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탈자들.
“도, 돌려줘 제발.”
한 남자가 바닥 위에 무릎꿇고 있다. 삼포중학교 2학년 재학중인 김판식.
절망감에 목이 메인 그는 말을 제대로 내뱉지도 못한다. 그저 간신히 새어나오는 목소리로 애걸복걸하고 있을 뿐.
해가 마을을 밝히기 전부터 그들의 사정없는 약탈은 시작되고 있었다.
“웃기지도 않는 소리 말고 꺼져.”
무리 중 한 사람이 귀찮은 듯 내뱉었지만, 그 속에는 거기서 한마디라도 더 뱉었다간 정말로 험한 꼴을 보여주겠다는 엄숙한 경고도 내포되어 있었다.
“대장, 오늘따라 먹잇감들이 보이지 않는데?”
그 무리의 행동파. 깻잎머리의 여자였다.
그녀는 자신의 뜨거운 열망을 풀고 싶어 미칠지경이다. 또다른 먹잇감을 낚아챌 발톱을 얼른 꺼내고 싶어 손이 근질근질 할 지경이었다.
“기다려. 완전히 밝아지면 하나둘 기어나올테니까.”
해가 뜨기 전의 어둠을 가장 좋아하는 악날한 하이에나 무리는 삼포마을의 전경이 내려다 볼 수 있는 산마루 약수터에서 날이 밝기만을 기다린다.
✻✻✻
“코코아님? 2017년 한국엔 귀족제도라도 생겼나 봅니다? 거기는 네 자리가 아니라, 쇠꼴 자리인데?”
“그럼, 처음부터 지게를 메고 오지 그랬어.”
크윽, 진짜 말이라도 못하면, 집을 나서기 전에 지게를 메고 가는 나를 서커스단의 광대 보듯 비웃던 사람이 누군데.
그리고 분명 《마녀》라는 고급인력을 사용하는 주제에 고작 그 정도 양을 담을 생각이냐며. 대문 옆에 놓인 리어카를 가져가자고 입을 놀린 게 누군데!!!
그리고 집을 나서자마자 리어카 위로 폴짝 뛰어오른 뒤, 나를 마차를 끄는 말처럼 대하던 그녀였다.
아마 저 건방진 마녀는 이 포지션을 유지한 채, 자신만 편하게 쇠꼴이 있는 곳까지 갈 요령이었다. ……좋아. 절대 내려올 맘 없다는 얘기지.
“근데, 코코아. 그거 알아? 리어카를 오래 끌다 보면, 그 리어카 위에 있는 물건의 무게 정도는 손쉽게 맞춘다는 걸.”
리어카 뒤에 서서 어설프게 새마을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는 코코아가 내 말에 관심을 보인다.
“하하핫, 말이 되는 소릴 해. 흐음, 아닌가? 꽤 좋은 건가? 김사부는 능력이 없잖아? 그나마 인간체중계라도 된다는 거니까.”
쓸데없는 말이 분명했음에도 한껏 진지해지는 코코아.
“하하하, 그렇지? 이런 능력이라도 생긴다니깐. 그래서 말인데, 나 조금 놀라고 있어.”
“…응? 놀라다니? 뭐가?”
“저번에 내가 이 리어카로 커다란 쌀가마를 옮겼거든? 무려 세 포대. 어디 보자 그게 하나에 20kg정도 하니까. 다 합치면….”
“하하핫, 웃긴다. 일부러 그러는 거지? 그리고 당연히 내가 더 가볍잖아? 난 두 포대 정도의 무게인데? 아, 두 포대하고, 두 주먹 정돈가?”
당황한 코코아가 허둥지둥한다.
“애석하지만, 세 포대의 무게와 거의 다르지 않….”
“아니거든~! 정말 아니거든!!! 아무리 방금 고구마를 많이 먹었다고 해도…아무튼 아니거든!!”
“어어어, 그렇게 뛰니깐 더 무거워지려고.”
그 말에 그녀가 리어카 아래로 폴짝 뛰어내린다.
“아, 왜 내려오는 거야? 조금만 더 있으면, 소수점까지 정확한 네 몸무게를 알 수 있었는데.”
“모쏠의 말을 어떻게 믿어~!! 비켜!!, 내가 직접 확인할 거야. 정말 그런 능력이 생기는지.”
코코아가 나를 밀어내고 리어카의 손잡이를 잡는다……회심의 미소를 짓는 나. 엘리트인척해도, 순 맹꽁이였구나.
❉❉❉
“보기엔 비쩍 마른 애가 왜 이렇게 무거운 건데.”
코코아가 이마의 땀을 훔쳐내며, 나를 아니꼬운 눈으로 바라본다.
뭐, 그 정도 비난은 기꺼이 감수하지. 덕분에 산어귀까지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올 수 있었으니까.
“오오, 약간이지만 능력이 생긴 것 같은데? 내 숨겨진 근육들을 알아차리다니. 조금만 더하면, 정말 나를 뛰어넘겠어.”
“당연하지. 마녀학교 엘리트니까.”
아무 의미 없는 겉 칭찬에 만족스러운 표정이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언제 힘든 적이 있었냐는 듯 다시금 한껏 콧대를 높인다.
쉽다 쉬워.
그나저나 얼마나 칭찬에 목말랐으면, 이런 허접스러운 칭찬에도 기분이 좋아지는 거야?
“나는 저기 산에 올라가서 쇠꼴을 구해 올 테니까. 넌 안전하게 그냥 주변에서 쇠꼴을 구하고 있어. 아, 그리고 조심할 것이 하나 있어.”
“조심?”
자신의 힘든 표정을 내게 보이지 않으려, 몸을 돌리고 거센 숨을 내쉬고 있는 그녀에게 진지하게 경고해준다.
“머지않아. 【쇠꼴 하이에나】들이 활개를 칠 거야. 절대. 걔들이랑 눈을 마주치지 마. 많이 당해본 사람으로서 충고하는 거야.”
이명 【쇠꼴 하이에나】
무리를 지어 다른 사람들의 쇠꼴을 약탈해서 내가 붙여준 이명. 어리둥절한 코코아에게 쇠꼴하이에나에 대한 설명을 간략히 해주었다.
“어이가 없어서. 계속해서 너랑 나랑 같은 취급 좀 하지 마. 그런 저급한 무리한테 마녀학교의 엘리트인 내가 당할 것 같아?”
그녀가 자신의 가슴을 세게 치며, 나를 깔아뭉개는 것과 동시에 자신의 엘리트성을 강조한다.
“그래? 그러면, 집에 돌아갈 때 네 몸무게를 완벽하게 파헤쳐줄 테니까. 아, 이번엔 더 확실하게 알 수 있겠다. 엄청난 양의 쇠꼴을 구해올 예정이거든. 비교가 쉽겠다. 그치?”
“아, 알겠어. 절대 눈 마주치지도 않고, 말도 걸지 않을 테니 용서해줘.”
그 말을 남기고 코코아가 도망치듯 자리를 피한다. 훗, 쇠꼴은 아무리 많이 구해도 그렇게 무겁지 않은데. 맹꽁이답다 맹꽁이다워.
마을에서 상당한 거리가 있는 편이지만, 역시 산에서는 평야보다 훨씬 더 쇠꼴을 구하기 좋은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다.
기민한 동작으로 쇠꼴이 될만한 것들을 마구마구 떼어내 포대에 쓸어 담는다. 두 개의 포대가 볼록해질 정도로 쇠꼴을 구했음에도 거대한 산이라 그런지 처음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렇게 흘러내리는 건실한 땀을 닦아낸 뒤, 코코아가 있을 곳으로 돌아왔다. 꽤 괜찮은 양을 얻었기에 코코아가 반 포대 정도만 채웠어도 쿨하게 넘어갈 요량이었는데…….
저 게으른 자식은 저기서 또 뭐 하고 있는 거냐?
“……인정머리 없는 김사부가 알면 날 죽이려 할 텐데. 바람을 일으킬까? 그래~! 그래서 다 날아갔다고 하면……역시 난 엘리트야.”
내가 온 것을 완전히 눈치채지 못하고 리어카 앞에 쪼그려 앉아 홀로 작당 모의를 하는 코코아.
“바보 같은 눈을 한 주제에 눈치는 좀 있는 김사부지만, …뭐 어쩌겠어. 내가 마법으로 바람을 일으켰다는 걸 증명하지 못오오오아아야~~!!”
네에, 바보같은 눈을 한 눈치가 조금 있는 제가 지금 현장을 확실하게 잡아버렸네요.
“아야야야!! 이거 놔주세요. 김사부님. 억울해요!! 억울하다고요.”
불리할 때만 내게 존대를 하는 코코아의 큰눈에 눈물방울이 맺히려 한다.
“그건 안될 말이죠 코코아님. 현장에서 범인을 잡은 형사가 범인이 울먹거린다고 놔주면, 그야말로 이 세상이 난장판 아니겠습니까?”
“사기야. 사기 당한거라고!!! 그 〈초딩〉들이”
“초딩?”
그녀가 내 손을 잡으며 버둥댄다. 그러면 그럴수록 더 아픈 건 자기라는 걸 모르는 모양이다.
“너 말이야 코코아. 일부러 날 혼동시키려고, 내가 알아먹지 못하는 말을 쓰는 것 같은데. 네가 그러면 그럴수록 코코아의 여리고 가여운 귀가 더더욱 빨개질 것 같은데.”
“아야야, 아파 정말 아프다고!! 왜!! 초딩을 초딩이라 한 게 어때서!!!”
작전을 바꾼 코코아가 이번엔 내 손을 계속 두드린다. 그러면 놔줄 것 같아?
“웃기지 마!! 그냥 지금까지 띵가띵가 놀았잖아. 그냥 계속해서 억지 변명거리를 늘어놓는 것 뿐이잖아.”
“흑, 흐애애앵. 왜 내 말을 안 믿어주는 거야? 까까머리에 깻잎머리를 한 애들이었다고!! 정말 내 앞에 나타났다고.”
아, 《초딩》이라는 게 【쇠꼴 하이에나】를 말하는 거였구나. 그나저나 엘리트니 뭐니 하면서 그렇게 나를 무시하더니 결국 너도 걔들한테 당한거야?
“일단 믿어줄게. 그런데 쇠꼴하이에나 자식들을 왜 초딩이라고 부르는 건데.”
코코아의 귀에서 손을 뗐다.
“초등학교 다니는 꼬맹이들을 그렇게 부르는데. 내 쇠꼴을 빼앗은 그 꼬맹이들이 이랬어. ‘누나덕분에 오늘 학교 마치고 실컷 놀 수 있겠다’라고. 그러면 초딩 맞잖아!”
아, 미래엔 국민학교가 사라져버린 모양이네. 하도 코코아의 엘리트라는 말을 들어서일까. 초등학교는 국민학교와 다르게 꼭 엘리트 꼬맹이들만 따로 모아서 가는 곳처럼 들리네.
(※국민학교- 1995년까지 초등학교 대신 쓰인 용어.)
“여기서는 초등학교가 아니라 국민학교. 초딩이아니라 평범하게 국민학생이라고 말해.”
“그게 그거 아냐? 건방진 꼬맹이들이 다니는 학교잖아!! 옛날 초딩들은 순수할 줄 알았는데. 똑같잖아.”
“그래서 내가 말했잖아. 눈도 마주치지 말라고, 어쩌다 그렇게 된 건지 설명이나 해. 나는 분명 쇠꼴하이에나 무리가 보이면 피하라고 했던 것 같은데.”
감정이 풍부한 건지. 그냥 어린애인 것인지. 그때의 상황이 다시 떠올리는 게 분했는지, 딸꾹질까지 해가면서 이야기를 꺼내는 코코아.
“예쁜 누나라고 불러주면서 내기를 하자고 했다. 그래서 덥석 물었다. 이게 끝이네?”
“내가 구한 쇠꼴 반 포대만 걸면, 두 포대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단 말이야. 손쉽게 쇠꼴을 얻을 기회잖아, 너한테 엘리트 소리 들을 기회잖아!!”
마지막 이유가 진짜 이유였던 거냐, 결국 엘리트 소리 듣고 싶어서 그랬단 거잖아.
얘, 알고 보니까 엘리트가 아니라. 그냥 호구마녀잖아?
“그래서, 돌멩이 찾기 게임을 한 거네.”
“응, 나 눈 엄청 좋단 말야!!”
“그 좋은 마녀의 눈으로도 쫓아가지 못한 거네.”
그다음은 뻔했다. 세 개의 컵 중에 하나. 3분의 1 확률. 자신의 능력을 과신한 코코아가 자신만만하게 돌멩이가 숨겨진 컵을 선택했지만, 그 속은 텅텅 비어 있었다는 이야기. 사실 나도 크게 당한 적이 있기에 뒷부분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사기라는 거야 사기!! 눈속임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당하지 않았을 거라고!! 그깟 눈임 《시간정지》 마법을 썼으면….”
“……왜 안 썼냐?”
“다시 도전하려면, 쇠꼴을 모아오래….”
“……시간 정지 마법이라, 너 그거 정말 가능한 거지?”
“30초까지 멈출 수 있어.”
코코아가 물방울을 꽉 쥐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눈을 반짝거린다.
“……가자. 파트너 네 복수를 하러.”
“……파, 파트너?”
살짝 붉어진 코코아가 물방울을 만지작거린다.
“정정, 가자. 호구마녀.”
“지금 호구 마녀라고 했어? 너야말로 파트너…가 아니라, 그, 그래!! 그냥 하인이야. 하인!!”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리어카의 손잡이를 잡는 코코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