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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막장 남주가 찾아왔다
작가 : 연새하
작품등록일 : 2019.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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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기운이 솟아난다
작성일 : 19-11-07     조회 : 346     추천 : 0     분량 : 5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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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응?

 

 고개를 들자, 새까만 눈동자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간담이 서늘했다. 꼭 저승사자 같았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못 속여. 신선한 방법이었어. 정신이 온전치 못하다고 하다니."

 

 카일이 말을 끝맺자마자 언제 왔는지 캔디스가 튀어나왔다.

 

 "카일, 그러지 마. 가여운 애야. 안정이 필요하다고."

 

 캔디스는 카일의 팔을 잡아당겼다. 카일은 캔디스에게 딸려가면서 '너 내가 지켜본다. 앞으로 조심해라'라는 눈빛을 강렬히 쏘았다.

 

 어디 무서워서 살겠나. 흥!

 

 나는 카일의 뒤통수에 콧방귀를 뀌고 급히 볼일을 해결했다.

 

 근데 정신이 온전치 못해?

 

 이거 약병 사건이 어찌어찌 마무리된 느낌이다. 내가 미친 거로.

 

 지나가다 마주치는 사용인들이 확신을 주었다. 그들은 나를 멀리하면서도 안쓰럽게 봤다. '젊은 여자가 어쩌다가' 하는 말소리가 들리고 누군가는 치매라 하고 또 어떤 이는 허언증이라며 수군거렸다.

 

 나는 발걸음에 속력을 붙였다. 연구실로 가는 회랑에 발을 들여놓자 캔디스가 나를 보며 웃었다. 다크서클이 깊게 내려온 얼굴로.

 

 조금 전에 보았던 캔디스는 다크 서클이 저만큼 깊지 않았다.

 

 이게 정녕 헛것이구나. 내 지금껏 헛것을 봤어. 허허허.

 

 나는 캔디스를 통과했다. 지나간 게 아니라 캔디스의 몸뚱이를 통과했다. 놀라서 돌아보니 캔디스가 시커먼 눈탱이에 주름을 잡고 웃었다.

 

 나는 캔디스에게 손을 뻗어 이리저리 휘적였다. 캔디스는 손에 잡히지 않았다.

 

 진짜 유령?!

 

 나는 '악' 비명을 지르며 기절을 대비해 팔로 뒤통수를 감쌌다. 대리석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가는 저승길이다.

 

 자 이제 기절할 때다. 까무룩...... 까무룩? 어라?

 

 꼭 감았던 눈을 떴다. 유령이 빙그레 웃었다. 나는 다시 눈을 꼭 감았다. 까무룩! 까무룩!

 

 젠장! 내성이 생긴 모양이다. 나는 눈을 살짝 뜨고 유령을 확인하고서는 우다다 뛰어 연구실의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멜리?"

 

 나는 문을 닫고 여기까지 그 유령이 따라왔나 안 왔나 확인했다. 다행히 연구실엔 들어오지 않았다.

 

 갔나? 연구실 문을 살짝 열었다. 문밖에 유령이 있었다. 나는 문을 쾅 닫았다.

 

 나를 쫓아다닌 시선이 진짜 캔디스가 아니고 캔디스 유령? 근데 왜 연구실에는 안 들어오지?

 

 연구실 문에 붙어 눈알만 굴리는 나를 에드워드가 걱정스럽게 보았다. 진짜 미친년 보듯 했다는 말이다.

 

 "너 괜찮은 거냐?"

 

 "안 괜찮아요. 잠깐 밖을 좀 보실래요?"

 

 "밖에 뭐가 있나?"

 

 에드워드가 의아한 얼굴로 걸어와 문을 열었다. 나는 에드워드 뒤에 숨어서 밖을 보았다. 유령이 나를 보고 있다.

 

 "아무것도 안 보여요?"

 

 "안 보인다."

 

 "그럼 닫아요."

 

 에드워드가 나를 또 뚫어지게 보았다. 그의 얼굴에서 깊은 죄책감이 느껴졌다. 그는 나를 자리에 앉히고 파란 물약을 내밀었다.

 

 "안정제야. 먹어."

 

 "네."

 

 나는 군말 없이 안정제를 두 손으로 감사히 받아 냉큼 들이켰다.

 

 "이거 약효 언제 나타나요?"

 

 "10분이면 될 거야."

 

 나는 가만히 앉아 시간을 쟀다. 째깍째깍 시계 초침 소리가 이렇게 초조하고 급박하게 느껴진 일은 없었다. 3분, 4분 시간이 지나고 10분이 지났다. 초조함이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됐어! 약효 왔어!

 

 나는 당당히 걸어가 연구실 문을 열었다. 캔디스 유령이 까꿍하며 나타났다. 다시 문을 쾅 닫았다.

 

 "방금 먹은 약, 약효 확실한 거 맞아요?"

 

 "널 위해서 어제부터 심혈을 기울인 약이다. 확실해."

 

 안 확실한데.

 

 나는 매일 착석하는 의자에 시무룩하게 앉았다. 대체 저놈의 귀신은 어디서 튀어나온 걸까.

 

 터가 문젠가......

 

 "로드."

 

 "뭐냐?"

 

 "이 집에 수맥 흘러요?"

 

 "수맥?"

 

 “요요 땅 밑에 지층 사이로 좁게 흐르는 물이요.”

 

 배우신 분이 수맥을 모르다니. 자고로 수맥이 흐르면 집에 우환이 생기고 악몽을 꾸고 귀신이 보이고 하는 법이거늘.

 

 나는 수맥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고, 에드워드에게 그림을 한 장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풍채도 크고 머리도 크고 머리털은 없는데, 눈썹은 송충이 같은 사람 그려주세요. 이마랑 미간에는 주름이 잡혔고, 눈을 부리부리하게 떴어요. 입은 앙 다물었고 입꼬리가 아래로 처졌어요. 턱이랑 코에는 수염이 덥수룩하고 거적때기 같은 걸 걸쳤어요."

 

 에드워드는 거침없이 붓을 휘두르더니 수맥이 불러오는 나쁜 기운을 물리칠 달마도를 완벽히 그려냈다.

 

 "와- 대박."

 

 나는 에드워드에게 엄지를 척 들어주었다.

 

 자, 이제 가볼까.

 

 나는 결연하게 연구실 문을 열었다. 유령이 또 까꿍했다.

 

 흥. 또 놀랄까봐.

 

 나는 가소로운 유령에게 피식 웃어주고, 대차게 달마도를 펼쳤다.

 

 잘 가라! 유령!

 

 유령이 고개를 갸웃했다. 안 통한다. 수맥이랑 상관없는 참된 유령이다. 나는 문을 쾅 닫아버렸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우리 찐유령님께서는 왜 연구실엔 안 들어올까?

 

 궁금한 건 해결해야지. 그럼.

 

 나는 다시 문을 열고 유령에게 들어와 보라 손짓했다. 유령이 고개를 저었다.

 

 나는 검지를 들어 유령을 콕 찍고 연구실 안을 콕 찍었다. 그 후 두 손을 엑스자로 들었다. 유령이 말귀를 잘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흠... 그렇군.

 

 나는 유령에게 나도 잘 알아들었다고 고개를 끄덕여주고 문을 닫았다. 에드워드가 나를 이상하게 보고 있었다.

 

 "거기서 뭘 하는 거냐?"

 

 "아, 그냥 바깥 공기 좀 들이마셨어요. 근데, 이 연구실에 특별한 실드라도 있어요?"

 

 "실드?"

 

 "유령을 막는다거나 뭐 그런?"

 

 "보안용 실드가 있긴 하지. 외부인이 들어오면 경보음이 울리도록. 근데 유령?"

 

 에드워드는 가만히 나를 응시했다. 그러다 무언가 짐작한 듯 말했다.

 

 "너 혹시 네가 봤다는 초상화,"

 

 네. 맞아요. 그 초상화. 그거 유령이었나 봐요.

 

 "그 초상화가 유령이라는 거냐?"

 

 에드워드가 믿어주길 바라며 고개를 짧게 끄덕했다. 에드워드는 내게서 돌아서더니 이번엔 노리짝한 액체가 든 약병을 주었다.

 

 "원기회복 드링크다. 심신이 허하면 그럴 수 있다. 네가 어제 먹은 것도 없이 계속 기절해서 그래."

 

 어제 일은 꿈이 아니었다. 그렇게 기절을 해댔으니, 저택 사람들에게 내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파다하게 소문이 날 만했다.

 

 그럼 내게 약병의 받아간 것도 캔디스가 아니라 캔디스의 유령이었고, 그간 나를 따라다니던 시선도 모두 유령이었다는 말이다.

 

 헐... 내가 생사람을 스토커로 의심했네.

 

 캔디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심심한 사과의 말이라도 전하고 싶지만, 내가 널 닮은 유령을 너로 착각해서 오해했다는 말을 했다간 더 미친년이 될 테다. 나는 마음으로나마 사과를 전했다.

 

 "안 먹나?"

 

 "먹어요."

 

 나는 손에 쥐고 있던 병의 코르크 마개를 뽁 뽑았다. 달짝하면서 살짝 쏘는 맛이 났다. 딱 박카스 맛이다. 글로만 읽은 그 자양강장제의 맛을 내가 어떻게 아는지 의문이지만, 아무튼 그 맛이다. 지금까지 먹은 약 중 단연 최고다. 캬-

 

 "하나 더 없어요?"

 

 에드워드가 나를 보는 눈이 심상치 않았다. 물끄러미 보다가 한참 만에 말했다.

 

 "많이 먹으면 안 돼."

 

 "네."

 

 나는 말짱해 보이려고 에드워드를 향해 방긋 웃었다. 에드워드는 내가 안정되어 보이자 또 뭔가를 열심히 만들었다. 나는 그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버릇처럼 책상에 엎드리려고 했다.

 

 그런데 이게 너무 좋은 걸 먹었나, 왜 이렇게 힘이 날까. 너무 힘이 난다. 힘이나. 호랑이 기운이 솟는다. 솟아.

 

 이거 아무래도 기적의 드링크를 먹었나 보다. 넘치는 에너지가 혈류를 타고 몸속을 마구 휘젓는 기분이었다. 지금 상태라면 황소도 거뜬히 들겠다. 뭐라도 해야지 안 하면 한계에 다다른 풍선처럼 펑 터져버릴 것 같다.

 

 나는 넘치는 힘을 쓰기 위해 어슬렁어슬렁 연구실을 배회하면서 화분도 들어보고, 항아리도 들어보고, 소파도 들었다. 근데 이 정도로는 간의 기별이 안 가는 기분이다.

 

 좋아 저거다.

 

 꽤 묵직해 뵈는 궤짝이 한쪽 구석에 있었다. 에드워드에게 한 소리 들을까 봐 살금살금 몰래 궤짝으로 갔다. 그리고 궤짝을 양팔로 감싸 잡고 으쌰 들어 올렸다.

 

 응? 되게 무겁네. 이번엔 으라차차. 거, 더럽게 무겁네.

 

 "멜리, 뭐 하는 거냐?"

 

 헐.

 

 나는 에드워드의 목소리에 놀라 궤짝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비스듬히 들렸던 궤짝이 쿵 떨어지면서 뚜껑이 열리고 나를 향해 엎어졌다.

 

 “꺄악!”

 

 나는 머리를 감싸며 웅크렸다. 천만다행으로 엎어진 궤짝이 나를 쏙 가두었다. 휴-

 

 "멜리! 괜찮나! 멜리!"

 

 "괜찮아요!"

 

 "기다려라. 내가 곧 구해주마!"

 

 에드워드의 다급한 발소리가 들리고 궤짝 밑으로 지렛대가 들어왔다. 에드워드는 지렛대로 궤짝을 들어 올렸다. 깜깜한 궤짝에 밝은 빛이 들어왔다. 태양 같은 에드워드가 반짝반짝 빛나는데, 주변 공기가 변하고 있었다. 아, 또다. 요즘 따라 잦은 것 같다.

 

 "로드."

 

 "왜 그래? 다쳤나?"

 

 "아니요. 온 거 같아요."

 

 바람이 나를 피해가고 공간과 내가 분리되는 기분이었다. 나는 옆으로 스물스물 기어 나와 시곗바늘이 거꾸로 돌아가는 시늉을 했다.

 

 "벌써?"

 

 역시 배운 사람이다. 에드워드는 단박에 알아들었다. 그는 황망히 서랍에서 포켓 펜던트가 달린 목걸이를 꺼냈다.

 

 "받아라. 이때를 위해 준비했다."

 

 에드워드는 목걸이와 함께 돈주머니를 던졌다.

 

 "거기 라스볼트의 주소가 적혀 있으니 일주일 내로 돌아와, 와, 와와와와와와."

 

 에드워드가 버퍼링 상태로 손을 흔들었다. 다른 곳은 모두 그대로인데 내 시간만 뒤로 가고 있었다.

 

 <인생 2회차 로즈벨>은 리메이크됐는데,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어쩐지 많이 뒤로 가는 느낌이었다. 제발 세포분열 상태로만 가지 마라.

 

 

 

 

 

 

 

 <거, 멜리는 네 살이라오. 아시겠소? >

 

 

 

 빛의 속도보다 빨라진 나는 어느새 리온에 있는 집에 와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서 있는 엄마를 닮은 엄마가 아닌 아주머니에게 다가갔다.

 

 아주머니 허벅지에서 내 머리가 왔다 갔다 하는 걸 보니 내 키가 어림잡아 1미터가 될락 말락 했다. 이번엔 네 살쯤 됐나 보다.

 

 키를 확인하고 살포시 돌아서는데, 아주머니가 나를 보고 말았다.

 

 "어머! 꼬마야 너 누구니."

 

 "죄송합니다. 아주머니. 제가 집을 잘못 찾았습니다."

 

 나는 아주머니께 정중하게 배꼽 인사를 건네고 나서 돌아가려다 오늘이 며칠인지 물었다.

 

 내가 떠난 지 일주일이 지났고, 이곳의 시간도 그때부터 일주일이 흘러 있었다.

 

 예상대로 리메이크되면서 <인생 2회차 로즈벨>과 <귀여운 레이디>가 연결되어 두 세계는 시간의 속도가 같아졌다.

 

 다만, 리메이크 전의 <인생 2회차 로즈벨>의 세계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과거의 내가 있던 곳으로 가지 못했다. 내 육체만 회귀해서 어려진 채로 새롭게 시작된 로즈벨의 세계로 와버렸다.

 

 나를 회귀하게 만든 어딘가의 누군가는 그가 사는 책 속 세상도 함께 과거로 돌아가는 완벽한 회귀에 성공했을 테다.

 

 하지만 내가 살던 책 속 세상은 이제 없다. 과거에 내가 살던 곳으로 갈 수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내 몸뚱이만 회귀에 영향을 받아 아이가 됐다.

 

 또, 내가 이 집으로 돌아온 이유는 아마도 내가 네 살일 당시에 있었던 장소와 가장 비슷한 곳이기 때문인 듯했다. 아무래도 앞으로 이 집을 자주 찾아올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래, 그렇게 됐어.

 

 나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살짝 끄덕인 후 뽀작뽀작 현관으로 걸어갔다.

 

 "아, 아니 꼬마야. 너 혼자서 집을 찾아갈 수 있니?"

 

 걱정 마요. 걱정하지 마. 이런 일 한두 번 겪나.

 

 나는 아주머니께 괜찮다는 표시로 손을 흔들어주었다. 집을 나와서는 에드워드가 준 목걸이를 살펴봤다.

 

 라스볼트 가문의 문장이 새겨진 동그란 포켓 팬던트의 뚜껑을 열자, 그림이나 사진이 들어가야 할 자리에 라스볼트 저택의 주소를 적은 종이가 끼워져 있었다.

 

 이거야 원, 미아방지 목걸이네.

 

 나는 돈주머니를 조물딱대면서 어떻게 라스볼트 가에 돌아갈지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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