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무슨 영화 봐?"
자신을 올려다보는 여주에 민석이 자신만만하게 감동 실화인 영화표 2장을 들이밀었다. 깜빡 좋아하던 것도 잠시 입이 나와선 맨날 비슷한 것만 본다며 툴툴대는 그녀였다. 저는 여주가 좋아할 법해서 고른 거였는데 여주는 그게 아니었나보다.
"아니이, 싫은 건 아닌데 맨날 나만 울어서 화장 다 번지고 나오잖아."
아아, 짧은소리를 내자 두 볼이 붉어진 그녀가 터덜터덜 앞서 걸었다. 그제야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에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래도 자신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어 한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져 여주의 뒤를 졸졸 쫓았다.
"그럼 우리 내일은 다른 장르 볼까?"
자연스럽게 어깨에 손을 올린 그가 묻자니 여주는 신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매번 울어서 화장이 번진 못난 모습만 보인 게 그렇게도 마음에 걸렸었나 보다. 오늘도 슬픈 영화 덕에 펑펑 운 여주는 고개를 숙이고 나왔다. 어쩜 화장이 번진 모습도 귀여운지 민석이는 귀여워 죽을 지경이다.
"어디 갈까?"
"더워, 빙수 먹으러 가자."
고개는 푹 숙이고선 빙수 가게를 가자며 잡아끄는 손길에 못 이기는 척 뒤따랐다. 제 손을 꼭 잡고 이끌 땐 언제고 가게에 들어오자마자 손을 놔버려 민석은 못내 아쉬웠다. 제가 들고 가겠다며 민석을 홀로 자리를 찾아 보냈다. 자리에 혼자 앉아있는 민석이는 주위를 둘러보며 저마다 애정표현 중인 커플들을 바라봤다.
"뭘 그렇게 봐?"
"으응? 아냐!"
고개까지 세차게 저어가며 부정하는 모습에 여주는 영문을 모른다는 표정으로 맞은편에 앉았다. 빙수를 맛있게 입에 넣는 여주가 문득 앞에 앉아 멍청하게 있는 민석을 힐끔 바라봤다.
"뭐."
"뭐가?"
"자꾸 쳐다보잖아."
"내가?"
"어, 네가 날."
빤히 마주쳐오는 두 눈에 민석이는 괜스레 찔려 눈알만 굴려댔다. 그 모습이 꽤 의심스러운 여주는 민석이를 한참이나 바라보다 다시 숟가락을 놀렸다.
"여주야, 손."
"싫어, 더워."
"실내잖아."
"그래도 땀 차."
단호한 여주는 숟가락들은 손 반대 손마저 테이블 밑으로 숨겨버렸다. 서운한 기색이 역력한 민석이는 입술을 비죽이며 괜히 빙수를 뒤적거렸다. 그 모습에 여주는 먹는 거로 장난치지 말라며 짜증을 부렸다.
"아아, 손잡아줘라."
"손 치워라."
"그럼 같이 앉을까?"
"자리도 넓은데 굳이?"
"너무해."
*
*
자신이 준 인형 꾸러미에 떠밀려 존재가 잊혔던 립밤을 꺼내서 다시 한번 확인한 뒤 현관문을 나섰다. 오늘은 또 어떤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잔뜩 기대에 부푼 민석이는 오늘도 연신 콧노래다. 약속 장소로 가자 평소와 다른 것 없이 여전히 예쁜 여주가 자신을 발견하고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여주!"
"아, 쪽팔리게 내 이름 크게 부르지 마라니까?"
"알겠어, 알겠어."
"무슨 영화 예매했어?"
"비이밀-"
"그거 되게 얄밉네."
"빨리 가자."
슬쩍 팔짱을 껴오는 민석에 여주는 못 이기는 척 걸음을 맞췄다. 영화관 입장 전 웬일로 팝콘을 사자는 그에게 고개를 끄덕였고 그 이유를 깨달은 건 영화가 시작하고 나서였다.
"...윽,"
반복적으로 들려오는 앓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팝콘 통에 제 작은 머리통을 숨기곤 연신 끙끙거리는 여주가 보였다. 예상하지 못한 모습이었지만 잔뜩 겁에 질린 모습이 어쩐지 귀여웠다. 어떡해, 나 변탠가 봐..
"으윽,"
어쩐지 칼을 맞는 주인공에 빙의된 여주는 자신에게 칼이 꽂히는 것처럼 미간을 찌푸리고 앓는 소리를 내며 팝콘 통을 더욱 꽉 잡았다. 영화가 끝나고 주섬주섬 나갈 채비를 하는 사람들 틈에서도 한참을 앉아있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버린 그녀였다. 저렇게까지 무서워하는 그녈 보니 그제야 미안함이 느껴졌다.
"미안, 이렇게까지 무서워할 줄 몰랐어."
"됐어, 너 재미있었으면 됐어."
"나는 그래도 예전에 네가 공포 영화 볼 때만 팝콘 먹는다는 거 듣고 산 거였어. 눈치챌 줄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