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엉터리로 달린 마녀(2)
“질린다. 질려. 끝까지 나를 방해하는 거야?”
짜증이 북받쳐 소리라도 크게 질러버리고 싶은 코코아였다.
마법이 발동되는 마지막 순간에 그만 회귀시계를 놓쳐버리다니. 하지만 그것마저 잘난 자신의 탓이 아니라 여긴다. 그 타이밍에 불어온 바람. 즉 한국의 쓸모없는 날씨 탓이라 치부해버린다.
회귀시계를 놓쳐버리는 약간의 사고가 있었지만, 마법진 위로 떨어진 자신을 보니 회귀마법은 무사히 발동됐다고 생각한 그녀였다.
“그나저나, 왜 아무것도 없는 거지? 너무 외곽으로 떨어져 버린 건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주변을 홱홱 둘러보았다. 다행히 눈에 날카로운 꼬치 모양의 못생긴 남산타워가 눈에 들어오지 않은 걸 확인하고서야 가슴을 쓸어내렸다. 한국은 아니다.
“그래 이 내가 실수할 리 없지.”
마법에 대한 자부심은 그 누구보다 거대한 셀레나가 옷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냈다.
그렇게 그녀는 자신의 모든 안위를 챙긴 후. 뒤늦게 주변을 살펴보았다.
셀레나는 운 없는 영국사람이 마법진 위에 있었고, 자신이 그만 익숙한 한국어로 경고하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
“나도 참, 습관이란 게 무섭긴 하네. 음, 음, 됐다. HEY? ARE YOU OK……?”
팔짱을 낀 은백색 머리칼의 미소녀가 한국어로 무언갈 중얼거리고 있었다.
나를 뺑소니 친 장본인인 주제에.
한참을 철저히 무시하다가 뒤늦게 나를 향해 다가오더니 미안한 기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얼굴로 내 앞에 선다.
그런데 얘는 아까부터 왜 이곳이 한국이 아니라고 단정 짓고 있는 거지? 여기 한국 맞는데? 아무리 내가 갈색 머리에 갈색 눈을 가졌다고 해도, 이국적인 외모라는 소리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데?
“……으음? 암 오케이?”
분위기에 휘말린 내가 볼썽사나운 발음의 외국어로 어쭙잖게 대답하자마자, 미소녀의 환했던 미소가 하루 지난 식빵처럼 굳어지기 시작한다.
그녀가 격하게 흔들리는 회색 눈동자로 다시 주변을 둘러본다.
“AH~HAHA하HAA~!! 하아하………끄흣…, 뭐야, 너 대체 뭐냐고!! 여기 영국 맞지!!? 너 그냥 한국에서 놀러 온 못생긴 관광객인 거지?!!”
정신줄을 놓은 미소녀가 내 멱살을 잡고 이리저리 흔들어대며 절규한다.
뭐라 대답하는 게 좋을까. 그냥 영국이라고 대답해버릴까? 생각해보면, 영국의 시골이나 한국의 시골이나 별다를 것 없기도 할 것 같은데.
지금 이 정체불명의 미소녀는 안정이 필요해 보인다. 일단은 영국이라고 답해줘서 그 안정을 조금이나마 연장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은 것 같기도…
“너야말로, 한국에 놀러 온 미친 영국인이냐?”
그러기 싫다. 내 삶에 있어서 철칙이다.
모든 일은 등가교환. 다짜고짜 내게 반말하면서 멱살을 흔드는 몰상식한 사람에겐 나도 똑같은 방식으로 되갚아 준다.
파도가 암벽을 때리는 소리가 날 정도로 미소녀의 손을 세게 쳐낸다.
“노슨(normal person)주제에 무슨 짓인데!! 좋은 말로 할 때 대답해!!”
손이 벌게진 그녀가 반쯤 고인 눈물을 훔쳐내며, 여전히 명령조로 알아먹지 못하는 거친 말을 내게 건넨다.
붉어진 얼굴로 그런 말을 하니 순간 또 대답할 뻔했지만, 안 통해.
❉ ❉ ❉
“…으흡, 흑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은발 미소녀가 코를 훌쩍거리며, 조그마한 손으로 쇠꼴을 뽑아내고 있다.
약간 질 나쁜 짓을 해버린 나였다. 이곳의 정보를 알고 싶으면, 쇠꼴을 뽑아서 바치라고 말이다.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미소녀가 네가 뭔데 명령 질이냐고 발끈거렸다.
사나운 말을 쏟아붓던 그녀의 입이 다물어지게 된 건 내 손끝에서 물방울 모양의 은빛 목걸이를 본 직후였다.
미소녀와 충돌할 때 주워놓은 미소녀의 목걸이의 효과는 상당했다. 바로 내게 쇠꼴이 뭐냐고 물어보고 내 명령을 따라주는 걸 보면 그녀에게 있어 상당히 중요한 물건이긴 한 모양이었다.
“…춥지는 않아? 그나저나 이름도 못 물어본 것 같은데.”
조금 오랜 시간 동안 그녀가 쇠꼴 뽑고 있는 것을 관찰하고 있노라니 이제야 그녀의 모습이 제대로 눈에 들어온다.
새하얀 어깨가 드러나는 새하얀 로브와 감색 망토 같은 걸 입고 있는 은발 미소녀.
추위 때문인지 서러움 때문인지 쇠꼴을 뽑고 있는 그녀의 가녀린 어깨가 들썩거리고 있었다.
“내 옷이라도 벗어 줄까?”
신비로운 분위기로 쇠꼴을 뽑아내고 있는 그녀에게 괜한 동정과 호기심이 생겨나려는 찰나.
“실컷 부려먹고, 이제 와서 그런 하찮은 동정 그만하지? 굽다 만 오징어같이 생긴 놈이.”
내 모든 호의를 일순간에 부숴버리는 미소녀.
게다가 순전히 말로만 내게 깊은 내상을 입혀버린다. 그냥, 오징어도 아닌, 굽다 만 오징어라니.
야야, 그 정도는 아니잖아? 그, 그 정도는…….
“그 정도는 아닌 것….”
처참한 생각이 입 밖으로 튀어나와 버렸다.
“너저분한 갈색 머리하며! 처진 눈 하며! 아아~~, 굽다만 오징어라기보단, 길거리 똥개가 싸다만 X이다 X!!!”
기다렸다는 듯, 예쁜 얼굴에서 험악한 말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울면서 자리를 박차나가고 싶었다. 아냐 아니라고!! 내 여동생이 그랬단 말이야. 오빠만큼 생긴 사람 마을에 없다고. 자기가 오빠 닮아서 이렇게 예쁜 거라고 분명 얘기했다고!!
“너, 너는 어떤데에!!! 생긴 것만 싸가지 없을 줄 알았는데 말도 완전 싸가지 없는 걸 보면, 너 친구 없지? 왕따잖아!! 그러니까 이런 시간에 이런 곳에서 혼자 돌아다니는 거 아니냐고!!!”
입술을 질끈 깨물고 반격해본다. 치졸하다. 피곤이 기본적으로 깔린 내 얼굴과 달리 솔직히 미소녀는 얼굴로는 깔 게 없었다. 그렇다면 정면승부 대신 측면 승부. 얻어걸려버리라는 심상으로 질러버리는 내 대책 없는 공격이 한심하게 느껴진다.
“아, 아니, 아닌데요~? ……친구 많은데요? 버스 안을 가득 채울 만큼 많은데요~?”
정곡을 찔리다 못해 찢겨 발긴 것 같은 미소녀가 내 눈을 피한 채로 휘파람을 불어댄다.
어라? 정말 얻어걸렸나? 친구라는 말 똑바로 못하는데? 게다가 갑자기 왠 존대?
“……친한 친구 이름 세 명만 대봐. 오, 사, 삼…”
생각할 시간도 주지 않으려 곧장 카운트──
“참나, 웃기지도 않아서. 내가 왜 네 말을 들어야 하는 건데?”
제대로 걸리셨구나. 너 말야 엄청난 착각하는 것 같은데, 그런 표정으로 날 완전히 속였다고 생각하는 거야? 포커페이스 완전 꽝인 것 같은데?
내 입꼬리가 승리의 브이자를 그리며 이죽거리는 걸 본 그녀. ……왜 갑자기 입술을 질끈 깨무는 건데? 왜 눈가가 더 반짝거리는 건데?
“끗……끄흡….”
그녀의 눈물을 가두고 있는 거대한 댐에 균열이 생기는 소리가 들린다.
“죄송합니다!!! 당연히 아니시겠죠? 이렇게 고귀해 보이는 숙녀분이신데. 길거리 개가 참지 못하고 저질러버린 X같이 생긴 저라서. 그런 저이기에 가능한 저급한 장난이었습니다!! 기분 나쁘셨다면, 사과드릴게요.”
이게 다 아버지 때문이다.
아무리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사랑스러운 딸을 위해서라지만, 아버지는 내게 여자의 눈에 눈물을 흘리게 하는 순간 내 고추를 잘라버릴 거라는 강압적인 교육을 일삼아왔다.
그 교육의 산물이 지금의 나. 조건 반사적으로 여자가 눈물을 흘리면 패닉상태에 빠진다.
그래, 이번만큼만 넘어가자. 애초에 너와 나. 이런 말도 안 되는 싸움을 계속하는 것보다는 서로를 알아가는 게 우선이었잖아?
물론 나보다 훨씬 특이해 보이는 너에 대해서 말이야.
“…….”
여전히 구십 도로 고개를 숙인 채로 그녀의 눈치를 살핀다. 납작 엎드린 나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던, 미소녀가 속눈썹에 맺힌 눈물을 닦아낸다. 내가 스스로를 개똥이라고 말한 부분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좋아. 달래고 달래서 알아내 보자. 방금 일어난 푸른 빛과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을 가진 그녀의 정체를.
“……어, 내 이름은 사부. 김사부야.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줘.”
어색한 기류가 찾아오기 전에 재빨리 손을 건네며 첫인사를 했다.
“……코코아. 아까 X 같은 놈이라 말한거. 그거 그냥 피곤에 찌든 강아지를 닮은 건데. 홧김에 과장한 거야.”
내 손을 잡지는 않았지만, 흘깃흘깃 눈치를 보며 대답은 해준다. 코코아라는 기묘한 이름의 미소녀. 말투에서 가시를 빼니 드디어 미소녀다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확실해졌다. 머리색은 염색할 수도 있는 거지만, 이름을 보니 우리나라 사람은 아니었다.
설마 진짜 내가 항상 꿈꿔오던, 외계에서 날아오기라도 한 걸까.
아니면, 설마 나와 같은 부류인가? 평행우주 어딘가에 또 다른 내가 모험을 하고 있다는 상상을 즐기는…….
나는 상상에서 멈추었지만, 그녀는 일상생활에서 정말로 자기가 용사인 것처럼 행동하는 건가? 그래서 이런 시골까지 모험을 온 거고.
그렇다면, 역시 나도 김사부 대신 클라우드라고 나를 소개했어야 하나?
에휴, 그러면 처음에 그 빛은 역시 상상과 현실을 구별 못 한 내 수많은 착각 중 하나였구나.
내 갈팡질팡하는 표정이 자신에 대한 미안함에서 우러나온 줄 착각한 코코아가 입을 열었다.
“그렇게 미안해하지 않아도 괜찮아. 너도 그렇게 생각한 거지? 내가 너무 예뻐서 다른 마녀들의 시기 질투를 받아왔을 거라고.”
확신했다. 이 녀석의 사고방식 정상은 아니다. 합리화가 엄청난 건지, 자존감이 하늘을 뚫을 정도로 높은 건지. 자신의 입으로 예쁘다고? 그래서 다른 마녀들의 시기 질투를 받아왔다고?
“너, 지금 뭐라고.”
어라…, 나 방금 엄청난 단어 들은 것 같은데.
절대 이런 시골에서 들을 수 없었던, 단어. 내 상상 속에서만 등장했던 단어. 그 단어가 내 이성의 스위치를 끊어버렸다.
“내가 너무 예뻐서…. 뭐야, 김사부. 왜 그래 갑자기.”
“너, 방금 마녀라고 했지.”
“…어? 내가 그랬던가? 모르겠는데.”
코코아를 다시 바라보았다.
위아래로 빠르게. 일말의 흔들림 없는 내 시선에 그녀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왜, 왜 갑자기 다가오는데.”
그녀가 내게서 돌려받은 물방울 목걸이를 꽉 쥐어 보인다. 푸른 물방울이 보석처럼 빛나기 시작했다. 동시에 눈앞에 얼음 입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대로 마법목걸이를 향한 손을 거두지 않으면, 분명 내게 있어 좋지 않은 상황이 닥칠 것이라는 분위기를 감지했지만, 나는 귀신에 홀린 듯 목걸이를 향해 다가갔다.
바라보는 것을 절대 멈출 수 없다.
복숭아와 같은 촉감과 향을 가지고 있을 것만 같은 그녀의 가슴 위에 있는 저 목걸이를.
“그럼, 역시 그 목걸이가 마법을 쓰게 해주는 마법 목걸이였네.”
새하얘 질대로 새하얘진 머릿속, 아무것도 없는 눈밭의 한 가운데엔 오직 푸른 물방울만이 존재했다.
내 모든 신경을 빼앗은 마법무기.
“무,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이건 절대 안 돼!!”
내 말에 셀레나의 얼굴이 더욱 붉어지고, 그녀 주위에 떠 있는 얼음 입자가 더욱 선명해졌음에도. 나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꿈꿔온 상상이 현실이 되어 내 눈앞에 있다고!!!
“한 번만. 한 번만 빌려줘.”
“오지마. 오지말랬다!”
17년간의 욕구가 터져 나오는 순간이니만큼 목소리의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다.
나, 지독한 표정이겠지? 한 번만 봐주라. 꿈꿔왔던 상상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잖아. 나 정말 처음이거든. 그만큼 간절하거든.
죽을만큼 써보고 싶었다고.
마법을.
그렇게 홀린 듯 푸른 물방울을 향해 손을 뻗으려 순간.
“그만 다가오랬지 변태새끼야!!!! 『아, 아이스 쓰론(ice throne)』!!”
훌륭한 타격음. 거대한 얼음송곳의 타격대상자가 나였음에도, 왠지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머리 위로 주르륵 새어 나오는 따뜻한 피.
“진짜 마녀가 있었어. 내가 틀리지 않았던 거….”
17년 동안 줄곧 해왔다. 지루해 터진 시골 일상에 판타지가 더해지는 상상을.
마을 사람들에게 음침한 놈이라고 손가락질받으면서도 상상을 멈추지 않아 왔다.
내가 믿어온 것이 실존한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한 그 순간. 눈시울이 촉촉해진다.
비록, 정신이 희미해지고 있더라도. 괜찮다.
마법이 내 앞에 나타났으니까.
내 상상이 현실이 되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