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을 쓰려는 데 필요한 것들
인간으로 돌아온 내가 완전한 대(大)자로 누워있었다.
소로 변한 순간부터 가장 그리워했던 자세.
한참을 이 자세로 누워있던 내 눈에 멀리 뚱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코코아가 눈에 들어왔다.
일전의 사고 때문에 욕은 먹을 대로 먹은 나였다. 불필요한 오해는 풀어줄 필요가 있었다.
“어쩔 거야 코코아. 언제까지 그렇게 등을 돌리고 있을 건데. 믿어줘. 변신한 상태라 네 엉덩이의 감촉 같은 거 느낄 수 없었다고.”
땅바닥에 달라붙은 전신의 편안한 감촉에 빠진 나는 고개만 돌린 채 코코아를 향해 소리쳤다.
“입 닥쳐. 너 일부러 울퉁불퉁한 길로 갔잖아!!! 조금이라도 더 들썩거리게 만들어서 내 엉,···엉덩일 느끼려 했잖아!!!”
내가 말만 걸면 입을 닥치라면서 으름장을 놓으며 날뛰는 코코아.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거친 숨을 내뱉으며 나를 다시 매도하기 시작한다.
“진짜 아니라고요, 원래 시골길은 전부 울퉁불퉁 한 거라고요.”
“이대로는 안 돼. 작전을 바꿔야겠어. 일주일 동안 이런 치욕을 계속해 당할 순 없어!!”
그녀가 밭에 털썩 주저앉아 양팔로 무릎을 감싼다.
하지만 막상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지. 얼굴을 찌푸린 뒤, 다시 나를 아니꼽게 바라본다.
“······그렇게 억지로 생각해내지 않고, 혹시 모르니까. 소환마법에 필요한 재료를 모으러 가는 게?”
“편한 소리 하지 마!!! 너는 솔직히 좋잖아. 소로 변한 거 상당히 만족스럽잖아!! 다음번엔 마을 여자들도 태우려고 했잖아!!”
오전 내내 밭을 가느라 지쳐버린 나였다.
그녀와 계속된 말싸움을 이어나갈 힘이 전부 소진된 내가 패배를 선언해버렸다.
비록, 말도 안 되는 논쟁이었지만, 승리했다는 그 자체의 기쁨 덕분인지. 나에 대한 가시가 조금 수그러든 기색의 코코아가 마법을 가르쳐준다고 한다.
“조금 미안한가 보네. 갑자기 마법을 가르쳐준다는 거 보니.”
“배우기 싫으면 말던가.”
“아니. 진짜 배우고 싶어.”
“······그런데 정말 가능한 거야? 평범한 내가 마법을 쓴다는 게?”
“김사부가 평범한 인간은 아닌 건 분명해. 내 진짜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잖아? 그리고 달 두꺼비도 제대로 볼 수 있었고, 보통 인간이었다면, 절대 보지 못했을 거야. 네 몸속에 분명 있어. 어느 정도의 마력이.”
챙겨온 삶은 고구마를 조심조심 까고 있는 그녀가
또 언제 말을 번복할지 몰라 최대한 조심스럽게 물었다.
“시간회귀 마법진의 영향인 거지?”
“아마 그럴걸, 애초에 실패한 시간회귀급의 마법진에 잘못 휘말린 인간은 죽거나 최소한 나사 하나 빠진 삶을 살아가게 될 텐데. 아, 빠지긴 했나?”
“그런 무서운 얘기를 지금 하면 어쩌자는 거냐.”
“됐고, 그건 정확한 요인은 아니야. 뭐, 가끔가다 후천적인 재능을 보이는 마법사가 있다고 들었는데. 김사부 네가 그렇게 얻어걸린 운빨 마법사겠지.”
“그 이론대로면, 나는 통상적인 길을 걸어 나가는 마법사가 아니라, 희귀하고 특별한 길을 걸어 나가는 마법사라는 거네.”
“착각은 자유니까 멋대로 하는 건 상관없는데, 너 아직 마법사 된 거 아니거든?”
코코아의 자비 없는 말투에도 내 머릿속을 요동치는 판타지 엔돌핀.
생각 없이 무식하게 힘만 써서 밭고랑을 갈면서 전부 파괴된 줄 알았던 상상력이 다시금 밀려온다.
나는 무슨 마법을 배우게 될까.
코코아가 얼음계 마법이니까. 얼음은 조금 피하고 싶은데. 차라리 얼음을 깡그리 녹여버리는 화염계?
그래, 차라리 코코아의 상성 마법을 배워야겠다. 그러면, 저 녀석이 나를 얼려버린다고 협박할 때 최소한의 대응을 할 수 있게끔.
그나저나 마법사가 되는 의식은 어떻게 치를까. 우선, 신성한 마법진 하나 정도는 필요하겠지? 거기서, 엄숙한 마법사의 맹세 같은 걸 되뇌게 되는 걸까.
어찌 보면 내 인생이 전환점이 될 수도 있는 순간. 꽤 진지하고 근엄한 마음가짐으로 코코아에게 준비가 끝났다는 신호를 보냈다.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은데, 설마 이 종이가 날 마법사로 만들어 준다는.”
내 커다란 상상과 비교해, 마법사 즉위식은 꽤 소소해 보인다. 코코아가 말없이 내게 내민 손에는 오래돼 보이는 명함 크기의 양피지가 전부였다.
“당연히 아니지. 그건 내 마법사등록증이니까. 이미 내 마력에만 반응하는 거야. 자 봐봐.”
코코아의 목걸이가 아주 미세하게 빛을 발산하자, 텅 빈 양피지에 하나, 둘 글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마력 등급- A급】
【마력 특성- 얼음과 바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마력 등급이 A급이라는 것과. 그녀의 마력 특성이었다.
코코아는 마법 등급은 전부 5가지로 【S급, A급, B급, C급, D급】으로 마력을 구별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급마다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이 전부 다르다고 설명해주었다.
“참고로 마법사학교에서 A급은 단 두 명이었어. 그 두 명 중 한 명이 나였고.”
자기 자랑을 할 때만큼은 얼굴에 생기가 가득한 코코아가 기쁜 듯 얘기를 계속했다.
“걱정 마. 이제 세 명이 될 테니까. 아니다. 이왕 노릴 거면, S급을 노려볼까나.”
“설마 진심으로 말하는 거 아니지?”
“노력으로 안 되는 건 없다고 우리 아버지가….”
“퍽이나.”
그녀가 딱 잘라 말했고, 아버지의 말을 떠올린 나 또한 순순히 그녀의 말에 동감했다.
이 세상은 노력해서 되는 세상이 아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가까이에 있었다.
산증인인 우리 아버지. 삼포마을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일을 나가시는 아버지였지만, 우리 집 밥상 위 반찬 개수는 언제나 3개 미만이었다.
“후우, 조금 떨린다. 이제 등록하면 되는 거야?”
코코아로부터 네모난 양피지를 조심조심 건네받았다.
눈을 감고 나름대로 상상해왔던 《마력방출》이라는 걸. 시도해보았다.
뭐든 마법은 이미지화. 오옷, 내 마력이 몸속을 유영하고 있는 게 느껴진다? 이걸 집중해서 손끝으로 보내면······
“지금 뭐 하냐?”
“내 완벽한 상상 속에서는 이렇게 하면···”
그저 양피지에 붙인 손가락을 부들거리는 나를 게슴츠레한 눈초리로 바라보는 코코아.
“됐고, 손이나 줘봐. 『아이스 니들(ice niddle)』”
코코아의 손끝에서 나온 바늘 크기의 얼음이 내 손가락을 콕 찌른다.
내 손가락에서 새어 나온 동그란 피가 영롱한 푸른 빛을 내며 양피지로 스며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