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일찍 일어나 금정산에 올라 명상을 하며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예전엔 익숙했던 것들이 지금은 낯설기도 했다.
그만큼 내가 세속에 물들어 살아가고 있었던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세 번 사형들에게 식사 공양을 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특별히 할 일이 없어 금정산에서 명상이 끝나면 선유도를 다시 수련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보내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아내에 대한 미안함으로 조금 불편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불편함으로 인해서 서울로 다시 올라가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 서울로 올라간다면 난 또 다시 일상의 반복된 생활을 하게 될 것임을 알고 있어서였다.
그렇게 하루하루 보내는 나에게 사형이 찾아왔다.
“헉.. 헉....”
거친 숨을 몰아쉬는 사형의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이왕이면 저 아래서 수련을 하지 이곳까지 왜, 올라가 사람 힘들게 하누.”
“오랜 전엔 항상 이곳에서 수련을 하였습니다. 왠지 모르게 이곳이 편합니다.”
사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사는 것이 그리 쉽지 않지?”
“내 뜻대로 되지 않아 속이 상하기는 합니다.”
“그렇겠지. 어디 그 속이 상한 이야기 좀 들어 보세.”
그 이야기를 하면 석 달하고 그믐까지 이야기를 해도 다 끝나지 않을 것이다.
“아닙니다. 그냥 지쳐서 쉬기 위해서 내려 왔습니다.”
“아니긴, 사제 얼굴에 다 나와 있어. 나 힘들어 죽겠어요. 하고 말이야.”
참, 사형이 관상을 좀 본다는 걸 깜빡했다.
“후우.”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나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날 얼마나 못난 놈으로 볼까. 명색이 선유도문의 계승자인 나를 말이다.
난 사형에게 모든 걸 이야기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니 속은 편하다. 그래서 고향이 좋고, 가족이 좋다 말을 하나 보다.
“허허!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그렇게 근심했는가? 우리 사제께서.”
농담이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사형, 저는 심각합니다. 세상에 홀로 버려진 것 같습니다. 모두가 절 외면하는 그런 기분입니다.”
“하긴 사제는 어렸을 때부터 외로움을 많이 타곤 했지.”
“사형, 이건.....”
뭐라고 말을 하려다 그냥 말했다.
“허허, 사제도 많이 늙었어. 이제 마흔 한 살 밖에 되지 않았는데 말이야. 인생의 전성기에 해당하는 시간을 이렇게 보내다니......”
사형이 날 질책한다.
“이보시게 사제.”
“말씀하십시오.”
“살면서 이런 말들을 들어 보았을 것이네. 고통을 참을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말이야.”
난 고개를 끄덕였다.
인문학을 하시는 분들이 이렇게 이야기를 하지만 사실 난 인문학을 배우고 공부하시는 분들을 제일 싫어한다.
그들이 하는 말은 그냥 말장난 같다. 그렇듯하게 포장을 하지만 좀처럼 이해가 안 되는 말들이 많다.
“사제는 경전에는 까막눈이니 경전을 읊어 봐야 소용없겠지. 그럼 세상사에 비유해서 이야기를 해 보면..... 그렇지. 만약에 인신매매범들이 자네 아내를 납치하려면 자네는 어떻게 하겠는가?”
“그들을 반쯤 죽여 놓은 뒤에 아내를 구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래. 바로 그거네.”
난 사형을 보았다.
“가상현실 월드라는 게임이 자네의 소중한 것을 빼앗아가려고 하면 자네가 그 가상현실 월드로부터 소중한 것을 지키면 되지 않는가?”
“하지만 가상현실 월드는....”
“사제.”
“......!”
“눈을 돌리면 다른 세상이 보이는 것이네. 사제가 가상현실 월드를 직접 경험해 보고 장점과 단점을 파악한 후에 다시 가상현실 월드에서 소중한 것들을 다시 되찾아 오면 되는 것 아닌가?”
하아,
“자, 내려가세. 내 사제에게 보여 줄 것이 있네.”
사형이 날 데리고 간 곳은 무승들이 선유도를 수련하는 연무장이었다. 그런데 그곳에 무승들은 보이지 않고, 일반 사람들이 선유도를 배우고 있었다.
사형은 그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 발걸음을 멈추어 세우더니 나에게 말했다.
“저 사람들이 보이나?”
“그렇습니다. 그런데 무승들이 있어야 할 연무장에 저들이 왜, 있는 것입니까?”
“저들은 모두 가상현실 게임 월드를 하는 사람들이네.”
이게 무슨 똥을 된장 담구는 소리를.
“저들이 왜?”
“그 가상현실 게임 월드에서 자신들이 익힌 무예와 무술을 사용하면 보다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하여 저들에게 선유도문의 일반 절기를 가르치고 있다네.”
선유도문의 일반 절기라는 말에 그들의 동작을 유심히 살폈다.
청련암에 선유도를 배우러 오는 사람들이 있다. 이건 어디까지나 심신의 건강 단련을 위해서 기초적인 수련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연무장에서 선유도르 배우고 있는 사람은 그런 기초 수련법이 아닌 선유도문의 절기로 일반인에게는 공개되지 않는 그런 무예들이었다.
다시 말하면 선유도문의 절기를 배우는 사람은 선유도문의 전승자란 말이기도 했다.
“절기를 일반인에게 개방을 하였단 말입니까?”
말도 안 된다 싶어 물었다.
“오해는 말게. 그래도 사제가 전통 선유도문의 무예를 계승한 38대 선유도문의 계승자 중 한 명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을 테니까.”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사실 청련암에서 선유도문의 무예를 모두 통달한 사람은 단 둘 뿐이었다.
한 분은 지금 선유도문의 문주이자, 나에게는 사숙이 되시는 현정 장문인이시고, 다른 한 사람은 나다.
청련암의 무승이라면 모두가 선유도문의 무예를 익히지만 깨달음을 얻어 계승하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렸을 때부터 요리에 취미가 있어 사형들과 사숙들에게 요리를 만들어 주며 그분들의 가르침을 받아 간신히 그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지금 현 문주이신 현정 장문인께서는 장풍을 날릴 수 있는 그런 경지에 올라 있다. 실제로 현정 장문인은 장풍으로 성인 남자를 밀쳐버릴 만큼 고강한 고수 중에 고수였다.
선유도문의 심법에는 기, 즉 내공을 몸에 축적시킬 수 있는 방법이 수록되어 있는데 일반적인 단전호흡이나 다른 내가 심법과는 조금 달리 탁한 기운을 정화시켜 몸에 축적을 시킬 수 있는데 기운을 정화시키는 만큼 내공을 축적하는 시간도 오래 걸리는 것이 조금 아쉬울 뿐이었다.
나는 사숙님과 조금 다른 경우로 장법보다는 권법과 검법에 뛰어나다.
나 또한 몸에 내공을 지니고 있다. 물론 사숙만큼은 아니지만 나 역시 손날로 차돌은 우습게 부숴버릴 정도는 된다.
하지만 나의 손에 검이 들리게 되면 그때는 상황이 달라진다. 선유도문은 우리 민족 무예의 검법 중 3대 검법에 들어갈 정도로 뛰어나기 때문이다.
“저들이 배우는 건 선유도문의 껍데기에 불과할 뿐이네. 그건 자네가 더 잘 알고 있지 않나?”
그래도 이건 아니었다.
“그런데 왜? 저렇게 배우다 보면 더 높은 경지를 추구하고자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때 저들에게 불문에 귀의하라고 하시겠습니까?”
선유도문의 무예는 활법이 아닌 살법이었다. 그러한 무예를 일반인에게 가르친다는 건 지극히 위험한 일이었다.
“아니, 저들이 원하는 건 그저 가상현실 월드라는 게임을 보다 재미있게 즐기기 위한 그런 몸부림에 지나지 않아. 저들이 저렇게 배운 후에 조금 적응이 되면 그쯤에서 그만 배우는 거지. 우리는 저들이 원하는 만큼만 가르쳐 주면 될 뿐이네.”
“장문인께서 그리 하라 하였습니까?”
가상현실 월드라는 말에 괜한 반발심이 생겼다.
사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지금 내가 이렇게 방황하는 것도 다 그 빌어먹을 놈의 가상현실 월드 때문이다. 그러니 좋게 보려고 해도 볼 수가 없다.
“그렇다네. 일반 절기에 한해서 공개하라 하였다네.”
갑자기 짜증이 밀려왔다.
“저 말고 선유도문을 이을 무승이 나왔습니까?”
사형이 침묵했다. 난 대답해 보란 뜻으로 눈에 힘을 주고 사형을 보니 그가 한숨을 쉬었다.
“자네도 알다시피 그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곧 나올 것이네. 모두가 절치부심을 하고 있으니 말일세.”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아직 나온 것은 아니군요.”
“그렇지.”
“그럼 지금 선유도문의 38대 정통 선유도문의 문주 계승권자로 그 권한을 행사할 수 있습니까?”
내가 비록 선유도문과는 관계가 없다 할지라도 나 역시 정통 계승자 중 한 명이었다.
“당연하네. 비록 사제가 환속을 하여 불문을 떠났다고 하지만 선유도문의 38대 계승자 중 한명임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테니 말일세.”
“그럼 그 권리를 행사하고자 합니다.”
사형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뭔가?”
“선유도문의 절기는 오늘부로 외부 유출을 금하고자 합니다.”
사형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이 보였다.
“사제 그게 무슨 말인가? 선유도문의 무예를 금하다니, 그건 전통을 이어가고자 하는 선조들의 바람에 어긋나는 일일세. 절대 안 되네.”
정색을 하며 말하는 사형의 표정을 보니 조금 어이가 없기도 하다.
“그리 말씀하시는 연유라도 있습니까?”
사형이 한숨을 쉬었다.
“사실 저들이 시주한 돈으로 이곳을 지탱하고 있네.”
난 눈을 살짝 좁혔다.
“전통 무예의 본산지라고 하지만 정부의 보조금은 없네. 자네도 알다시피 요즘 같은 시대에 누가 절에 매달 시주를 하고 공양을 하겠는가?”
삶이 힘들어질수록 인심이 메마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사제도 알고 있지 않나? 석가탄신일에 연등을 달아 들어오는 돈으로 일 년을 생활하는 하는 것을 말일세.”
안타까운 일이지만 사실 그렇다. 범어사의 경우에는 조금 틀리지만 이렇게 암자들은 정말 먹고 살기 힘들다.
“몇몇 이들은 단란주점에 가서 젊은 처자들 옆에 끼고 지랄발광을 할 만큼 풍족하게 생활을 하지만 대다수의 스님들이 그렇지 못하네.”
마음이 또 약해진다.
“우리 청련암은 전통 무예를 계승, 발전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세운 암자일세. 불공이나 경전과는 거리가 먼 그런 곳이네.”
그래도 스님이 있는 곳이니 경전 꽤나 읽은 분들도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만약 저들에게 선유도를 가르치지 못하면 청련암에서 생활하는 많은 스님들이 배를 곯아야 할 것이네.”
사형은 그간 청련암의 사정을 나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절에 시주를 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시주를 하다고 해도 이름 난 사찰이나, 불공을 드리는 절에나 하지, 청련암과 같은 암자에는 하지 않는다.
“휴우.”
사형들과 사제들의 사정도 참 딱하다.
요 밑에 노래방에서 아줌마 끼고 노래 부르며 육지주림에서 오리야기리야 하며 육보시를 하시던 스님들도 많던데......
“알겠습니다. 하지만 3년 후에도 저르 제외한 선유도의 계승자가 나오지 않을 시에는 계승자의 권한으로 선유도의 외부 유출을 금하겠습니다.”
사실 내가 이렇게 말할 자격은 없다. 그렇지만 괜한 반발심에 이리 말하는 것이다.
“알겠네. 무승등를 다그쳐서라도 선유도의 계승자를 만들어 낼 터이니 사제는 걱정하지 말게.”
“그렇게 해 주십시오. 저도 알고 있는 걸 무승들에게 가르쳐 주겠습니다.”
“고맙네.”
사형의 한숨소리가 들린다. 아마 3년 안에 계승자가 나오기는 힘든 모양인 것 같다.
3년 뒤에 돈줄이 끊기게 되었으니 사형의 마음도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세상에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그 돈이 전부를 하기 위해서 필요한 필수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스님도 먹어야 불경을 외우고, 설법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괜히 데리고 왔구먼.”
그 말에 웃었다.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지.”
“듣겠습니다.”
“나는 사제가 이렇게 고민하기보다는 그 가상현실 월드라는 세상을 경험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 생각하네.”
“월드를 말입니까?”
“그렇다네. 저들이 무엇 때문에 돈을 들여서 가상현실 월드를 하는지, 왜, 월드라는 세상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지 말일세.”
“하지만 전....”
“나의 것을 지키려면 최소한 빼앗으려는 자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하지 않겠나?”
난 말하지 않았다.
“한 번 해보게. 그래서 가상현실 월드가 나의 것을 빼앗아 갔다고 불평불만만 하지 말고 다시 되찾아 오면 되지 않은가? 그리고 지키면 되는 것 아니겠나?”
“그리 되겠습니까?”
“허허, 자네가 누구인가? 자네는 선유도문의 38대 계승자이자, 우리나라 3대 검법 중 하나인 선유검법을 완벽히 익힌 청허가 아닌가.”
그래. 사형의 말이 맞다.
나는 선유도문의 38대 계승자로 선유검법을 완벽히 익힌 자이다.
까짓것.
한다. 내가 월드라는 그 세상을 경험해 볼 것이다. 그리고 알아 볼 것이다. 그리고 되찾을 것이다.
사랑하는 나의 아내, 그리고 나의 일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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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청련암의 무승들과 함께 선유도를 수련했다. 그들과 함께 수련을 하면서 그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기도 하면서 다시 나를 점검했다.
“선유도는 직선이 아닌 곡선의 무예입니다.”
나는 선유검법을 이들에게 설명을 하며 1식부터 4식까지 펼쳐 보였다. 이들이 최대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나는 움직임을 최대한 천천히 보여 주었는데 이는 나 스스로가 점검을 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언뜻 보시면 직선같이 보이지만 여기서 이렇게 변화가 생깁니다.”
“저기 사숙님.”
“왜, 그러십니까? 법운 스님.”
무승 중에 제법 빠른 발전을 보이고 있는 분 중 한 분이었다.
“빠름은 직선에서 나오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최단 거리로 도달하기 위해서는 곡선보다는 직선이 빠릅니다.”
“그럼 변화를 줄여 빠름으로 가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한느 생각이 듭니다.”
난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빠름이란 항상 상대적인 것입니다. 빠름은 더 빠른 것에는 느려 보입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상대적인 것이 있기 마련이다.
“선유검법의 뛰어난 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지금까지 여러분들께서는 직선으로 알고 있을 정도로 빠른 검술이라 알고 있지만 사실 그 빠름 속에 변화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예란 그런 것입니다. 익숙하지 않는 것보다 익숙한 것이 더 몸이 빨리 반응합니다.”
이들은 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상관없다. 알아듣고 모르고는 이들이 판단을 할 문제이다.
“변검을 제대로 사용할 줄 알아야 쾌검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둔검 역시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무승들의 눈이 초롱해졌다.
“변검을 제대로 익히지 못했는데 쾌검을 배운다는 건 그리 추천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선유검법의 5초식부터는 쾌검식이 내포되어 있기에 선유검법을 완벽하게 익히기 위해서는 먼저 변검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무승들이 생각에 잠겼다.
“그럼, 오늘 한 말을 기억하며 한 번 어떤 것이 맞는지 생각을 해 보십시오.”
나는 말을 끝내고 몸을 돌렸다.
곧 있으면 점심 때라, 사숙들과 사형들의 식사를 장만해야 해서였다.
‘아내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