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야! 택배 왔다-"
야간작업을 하기로 마음을 먹은 건지 새벽 시간에 작업을 하는 여주는 출근하는 보라와 남준과 교대를 하려는 건지 외출 차림으로 거실을 가로질러 소파에 앉았다. 고개를 돌리자 작은 상자를 흔드는 보라가 보였다.
"쇼핑 안 하는 줄 알았는데 하나 보네?"
"뭐에요?"
"뭐야, 네가 시킨 거 아니야?"
상자를 건네받고도 영 의아한 건지 선뜻 열어볼 생각은 않고 이리저리 돌려볼 뿐이다. 처음 여주 이름으로 온 택배에 두 눈을 반짝이며 얼른 상자를 열어보라는 눈치를 주는 두 사람에 상자를 열자 상자 안에 보이는 건..
"왠 마스크?"
황당함에 한참을 내려다볼 때 휴대폰이 요란스레 울리며 멍한 정신을 깨웠다. 보나 마나 이 시간에 전화할 사람은 민석이 밖에 없음으로 퉁명스럽게 받는 건 옵션이고.
"어, 왜?"
"혹시 택배 온 거 없어?"
"이거 너야?"
"아아, 잘 도착했구나! 마스크, 꼭 끼고 다니라고-"
얼마 전 장난삼아 퉁명스레 한 말이 그의 가슴 깊이 남아있었을 것이라 감히 예상한 여주는 뒤따라오는 민망함에 콧등을 긁었다. 상자 안에 있는 마스크를 어서 껴보라며 들이미는 통에 엉겁결에 받아든 여주가 마스크를 한번 껴보곤 웃음이 터졌다.
"푸핳, 아. 이게 뭐야."
"왜?"
전화 너머에 아직 민석이 있다는 걸 까먹은 여주는 거울을 보며 웃다가 그의 목소리에 다시 민망해진 듯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출근하겠다며 손까지 흔들며 마중을 나간 여주가 두 사람에게 마스크를 나눠 쥐여줬다.
"뭐야, 이거 나한테도 큰데? 아! 왜 때려-"
"으휴, 눈치는 설이한테 팔아먹었어?"
티격태격 현관을 나서는 모습에 한숨을 내쉬며 소파에 벌러덩 누웠다. 영문을 모르는 민석은 연신 왜 그러냐는 말을 반복했다.
"넌 네 여자친구 얼굴이 이렇게 큰 줄 아냐?"
"아아, 많이 커? 나는 회사에 그거 하나가 남길래 사이즈는 생각 못 하고 너 주려고 챙긴 건데."
"으이씨, 뭐야. 기껏 줬는데 쓰지도 못하잖아."
"미안. 그거 부모님 드리고 내가 너한테 맞는 마스크 다시 구해줄게."
"됐어, 요즘 마스크 구하기 힘든 거 내가 제일 잘 아는데 뭘."
*
*
민석에게 크디큰 마스크를 받은 지 얼마나 됐다고 날이 갈수록 메르스 사태는 심각해졌다. 급기야 옆 부서, 또 그 옆 옆 부서에서는 미열이 있기만 하면 조퇴를 시키고 결근을 시켰다. 언뜻 들으면 임시휴일까지 염두에 두는듯했다. 잠시면 될 줄 알았던 공백은 2주가 넘어갔고 안 그런척하면서도 민석이 너무도 보고 싶은 그녀였다.
"괜한 말 한 거 같지?"
"아, 언니."
부쩍 혼자 넋 놓는 그녀를 보며 보라가 짓궂게도 말했다. 이미 잔뜩 속상해진 여주는 반응이 없었다. 그러게 왜 쓸데없는 말은 해서는, 근데 정말 웃긴 건 3일 만에 포기하고 그녀를 보러 버선발로 달려올 줄 알았던 민석도 굳건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근데 네 남자친구도 은근 독하다? 난 바로 달려올 줄 알았는데."
"나도."
"에이, 얼마나 극성인데 퇴근하면 하루 온종일 휴대폰만 붙들고 있다니까?"
보라의 말이 맞다. 하지만 통화하는 것보단 얼굴이 보고 싶단 말이다. 그래도 이제 와서 보고 싶다는 말을 하기에 저 자신이 용납 못할 일이었다.
"쓸데없는 고집부리지 말고."
"남자친구 출장까지 간다며."
"이 난리 통에?"
"아, 그니까."
"회사 선배분이 미열이 있으셔서 출장에서 제외되셨데요. 대신 가야 한다고 하는데 뭐, 어쩌겠어요."
보라와 진리는 연신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이고 여주는 책상에 아예 엎드려 누웠다. 뒤통수만 봐도 얼마나 풀이 죽어있는지 알 수 있어 기운 없는 그녀의 등을 토닥이는 손이 무색했다. 한편, 민석도 괜히 준면이 미안할 만큼 죽상을 하고 있다.
"야, 괜찮아?"
"그럼요, 선배는 내일부터 휴가라면서요?"
"열이 오락가락하네."
"몸조리 잘해요. 제 여자친구는 메르스 때문에 집에도 안 온다고 하더라고요. 얼굴 못 본 지 벌써 2주가 넘었어요."
"그래서 그렇게 죽상?"
"예? 예헿.."
등신 같은 놈, 또 여자친구 이야기에 헤벌쭉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