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는 지금 뭐 하고 있을까?"
"요즘 야간에 근무한다며 일하겠지. "
"그런 뻔한 대답 말고 내가 모르는 대답 좀 해줄래?"
"네가 모르는 걸 내가 알고 있는 게 더 이상하지."
"그러게."
운동도 하지 말라는 여주의 말에 철석같이도 방에만 박혀있는 민석이 종인을 불러놓곤 내도록 여주 타령을 했다. 누군 여자친구 없는 줄 아나. 괜히 집에 있을 수정이 보고 싶어지는 그였다.
"그러지 말고 보러 한번 가지?"
"야, 그러다가 헤어지자고 하면 어떻게 해."
"하긴."
하긴, 일말의 기대도 무참히 짓밟히는 단어였다.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종인이 얄미워 책상 위에 놓긴 각티슈를 그에게 던졌다.
"아! 이 새끼 왜 나한테 화풀이야!"
"너희 시끄럽게 굴 거면 나가 새키들아!"
이 집에는 성격 파탄자만 있나. 종인이 소리침과 거의 동시에 거실에서 소리치는 예림에 몸서리를 치며 나갈 채비를 했다.
"어디가?"
"집에만 있을 거야? 나가서 운동을 하든 바람을 쐬든!"
방문을 열고 나가자 매니큐어를 바른 듯 열 손가락을 쫙 피곤 불편한 자세로 텔레비전을 보는 예림이 운동화를 신는 종인을 보며 혀를 찼다. 코흘리개 때부터 봐왔던 누나이지만 무슨 연유인지 저를 어지간히도 싫은 티를 내는 그녀였다.
"갑니다, 가."
"야아! 김종이인-"
"차라리 여주가 좋아할 만하게 노력을 해보는 건 어떠냐 예를 들면 운전이라던가?"
제 할 말만 하고 나가버리는 종인에 남겨진 민석을 툴툴거렸다. 예림이 봤을 때 한심한 건 민석도 마찬가지였다. 저보다 다섯은 어린 기지배한테 붙들려 훈련 잘된 개 마냥 구는 게 아니꼬웠다. 그것도 우스운 게 솔직히 맏인 아영이처럼 엄마 노릇이나 제대로 한 건 아니었으면서 말이다. 그게 무슨 욕심이었을까? 그냥, 민석과 만난다는 아이의 존재를 알고 나서는 줄곧 그래왔다.
"너 어디 나가냐."
"김종인 말대로 운전 연습이라도 하려고."
"등신 새끼."
"누나는 시집 언제 가게."
제 경력으로 따지자면 스무 살 면허를 따자마자 큰누나가 뽑아준 새 차를 끌고 나갔다가 2개월 만에 폐차를 만들었고 작은누나가 처음 직장을 가지며 끌고 다니던 차를 새 차를 사며 물려주듯이 넘겨준 차를 페트병 구기듯 구겨 폐차시킨 장본인이었다. 한마디로 진짜 민석은 면허를 따서는 안되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으로 사람을 치거나 죽진 않았다는 거다. 운전을 할 줄 모르는 민석은 종인을 꾀기 시작했다.
"야아- 도와줘라, 응?"
"이번에는 진짜 누구 죽을 수도 있어."
"네가 먼저 운전 이야기 꺼냈잖아."
"그거야, 네가 못하는 게 그거밖에 더 있냐?"
쫄래쫄래 따라붙는 민석에 종인은 머리를 털며 뒤를 그를 바라봤다. 얄밉도록 배시시 웃는 모양이 밉지 않게 느껴지는 건 민석의 장점 중 하나였다. 같은 남자에게도 유효하다는 건 엄청난 무기였다.
"알았어, 근데 나 진짜 생명 수당 쳐줘라."
"뭐, 술 사줘?"
"됐고 여주한테나 잘해줘, 딱히 걱정되지 않는다마는."
*
*
"야! 브레이크 천천히 밟으라고!"
"웁스, 쏴리."
"너 그냥 내려줄래?"
"잘못했어."
"아냐, 내가 괜한 말을 꺼낸 거 같으니까 내려."
운전석과 조수석에 나란히 앉은 둘은 동네 반 바퀴 만에 실랑이 중이었다. 정차한 차 옆으로 신나게 달리는 차들 때문에 덜컹덜컹 덩달아 흔들려왔다. 신경질적으로 목 언저리를 긁던 종인이 턱짓으로 핸들을 가리켰다.
"뭘 멍청하게 있어."
"나 전화 한 통.."
"죽고 싶지 않으면 핸들 잡아라."
퍽퍽하게 군다며 구시렁거리던 민석은 뒤에 크락션을 눌러대는 통에 놀라 부리나케 출발했다. 쓰디쓴 잔소리를 들으며 2바퀴를 돌았을까.
"우리 공터로 가자."
"아, 왜! 나 면허 있거든?"
"너 같은 거한테는 면허를 주면 안 됐어."
"꼭 지가 준 것처럼 말하네?"
"나였으면 너새끼 안 줬지!"
"아, 왜 교양 없게 소리는 지르고 지랄이야!"
결국 한대 얻어터진 민석이 군말 않고 아무것도 없는 빈 공터로 향했다. 민석이 집중 입을 하곤 공터를 빙글빙글 돌았다. 시끄럽게 빽빽거릴 때는 언제고 허리를 꼿꼿이 피고 나름대로 집중하는 모습이 웃겼다. 몇 바퀴를 돌 생각인지 종인이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돌던 민석이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나서야 편하게 앉은 그가 눈을 굴려 시계를 봤다.
"이런, 대 미친."
12시가 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