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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바로 내 두눈을 봐
작가 : 폭력햄스터
작품등록일 : 2019.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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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바로 내 두눈을 봐 #28
작성일 : 19-11-10     조회 : 355     추천 : 0     분량 : 3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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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추석이 다가왔다. 엄마도 스트레스지만 장녀인 여주도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유는 할머니의 말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여자아이인 여주에게 자꾸만 돈 많은 남자에게 시집갈 것을 요구해왔었다. 다 큰 성인이 된 여주에게는 그런 기억밖엔 없기에 할머니 댁에 가는 건 두려움과 스트레스였다.

 

 "누나, 우린 집에 있을까?"

 

 힐끔 눈치를 보며 하는 말에 대충 주억거렸다. 나면 몰라도 손자 안 오면 난리일 게 뻔했다. 서운해도 어쩔 수 없지 않은가. 할머니는 남아선호사상을 평생 당해왔던 사람일 텐데.

 

 "누나, 괜찮아."

 "응."

 "마음에 담아두지 말고."

 

 제 손을 꼭 잡아 보이는 태형이를 보며 짓궂게 웃었다. 매번 상처받는 저류 제일 잘 아는 동생이었다. 그래도 여주가 혼자 방 안에 있는 게 신경 쓰여 할머니가 내미는 간식 보따리를 마다하고 방안으로 쫓아다니며 신경을 써줬다. 항상 외롭지 않게 함께 있어 줬다.

 

 "어이구, 우리 태형이. 멀리서 오느라 수고했어. 춥지? 얼른 방으로 들어가."

 

 차에서 내린 태형에게 곧장 걸음 한 할머니는 얼굴을 매만지며 방으로 데려갔다. 엄마·아빠를 도와 이 짐, 저 짐 챙겨 든 여주는 그저 묵묵히 짐을 옮길 뿐이다.

 

 "여주, 오랜만?"

 "아, 안녕하세요."

 "춥지? 얼른 들어가."

 

 큰어머니의 목소리에 큰 방문이 열리며 큰아버지와 작은아버지가 반겼다. 어깨너머로는 꽤 오랜만에 보는 재중이도 함께였다.

 

 "여어- 히사시부리."

 "군대 다녀왔는데 웬 일본어?"

 "오랜만이라는 거지. 얼굴 보기 힘들다?"

 "오빠가 서울을 와."

 "나 만나줌?"

 "태형이랑 놀아."

 "뭐야, 남자친구 생겼냐?"

 

 재중의 말에 휴대폰을 보던 태형이 눈을 부릅뜨며 여주를 바라봤다. 옆에 계시던 큰아버지는 꽤 흥미로운 표정으로 셋을 바라봤다. 당황한 것도 잠시 없다고 덤덤하게 말을 내뱉은 여주는 재중을 피해 구석으로 가 앉았다. 간간이 근황을 물어오는 어른들에 대답을 하며 휴대폰을 하고 있던 여주는 할머니의 부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주 너는 여기서 뭣해? 부엌 가서 네 엄마나 도와줘."

 "네."

 

 터덜터덜 부엌으로 향했다. 둘러앉아 전을 부치던 어른들은 여주의 등장에 어리둥절했다. 대충 앉아 엄마가 든 뒤집개를 빼앗아 들었다.

 

 "안에 가서 쉬지."

 "재미없어, 이거 도와줄래."

 

 차마 할머니가 쫓겨냈다고는 말 못 하고 그저 묵묵히 전을 부칠 뿐이었다. 무표정한 표정으로 많은 양의 전을 뒤집고 뒤집다 지친 여주는 엄마에게 다시 뒤집개를 건넸다.

 

 "거의 됐으니까 여주는 식사하라고 좀 전해줘."

 

 뭉그적뭉그적 방문을 열어 어른들을 불렀다. 여태껏 꼼짝하지 않던 남자 어른들이 여주의 한마디에 우르르 나와 부엌에 둘러앉았다. 우리 아빠지만 내 동생이지만 정말 얄미웠다. 부엌을 그냥 빠져나가려는 여주를 붙잡은 건 큰아버지였다. 밥을 같이 먹자는 이야기에 고개를 저었다. 할머니가 알면 놀라 쓰러질게 뻔했다.

 

 "누나, 자리도 많은데 그냥 같이 먹고 산책 가자."

 

 태형이의 성화에 못 이기는 척 수저를 들었을 때 할머니가 큰소리로 호통을 쳤다. 어떻게 남자 가족들과 함께 식사하냐는 차가운 말에 여주는 수저를 다시 내려놨다. 같이 있는 순간이 너무도 불편한 순간이었다. 몸을 일으키려는데 큰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이 시대에도 그런 생각을 하는 할머니가 부끄럽다는 말에 할머니는 괜히 큰소리를 냈다. 달그락거리는 식기가 부딪치는 소리를 제외하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 여주의 휴대폰도 빼고.

 

 "김여주, 뭐야. 진짜 남자친구 생겼어? 휴대폰 엄청나게 울린다."

 "애인 생겼어? 뭐 하는 사람인데?"

 "애인없,"

 "있어, 여주 남자친구."

 

 여주보다 빠른 건 제 아버지였다.

 

 "대학은 어디 나왔고 돈은 많아?"

 "어머니, 해도 해도 너무 하는 거 아니에요? 여주는 손녀 아닌가요? 왜 매번 말을 그렇게밖에 못하세요?"

 

 결국 이번에도 큰아버지의 호통에 할머니는 자리를 뜨셨다. 그렇게 지옥 같은 명절이 지나가고 있었다.

 

 

 *

 *

 

 

 

 [2015.09.27. 일]

 정수정 → 따란

  다들 시골에 잘 도착함?

 ㅇㅇ ← 김여주

 김종현 → 몇 시 출발함?

 3시? ← 김여주

 박수영 → 새벽?

 이태민이랑 있어? ← 김여주

 박수영 → 응, 시댁 왔어

 

 정수정 → 우왕

  시댁이래

 그럼 뭐라하냐 ← 김여주

 정수정 → 아닝, 부럽다고

 

 김종인 → 그게 부러워?

 그런가보지 ← 김여주

 김민석 → 나도 부러운데

 넌 또 왜 ← 김여주

 김민석 → 아니야

 

 김기범 → 남자냐?

 왜 갑자기 시비세요 개새야 ← 김여주

 김기범 → 김여주가 여자일 리가 없어

 그래 ← 김여주

 나 남자다

 김종현 → 김기범 왜 여기서 싸움거냐

 

 이태민 → 맞아, 왜 자꾸 난리야

 

 정수정 → 재수없어

 뭔데 ← 김여주

 니네 싸움?

 김기범 → 니가 여자냐?

 

 김민석 →기범아 진짜 적당히 해라

  내가 한번만 더 말 그렇게 하면 어쩐다고 했냐

 아, 넌 왜 내 친구한테 난리야 ← 김여주

 정수정 → 솔직히 김여주는 모르니까 입 다물자

 모르면 알려줘야지 미친아 ← 김여주

 이태민 → 조금 있다가 통화하자

 ? ← 김여주

 

 

 집안 분위기도 카톡 분위기도 싸한 건 마찬가지였다. 기범이랑 친구들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건 같은데 말을 해주지 않으니 도통 알 수가 있나. 답답함을 느낀 여주는 슬쩍 집에서 빠져나왔다. 사실 이렇게 사라진다고 해서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했다. 한참을 걷다 동네 입구에 있는 정자가 보여 자리를 잡고 앉았다. 10분 정도 넋 놓고 있었을까 요란하게 울리는 전화를 내려다봤다.

 

 "여보세요."

 "밖이야?"

 "응, 잠깐 산책 나왔어."

 "아, 그래?"

 "할 말 있잖아."

 

 얼마 전부터 자신에게 지속해서 삐뚤어진 마음을 내비치던 기범이가 인제 와서야 떠올랐다. 사실 워낙 투닥대기 바빠 신경 쓰이지 않았다.

 

 "기범이가 나한테 불만 있데?"

 "그러니까 계속 그러는 거 아닐까?"

 "근데 우린 한 번도 서로 좋게 이야기 한 적이 없잖아."

 "아, 그것보다 걔가 민석이오빠한테."

 "오빠한테?"

 "아, 아냐. 아무것도."

 "죽을래? 빨리 말해."

 

 험악한 말투에 수정이는 한참을 망설이다 이야기를 꺼냈다. 차라리 모르는 게 나았을 이야기들에 여주의 안색은 더욱더 파리해졌다. 그녀는 민석에게 드는 미안함과 서운함이 섞였다.

 

 "김기범 이 새끼 미친 거 아니니?"

 "야, 뭘 또."

 "너라면 가만히 있냐?"

 "죽여버리지."

 "내가 이 개새끼 서울 올라가면 죽여버릴 거야."

 "오빠한테나 먼저 미안하다고 해."

 "내가 뭘."

 "오빠는 너 보호한답시고 그런 거잖아 걱정할까 봐 얘기 안 한 것도 있고. 미안하다고 먼저 해, 바보야."

 

 투덜투덜 전화를 끊고 고민하다 전화를 걸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는 그에 꾹 참았던 감정이 터져버렸다.

 

 "바보야, 그런 거면 그렇다고 얘길 해야지 왜 숨겨! 그리고 네가 왜 내 친구들을 만나서 그런 취급을 당해?"

 "걱정할까 봐,"

 "난 바보같이 아무것도 모르고, 오해할뻔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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