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조용한 택시의 안.
뒷자리에 앉은 나는 탁한 눈동자로 초점 없이 창밖에 지나가는 배경을 넋 놓고 바라봤다.
'난 어디로 가는 걸까.'
어디로 가는지 몰라도 확실한 것은 하나.
'나는 곧 버려진다.'
고아가 되어 보육원이나 고아원에 보호받는 아이는 만 18세가 되면 보호종료가 되어 지자체에서 지급한 오백만 원을 받고 사회로 나가떨어지게 된다.
어딘가 잘못됐다.
그러나 그렇다고 생각하면서도 일일이 따지다 보면 결국 나는 버려져야 된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그리고 그 결론은 나는 부정하지 않았다.
부정하지 못한 것이다.
"여기서 내려주세요."
정적을 깨는 그녀의 목소리, 내가 자라고 있는 보육원의 원장이었다.
'이제는 아마 내가 길러졌던 보육원의 원장이 되겠지.'
원장은 택시의 문을 열고 나가 뒷좌석의 문을 벌컥 열었다.
그녀는 쉽사리 내 눈을 보지 않았다. 아니 보지 못한 거겠지.
"저기... 해준아."
택시의 뒷좌석 문을 닫자 택시는 길을 따라 서서히 사라졌고 이름 모를 동네에 도착한 나와 원장만이 대화를 주고받았다.
불빛이라 함은 유흥업소와 24시간 편의점, 모텔과 같은 숙박업소가 땅을 지키고 있었고.
"저기 보세요. 가운데 세 개의 별이 나란히 있고, 가운데 별을 중심으로 위아래로 하나씩 별이 있어요. 저게 오리온자리라고 하네요."
원장은 그 별을 바라보지 않았다.
"해준아..."
"교통사고로 가족이 모두 죽고, 제가 처음 보육원에 맡겨질 때 기억하세요?"
참자. 이 말이 내 뇌 속에서 계속 빙빙 돌았다.
그래도 나를 키워줬던 사람이고,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고쳐준 사람이었으니까.
"그때부터 저에게 계속 신경 써주셨죠. 오히려 예전 가족보다 더 사랑을 주신 것 같았어요."
그런데. 왜 이렇게 슬픈 걸까? 왜 이렇게 화가 치밀어 오를까?
"해준아... 미안해..."
원장은 눈물을 흘렸다.
내가 자라던 보육원은 사람이 많지 않았다. 내가 들어왔을 때 내 위에 있던 한 명의 형과 두 명의 누나뿐이었다.
"차라리... 차라리 아무것도 주지 않는 게 더 나았어."
나도 덩달아 눈물이 흘렀다.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밤마다 부모님의 얼굴이 떠나가질 않아! 겨우 원장님 덕분에 잊을 수 있었는데, 이렇게 대못을 박으면 나보고 어쩌라는 말이야!"
원장은 털썩 주저앉아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이제 그만해... 그 돈 주고 빨리 끝내요, 원장님."
가방에 삐져나와 있는 흰 봉투 하나.
나는 주저앉아 울고 있는 원장 대신에 집었다.
원장은 내 손을 뿌리치거나 막거나, 잡지 않고 그저 앉아 울기만 하였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다시는 만날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자란 보육원은 사람이 많지 않았다.
내가 들어왔을 때 내 위에 있던 한 명의 형과 두 명의 누나뿐.
원장은 분명 그들도 나와 똑같은 방식으로 버렸겠지. 저렇게 울면서, 동정심을 유발하면서.
그 눈물의 의미는 알고 싶지 않았다. 거짓이든 진실이든.
어차피 둘 다 나를 상처 줄 게 분명하니까.
나는 걸었다. 계속 걸었다.
걷고 걷고 걷다 보니 어느덧 해가 동트고 하늘이 파랗게 물든다.
"이제 어떡하지..."
발바닥에 감각이 없고 12월의 온도를 들숨으로 가늠할 정도로 오랜 시간을 밖에서 보냈다.
그러나 이 생활을 끝낼 방법은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마치 절대로 끝낼 수 없는, 애초에 무엇도 시작할 수 없게 만드는 거대한 벽이 무너지지 않았다.
"젠장..."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지." 중학교 때 들었던 말은 누구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인가 다시금 깨달았다.
나에게는 어떠한 것도 적용되지 않았다.
나에게는 어떠한 것도 소속되지 않았다.
퍽.
모르겠다.
아무래도 쓰러진 것 같았다.
차라리 여기서 끝났으면 좋겠다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바라고 있었다.
눈을 뜨면 어머니와 아버지가 계시고 "늦잠을 잤구나?"라며 말했으면 좋겠다고 바라고 있었다.
"이봐."
아무래도 현실은 언제나 내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
"당신 갑자기 쓰러졌어. 근데 몇 살인지 물어봐도 될까?"
일어나서 내가 누웠던 장소를 확인해 보니, 나무로 만들어진 벤치였다.
무의식적으로 바지 주머니에 들어 있는 봉투를 만졌다.
'분명 바닥에 쓰러졌는데... 벤치까지 옮겨주다니, 정말 고마운 분이네.'
해는 이미 중천에 떠 있었고 거리에 많은 인파가 지나가며 나와 나를 구해준 한 청소년을 바라본다.
나를 구해준 청소년은 짙은 눈썹과 적은 머리숱을 가지고 있었다.
붉은색 오리털 패딩에 검은색 바지는 교복처럼 보였다.
매캐한 담배 냄새.
"괜찮아 보이니 다행이네. 그럼 난 이만 가볼게."
대화의 흐름이 부자연스럽다.
푹 자고 일어난 두뇌를 활용해 재빠르게 상황을 파악하려고 하는 순간.
주머니에 들어 있던 봉투가 사라져 있었다.
분명 눈을 뜬 순간 무의식적으로 봉투를 손으로 만져 안심을 했지만 나를 도와준 청소년이 자리를 뜨자 사라져 있었다.
"도둑이다!"
일어나자마자 또 달렸다.
맺히는 눈물에게 쌍욕을 하며 열심히 달렸다.
도무지 잡히지 않는 녀석의 등을 보자 속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고 식은땀이 온몸을 적셨다.
한참을 달려 어느 골목에 들어서자 내 봉투를 훔친 녀석의 발걸음이 멈췄다.
막다른 길이었다.
"씨발... 이 개자식이... 남의 돈을 훔쳐?"
"아... 저기... 그게 있잖아?"
나는 분노와 광기를 띄고 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러나 그는 당황하지 않은 눈동자로 연기하는 느낌이 보였다.
낌새가 뒤숭숭하고 뒤통수가 서늘했다.
"미안."
내 돈을 훔친 녀석이 내 돈 봉투를 들어 씩 웃었다. 나는 어이가 없어 실소가 나왔다.
떵.
둔탁한 소리에 나는 쓰러졌고, 돈을 훔친 녀석에 다른 녀석들이 합세하여 총 네 명이 나를 밟고 있다.
제대로 사고를 할 수 없었고 움직일 때마다 내 얼굴을 칼로 그었다.
'어째서... 어째서 나는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 거야. 그만할 때도 됐잖아, 그만 힘들 때도 됐잖아.'
평범이 행운이고 불운이 평범한 것이 내 인생.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게 하루의 희망.
전부 끝났으면 하는 게 궁극적인 소망이었다.
'여기인가, 내가 죽을 수 있는 장소가. 드디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건가... 부모님은 분명 위에서 기다리고 계시겠지. 적어도 깨끗한 모습으로만 갔으면 좋겠네...'
막상 죽을 때가 되니 너무 억울했다.
버려지고, 버려져서, 당하고, 또 당하는 인생에 신물이 났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주마등이 주마등이 지나가긴 개뿔 화가 치밀어 올라 아무것도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 키득키득 웃으며 돈의 액수를 확인하는 빨간 패딩의 녀석을 노려 보았다.
"너희들 뭐야!"
그 순간 골목을 울리는 어느 남자의 목소리가 내 귀에 녹았다. 경찰이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한 명의 남성이었다.
"안 돼! 위험해!"
맨몸으로 네 명을 상대해야 하는 남성에게 나는 외쳤다. 그중 한 명은 야구 배트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는 알고서도 내 아우성을 무시했다.
터벅터벅 골목의 안쪽으로 들어오더니.
바지 뒤춤에서 자그마치 한 뼘 길이의 회칼이 나왔다.
피직.
"으아악!"
텅.
야구 배트를 가진 남자가 배트를 떨어트리고 쓰러졌다. 쓰러진 그는 눈을 부여잡으며 골목의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도, 도망쳐!"
내 돈 봉투를 가지고 있는 남학생이 그렇게 말하자 내 눈에는 오로지 그밖에 보이지 않았다.
'저 녀석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잡아야 돼. 잡아서...'
나는 남자의 회칼을 잠시 빌려 도망가는 녀석의 다리를 향해 던졌다.
푹.
"으아아악!"
꽤나 깁숙이 들어간 회칼은 빠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다른 두 녀석은 쓰러진 두 명을 버리고 도망갔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눈물을 질질 흘리며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며 애원하는 그의 모습은 정말로 내 머리를 뒤죽박죽 섞어버리는 느낌이었다.
뒤통수를 치고, 나를 실컷 두들겨 패고, 이제 와서 동정심을 유발한다면 나는 도대체 어떤 감정에 초점을 두어야 하는가.
푹.
"윽!"
나는 종아리에 박힌 회칼을 뺐다.
"훗, 미안."
나는 회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