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야, 여주 씨 날 샜어요!?"
"아, 뭐야. 벌써 출근 시간이에요?"
"부장님이 아시면 화내실 텐데."
"저도 알아요. 부장님 오시면 깨워줘요."
제 말만 하고 책상 위로 엎어진 여주였다. 괜히 장난을 걸고 싶은 윤오만 안절부절못할 뿐이었다. 20분 정도가 지나자 팀원들이 한두 명씩 사무실을 채웠다. 요란스러운 소리에도 꿈쩍 않고 잠들어있는 걸 보면 세상 많이 피곤했음을 알 수 있었다.
"여주야, 옷 갈아입고 와."
보라가 다가와 옷가지가 담긴 쇼핑백을 내밀자 비몽사몽 일어난 여주가 보라의 허리춤을 껴안았다. 잠투정이라도 하려는 건지 앓는 소리를 내던 여주가 두준의 목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야, 너 뭐야. 여기서 잤어?"
"에? 아뇨, 아뇨."
"아니긴, 퇴근해."
"아, 부장님."
"김여주."
"예예, 알겠습니다."
결국 어제 차림 그대로 터덜터덜 엘리베이터를 탔다. 쏟아지는 졸음에 눈두덩이를 손으로 누르며 엘리베이터 문이 알아서 닫히기를 기다렸다. 몇 초가 지나고 닫히는 문에 등을 기댔다.
"저도 같이 가요."
"아, 예."
"여주 씨, 여기."
"네?"
"아, 뭐 하는 짓이죠?"
고개를 돌리면 손가락이 볼을 콕 찌르는 초등학생도 하지 않을 것 같은 유치해 죽겠는 짓을 하고 천진난만하게 배시시 웃는 이 사람이 바로 정윤오다.
*
*
해가 중천에 떴는데 방에는 한 줄기 빛도 내려앉지 않았다. 그 이유는 베란다에 달아놓은 암막 커튼 덕분이다. 작업 특성상 이렇게 낮 시간에 잠을 자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우웅, 뒤척거리는 몸짓, 언뜻 보면 침대 위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모습이 볼만했다.
"여브스으.."
베개를 얼굴을 받고 말을 하니 다 뭉그러진 발음이 수화기로 흘러 들어갔다. 그게 또 그렇게 귀여운지 전화 너머로 발광하는 민석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애..나 자써.."
"출근은?"
"9시에 퇴근해써.."
이렇게 말하면 금방 끊어 줄 줄 알았는데 그럴 생각이 없는 모습에 작게 한숨을 쉬며 몸을 뒤집어 바로 누웠다.
"나 인도네시아로 해외 출장 가."
"으응, 알게써어.."
"그게 끝?"
"......"
"나 출장 간다니까?"
"......"
잠결이 횡설수설, 사실 민석이 뭐라고 하는지 도무지 귀에 안 들어왔다. 잠이 든 여주를 알아채곤 전화를 끊은 민석은 낮게 한숨을 쉬었다. 사무실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한팀이나 출장을 나가야 하니 어찌 보면 당연한 분위기였다.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무기한으로 잡힌 해외 출장에 옆에서는 마스크를 끼곤 골골대는 준면이까지.
"미안하다, 여자친구는 뭐래?"
"잠에 취해서 제 얘기 못 알아들은 것 같아요."
"화내겠지?"
"에이, 그런 애 아니에요. 오히려 참견하는 사람 없다고 신나할걸요?"
메르스가 한창인 요즘 감기 기운이 있는 준면을 대신해 출장을 나서기로 한 민석이다. 괜찮다고는 해도 영 풀리지 않는 얼굴에 괜히 미안한 준면이다. 전화를 끊고 얼마나 잔 건지 몸을 일으킨 여주는 벽에 기대앉아 한참을 졸다가 들리는 현관문 소리에 방문을 열었다.
"지금까지 잤어?"
"네, 일찍 퇴근했네요."
"일찍은 무슨. 벌써 7시야."
"저녁 안 먹었겠네. 어쩐지 전화하니까 전화 안 받더라."
장을 봐온 모양인지 마트 봉지를 식탁에 올려놓은 봉지를 뒤적거리며 보라가 말했다. 부시시한 머리를 대충 묶고 부엌으로 따라 들어갔다.
"오늘 저녁 제가 할게요."
"됐어, 네가 하면 내일 저녁에나 먹을 수 있겠네."
입술을 삐죽대며 연신 삐친 티를 내는 여주를 보라가 방으로 등을 떠밀었다. 맞다, 여주는 요리를 더럽게 못 한다. 베란다에 있는 커튼은 제 역할을 못 하게 됐지만 건드리지 않고 불을 켜 방을 밝혔다. 익숙한 진동 소리에 휴대폰을 귀에 가져다 댔다.
"여보세요?"
"지금까지 잤어?"
"응."
"전화 안 받아서 놀랐잖아."
"미안, 피곤해서."
빠르게 제 잘못을 시인하는 모습에 조금 놀란 민석이 괜스레 목 언저리를 긁었다. 자고 있을 거란 생각을 하면서도 걱정하며 발을 동동 구른 자신이 민망했기 때문이다.
"많이 피곤했어?"
"뭐, 그렇지."
"아까 내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전화 안 받아서 놀랐다고?"
"아니, 나 출장 간다고."
"으응? 그거 꿈 아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