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록콜록, 그러지 말고 보러 간다고 생떼라도 부려보던지."
"그래 볼까요."
"아오, 나였으면..콜록,..여자친구 찾아갔다."
아, 거참. 그렇게 했다가는 앞으로 영원히 못 볼지도 모르니까 그렇죠. 혼자 속으로 곱씹던 민석은 곧 준면은 도움이 안될 거라 판단하고 몸조리 잘하라는 말을 끝으로 통화를 마쳤다. 도대체가 누구에게 상담해야 할지 모르겠는지 그는 휴대폰을 한참을 뒤지다가 결혼식 이후로 뜸한 태민의 번호를 눌렀다.
▷지금 고객님께서 전화를 받지 않아 삐 소리 이후 음성사서함으로..
이 자식은 모르는 거 있으면 연락하라더니 필요하니까 연락도 안 받는다. 침대에 벌러덩 누운 민석이 자리에서 펄떡인다. 그의 움직임으로 앓는 소리를 내던 침대에 시끄러운 건지 예림이 방문을 벌컥 열었다.
"미쳤냐!"
"아, 노크 좀!"
"이게 뒈지려고 누나한테!"
등짝을 가르는 찰진 소리에 민석은 눈물을 찔금 짰다.. 저렇게 난폭한 게 무슨 유치원 선생님을 하는 건지 억울할 뿐이었다. 저 더러운 성질머리고 예쁜 아가들도 패는 건 아닐까 심히 걱정이 되었다. 누운 자리에서 어린아이처럼 제 누나를 잘근잘근 씹어대던 민석의 눈이 시계로 한번 휴대폰으로 한번 박혔다.
"여주야!"
아까 그 흉측한 말을 내뱉던 그가 맞는지 의심될 정도로 세상 밝은 목소리로 여주를 부르는 민석이었다. 밖에서 땅콩을 집어먹던 예림은 한심한 눈치인지 혀를 찼다.
"여주야, 보고 싶어."
"응."
"보고 싶다니까?"
"응, 알았다고."
"그게 끝? 나 출장 가면 계속 못 볼 텐데 우리 그냥 만나면 안돼?"
"안돼."
"아아, 왜애!"
어린아이처럼 징징대는 민석의 목소리에 여주는 몸을 부르르 떨며 스피커로 바꾸고 침대 위로 던졌다. 분명 수화기 너머로 요란한 소리가 들렸을 게 분명한데도 아이처럼 징징대는걸 멈출 생각이 없는 모양인지 징징대는 소리가 휴대폰 스피커로 흘러나왔다. 책상 앞에 앉아 글을 끄적이던 여주는 양손으로 제 머리채를 움켜잡으며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제발, 보채지 말아라."
그래도 끊을 생각은 없는지 가만히 듣고 있던 여주였다. 물론 방문을 열어젖힌 남준만 아니었다면 계속 들었겠지만 말이다.
"뭐야, 남자친구?"
"드디어 남자친구가 보채기 시작했나 봐?"
"거봐, 오래 안 걸릴 거라고 했지?"
"사이좋은 대화는 이 방에서 나가서 해주실래요?"
누가 봐도 붉게 물든 얼굴을 악착같이 숨기려 애쓰는 모습에 남준은 웃음이 터졌고 보라는 얄밉게 웃으며 남준을 끌고 방을 빠져나갔다. 방에 혼자남은 여주는 휴대폰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쳤다.
"김민석 창피해!"
"김민석? 어쭈, 오빠한테 이게."
"오빠 같은 소리하네, 인도네시아에서 한국 올 때까지 내 얼굴 볼 생각 하지도 마!"
*
*
간만에 제시간에 출근을 한 여주는 마무리가 된 건지 크게 기지개를 켜고 USB를 뽑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랜만인 그녀의 움직임에 바로 앞에 앉아있는 윤오가 커피? 하며 바보 같이 웃었다.
"디자인부 다녀올게요."
"저도, 저도 넘겨드릴 서류 있는데-"
"그래서 뭐, 저보고 가는 김에 드리라고요?"
"아뇨오- 설마, 같이 가자고요."
옆에 서면 되지 꼭 뒤에서 졸졸 따라오는 윤오에 짜증이 나는 여주가 무턱대고 뒤로 돌았다. 멍청하게 따라오더니 결국 예고도 없이 뒤돈 여주의 얼굴과 제 가슴팍이 부딪혔다.
"내 코!"
순간이었지만 저에게서 민석의 느낌을 받은 여주는 제 입을 두 손으로 가리곤 윤오를 빤히 올려다봤다. 영문을 모르는 윤오는 큰 눈을 끔뻑이며 여주를 바라보기만 했다.
"나 방금 어땠어요?"
"여주 씨요? 갑자기..음, 귀여웠어요."
"아, 장난치지 말고요."
"진짠데."
사실 진실의 여부는 관심이 없다는 듯 뒤돌아 디자인부로 먼저 들어가 버렸다. 세류를 건네고 나오는 길에 아직까지도 멍청하게 서 있는 윤오를 발견하곤 옆으로 지나쳤다.
"왜 따라와요? 서류 주고 와야죠."
"저 안 기다려줄 거잖아요."
"당연하죠. 여자애들 화장실 가는 것도 아니고 제가 왜 기다려드려야 하죠?"
"다음에 오면 되요. 같이 가요."
떨어질 콩고물도 없는데 왜 저렇게 붙어있으려는 건지 알 수가 없는 여주였다. 자리로 돌아가자 벌써 점심시간이 된 건지 하나둘 일어나는 팀원들이 보였다.
"너 어차피 집에 가면 잠만 자잖아. 우리랑 밥 먹고 들어가."
사실이라 딱히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함께 식사를 하기로 했다. 여자들 사이에 껴선 샐쭉 웃으며 밥을 퍼먹는 윤오 앞에 앉은 여주는 껄끄럽게 느껴지는 밥알을 목구멍으로 열심히 넘겼다.
"너 정국이랑 연락해?"
"전혀, 왜?"
"걔 군대 간다고 그러더라고."
음식을 오물거리며 고개를 대충 끄덕이는데 뭐가 또 그렇게 궁금한 건지 눈을 반짝이는 윤오를 무시한 채 잔반 처리를 했다. 민석이 생각에 영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는듯했다.
"더 안 먹어?"
"네, 배가 별로 안 고파요."
"오늘 한 번도 연락 안 왔어?"
"뭐, 바쁜가 봐요."
사실 하루 온종일 연락이 없는 민석이 걱정이 됐다. 시국이 시국인 만큼이나 혹여나 무슨 일이 있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말이다. 보라는 밥을 안 먹는 여주가 더 걱정인 눈치였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