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와,"
지금껏 거의 본 적 없는 미소짓는 아영이 현관 앞에서부터 여주와 민석을 반겼다. 낯설긴 했지만 저를 반기는 모습에 안도한 여주는 박박 우겨 사 온 화분을 건넸다.
"빈손으로 와도 되는데."
매번 물을 안 줘서 죽인다는 민석의 말을 참고해서 산 작은 선인장이었다. 사실 선인장도 죽여 본 적 있는 여주였지만 말이다.
"고마워, 아직 식사 안 했지?"
"누나가 밥 먹자고 불렀잖아."
"손 씻고 와, 거의 다 됐어."
나란히 화장실로 들어선 여주와 민석이 열심히 손을 닦았다. 그러다 거울로 마주친 두 눈에 웃음이 터져버렸다. 한편, 아영은 흐뭇한 얼굴로 식사 준비를 마쳤다.
"애들아, 밥 먹어."
잘 먹겠다며 고개까지 꾸벅이며 인사하는 그녀에 손사래를 치며 편하게 하길 바라는 아영이 고기반찬을 여주 쪽으로 밀었다.
"누나, 나는?"
"넌 팔 길잖아."
"우와, 나 섭섭하려고 하네?"
"섭섭해하세요- 아, 근데 예림이는?"
"몰라, 누나가 전화 안 해봤어?"
"너희 서로 안 챙길래?"
어쩐지 그녀에게서 부모님이 비춰 보이는 건지 여주는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서로 안 지는 1년이 됐어도 사적으로 밥을 먹는 건 처음이었다.
"근데 너희 둘은 언제부터 만났어?"
"얼마 안 됐어요."
"언제부터 알았는데?"
"종인이가 소개해줬어."
"아아, 종인이? 까맣고 운동하는 애?"
"풉,"
까맣고 운동하는 애라니. 누가 들어도 그건 종인을 설명하는 문장이었다. 예의 없게 웃음이 터진 여주는 곧 고개를 푹 숙였다. 어떻게 해서든 참아보려는 노력이었다.
"편하게 웃어도 돼."
"그래서 둘이 결혼은 언제 할 건데?"
"켁, 콜록콜록."
참 요란하기도 하지. 다양한 소리를 내며 식사를 하는 여주는 입에 넣었던 밥이 잘못 들어간 모양인지 얼굴을 붉게 물들며 기침을 했다. 아영이 내민 컵에 담긴 물을 들이부어도 연신 따끔거리는 목구멍에 눈물을 찔끔 짰다.
"결혼이요?"
"할거지?"
겨우 진정된 여주가 확인사살이라도 하는 듯 다시 물었고 그녀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되물었다. 당황스러운 건 여주뿐인지 고개를 돌려 민석을 바라보자 웃음꽃이 피었다.
"누나 우리 결혼해?"
"해야지, 서로 좋아하면."
"하핳."
그냥 바보같이 웃을 뿐이었다. 당황스럽긴 했지만 꽤 대화도 이어나갔고 즐거운 식사 분위기였다. 물론, 10분 전 집으로 돌아온 예림이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녀가 돌아오자마자 자리에 식탁에 앉아있는 여주를 보곤 냅다 가방을 집어 던졌다. 고의든 우연이든 일단 가방에 맞은 여주는 그 상태로 굳어버렸다.
"너 뭐야,"
"김예림 뭐 하는 짓이야."
"아, 누나!"
큰소리를 낸 민석의 목소리에 그제야 정신이 든 여주는 자리에서 일어나 예림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것마저 무참히 무시당했지만 말이다.
"김예림, 너 내가 가정교육을 그렇게 했어?"
"쟤 몇 살인지는 알아?"
"스물하나. 그게 뭐,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 그리고 누가 이렇게 예의 없게 대하래? 어리면 이렇게 막 해도되? 어!?"
"왜, 결혼이라도 시키게?"
"둘이 좋다면 못 시킬 건 뭐야."
눈치 보이는 이 상황에서 여주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개를 숙이고 서 있는 것밖에 없었다. 단란한 가정 괜히 망가트리는 기분이 들어 썩 유쾌하진 못했다.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민석의 얼굴을 보자니 더욱 그랬다.
"민석이, 여주 데려다주고 와."
"응, 가자 여주야."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
*
"미안해."
대문을 열려던 여주는 손을 뻗어 민석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잔뜩 기죽은 모습이 여간 보기 안 좋았다.
"뭐가 그렇게 미안한데, 네가 잘못한 게 없잖아."
"나 때문에 맞았잖아."
"누가 들으면 뺨이라도 맞은 줄 알겠네."
"맞았잖아."
"뭐, 가방으로? 그게 뭐 대수야? 그 정도 맞는다고 안 죽어. 내가 괜찮다잖아. 자꾸 그렇게 씹쭈구리처럼 굴면 내가 불편하잖아."
고개를 들고 마주하는 두 눈에 여주가 먼저 웃음을 보였다. 조금이라도 편하게 출장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그에게도 닿았는지 그도 어설프게 웃음을 보였다.
"아프지 말고, 잘 다녀와."
"응, 보고 싶을 거야."
"그래."
"너도 아프지 말고 있어."
그렇게 기약 없는 이별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