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준의 배려 덕에 휴가를 낼 수 있었던 여주는 거실 소파는 두고 바닥에 누워서는 아까부터 계속 휴대폰만 노려보고 있었다. 사실 연락은 아까 아침부터 했지만 만나자는 말을 선뜻 꺼내지 못하고 있는 그녀였다. 평소라면 양치질을 할 시간이어서 그런지 전화를 건 민석이다.
"밥 먹었어?"
"아니."
"왜 안 먹었어. 일이 많이 바빠?"
"아니, 나 집이야."
"왜? 어디 아파서 출근 안 했어?"
"그게, 넌 어딘데? 집 아닌가 봐. 시끄럽네?"
"아, 나 병원 왔어."
병원이란 말에 몸을 벌떡 일으킨 여주가 이유를 물었다. 다급함이 느껴지지 않는지 한참을 뜸을 들이며 대답했다.
"서류 떼러 왔어."
"아,"
"진짜 어디 아픈 건 아니지?"
결론은 둘 다 아프지 않고 둘 다 서로를 걱정 하고 있다는 생각에 비실비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오늘도 언제나 그랬듯 민석이 약속을 잡았다. 그 덕에 한결 마음이 편안해진 여주는 콧노래를 부르며 옷을 갈아입었다. 다다른 시간에 서둘러 나가자 대문 옆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동글동글한 뒤통수가 보였다.
"왔어? 가자."
동네 작은 카페에서 두런두런 이야기나 하다가 저녁을 먹고 헤어지기로 한둘이 구석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급하게 나오느라 미쳐 정리하지 못한 잔머리를 정리해주는 민석의 표정이 제법 진지하다.
"뭐 이런 걸 다 진지하게 해?"
"머리 정리하는 건 연막인데?"
"그럼?"
"비밀."
얄궂게 웃는 민석을 보며 어이없는 듯 웃음소리를 흘리며 슬핏 노려보자 그래도 마냥 좋은 그는 하던 짓을 마무리했다.
"오늘 저녁은 뭐 먹지?"
"뭐 먹고 싶은데?"
되묻는 여주의 목소리 골똘히 생각하던 그는 초복이라며 스치듯이 말하던 아영이가 떠올랐다.
"우리 삼계탕 먹으러 갈까?"
"갑자기?"
"오늘 초복이래."
"그런 것도 알아?"
"큰누나 오늘 집에 왔거든."
"누나가 원래 집에 없어?"
"응, 작은누나만."
처음 듣는 소식에 바보처럼 아, 소리만 내며 그를 바라봤다. 제가 생각해도 이 사람에게 참 무심한 것 같았다. 아무렇지도 않은 그의 표정이 어쩐지 더욱더 속상하게 만들었다.
"큰누나는 결혼해서 매형이랑 같이 살아."
"결혼하셨어!?"
"넌 진짜 주위에 관심이 없구나."
*
*
"뭐 사 가지?"
"뭘 사가. 부모님 계시는 것도 아닌데."
"그래도, 어른인데."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괜찮아."
겨우 결정된 메뉴였는데 카페에서 일어날 때 즈음 삼계탕을 여주 몫까지 했다며 집에 와서 저녁을 하라는 아영이의 전화에 집으로 향하는 둘이었다. 민석의 누나, 그리고 그의 여자친구로서 정식으로는 처음 만나기 때문에 긴장한 그녀였다.
"나 이상해?"
"예뻐, 예뻐."
"바보야, 그거 말고."
"그럼?"
가슴팍을 툭 친 여주는 낮게 한숨을 쉬며 거울을 빤히 바라봤다. 걱정스러운 얼굴 너머로 꿀 떨어지는 눈으로 바라보는 민석이 있었다. 그러다 눈이 마주친 민석이 여주의 손을 잡았다.
"걱정하지 마."
흔한 말뿐이지만 어쩐지 그 말이 여주에게는 힘이 되는 한마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