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또 어디가?"
"연극 보러."
"아, 그래서 그렇게 입었냐?"
버스정류장에서 우연히 만난 여주에게 야박하게 구는 기범이었다. 뾰로통한 표정으로 그를 흘리며 버스를 기다렸다.
"너는 어디 가냐? 여자친구?"
"아니, PC방."
"여자친구는?"
"집에 있겠지,"
무신경한 말투에 민석이 어디 가서 그러진 않을까 심히 걱정스러웠다. 모르긴 몰라도 녀석의 여자친구도 불쌍했고 말이다. 진입하려는 버스를 타려 몸을 일으키는데 기범이 어깨를 찍어누르며 다시 앉혔다. 뭐 하는 거냐며 짜증을 내자 자신이 더 짜증을 낸다.
"그 형이 잘해주냐?"
"어, 잘해주니까 비켜라."
"좋냐?"
"좋다, 이 미친놈아. 아, 비키라고!"
신경질적으로 일어나자 그제야 비켜주며 PC방으로 간다며 훌쩍 떠나버렸다. 그럼 뭐하나, 이미 버스는 지나갔는데. 결국 혼자 남겨진 여주는 민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야?"
"나 약속장소지."
"나 좀 늦을 수도 있어."
"아아, 괜찮아!"
머쓱하게 말하는 여주에 민석은 태연히 괜찮다고 대답했다. 아무렴 상관없었다. 이런 소소함이 민석이 바라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저 이 순간이 너무 설렐 뿐이다. 늦는다더니 저 멀리서 오늘도 여전히 예쁜 여주가 걸어왔다. 손을 흔들며 이름을 부를까 하다 창피하다는 말이 떠올라 그만뒀다.
"안 늦었네?"
"응, 바로 버스가 왔어."
"버스 놓쳤어?"
"응, 김기범이 갑자기 나 괴롭혔어."
"김기범?"
예전 그 언제가 한번 본 기억에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남자라는 존재가 옆에 붙어있는 게 신경은 쓰이는지 은근슬쩍 친하냐고 물었다. 한참을 눈알을 굴리던 여주는 느긋하게 대답했다.
"응, 중학교 때부터 친구."
"엄청 오래됐네?"
"그렇지, 근데 엄청나게 싸워. 걔가 나 엄청나게 갈구거든."
영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하던 여주가 떫은 표정의 민석이를 힐끔 바라보곤 턱을 손으로 만졌다. 강아지를 만지듯이 쓰다듬는 행동임에도 그는 연신 시무룩할 뿐이었다.
"김기범이랑 놀지 마?"
"아니이, 친구라며 친구랑 놀아야지."
"오빤 친구 김종인밖에 없어?"
"종인이가 제일 친하지."
"왜 못생긴 애랑 친구냐."
"못생기긴."
장난 거는 건데도 시무룩한 그를 보자니 답답했다. 그래도 귀여워 보이는 제 눈이 미쳤다고 생각하며 사람들의 눈을 피해 그의 허리에 두 손을 감쌌다.
"ㅁ, 뭐야."
"하지 마? 싫으면 놓을게."
"아니, 좋은데?"
두 귀가 빨갛게 달아오를 땐 언제고 자신의 손으로 풀지 못하게 꽉 잡는 그였다. 그렇게 둘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지하철에서 내릴 때까지 껴안고 있었다.
*
*
"커플티 어때?"
"됐다고 했다."
연극을 보고 나란히 걷던 그의 눈에 커플티가 보였다. 커플티를 맞추자며 졸라대는 그에 여주가 단호하게 말하곤 음식점으로 들어가 버렸다. 여주가 제일 질색하는 게 연애하는 거 티 내는 거다. 물론, 수정이가 한몫했다. 데이트할 때마다 입는 커플티에 단톡방에 올라오는 종인과 함께 찍은 사진들.
"꼭 티를 내야 해?"
"티를 낸다기보단 그냥 너랑 내가 같은걸 공유하고 싶은 건데.."
"흐음, 그럼 우리 요 앞에 커플링 만드는데 있던데 갈래?"
"반지는 괜찮아?"
"괜찮을 것 같기도? 부담되는 가격도 아니더라고."
솔직히 말하면 이번 데이트에서 커플티 이야기가 나오는걸 예상하고 있었다. 저번 놀이동산데이트에서 스치듯 한 말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짜?"
"응, 이것도 싫으면 말고."
금세 기분이 풀린 민석이는 콧노래를 부르며 고기를 구웠다. 신이 나서 고개를 굽는 그를 보고 있자니 문득 떠오르는 기범이 생각에 물음을 던졌다.
"오빠도 게임을 해?"
"게임? 안 좋아하는데."
"그럼, 담배는?"
"담배 싫어하지."
"그럼, 술은?"
"마시는 거야 나쁘지 않은데 그래도 별로. 네가 같이 있으면 모를까."
"도대체 무슨 재미로 살아?"
"나? 여주 때문에 사는데?"
"아, 그럼 혹시 죽을래?"
더럽게 예의 바르네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