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수 좋은 날(2)
김사부의 아버지. 김장수의 어깨는 오랜만에 더할 나위 없이 가벼웠다. 평소보다 빠른 속도로 나룻배를 선착장에 정박시켰고, 아들과 새로 들인 둘째 딸 코코아가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가는 발걸음도 신나다 못해 당당했다.
“그 게으름벵이 아들이 아침부터 나무를 하러 가니. 내 그물에도 고기가 걸린 걸까? 여보. 당신 아들이 드디어 정신을 차린 것 같다고~!!”
농사일을 시켜도 항상 하는 둥 둥 마는 둥 하는 아들이 무슨 바람이 들어 스스로 나무를 하러 산으로 갔을까. 아, 코코아라는 새 친구가 생기고 자극을 받은 걸까? 시키지도 않았는데 누렁이를 위해 외식을 시켜주는 코코아의 근면 성실한 모습을 보고 자신도 변해야겠다고 다짐한 건가?
“음하하~~ 이건 팔지 말고 다 같이 구워 먹어야겠지.”
간만에 푸르른 하늘을 보며 큰소리로 웃을 수 있는 김장수였다.
근래 아들에게 너무 막대했다는 생각을 해왔던 김장수. 갈수록 부쩍 잦아진 아들의 원망스러운 눈빛을 보니 죄책감도 알게모르게 가지고 있던 터였다.
그걸 풀어내기 위해서라도 생선국보다는 생선구이를 좋아하는 아들을 위한 밥상을 차려야겠다고 다짐한 김장수였다.
“누렁아!!!!”
하지만, 그 다짐은 이루어질 수 없는 약속이 되어버렸다. 푸른 하늘에서 아래로 눈길을 돌리자마자 산산 조각 났다.
괴상한 스텝으로 곧장 바다로 향하는 누렁이의 모습.
“누렁이~!! 이놈아!!! 그쪽으로 가면 안 된다!!”
우리 집에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일꾼이 대체 왜? 머릿속이 새하얘진 김장수는 일단 달리는 데 방해되는 거추장스러운 생선들을 그 자리에 던져놓고 누렁이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속도를 주체 못한 김장수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버렸다.
몸을 일으켜 다시 누렁이가 있는 갯벌을 바라보았다. 천만다행이었다. 아들놈이 누렁이를 따라온 모양이었다. 역시, 내 아들놈이야. 할때는 하는 농사꾼이라고!!
“잘 데려 돌아가거라!!! 이 애비가 기막힌 생선구이를 해주마.”
분명, 아들놈이 들릴만한 크기로 소리쳤는데. 대답이 없다. 그리고 처음 보는 거대한 칼을 하늘 위로 들어올리고 있다. 싸한기운에 김장수의 몸이 자기도 모르게 떨려왔다.
“정말 귀신이 들려버렸구먼….”
오늘의 생선구이 잔치는 끝났다.
✻✻✻
“아빠, 그러지 마. 제발. 그러지 마.”
겨울이가 또랑한 눈물을 흘리며 말발굽맨의 앞을 막아섰다. 뒤늦게 집에 도착한 겨울이지만, 마당을 나뒹굴고 있는 노란주전자와 깨진 소주병, 없는 돈 꾸역꾸역 모아서 시내까지 가서 구해온 미스테리잡지들을 보자마자 이 상황이 【말발굽맨】의 알코올각성상태라는 걸 알아차린 듯했다.
내가 이렇게 비오는 날에 먼지날리듯 얻어 맞는 이유는 간단했다.
일부러 우리 집 방향으로 도망친 내 모습과 똑같은 진범을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렁이 살인 사건의 모든 혐의는 내가 뒤집어 썼다.
아버지가 술을 마시면, 집안에 한 철 태풍이 지나간 것처럼 온전한 물건이 남아나질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어쩔 수가 없었다.
누렁이를 잃고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오는 아버지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내가 그런 게 아니라며, 진짜 범인은 따로 있다며 억울하다고 항명하는 게 아니라 술상을 차려주는 것이었다.
알고 있었다.나로 변신한 진짜 범인이 누렁이를 반으로 갈라 바다 깊은 곳으로 보내버렸고, 이내 토끼 가면을 쓰고 도망가버렸다는 말을 아버지가 믿지 않을거라는 것쯤은.
아버지는 지금의 내가 어떠한 현실성 있는 변명을 하더라도 믿지 않으실 거라는 것쯤은.
그리고 그 결과가 이것이다. 아버지는 내게 귀신이 들린 놈이라는 말을 내뱉으며 강력한 귀신퇴치펀치를 날려왔다.
……후, 토끼 가면을 따라 나도 도망이나 갈걸. 겁나 아프잖아.
연이은 판단 미스였다. 술로 기분좋게 해서 최대한 내가 받을 피해를 줄여보자는 작전은.
설마 페트병에 든 소주를 원샷해버릴 줄이야.
그때 처음알았다. 작정하고 취하는 것과 기분좋게 취하는 것의 차이를. 각성의 질 자체가 달랐다. 매질의 속도나 강도 모든 퀄리티가 월등히 올라가버렸고, 나는 꼼짝없이 당해야했다.
“……왜 나를 말렸던 거야. 억울하지도 않아? 김사부가 그런 거 아니잖아.”
얼굴이 부어 눈도 잘 떠지지 않았지만, 코코아가 나를 품에 안은 채 열심히 땀을 닦아주고 있었다.
“머리까지 다친거야? 어떻게 이 상황에 웃음이 나오는 건데?”
내가 얼마나 처참하게 당했길래, 처음으로 내 편을 들어주는 걸까.
코코아의 새로운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왔나보다.
“그러게 말이다. 한 번 더 물어봤으면, 따지지도 않고 콜이었는데. 다음엔 꼭 세 번까지는 물어봐주라.”
“이상해. 아버님도 그렇고 너도. 왜 때리고 맞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건데!!”
내가 당하는 걸 좋아하는 코코아마저 이번만큼은 울음섞인 목소리로 화를 내고 있다.
“귀신을 퇴치해준다잖아. 그러고 보면 내게 정말 귀신이 씌였던 걸수도. 지금껏 본 마법도 그냥 귀신한테 홀려서 일어난 해프닝같은…”
“……됐어.”
그렁그렁 매달린 눈물을 닦아낸 그녀가 굳게 결심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야, 너, 지금 무슨 생각하는 건데.”
내 물음에 답을 하는 대신 코코아는 내 머리에 차가운 수건을 올려준 다음, 겨울이와 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야, 잠깐만 겨울이가 상황을 잘 마무리 하고있는 것 같아 보여. 네가 그렇게 열불내며 나설 필요 없는 것 같은데. 왜 그렇게 진지한 표정을 짓는 거냐. 왜 그렇게 전쟁터를 나가는 장수의 뒷모습을 내게 보이는 건데. 그러니까 더 불안하잖아.
“아버님!!! 저랑 얘기좀 하시죠!!”
“……따, 딸꾹, 우리 둘째 딸이 무슨 얘기가 하고 싶은 거니?”
내게 자신이 가진 모든 공격스킬을 쏟아붇느라 이제는 정말 완전히 인사불성으로 취한 것처럼 보이는 아버지에게 큰 제스쳐로.
“아버님!!! 아무리 김사부가 싫어도요!! 비록, 잘못을 했더라도 그런 폭력은 좋지 않은 거라고요!!! 차라리 김사부를 내 자식이 아니라 남의 집 자식을 대하듯 대하세요!! 어색해 어쩔줄 모르는 태도로 말이에요!!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태도로 말이에요!! 때리지 말고 철저하게 무시하라고요!! 무시!!”
……저 미친 마녀가…무슨 말을 하는 거지.
“우리 코코아가 아직 어려서 모르나 본데. 그래. 이게 다 자식들 굳세고 강하게 키우려고. 허허허. 이것 참, 내가 진짜 취하긴 취했나보구나, 너랑 자식교육 얘기를 다 하게 될 줄이야.”
옆에서 아버지를 부축하던 겨울이가 코코아를 보며 고개를 흔든다.
취한사람에게, 특히 술에게 자신을 손쉽게 내주어버리는 우리 아버지에겐 그런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겨울이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럼 에도 굴하지 않은 코코아가 땅바닥에 자신의 시선을 고정시킨 채. 한껏 무거운 말투로…
“애초에 잘못한 거 없어요. 김사부는. 사실 잘못한 건 전부 저예요.”
“잘못한 게 없다니. 아무리 착한 너라도 감쌀 필요 없단다. 너도 봤잖니. 저 귀신에 씌인 놈이 누렁이를 베어내는 걸. 딸꾹~, 걱정 말거라. 나는 내 자식이 아무리 귀신에 씌였어도 버리지 않는단다. 내일 당장 무당을 부르려고 했단다.”
아버지가 달래듯 코코아의 어깨 위에 손을 올리자 그녀가 나를 슬쩍 넘겨다 본 후, 다시 결심을 마쳤다는 얼굴로.
“김사부가 베어낸 건, 진짜 누렁이가 아니었어요. 꽃게를 변신시킨 가짜에요. 사실 진짜 누렁이는 제가 얼려버렸거든요.”
“……우하하, 코코아 양 다시 한 번 고맙다. 우리 몹쓸 아들놈의 친구가 되어주어서 말이다. 하지만, 그런 말까지 하면서 감싸줄 필요는 없단다. 잘못을 했으면, 아무 변명없이 벌을 받는 것이 진짜 사나이란다.”
“김사부가 그랬어요. 아버님은 직접 보지 않으면 절대 믿지 않으실 분이라고. 그래서 지금부터 보여드릴려고요. 아버지가 귀신이라고 여기는 것을요.”
그녀의 손이 물방울 목걸이로 향한다. ……마법이다.
“회귀시계를 놓쳐 이곳으로 떨어진 것도. 누렁이를 실수로 얼려버린 것도. 그걸 아버님께 들키지 않으려 김사부를 누렁이로 변신시켰던것도…”
코코아가 나를 위해서 자신의 잘못을 줄줄이 꺼내고 있다.
굳게 쥔 그녀의 손이 미세하게 떨린다. 자존감 높은 그녀가 나를 위해서 자신이 가장 거북해하고, 싫어하는 말을 꺼내고 있다. 동시에 목걸이가 점점 푸른 빛을 띄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김사부가 귀신이 씌인게 아니라. 사실 전부 마법때문이라고요!!! 그것도 제가 실수… 꺅?!?”
코코아의 얼굴이 화악 붉어진 채로, 자신의 말을 끊어낸 사건의 원흉을 바라본다.
얼굴이 달아오른 건 코코아뿐만이 아니었다.
술에 취해 붉어진 아버지의 얼굴 또한 더 검붉어 졌고, 겨울이는 ……화를 참지 못해 얼굴이 붉어졌구나.
“……김, 김사부? 너 지금까지 내가 하는 변호를 듣지 못한 거야?”
“저는 김사부가 아닙니다. 귀신입니다. 모쏠의 삶을 살다가 죽은 통한의 총각 귀신.”
코코아의 바로 뒤에서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로 이런 말을 하는 내 손엔 그녀의 감색 치마가 쥐여져 있다.
“…당장, 지금 당장 내 치마에서 손 떼!!! 김사부!!! 너 정말 귀신이 되고 싶어서 이러는 거야!?”
치마를 내린 채로 땅에 얼굴을 박고 있는 나는 정말 애석하게도 보지 못하고 있다.
코코아가 입고 있는 팬티의 종류가 무엇인지, 색깔이 무엇인지 말이다.
하지만 나를 제외한 두 사람의 표정을 슬쩍 훑어보니. 꽤 대담한 팬티를 입었을 것만 같다.
“팬티를 주십시오. 그래야 제가 성불합니다. 그래야 제가 이 가여운 아이의 몸에서 나갈 수 있습니다.”
“내가 틀리지 않았어. 저, 정말로 내 아들놈한테 귀. 귀신이 씌였던 거였어.”
“……오빠….”
당황해서 다시 귀신 얘기를 꺼내는 아버지와 달리, 겨울이는 거북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본다. 괜찮다. 아버지만 속이면 다 괜찮다.
나, 진짜 변태로 태어난 걸까. 머리를 굴리고 굴려서 나온 작전이 이런 거라니.
그런데 말이에요. 이런 작전에 당하는 당신들도 문제입니다. 특히 코코아 너도 말이야!! 달두꺼비때도 그렇고, 대체 왜 이런 거에 다 속아 넘어가냐고 왜!!!
“보. 보지 마세요 아버님!!!! 겨울이 너도!!”
내가 절대로 치마를 놓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버린 코코아. 필사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돌리려 애쓴다.
만취한 아버지는 이제는 혼이 나간 채로 계속 조상님을 찾고 계셨고, 겨울이는……계속 나를 바라본다. 그 시선이 전부 자신의 팬티를 향하는걸로 착각한 코코아가 울면서 털썩 그 자리에 주저 앉아버린다.
두 개의 감촉. 하나는 이미 느껴봤다. 소의 신분으로. 하지만 다른 하나의 감촉은 처음이다. 선녀가 짠 비단과도 같은 감촉이네.
……나 정말 성불해버릴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