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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약혼녀에게
작가 : 시쿠글
작품등록일 : 2019.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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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나의 약혼녀에게
작성일 : 19-11-10     조회 : 247     추천 : 0     분량 : 5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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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6...

 

 1.

 "뭘 그렇게 쳐다보느냐?"

 

 "이렇게 쉽게 허락해주실거라곤.....생각을 못 했어서 말입니다."

 

 살짝 찡그려진 '미소년'의 얼굴.

 

 정말이냐는 듯한 그의 표정을 바라보는 남자는 덤덤했다.

 

 파란 눈을 가진 중년의 남자는 차분히 차를 마시며 창문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를 닮았으나 그보다 선이 더 얇고 아름다운 '미소년'은 그의 아들임이 분명해보였다.

 

 "공작각하. 정말로 공자님을 보내셔도 괜찮겠습니까..."

 

 방에 들어있었던 그 시종장이 중년의 남자를 향해 질문을 하자 그 남자가 대답했다.

 

 "글쎄....그대는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것인가?"

 

 "스피나 제국의 두 기둥인 자안가와 미르가의 자제가 모두 솔리오라 제국으로 가는 것은 조금 위험할 것이라고 판단되는지라..."

 

 "그렇다고 저리 좋아하는 약혼녀를 떼어두고 홀로 스피나 제국에 둘 수도 없는 노릇이고..."

 

 카르텔 미르는 자신의 수염을 천천히 쓰다듬으며 찻잔을 손목으로 천천히 굴렸다.

 

 "이제 루한도 무언갈 스스로 할 나이가 되었지 않았나."

 

 그런 공작을 보면서 시종은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2.

 저벅. 저벅.

 

 방을 나온 공자의 아름답게 조각된 얼굴에서는 차가운 냉소가 뿜어져나왔다.

 

 그는 자신의 손가락을 쥐었다 폈다 거리며 멍울진 자신의 감정을 달래보았다.

 

 그의 차가운 냉소는 곧 조소로 바뀌었다.

 

 루한 미르:<엔남.달행.달료.달남>

 

 그는 미르가 현 가주의 동생인 카르텔 미르 공작의 외아들이었다.

 

 그는 그의 어머니가 죽은 뒤로부터, 즉 그가 태어난 이후부터 여자만 보면 결벽증스러울 정도로 몸서리를 치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 루한은 자신에게 말을 거는 모든 여자들을 싫어했다.

 

 특히나 늘 아버지가 자신의 생일만 되면 미친듯이 울고 있을 것을 보면서 '난 절대 여자를 사랑하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하며 자란 루한이었다.

 

 안타깝게도 '약혼'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어린 루한의 어설픈 철벽을 파고든 유리는 예외였지만 말이다.

 

 그렇기에 루한은 유리에게 더 집착했다.

 

 루한의 새하얀 얼굴에서 서리같은 웃음이 비쳤다.

 

 너가 날 바라보지않고 도망가려고 한다면

 

 내가 너의 옆에 가서 널 돌려앉혀서라도 나를 보게 만들거야.

 

 3.

 유리 자안. 그리고 루한 미르.

 

 그들은 돌반지대신 약혼반지를 주고받은 사이였다.

 

 스피나제국의 무력을 담당하는 가문 자안가와 재력을 담당하는 가문 미르가의 정략약혼은 비밀리에 이루어졌었다.

 

 알려져봐야 국가적 분쟁으로만 이어질 사안이었으니 말이다.

 

 아는 사람이라고는 스피나제국의 황가와 가문과 관련된 친한 지인 몇 뿐이었다.

 

 그리고 약혼식날 그들이 들을 수 있었던 진정어린 축하는 황제의 축하뿐이었다.

 

 "경사로군."

 

 "경사지요."

 

 "그렇겠죠."

 

 제 딸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는데요.

 

 황제의 목소리 뒤에 붙어나와야 할 가신들의 목소리에선 어찌보면 귀찮다는 듯한 저찌보면 어쩌라는 거냐는 듯한 목소리가 곳곳에서 울려퍼졌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약혼은 '황제'가 주선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가신들의 꾹 다물어진 입술.

 

 거대한 두 가문이 합쳐진다는 사실은 또 다른 전쟁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미르가의 공자가 마음에 안든다면 말하게 자안후작. 내 나의 아들을...."

 

 "만족하고 있습니다."

 

 왕의 말을 자른 후작은 그저 카르텔 공작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스피나 제국에서 힘의 균형을 맞추어야하기에 필연적으로 싸울 수 밖에 없는 두 가문.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런 사이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가 '약혼'이라는 단어 때문이라는 것을 루한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늘 아버지에게 물어보면,

 

 "너의 반려가 될 사람이니 늘 함께 있어주고 함께 웃어주고 함께 울어줘야한단다."라고 말해주셨으니깐.

 

 4.

 "내가 왜 걔랑 그렇고 그런걸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건데?!”

 

 14살 사춘기가 될 무렵, 아이가 생기는 과정에 대해서 알게 된 후였을거다.

 

 "넌 어짜피 자안후작가의 유리영애랑 그렇고 그런거 해야할껄? 너희는 약혼한지가 10년이 넘었잖아."

 

 "그래도 그건 아냐. 만약 '약혼'이 정말 그런거라면 난 때려치우겠어."

 

 "두 집안이 '약혼'이라는 것을 전제로 경제적, 정치적으로 많은 걸 함께해왔으니 어짜피 깰 수도 없을껄? 그니깐 너흰 필연적으로 그렇고 그런걸 해야하는 사인거고.”

 

 "하지만 난 그 애를 지켜줘야해. 그앤 내 여동생이란 말이야."

 

 루한의 하얀 볼은 금새 새빨갛게 물들었다.

 

 "그럼 뭐하냐. 넌 걔를 여자라고 생각해야 하는 운명인데."

 

 예나 지금이나 얄미운 이안은 루한을 골려주려고 작당한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유리영애 정도면 꽤나 괜찮은 혼처 아닌가? 얼마전에도 유리영애가 카를 후작네에 놀러갔을 때 루이가 고백했다던데."

 

 "근데 애가 자안가라서 그런지 조금 무섭긴해. 특히 검술연습할 때."

 

 뭐가 어찌되었건 난 그 말 덕분에 처음으로 질투라는 걸 느꼈었던 것 같다.

 

 난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 아버지에게 갔었다.

 

 그 당시에도 아버지는 과묵하셨고.

 

 "아버지. 저는 이 약혼이 싫습니다."

 

 "...원래 약혼이란게 다 그런거지."

 

 또 늘 그랬듯이 하얀 김이 나는 따뜻한 차를 마시며 창 밖을 바라보고 계셨다.

 

 "저랑 어릴 때부터 함께 해왔던 '여동생'이기 때문에 저는 그 애와 '약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럴만하지. 그럴 나이였지 않느냐."

 

 "어째서 저에게 '약혼'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으신 겁니까?"

 

 난 나의 불결한 감정을 아버지의 잘못이라는 양 떠들어댔지.

 

 "저한테는 늘 지켜줘야하고 챙겨줘야하는 여동생이였다구요."

 

 "그건 부인에게 가져야할 기본적인 소양이란다."

 

 "아무튼 저는 이 '약혼'. 인정할 수 없습니다."

 

 난 아버지에게 호적이 파이더라도 이 약혼을 깨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날 너무 과대평가한 거였었어.

 

 톡톡...

 

 너무 자그맣고 하얀 손가락이 내 교복을 찌르길래.

 

 사실은 1년 전만해도 비슷했던 키가. 내가 갑자기 키가 크면서 한뼘이나 차이가 나길래.

 

 그래서 나는 그 아이를 내려다봤는데.

 

 나를 올려다보던 너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했었다.

 

 "오빠....나 싫어?"

 

 조그마한 목소리.

 

 하얗고 통통한 볼을 가진 너.

 

 

 "...아니."

 

 내가 널 왜 싫어하겠어. 내가 널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데...

 

 "근데... 근데 왜 나랑 '약혼'하기 싫어?"

 

 '너가 소중하니깐.' 이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문득 루이가 생각났다.

 

 이안이 말해줬었던 루이의 고백.

 

 '얼마 전에도 유리 영애가 카를 후작네에 놀러갔을 때 루이가 고백을 했다고 하더라고.'

 

 그때 잠깐 제정신으로 돌아왔었던건지...

 

 아님 그게 제정신으로 돌아왔던게 아니였던건지.

 

 나 말고 다른 사람의 품에 안겨있을 널 생각하니깐 너무 끔직하더라.

 

 난 분명히 내가 너와 '약혼'을 하면 너에게 상처를 주는 것만 같고 그래서 착한 오빠로만 남고 싶었는데.

 

 막상 다른 사람과 '약혼'을 한 너를 생각하면 그런게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싶었다.

 

 "난 분명히 너한테 '약혼'을 깨자고 말했어."

 

 나의 말에 너의 눈에선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도 그 눈물이 너무 맑고 예뻐보였고...

 

 "근데 넌 지금 나를 잡는거야?"

 

 끄덕끄덕.

 

 너의 하얗게 보일정도로 눈부신 햇살에 비치는 너의 금발이 흔들리는 것을 보면서.

 

 뽀얀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 때문에 젖은 눈매를 보면서.

 

 "진짜 후회 안 할 자신 있어?"

 

 나는 무릎을 꿇은 채로 너의 눈높이 맞춰서 널 바라보았는데.

 

 "난 너가 너무 소중한 동생이여서 이런 행동을 하는거야.그리고 내가 너한테 안잡혀주면 너가 또 울까봐. 그래서 잡혀주는거야."

 

 끄덕끄덕.

 

 하얀 볼에 흐른 눈물을 내가 조심스럽게 닦아주었을 때.

 

 난 너에게 분명히 의사를 물어봤었고 넌 나에게 분명히 약혼을 하자고 했었잖아.

 

 그니깐 넌 나랑 앞으로 함께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나의 부인으로 그렇게 살아야 하잖아.

 

 난 너의 그 눈물 한방울에 그렇게 매혹되어 버렸었는데.

 

 그래서 평소보다 진짜 조금 더 세게 너의 팔목을 잡았을 뿐인데.

 

 "울지마."

 

 내 목소리가 혹시 차갑고 악랄하게 들렸을까.

 

 혹시 내가 너의 팔을 너무 세게 잡았던 건 아닐까.

 

 "난 내 약혼녀가 아무대서나 이렇게 우는게 너무 싫어."

 

 그런 나쁜 말을 해놓고선... 너의 사랑을 갈구하는 내가 싫었던거야?

 

 아니면 도대체 왜 자꾸 나한테서 도망치려고 하는건데.

 

 내 상황이 모순적인 것 같다고?

 

 나도 알아.

 

 나 지금 되게 모순적이잖아.

 

 니 앞에서 뛰는 내 심장도 모순적이고.

 

 너의 사소한 행동도 질투가 나는 내 모습이 모순적이고.

 

 그리고 지금 이 상황도 참 모순적이야.

 

 너를 데리러 내가 솔리네대학으로 가고 있는 이 상황이 말이야.

 

 분명히 날 버리고 간건 넌데 왜 다가가는 건 날까.

 

 5.

 입학연회에 겨우 도착한 루한이 시계를 보자 시계는 오후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도련님. 이제 가면을 쓰실 시간입니다."

 

 "벌써 그렇게 됐나보군..."

 

 루한은 대부분의 학생들이 끼고 있는 마스크를 보면서 손을 내밀었다.

 

 "알았어."

 

 루한은 대답과 함께 시종이 자신의 손에 올리는 하얀 반가면을 얼굴에 걸었다.

 

 안타깝게도 그의 외모는 반가면에는 가려지지 않는 듯 했다.

 

 하얀색의 세미정장에 하얀 반가면을 착용한 루한.

 

 파란 바다를 닮은 그의 눈동자는 바닷물을 두 스푼쯤 퍼서 동그랗게 말아넣었을 것만 같았다.

 

 그는 푸른 은발을 뒤로 넘겨서 신사적인 분위기를 더했다.

 

 그에게 나는 쿨워터향과 그의 옷이나 시계에서 반짝이는 보석들은 여자들의 시선을 집중시켰고.

 

 180cm는 넘을 법한 키에 적당히 벌어진 어깨도 그의 조각같은 분위기를 더해주었다.

 

 가면을 쓰기 전까지만 해도 말을 걸 엄두를 못내던 여학생들은 가면을 쓰고나서 용기를 내어 그에게 향했다.

 

 "저...기. 혹시 어느 반 학생인지 알 수 있을까?"

 

 노란색 드레스를 입은 한 소녀가 먼저 말을 걸었다.

 

 떨리는 여학생의 목소리.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보다 떨리는 것은 그의 눈을 바라본 그 순간이었다.

 

 "..."

 

 난 너 마음에 안드니까 저리 가줄래.

 

 꺼져달라는 듯한 차가운 눈빛.

 

 "아.... 안 가르쳐 줄꺼면 말고..."

 

 소녀는 가면때문에 보이지도 않는 붉어진 얼굴을 황급히 가리며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짜증나.

 

 루한은 속으로 뇌까렸다.

 

 "...얘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거야."

 

 루한은 점점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자신을 버리고 홀랑 솔리네대학으로 입학한 유리를 따라 솔리네 대학에 신입생으로 다시 입학하는 것은 별로 어렵진 않았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행보에 대해서 아무 말 없이 따라온 것도 루한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뒤로 얼굴을 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벌써 못 본지 2주가 다되어 가는데...

 

 그는 자신의 말라비틀어져가는 입술을 핥았다.

 

 루한은 짜증을 가라앉히기 위해 붉은 레드와인이 담긴 술잔을 살짝 기울였다.

 

 그의 붉은 입술이 투명한 술잔에 닿이고 술잔 안에 들어있던 레드와인이 그의 목구멍을 타고 흘러들어갔다.

 

 깔깔한 느낌이 강렬한 향과 함께 그의 식도를 타고 타들어갔다.

 

 "후...."

 

 점점 싸늘하게 식어가는 루한의 눈을 비집고 들어온 것은 다름아닌 나비금침을 단 여자아이였다.

 

 금테의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그녀의 머리카락은 금발이었고 그녀의 체구를 슬쩍 훑어본 루한은 씨익 웃었다.

 

 "저기 있었네."

 

 도망간 약혼녀님.

 

 ...99

작가의 말
 

 재밌으셨다면 선호작을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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