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죽어도 회사로 데리러 오겠다는 정국에 여주는 혼자 로비를 서성였다. 같이 보기로 한 희연이 끝내지 못한 일 때문에 두준이에게 잡히는 바람에 말이다.
"오랜만?"
"넌 날 언제 봤다고 밥 먹재?"
"넌 날 한번 봤을지 몰라도 난 널 많이 봤어."
"네가 왜?"
"잡지로?"
"미친 새끼."
혀를 끌끌 차며 정국을 울려 다 봤다. 꽤 멀쩡한 몰골로 저런 실없는 소리를 하는지 아이러니했다. 뭐, 생각해보면 제 주변 멀쩡한 몰골로 실없는 소리를 하는 게 꼭 정국만 있지는 않았다. 어떨 때 보면 남자친구인 민석도 실없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았다.
"주말에는 본가가?"
"아니, 요즘은 안가."
"왜?"
"메르스 때문에 안 간 지 좀됐어."
"진짜? 흥, 바이러스 따위 내가 무서워할 것 같아? 이러면서 엄청나게 잘 돌아다닐 것 같은데."
"날 얼마나 미친년으로 보는 거야."
눈을 크게 뜨곤 의외라고 말하는 그를 바라보자 짓궂게 웃으며 말하는 정국이었다. 나지막이 중얼거리는 여주의 말을 용케도 알아들은 그는 몸을 젖히며 웃었다. 뭐가 저렇게 즐거울까 생각하던 여주도 정국을 바라보며 웃었다.
"아, 인터넷으로 급하게 검색해서 맛집 찾아온 거긴 한데 입맛에 맞으려나 모르겠다."
"네가 대접하는 것처럼 말한다?"
"어차피 군대 가면 이 돈 필요 없는데 뭘."
"어머니한테 돈 모아서 드리면 되지."
"아,"
낮게 탄식하는 소리가 정국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 모습에 제가 혹여나 실수했나 싶어 골똘히 생각하던 여주가 직설적이게 물었다. 그러자 고개를 내저으면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하는 그의 얼굴이 어쩐지 붉은 사과 같았다.
"나 처음에 너 얼굴 보고 소개해달라고 했었는데."
"당연히 그렇겠지, 네가 날 언제 봤다고. 이 자식, 그래서 그랬구만?"
"응? 뭐가?"
"너 군대 간다며. 왜, 한 번 해줘?"
"뭐!? 미쳤어!?"
답지 않게 버럭버럭 소리치는 모양새가 우스워 여주는 한바탕 크게 웃었다. 아까보다 배로 발갛게 달아오른 모양새가 곧 펑 소리를 내며 터질 것만 같았다.
"나 그러려고 너 만나고 싶다고 한 거 아니거든!? ㅁ, 물론 아까 말했다시피 얼굴 보고 그런 건 맞지만."
"누가 뭐래? 편지 한 번 해주냐고."
"으으,"
"많이 창피하냐?"
얄밉게 히죽히죽 웃는 여주가 정국이 맛있게 먹던 반찬을 가까이 밀어주었다. 언제나 인복이 좋은 그녀였다. 그 역시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 여주는 당연히 정국이 자신을 두고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 거라 장담했고 말이다.
"어쩐지 나는 네가 뚱뚱해도 못생겼어도 너를 좋아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됐거든, 아부성 발언은 못 들은 걸로 할게."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 제 기능을 잃은 게 아닐까 걱정되던 휴대폰이 울렸다. 옆에서 너무 자연스럽게 머리를 기대고 잠에든 그를 힐끔 보곤 소곤소곤 조용히 전화를 받았다.
"왜?"
"전화를 왜 이렇게 소곤소곤 받아? 아직 회사야?"
"아니, 친구가 옆에서 자고 있어서."
"친구? 아, 친구 만났구나."
"응, 이제 다 놀고 본가 들어가는 중이야."
"그렇구나, 본가..응? 본가?"
"또 멍청하게 있었지?"
*
*
"여주야!"
저 멀리서 손을 붕붕 흔드는 그가 보였다. 저도 반가움을 느끼지만, 그는 상상이 안 갈 정도로 반가운 모양이었다. 가까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헤실거리는 민석의 얼굴이 보였다.
"진짜 보고 싶었어."
"너 출장 가면 어쩌려고?"
"매일매일 영상통화 하면 안되?"
"응, 안 돼."
오랜만에 만나서 싫은 소리하기 싫은 여주는 검지손가락으로 민석의 입술에 대고 웃어 보였다. 그게 또 사랑스러운 민석은 배시시 웃으며 여주를 내려다봤다. 얼마 만에 만나는 얼굴인지 사귀기로 하고 나서부터는 한 달 만이었다.
"영화 예매해뒀어, 아직 시간 남았는데 뭐할까?"
"배고파, 밥 먹자."
배를 통통치는 모습에 시선을 밑으로 내렸다. 항상 구두만 신던 여주의 발에는 운동화가 신겨져 있었다. 자신을 의식해서 신었을 운동화에 괜히 간질거리는 게 기분이 좋아진 그는 그녀의 손을 잡아 볼에 가져다 댔다.
"더위 먹었어?"
"응?"
"얼굴 왜 이렇게 뜨거워?"
마주한 두 눈, 그리고 곧 벌겋게 달아오른 민석의 얼굴에 여주는 피식 웃으며 손을 한번 풀었다가 아래로 다시 잡았다. 맞잡은 손이 덥지 않고 참 따듯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언제 간다고?"
한참을 말없이 눈앞에 놓인 면을 건져 먹던 여주가 고개를 들고 물어보자 목덜미를 긁적이며 머뭇거렸다. 현실이긴 해도 출장 가는걸 어지간히 인정하기 싫은 거였다.
"응? 언제가?"
"다음 주 월요일."
"아, 벌써?"
면을 건지던 손이 느려진걸 봐서 서운한 눈치다. 그걸 눈치 못 챌 리 없는 그였기에 애써 웃어 보였다. 쓸데없는 자신의 고집 때문에 얼굴을 볼 수 있었던 한 달 동안 떨어져 있었고 제 고집 덕에 날려 버린 기회였다.
"나 월요일에 출근 안 하는데 같이 있어 줄래?"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던 여주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긍정의 답이든 부정의 답이든 민석이는 크게 상관없었다. 어디까지나 자기와 있어야 하는걸 강요 할 순 없기 때문이다.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
갑자기 들이닥친 종업원 때문에 여주는 열려던 입을 다시 닫고 면을 건져 먹었다. 대답을 굳이 하지 않는 이유는 부정의 답이라 생각한 민석은 별말 않고 음료 컵에 꽂힌 빨대를 입에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