소죽 끓이라는 명령이었다니. 타이밍하고는.

 

 “흔들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이건 자연현상이라고요. 인위적으로 세운 적 없다고요!! 아버지도 고자가 아닌 이상 잘 아시잖아요.”

 

 “너 지금 아버지한테 고자라고 했냐?”

 

 “아버지야 말로 저를 모함하셨잖아요. 요상한 짓이라뇨? 애초에 제가 하는 것들은 신성한 상상이라는 겁니다!! 용사 클라우드의 모험!! 들어주세요. 아버지. 이번에 무찌른 놈은 웨스페르라는 무지막지한 괴물인데……아앗, 아버지!!”

 

 내 소중한 소중이의 행복을…가 아니라 상상을 방해한 아버지에게 질풍노도 사춘기의 분노를 표출해보지만 소용없었다.

 

 “얼어 죽을 클라우드!!”

 

 골이 흔들린다. 프라이팬으로 머리를 가격당한 것보다 훨씬 더 아프다.

 

 “아버지!!! 머리만은 안된다고 했잖아요!!! 그럴 때마다 클라우드의 대서사시 한 페이지가 찢겨나간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조건 반사적으로 나오는 눈물을 참으며 소리쳤다. 참기 힘든 아픔. 아버지가 악당이라면, 이명은 【말발굽맨】, 전통 농사꾼의 두꺼운 손은 그만큼 내게 치명적이었다.

 

 “너!!! 너!! 진짜 왜 그러는 거냐!!! 넌 클라우드가 아니라 넌 김사부라고!! 정말 귀신이라도 씐 거냐? 무당이라도 불러서 굿이라도 해야 하는 거냐?”

 판타지는 믿지 않으면서 귀신은 믿는 아버지를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다.

 철저하게 보수적인 아버지도 판타지라는 새것을 받아들이게 하려면.

 역시 이거지─

 

 “……좋아요. 특별히 아버지를 위해 들려드릴게요. 따끈따끈한 최신작이에요. 아버지가 좋아할 만한 엘프누나 이야기. 가슴이 얼마나 대단한지 아버지도 들어보시면.”

 

 “가, 가슴? 이 자식이 애비를 뭘로 보고!!”

 

 말발굽 펀치가 한 번 더 내 후두부를 향해 내리꽂히려 하자. 고개를 틀어 피해낸다. 두 번째 공격에 힘을 더 실었던지 속도는 처음보다 빠르지 않았다.

 

 “패턴이 너무 단조롭습니다. 아버지!! 그리고 들키셨어요. 역시 큰 가슴 좋아하시는 것 맞네요.”

 

 붉으락푸르락 벌게지는 아버지의 주먹이 눈에 들어온다.

 더 이상의 장난은 안된다. 그렇게 된다면 용사 클라우드의 모험은 정말로 막을 내리게 된다.

 툇마루를 뛰어넘어, 흙 마당을 가로질렀다. 대문 옆의 외양간에서 말똥말똥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소를 한번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순번 착각하셨어요. 점심 소죽은 아버지 차례입니다. 효자는 저녁에 쓸 쇠꼴이나 잔뜩 베어오겠습니다.”

 

 (※쇠꼴: 소에게 먹이기 위하여 베는 풀. 소죽 끓일 때 필요)

 

 큰방에서 오직 나만을 위해 특별제작한 거대한 자작나무 몽둥이를 꺼내고 있을 아버지를 향해 소리쳤다. 기분 좋은 소 울음과 아버지의 분노에 찬 울음이 뒤섞여 대문 밖으로 울려 퍼진다.

 

 “한 포대 채워 오지 않으면, 국물도 없어 이놈아!!!”

 

 으윽, 한 포대면, 그냥 오늘 들어오지 말라는 소리 같은데. 저 말이 진심이라는 게 더 무섭다. 역시 아버지에게 말발굽맨이라는 이명을 붙여주길 잘했다니까.

 오래된 나무판자로 간신히 문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 대문을 나서자마자, 눈앞엔 끝없는 갯벌과 푸른 바다가 펼쳐진다.

 

 “하, 조금만 더 상상할 시간이 있으면 다시 한번 더 엘프누나와 못다 한 것들을 할 수 있었을 텐데 아깝네….

 

 아쉬움을 뒤로한 채, 아직 녹지 않고 얼어붙어 있는 개천을 따라 마을 중심가로 올라갔다. 중심가를 넘어가야만 쇠꼴을 구할 수 있는 산어귀의 논까지 다다를 수 있다. 이렇듯 삼포라고 불리는 우리 마을은 앞에는 바다, 뒤에는 산이 있는 풍수지리적 요충지에 있었다.

 

 그렇다고 『이야~!! 살이 가득 찬 생선과 윤기 나는 쌀밥을 매일 먹을 수 있는 거 아냐? 부러운데?』와 같은 말은 절대 입 밖으로 꺼낼 생각 말도록.

 

 내가 사는 삼포는 시골 of 시골

 몇몇 부농을 제외한 대다수 주민이 그저 식량을 가까스로 자급자족하며 살아가는 마을이었다.

 게다가 봉우리가 600m에 달하는 산 두 개를 넘어가야 그나마 문화시설이 즐비한 시내를 마주할 수 있는 곳. 그 말인즉슨 우리 마을은 병원도 없고, 레코드방도 없고, 극장이나 책방 같은 건 기대하는 것도 사치인 지상 위의 섬과 같은 마을이라는 거다.

 

 산어귀를 향해 10분을 더 걸어갔다.

 초록 물감을 뒤집어쓴 두더지들이 차가운 땅을 뚫고 빼꼼 올라온 게 보인다. 초겨울에 심었던 청보리 새싹의 대부분 올라온 모양이었다.

 

 “오늘은 빌어먹을 쇠꼴 도둑놈들이 보이지 않네요.”

 

 모이를 착각해 돌부리를 쪼아버린 닭의 비명만큼이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와 황급히 몸을 숨겼다.

 

 “예끼, 이 사람이 정말 힘들면 돕고 사는 거지 쇠꼴가지고 뭘 그래.”

 

 “이 양반이 노망이 왔나!! 당신이 그렇게 오냐오냐하니까 건방진 동네 꼬마들이 우르르 우리 논으로 몰려오는 거라고요!!”

 

 “우리가 조금 잘사니까. 그 정도는.”

 

 “입 다물고 얼른 보리나 밟아요.”

 

 멀리 보이는 논 둔덕에서 올이 나간 수세미 같은 머리를 한 아줌마, 그리고 머리카락이 말끔하게 두피 속 흙으로 돌아간 남편이 청보리를 밟아주고 있었다.

 

 (※보리밟기: 겨울철 농한기에 이루어지는 행위로, 보리의 싹이 뜨지 않고 뿌리를 잘 내리도록 보리밭을 밟는 행위.)

 

 이명 【수세미걸과 애호박맨】

 

 정미소 주인이기도 한 저 두 채소 콤비의 진득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수세미아줌마의 억척스러움과 애호박 머리를 닮은 아저씨의 얇고 긴 인내. 그런 그들의 눈을 피해 논두렁 주변에 자라난 귀한 쇠꼴들을 베어오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왜냐하면, 두 사람은 자신들의 논 구석구석을 최소 3시간 이상 점검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무리 용사 클라우드라도 저 수세미걸의 손아귀에 잡히면, 엄청난 정신적 내상을 입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한 시간 동안 저 칠판을 긁는 듯한 목소리로 욕을 먹어야만 한다.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그야말로 배수의 진. 앞에는 수세미걸과 애호박맨 뒤에는 말발굽맨. 내가 있을 곳은 없었다. 그래도 물러날쏘냐.

 수세미걸과 애호박맨의 최대약점. 두 사람 전부 땅딸막한 키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낮은 키에서 오는 낮고 좁은 시야를 최대한 이용한다.

 

 포복으로 살금살금 그들에게서 멀어진 나는. 최 씨였든가? 박 씨였든가? 모르겠다. 역시 이름 모를 마을 주민의 잡초 하나 없는 논두렁 아래에 포대를 깔고 누워버린다. 최소한 식은 국물이라도 홀짝거리려면, 포대의 절반이라도 채워야 한다. 수세미걸과 애호박맨이 방심하고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는 게 내 작전. 조금 찔리기도 한다. 비록 멀지만, 반대편 산어귀에 논이 있었음에도 이런 작전을 세운다는 게.

 내 뼛속까지 자리 잡은 권태로움이 명실상부하게 드러나는 것 같지만.

 

 ‘……내가 나를 부정하는 순간 내가 아니게 되잖아?’라는 편한 생각으로 눈을 감아버린다.

 

 이번 꿈에는 엘프누나와 미처 마무리 짓지 못한 일을 꼭 끝낼 수 있기를 바라며.

 

 

 ❉ ❉ ❉

 

 

 처마 밑 고드름이 되어가는 듯한 몸을 부르르 털어내며 일어났다. 어느새 밤이 찾아온 모양이었다.

 가로등 하나 제대로 설치되어있지 않는 논 위로 진한 먹물을 무진장 삼켜낸 밤이 뿜어내는 어둠. 도시 사람이면 이런 어둠에 몸서리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온전히 이런 어둠에 익숙한 시골 사람 중 한 명이니까, 무섭거나 불편한 건 없다.

 

 “……아놔. 엘프누나를 만나지 못했잖아. 추위 때문인가?”

 

 꿈 없는 잠만큼 불행한 잠은 없다고 굳게 믿고 있던 나였다. 꿈은 내 상상에 생생한 현실감을 더해주는 가장 좋은 수단이었다. 방금의 수면시간 정도면 용사 클라우드의 다음 챕터를 상상할 수 있었는데, 그것을 통째로 날려버렸다는 생각에 기분이 상쾌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조그만 치의 쇠꼴도 구하지 못했네. 이대로 돌아가도 괜찮으려나.

 

 하지만, 말발굽맨의 드센 얼굴이 떠오르자마자.

 결국, 나는 수세미걸과 애호박맨이 떠난 논두렁 한 켠에 쭈그려 쇠꼴을 뜯어내기 시작했다. 아직 절반도 채우지 못한 포대를 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때였다.

 

 어두컴컴한 하늘로부터 푸른 빛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신비롭고 몽환적인 광경 때문에 순간 나는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이 꿈속의 꿈이었고 아직 그 상상의 바다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줄 알았다.

 

 “…….”

 

 아니다.

 이 빛은 상상 속에서도 보지 못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보통 눈이 아려오면 그 순간에 잠이 깨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아름답고 영롱한 자태의 선명한 빛깔에 눈이 아려올 뿐, 깨어나지 않는 걸 보면 이 현상은 꿈이 아닌 진짜 현실이다.

 

 그렇다면 위험에 빠진 외계행성으로부터의 초대장이 온 건가? 용사 클라우드가 드디어 제대로 된 모험 라이프를 떠나는 건가? 어딨어, 어딨는 거야. 나를 데려갈 UFO는!! 소환진도 괜찮습니다!! 그쪽 세계에 위험이 있어 온 거면 환영입니다!! 저는 준비된 용사님이니까요!!

 내 격한 바람과는 달리 시간이 지나도 푸른 빛은 그저 내 주위에서 은은하게 빛날 뿐이었다.

 

 푸른 빛이 나를 띄워 UFO로 데려간다거나, 다른 세계로 초대되는 소환진 같은 건 완성되지 않았다. 그저 점점 폭발할 것 같은 소리를 낼뿐이었다.

 ???잠깐만, 소리가 조금… 아주 조금……그렇다? 너무 좋은 쪽으로만 상상했나?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이 쾅쾅거렸고, 동시에 불안한 상상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외계행성의 초대가 인육을 즐기는 외계인의 납치라면? 인간 샘플 대 모집 중에 유일한 당첨자? 아니면, 다른 세계로부터의 기습 공격?

 ……그러고 보니 꼭 생긴 건 마법진 같은데, 대체 왜 나를 기준으로 원을 이루고 있는 거지?

 움직일 수 없었다. 분명, 이 빛과 멀어지고 싶은 굳은 의지는 있는데, 가위에 눌린 것처럼 아무리 끙끙대도 몸은 그 자리였다. 식은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말굽매앤! 아니, 아버지~!! 살려주세요!!!”

 

 여동생과 아버지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처참한 내 절규 너머 마지막으로 떠오른 어머니, 그곳에 계신다면, 기다려주세요.

 

 “야야!!!! 거기!! 비켜어어어어어~!!!”

 

 다시 한번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빛이 어둠에 먹히듯 사라졌고, 나는 거대한 충격에 튕겨나갔다.

 

 “아야야~!! 그 순간에 회귀시계를 놓쳐버릴 줄이야. 그래도 뭐, 제대로 작동은 한 모양이네”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푸른 빛이 베일처럼 정체불명 목소리의 주인을 감싸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펼쳐지는 거야. 내 상상이, …생각이 못 따라가는 전개잖아.

 그러는 와중에 푸른빛이 완전히 사그라졌고, 그제야 나와 부딪힌 주인공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미소녀? 미모로만 따지면 내가 상상에서 보았던 수많은 누님들과 견줘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더 아름다웠다. 장인이 고심해서 만든 백자처럼 완벽한 자태였다.

 

 허리까지 오는 순백색 머리칼, 사연 많아 보이는 아련한 눈동자, 너무 지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완벽한 볼륨감 몸매의 미소녀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나를 발견하고 천천히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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