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요!"
무리였다.
돌연히 내 눈앞에 나타난 금발 금안의 여성. 그녀는 내가 눈 한 번 깜빡하자 진을 구출하고 순경 세 명을 고작 발차기 한 방으로 처리했다.
날카로우면서도 유연하고 강력하며 그 무엇보다 아름다웠던 그녀는...
"『장미의 샬롯』. 그게 내 코드네임. 나중에 다시 만나자."
살인 예고를 하고 싶었나, 그게 아니면 정말로 날 만나고 싶은 건가. 분명 저 샬롯이란 여자는 진과 같은 조직인 것 같은데, 자신의 동료를 해친 녀석을 다시 만나고 싶다면...
"대답해."
"네, 다음에 또 만납시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렇게 날 골목길에 남겨두고 유유히 걸어 나가는 샬롯의 뒷모습. 여기서 나는 어떻게 하겠는가?
투명인간의 능력이 진가를 발휘하는 분야는 바로 『미행』이다.
조직원이 있다는 것도 내가 진의 존재를 어렴풋이 짐작을 한 것도 전부 미행으로 잔챙이들의 대화나 행동을 듣고 봤기 때문이었다.
속전속결, 난 조금의 틈도 용납하지 않고 샬롯의 뒤를 따랐다.
골목길을 벗어난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은 다름 아닌 내 여자친구 민주연이었다. 보이지 않겠지만 난 신속하게 주연의 앞을 막아 혹시라도 샬롯이 그녀에게 손을 댈 경우를 대비했다.
"어째서 여기에 있지? 난 분명 경찰에 신고하고 안전한 곳으로 피하라고 했을 텐데?"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었어요!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쪽이 없었더라면 전 지금쯤..."
샬롯은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주연의 머리로 손을 내밀었다. 난 급히 자리를 옮겨 샬롯의 손이 주연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을 보았다.
"네 남자친구도 구했다. 이제 걱정 말아라, 내 이름은 샬롯. 다시 만날 때는 더 좋은 대접을 해줄게."
"네! 제 남자친구는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너무 걱정이 돼서..."
샬롯은 무릎을 살며시 굽혀 주연과 눈높이를 맞춘 뒤 그녀를 보며 상냥한 미소를 짓고 다시 일어섰다. 그리고 허공에 대며 말하길.
"현진이라고 했던가? 네 여자친구가 널 보고 싶어 하잖아. 얼른 나와."
나오고 싶어도 알몸이라 나가기 힘들었다.
"아무래도 네 남자친구가 죽은 모양이다. 그럼, 조만간 장례식 때 보자."
"저기요!"
주연은 진을 업고 날쌔게 달리는 샬롯의 뒷모습에 외쳤지만 그녀는 외면했고, 주연이 정신을 차려보니 그녀는 이미 자리를 떠난 뒤였다.
샬롯이 농담이라고 뱉은 말이었지만 주연은 마음에 내키지 않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마음을 졸이며, 주변을 둘러보는 것이 애타고 있다는 것을 부각시켰다.
"어?"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힐 찰나, 나는 주연의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었다.
관리를 게을리하지 않아 만지면 미끄러질 듯이 매끄럽고 닿으면 베일 듯 얇은 머리카락 한 가닥 한 가닥이 현진의 손과 공감한다.
다친 데는 어디 없나, 놀라지 않았나, 구해줘서 고맙다, 구하게 해서 미안하다는 온갖 잡담을 입을 열지 않고 오로지 감각만으로 나누었다.
고작 몇 초밖에 되지 않는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그 시간 속에서 주연의 감정을 몇 번이고 느꼈던가.
주연은 한 걸음 두 걸음 다가오더니 이윽고 나를 와락 끌어안고 참았던 눈물을 쏟으며 구태여 말한다.
"고마워."
진지한 분위기에 조금 괴리감을 느껴 농담을 할까 했더니만, 성심성의껏 말하는 주연을 눈앞에 두고 우회적인 표현이나 농담은 옳지 않다고 판단한 뒤 입을 열어 대답했다.
"나도 고마워."
그렇게 주연의 눈물이 그칠 때까지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없었다. 그로 인해 샬롯을 쫓아갈 여지가 되지 않았다.
애초에, 샬롯을 쫓으려는 의지는 주연을 구해줬다는 대화를 듣고 사그라들었다.
그녀는 반듯이 다시 만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그래서 미행은 관두기로 정했다.
그러나 내심에 깊이 박힌 의문이라는 돌이 빠지질 않아 심기가 불편했다.
『장미』라는 명칭을 가졌다면 분명 『석상』의 진 과 같은 조직일 터, 왜 나를 처단하지 않았을까?
경찰에 신고하려던 주연을 무언가로부터 구함과 동시에 진 도 같이 구했다면 과연 누구의 편인가?
진이 언급한 CT연구소는 어떤 일을 하는 곳일까?
"몰라. 됐어."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어차피 나중에 만나면 정확하게 그녀의 소속과 그들의 목적이 밝혀질 테니까. 오늘 초점을 둘 건 내일 주연과 같이 등하교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 그거면 돼. 그거면 된 거야."
난 샤워기의 물을 끄고, 수건으로 대충 몸을 닦은 후, 옷을 걸치고 메아리치는 욕실을 빠져나왔다.
"현진아, 오늘은 우리 집에서 자고 가."
"자고 가는 무슨, 바로 옆집이니까 그냥 우리 집에서 잘게."
무심히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난 그녀에게 말했고, 주연은 다소 실망감이 눈빛에 어려 있었다. 원래라면 억지를 부려서라도 그녀의 집에 남게 하거나 그래? 하며 해맑게 보내줄 그녀였지만.
오늘만은 달랐다. 오늘이어서 달랐다.
명확한 대답을 들려주지 않고, 그저 조용히 내 팔목을 잡을 뿐이었다.
"현진아, 가지 마... 내가 무서워서 그래. 내 부탁 좀 들어줘."
눈동자에 물기가 맺힌 그녀를 바라보자 내 음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다 저조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주연아."
내 대답을 들은 주연은 무게감 있는 미소를 지었다.
주연의 미소를 보니 승낙하길 잘 했다고 여겼다. 그리고, 오늘 일이 그녀에게 얼마나 악영향을 끼쳤는지 깨닫기도 했다.
또한 평범한 일상이 무너지는 것을 본 평범한 사람들은 극도의 공포감과 혼란을 느끼기 마련이다.
따라서 그녀와 가장 가깝고, 가장 친하며, 가장 사랑하는 사람인 내가 곁에서 도와줘야 된다고 생각한다.
"아, 맞다 주연아. 물어볼 게 있었어."
주연의 방 침대. 주연은 베개를 베고 고개를 움직이며 말했다.
"뭔데?"
샬롯에 대한 건 본인에게 직접 듣는 걸로 친다고 해도 주연에 관한 건 주연에게 들을 수밖에.
둘이 누워도 공간이 남는 침대 덕분에 나와 주연은 조금 거리를 벌리고 나란히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불을 끄자 천장에는 환하게 야광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고, 그것들이 모여 하나의 은하를 이루었다.
"내가 너를 구해주고 나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천장을 바라보던 주연이 몸을 틀어 나를 바라보자 심장이 뛰는 걸 인식하지 않으려고 애써 야광 별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게, 최대한 열심히 도망치고 있었는데 반대편에서 여러 명이 몰려오는 거야."
잠깐, 난 분명히 근처에 있는 부하들을 전부 물리쳤는데? 그렇다는 건.
우리 동네에 기지가 있다는 건가?
주연은 이어서 반짝이고 있던 천장의 별을 가리키며 말했다.
"난 잡혔고, 핸드폰은 뺏겼어. 그런데 거기서 샬롯 씨가..."
점차 말끝을 흐리는 주연과 오늘 있었던 일을 생각해 보니 그럴 만도 하겠구나 하고 생각하며 살며시 그녀의 어깨를 당겨 안았다.
"미안해.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할게."
다음 날 아침, 주연에게 자세한 사건의 전황을 다시 들었다.
요약하자면 조직원으로 보이는 남자 여럿에게 핸드폰을 빼앗긴 그녀를 구해준 사람은 예상한 바와 같이 샬롯이었고, 그 뒤 샬롯은 사라졌다.
조직원으로 보이는 남자들을 전부 물리치고, 진 을 구한 샬롯.
그녀는 나도 구했다고 주연에게 말하며, 주연에게는 더 좋은 대접을 해준다는 샬롯의 정체는-
"가자, 현진아."
"그래 주연아."
밝혀지진 않았지만 경계를 늦춰선 안 된다고 생각하며, 이 인물에 대한 생각은 덮어두었다.
평소와 똑같은 아침, 평소와 똑같은 시간, 똑같은 등굣길, 평소와 똑같은 내 여자친구 주연.
"오늘은 독서실, 같이 갈래?"
"현진이 네가? 공부 안 하는 줄 알았는데 다행이네."
걱정이 섞인 그녀의 말과 표정이었지만 나는 애써 웃었다.
"그거 알아? 어제는 바빠서 말 못 했는데 우리 학교에 일진이 있다더라? 그리고 우리 동네 음산한 곳에 사이비 종교 하나가 들어섰대. 우리 반 아이들이 그것 때문에 전학 가자며 난리도 아니고..."
주연의 시끌시끌한 수다를 보니 기력이 돌아왔다는 걸 실감했다.
"일진? 게다가 이단? 갈 때까지 가는 동네구나. 주연아 짐 싸서 확 전학이나 갈래?"
주연의 기력이 돌아온 건 둘째치고 이놈의 동네는 안 좋은 것만 모아 있는 것 같아 내 기력이 떨어졌다.
"난 아무래도 여기가 좋아. 현진이와 내가 함께 자란 추억이 잔뜩 남겨진 동네잖아."
주연은 나를 보고 살며시 웃었다. 그 웃음에는 우리가 자란 이 동네가 불순물에 의해 더럽혀지고 싶지 않다는 소망이 담겨 있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러려면 나는 더욱 힘들게 뛰고 싸워야겠어."
난 웃으며 우스갯소리를 했지만 주연은 받아주지 않았다. 애당초 내가 받아줄 수 없는 말을 뱉었던 것이다.
"정말로 그래야겠어? 나 아직도 무서워 그런 사람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게."
그녀는 가녀린 두 손을 모아 꽉 쥐었다.
"응... 난 이 동네를 바꿔야지. 네가 최대한 살기 좋은 곳으로. 우리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잖아? 만약 다시 좋은 곳이 된다면 주연이 너에게 변화한 동네를 보여주고 싶어. 그때까지 기다려줬으면 해."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과연 내가 잘 해낼 수 있을지, 과연 내가 『석상의 진』보다 강력한 사람들을 무찌르고 평화를 손에 쥘 수 있을지.
그리고- 그를 찾을 수 있을지.
"기다릴게. 우리가 최대한 살기 좋은 곳이 될 때까지 몇 년이고 기다릴 수 있어."
주연은 체념한 얼굴을 하며 말했다. 그녀에게 미소를 안겨주기 위해 '난 얼마나 기다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의 답을 찾은 것 같았다.
영원. 그 이상을 기다릴 수 있다.
난 그녀의 부드러운 손을 잡으며 절대로 이 손을 포기할 수 없다는 마음을 굳혔다.
분명, 앞으로는 힘든 싸움이 될 것이다.
학교 앞 사거리. 학교 앞이라지만 배려란 것 없이 큰 차들도 속력을 줄이지 않고 쌩쌩 달리는 이곳. 그곳에서...
『쾅』
방금 사고가 벌어졌다. 대형 덤프트럭이 주체할 수 없는 속력을 멈추지 못하고 검은 마스크에, 검은 맨투맨에, 검은 면바지를 입은 남자를 쳐버린 것이었다.
일동 정지. 순간 이 사거리의 시간이 멈춘 듯했다.
덤프트럭 운전자도, 정차해 있던 자가용도, 등교하고 있는 학생들도, 식자재를 팔고 있던 가게의 주인도, 손님도, 나도, 주연도.
"죽는 줄 알았네."
난 경악했다. 모두가 경악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야-
"꺄아악!!!"
『덤프트럭에 치였던 사내가 멀쩡히 일어났기 때문이다.』
"말도 안 돼."
내가 사내를 보며 중얼거리자 주연은 내 등 뒤에 숨어 내 팔을 세게 붙잡았다. 분명 그녀도 겁을 먹은 거겠지.
상식적으로 사고할 수 없는 영역, 투명인간과 죽지 않는 남자.
난데없이 벌어지는 돌연적이고 필연적인 상황은 그들을 위협하고, 그것을 넘어서는 자만이 소중한 것을 지킬 수 있으리라.
"야!"
나와 주연 뒤에서 우리를 부르는 소리에 우리는 놀라 돌아보았다.
"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