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여주, 나 인도네시아에서 마지막 전화야."
"어?"
"나 한국 들어간다고. 빨리 보고 싶다."
"아, 대박."
"응?"
"아냐. 도착해서 전화줘."
사실 오늘 퇴근길에 애정표현을 하는 희연이네 커플을 보며 민석이 보고 싶어 속으로 울부짖던 게 생각났다. 한 달여 만에 만날 생각에 잔뜩 신이 난 여주는 화장대 앞에 앉아 자신을 요리조리 살폈다. 까칠한 피부에 팩이나 할까 일어났는데 전신거울에 비친 돼지 한 마리에 여주는 인상을 썼다. 말리는 사람도 없으니 신이 나서 부어라 마셔라 한 게 화근이었다.
"난 몰라."
서랍을 열어 옷을 주섬주섬 챙겨입었다. 물론, 외출 말고 옷이 들어가는지 확인을 해본 거다. 그래도 다행히 들어가는 옷가지들에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부터 다이어트라도 시작해야 할 판이였다.
"내일 본가..가?"
문을 두드리고 얼굴을 내민 보라에 화들짝 놀란 여주가 굳어버리자 어디 가냐며 눈을 크게 뜨는 그녀였다. 사실 당황하긴 보라도 마찬가지였다. 새벽이 다 돼가는 시간에 외출복을 입고 있는 모습은.
"내일 약속 있나 봐?"
"아, 아뇨."
"하하, 그럼 왜 이 새벽에."
"옷이 맞는지 확인. 살이 찐 거 같아서!"
*
*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보고 싶은 민석이는 피곤함도 못 느끼고 콧노래를 부르며 나갈 채비를 했다. 그런 그를 삐딱하게 서서 바라보는 예림이었다.
"걔가 그렇게 좋냐."
"응, 예쁘잖아."
"야, 예쁘다고 그렇게 좋아하면 안 돼!"
"그리고 엄청 착해. 엄청 서툴러서 틱틱거리는데 그게 또 엄청 귀엽다? 막 처음에 봤을 때는 무슨 사람이 저러나 싶을 정도로 딱딱했는데 점점 바뀌고 있어."
"지랄."
짜증 나는 표정으로 예림이 방문을 닫고 나갔다. 그래도 딱히 상관은 없는 듯 민석이는 머리를 만지며 연신 콧노래였다. 한 달 만에 더 예뻐졌을 그녀를 기대했다. 서둘러 보고픈 마음에 약손 시간보다 1시간이나 먼저 나온 민석이는 바리바리 싼 선물꾸러미를 들고 화장품 가게로 향했다.
"어떤 거 찾으세요?"
"음, 립밤이요."
"색상 있는 거 찾으세요?"
"아뇨."
고심 끝에 고른 립밤을 품에 소중히 넣고 그녀가 도착했을 장소로 향했다. 여름에 어울리는 짧은 반바지에 시원한 끈나시 차림의 여주가 보였다. 얇은 가디건을 걸친 어깨에는 찰랑거리는 생머리가 덮고 있다.
"여주야!"
양손 무겁게 든 선물 보따리는 이미 잊은 지 오래 민석은 신이나 여주에게로 곧장 달렸다. 당황했던 그녀도 어느새 환하게 웃으며 민석에게 손을 흔들었다. 급하게 안기는 바람에 휘청이는 얇은 몸에 그녀를 더 세게 안은 그가 말했다. 보고 싶었다고. 이번엔 여주도 마찬가지인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품으로 더욱 파고들었다. 반가운 만남도 잠시 더위를 심하게 타는 여주는 카페로 그를 이끌었다.
"짜란,"
"이게 뭐야?"
"아아, 우리 50일 기념 선물이랄까?"
확인해보나 마나 4개 쇼핑백 모두 인형이었다. 황당한 상황에 말이 없던 여주는 인형을 만지작거리다 웃음이 터졌다. 솔직히 웃기지 않는가 다 큰 사내가 인형 뽑기 앞에서 매일 인형을 뽑았을 모습에 터져 나온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왜 웃어?"
"아니야. 큽, 그래서 이게 다 몇 개야?"
"50개! 왜, 싫어?"
"아니, 고마워. 근데 왜 50개야?"
"우리 50일이었잖아."
신이 난 목소리로 50개라는데 그게 또 그렇게 웃긴 지 아예 눈물을 흘리며 인형을 만지작거린다. 영문을 모르는 민석이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이유조차도 황당했지만 그게 또 웃겼는지 한참을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