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연에게 듣던 바로는, 우리 학교에 일진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난 그가 하는 일을 정확히 모른다.
후배나 약해 보이는 학생들의 돈을 빼앗든가, 점심시간에 등교를 하고 점심을 먹고 하교를 한다든가, 매일매일 싸움을 미치도록 한다든가.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지금 중요한 것은 우리 학교 일진이, 우리 학교에서 가장 강하다는 그 사람이 이번 패싸움에 참여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만약 내가 일진이었다면 무조건 참여했을 거라 믿었다.
"『죽지 않는 인간』은 찾았어?"
"아니, 우리 학교는 아니더라. 대신 우리 학교에 일진 있다는 걸 알아. 정보 좀 줄래?"
타는 목을 생수로 축이는 나는 책상 위에 앉아 있었다.
"우리 학교 일진이 왜 궁금한 건데?"
미나와 만남이 끝나고 다음 쉬는 시간. 동우는 가방에서 과자를 꺼냈고, 나와 동우 둘이서 나누어 먹으며 쉬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정확히 말해서 발이 넓은 동우가 우리 학교 일진도 알 것 같아 그에게 정보를 얻으려고 이러는 것이다.
"그 싸움에 당연히 일진도 있지 않을까?"
내가 말을 꺼내자 동우는 점점 차분해졌다.
"난 네가 왜 알고 싶어 하는 건지 모르겠어... 혹시 관련 있는 사람이 있어서 그래?"
차분했지만, 어느 한 구석에 걱정과 소량의 분노가 섞여 있었다.
"응, 조금..."
나도 덩달아 냉정해졌다.
일진이 있으니 그것을 믿고 스무 명이 싸움을 걸었다고 자연스럽게 지레짐작했다. 그 짐작이 맞았는지 틀렸는지 동우의 표정을 보자 확신할 수 없었다.
"현진아, 이번 패싸움. 2학년 농구부와 농구부 선배들과 친한 1학년들이 패싸움에 참가한 거야. 네가 점심시간에 사라질 때 영진이에게 들었어."
난 과자를 입에 넣으며 납득했다. 아직 우리 학교 학생들은 나와 주연이 사귄다는 소식을 일절 모르고 있는 듯하다.
"그럼 왜 싸움이 일어났는지 알아?"
동우는 시선을 떨구며 어두워졌다.
"패싸움의 규모와 동일하게 그 원인도 알려주지 않았어."
어째서지, 어째서 그 두 가지를 숨긴 거지?
싸움의 규모를 숨긴 건 분명 부끄러워서라고 추측한다. 고작 단 한 명에게 스무 명이 전멸했다는 소식이 퍼지면 얼굴을 들 수가 없으니까.
혹은 농구부가 먼저 시비를 걸었다거나.
그것도 어디까지나 나의 추측. 진실은 언제나 명암만이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파헤치고 조사하고 연구하지 않는다면 엄폐된 물건일 뿐.
난 어릴 적부터 의문점을 지나치지 않을 거라며 다짐했기 때문에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동우야. 다시 한번 부탁할게. 일진이 있는 곳을 알려줘!"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다. 일진의 얘기가 나왔을 때 동우가 지었던 표정, 자발적으로 영진이에게 찾아가 정보를 더 얻은 것.
분명 동우는 알고 있다. 그러나 나에게 알려주지 않는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동우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로 젓더니 손에 묻은 과자 부스러기를 털어내고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네가 필사적으로 무언가를 하니까 도움을 안 줄 수가 없다... 이걸 받게 되면 네가 힘든 길에 뛰어들 것 같아서 그랬어."
동우는 누군가의 학년, 반, 이름이 적혀 있는 메모지를 내게 건넸다.
"저기 현진아. 어디까지나 궁금해서 이러는 건데, 왜 이렇게 『죽지 않는 인간』과 패싸움에 집착하는 거야?"
동우의 입장에서 생각해봤을 경우 그에게는 그저 단순한 도시전설이자 시간을 때우기 위한 흥미로운 루머일지도 모른다.
SNS에만 떠돌고 뉴스에는 나오지 않았으니 사람들은 그것이 거짓이라 믿을 거고 아무리 사실이라 하더라도 뉴스는 거짓을 내보내야 세상의 혼란은 피할 수 있다.
있을지도 없을지도 모르고, 심지어 『죽지 않는 인간』을 보지 못한 동우로서 동우에게는 하찮은 유언비어일 거라 생각할 것이리라.
그러나 난 다르다.
"나중에 꼭 알려줄게."
아무리 날 위해 정보를 모아주고 무리하지 말라며 걱정도 해주는 친구라지만 기껏해야 개학식 날 사귄 반 친구다.
아직 얼굴을 본 건 2일밖에 지나지 않은 얕은 관계이니 발언을 삼갔다.
그때 보았던 동우의 표정은 체념과 탄식이 섞여 있었다. 내 마음이 불편했다.
그저 동우가 준 메모지를 손에 꼭 붙들고 3학년 7반으로 향할 뿐이었다.
H 모양으로 생긴 우리 학교는 건물과 건물 사이를 잇는 통로를 지나야만 3학년 교실에 다다를 수 있는 구조이다.
"이런, 시간이 없네."
동우와 얘기하며 과자를 먹는 동안 시간을 꽤 소비했는지 수업이 시작할 때까지 2분 남짓한 시간이었다.
혀를 한 번 차고 복도를 달리기 시작하였다.
깔끔한 대리석, 벗겨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슬리퍼로 그곳을 달리니 평소에는 느낄 수 없던 들뜬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무슨 수로 찾지?"
3학년 7반 교실 앞문, 나는 바싹 마르는 입술을 깨물며 고뇌했다.
"1학년? 왜 여기 있니? 누구 찾는 사람 있어?"
긴 흑발에 백옥 같은 피부, 쌍꺼풀이 짙으며 눈꼬리가 쳐져 있어 나른해 보이는 여학생의 목에 걸려 있는 학생증.
그것에 비친 내 모습에 나는 잠시 멈췄다.
학생증에 적혀 있는 이수정이라는 이름을 보며 말했다.
"아, 네! 강성진 선배님을 뵙고 싶습니다. 친한 형에게 들었거든요."
'물어보는 것보다는 친해지려는 게 접근하기 쉽지.'
내 말을 듣자 몹시 당황해하며 시선을 교실 내부로 옮겼다.
그녀의 태도가 당황으로 바뀐 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학교의 일진을 만나고 싶다는 1학년의 부탁을 쉽사리 들어줄 수 없으니 말이다.
"내가 성진이랑 친해서 그런데, 오늘 성진이가 기분이 매우 안 좋아..."
나는 짧게 고민하다 매력적인 그녀의 눈을 보며 곤란한 어조로 말했다.
"어떡하죠... 꼭 성진 선배와 만나야 하는데."
수정 선배는 시선을 이리저리 굴리다 결국 고개를 숙이고 주먹을 꽉 쥐었다.
"내가 성진이랑 친해지도록 도와줄게, 그럼... 내 부탁 좀 들어줄 수 있니?"
간절해 보였다.
"네 감사합니다. 그럼 부탁이라는 게 뭐죠?"
가슴에 손을 얹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미소를 얼굴에 띠웠다. 참 표정이 다양한 인물이라고 생각이 드는 와중에 그녀가 입을 열었다.
"어제 우리 학교랑 인홍고등학교랑 패싸움이 일어난 거 알고 있니?"
'인홍고등학교 학생과 싸웠던 거군.'
뜻밖에 이득이 굴러 들어와 동공이 커진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싸움 때문에..."
복도와 교실을 채우는 학교의 종소리에 수정 선배는 어색한 듯 웃으며 잠시 말을 멈췄다. 나는 손목의 시계를 보며 어색함을 피했다.
"점심시간 후에 다시 얘기하는 걸로 하자."
"네, 알겠습니다."
종소리가 끝나자 우리의 얘기가 끝났다.
"일진이랑은 만나 봤어?"
동우가 자리에 엎어져 있던 나의 어깨를 주먹으로 툭 치며 말한다.
"아니, 그것보다 이수정이라는 선배 알아?"
동우는 계속해서 사람의 정보를 캐는 나의 행동에 질린 표정이 잠시 보였지만 친절하게 대답해주었다.
"전교 부회장. 좋은 분이셔. 보아하니 허탕치고 돌고 있구나?"
동우는 내 어깨를 쳤던 팔을 내 어깨에 올려 날 끌어당겼다.
"꼭 그런 것만은 아니야. 일진과 관련이 있는 사람을 만났어, 그 사람의 얘기를 듣고 일진에게 간다면 『죽지 않는 인간』에 대한 정보도 들을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다른 손으로 내 머리를 마구 흩트렸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응원할게."
동우는 희소를 띠웠지만 나는 그의 표정을 보지 못했다. 볼 여유가 없었다.
그토록 원하던 『죽지 않는 인간』을 만날 수 있고, 그와 관련이 있는 일진과 일진과 관련이 있는 이수정이라는 선배와 접점이 생겼으니 나머지 일은 모두 순조롭게 풀릴 것이라며 자부했었다.
'이대로만 간다면 우리 마을에 남아 있는 조직원들까지 전부 없앨 수 있어! 그렇게만 된다면 약속을 지킬 수 있겠지.'
점심시간.
난 점심을 먹은 뒤 곧바로 3학년 1반으로 향했다.
앞문에서 어두운 표정을 띠며 불안해하는 모습이 어려 있는 수정 선배, 섣불리 다가가기 힘들었지만 그렇다고 다가가지 않을 수도 없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카락과 짙은 쌍꺼풀이 눈에 띄는 그녀가 날 발견하는 순간 그녀의 얼굴에 어두운 표정은 온데간데없었다.
"제시간에 왔네?"
밝은 미소.
난 그것을 보자 본래 없던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네, 선배와 약속이니 늦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순간 내 말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던 선배는 고개를 갸웃거리다 눈빛이 바뀌더니 장난스럽게 웃으며 내게 말했다.
"사회생활 잘하네?"
"과찬입니다."
수정 선배의 칭찬에 난 웃어 넘길 수밖에 없었다. 왜인지 모르게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고나 할까, 어색함이라고 보기에는 거리감이 있는 걷잡을 수 없는 분위기였다.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고 해야 하나.
"뭐라도 마시면서 얘기하는 게 좋겠지?"
"네. 그러도록 하죠."
그리하여 1층 자판기에서 수정 선배의 돈으로 음료수 두 개를 사고, 운동장 스탠드에 앉아 누구 한 명이 입을 열기만 기다렸다.
"그러고 보니 난 네 이름을 모르는데 네 이름이 뭐니?"
순간 멈칫한 나는 아직 내 이름을 모르는 그녀에게 입을 열었다.
"제 이름은 정현진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명찰을 보면 해결이지만 난 교복에 명찰을 달지 않았다.
그냥 투명인간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쓸데없는 자부심에 사로잡혀 내 정보가 새어 나가는 일을 염려한 것 뿐이었다.
"난 이수정이야."
수정 선배는 손을 내밀었고, 나는 아직 때가 아니라는 듯이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아 선배 무릎 위에 살포시 내렸다.
"네 수정 선배, 무슨 일을 저에게 맡기고 싶은 건가요?"
잠시 이어지는 침묵 속에서 수정 선배는 잠시 먼 산을 바라보다 내 눈동자로 초점을 옮겼다.
"그전에 네가 성진이와 친하게 지낼 수 있게 도와주는 게 먼저야."
나는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일단 성진이에 대해 알고 있는 게 뭐야?"
강성진 선배. 학교의 일진이라는 것 외에는 내가 아는 정보는 하나도 없었다.
'설마 처음부터 고난도의 문제가 나올 줄이야.'
한참 동안 생각할 수 없기에 되는대로 대답했다.
"생각보다 좋은 사람이라고 전해 들었어요. 그런데 왜 일진으로 불리는지 이해가 되지 않네요."
그렇다. 조금의 의문이 있었다.
본인의 기분과 상황까지 알고 있는 전교 부회장과 친분이 있는 강성진 선배가 왜 일진으로 알려져 있는지, 현재의 나로서는 알 도리가 없었으니까.
"그건 나 때문이야... 내가 나약했고, 내 주의력이 없었어."
영문을 알 수 없어 감싸는 것도 책망하는 것도 할 수 없었다.
"돈을 빼앗거나, 이유 없이 때리거나, 학교를 무단으로 빠지거나, 나쁜 아이들과 어울리지 않는... 평범한 아이야."
그렇다면 만들어진 일진일 가능성이 있다고 추측했다.
"오해 때문이었어. 대부분 성진이와 친한 아이들은 알지만 나머지는 전부 모르거나, 혹은 일부러 그렇게 믿는 것뿐이지."
'일부로... 나는 그 단어를 곱씹으면서 의미를 씌워갔다.'
"나는 이 학교의 전교 부회장이야. 나를 봐서라도 이제 성진이를 일진으로 보지 말아 줬으면 해."
의미를 씌웠지만 역시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다른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성진 선배는 수정 선배에게 덧없이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말이다.
"네!"
나는 그들의 공존을 있는 힘껏 지지하며 대답했다.
"그럼 이걸로 성진이에 대한 건 대부분 알았다고 볼 수 있어. 나머지는 알아가면서 찾는 게 재밌을 거야."
그녀가 자아낸 미소에서 좋아함을 뛰어넘는 감정을 발견했다. 그녀의 모습에 나는 따스함을 느끼고 미소가 절로 번졌다.
"네, 수정 선배."
나는 그렇게 대답하며 그들을 뒤에서 조용히 응원하고 있다고 마음속으로 외쳤다.
"그럼 선배의 부탁은 뭐죠?"
수정 선배는 내 질문에 알아차렸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 긴장이 서린 눈빛을 내게 보냈다. 나는 그녀의 눈빛을 받았고 그대로 자세를 정갈하게 만들었다.
"성진이가 다른 학교 학생들과 『전쟁』하는 걸 막아줬으면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