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1.
"루한 미르!!! 드디어 왔구나!"
이안 헤겔:<엔남.은길.엔저위.하제바>
적안에 적발을 가진 미소년은 미친듯이 뛰더니 풀쩍 뛰어 루한의 품에 안겼다.
"...."
"보고싶었어!!!"
"...떨어져."
루한은 차분히 아인에게 떨어지라고 종용하자 루한의 성격을 잘 아는 이안은 금방 그의 품에서 떨어져 나왔다.
"알았어."
떨어진 뒤 이안은 대답을 하며 또랑또랑한 눈으로 루한을 쳐다보았다.
얼핏보기에 180cm 쯤 되어보이는 키에 적안과 적발은 다른 사람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손색이 없었다.
더군다나 헤겔가.
헤겔가는 솔리오라제국에서 '용의 전사가문'이라고 불릴 정도로 엄청나게 많은 용의 전사를 배출한 가문이었기에.
사람들은 그들의 붉은 머리카락과 붉은 눈을 보면서 '용의 시험을 치루며 묻어나온 피'라고 경외하였었다.
"선생님은 아직도 잘 계시냐...?"
"우리 아빠?. 어 엄청 잘 계시지."
이안의 발랄한 대답.
그를 잠잠히 듣고 있던 루한은 부드럽게 머리를 쓸어넘겼다.
"수업 듣기 전에 먼저 가서 뵈야하는데 니가 앞장서라."
루한은 자신의 귀에 걸려있던 귀걸이를 빼서 한 손으로 던졌다 잡았다를 반복하며 그에게 말했다.
그가 빼고 있던 귀걸이는 태양모양으로 조각된 사파이어의 밑으로 한줄로 파베세팅된 줄이 3개 정도 물결을 치며 흔들리고 있었다.
드르륵.
그 순간 강의실의 문이 열리고 한 교수가 들어오자 이안은 급하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난 지금 시간대에 수업 없어서 강의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테니깐 수업마치면 나와라!"
이안은 자신이 할 말만 마친 채로 강의실 뒤로 뛰쳐나갔다.
"....여전히 시끄럽네."
루한은 간만에 시끌시끌했던 귀를 만지작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2.
첫 수업이었기에 금방 마친 수업을 뒤로 루한과 이안은 헤겔교수의 연구실로 걸어가고 있었다.
"레이나 하나테라고?"
"어."
레이나 하나테:<하길.엔프.엔남.바남.>
"그 여자 솔리오라의 신전 중 수도신전인 '수차신전'에서 대신관을 역임하고 있는 이렌 하나테의 셋째 딸이지 않나?"
"신관가문에서 교수라니..... 이상하군."
"특히나 사피아노 커런덤의 지도교수라니 더 걸려."
그때, 어디선가 이안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안."
....!
"히익!"
이안은 단말마를 내지르며 차렷자세로 그의 이름을 부른 교수를 바라보았다.
"넵. 교수님"
소르본 크라켄 교수.
그의 날카로운 눈매와 번뜩이는 은테안경.그리고 190cm를 넘는 거대한 키가 이안을 숨죽이게 하였다.
"이번 1학년 중에 '유리 자안'이라고 아나..?"
"...아.....그...알긴 아는데.... 제 옆에 있는 애가 더 잘알껄요?"
이안은 소르본교수와 루한의 눈치를 번갈아보면서 말을 했다.
"이름이 뭐지?"
"루한 미르라고 합니다."
"미르가라....스피나제국이니 알 법도 하겠군..."
소르본교수는 그를 훑어보다가 말을 이었다.
"그 아이가 교양을 바꿔야 해서 말인데..."
루한은 눈을 살짝 들어 질문했다.
"음...실례지만 어째서 그런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소르본 교수는 그런 루한을 내려다보다가 말했다.
"드래곤 중급론을 하나 더 들어야하는데 그 때문에 교양이 밀릴 것 같아서 그러네만...?"
"제게 그 친구의 시간표를 주시면 제가 알아서 갖다주도록 하겠습니다."
"....많이 친한가보군..?"
유리와 루한의 약혼은 비밀리에 이루어졌었기에 소르본 교수는 그들이 약혼을 한 사실을 모른 채로 시간표를 루한의 손에 쥐어주었다.
"오늘 내로 주었으면 좋겠군..."
소르본 교수는 말을 마친 뒤, 뒤로 돌아서 자신의 연구실로 돌아가려고 했다.
"교수님"
루한의 목소리에 소르본 교수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실 필요...없으실 것 같습니다."
뭐가 그러실 필요가 없어?
이상하다는 느낌이 든 이안은 옆에 있는 루한을 흘겨보았다.
.....설마.?
루한의 살짝 올라간 입가가 옆에 있던 이안의 몸에 소름을 끼치게 만들었다.
3.
<유리 자안>-1학년 아우름(Aurum)
월요일:신학,마법학개론,비아룬어
화요일:비아룬어,검술
수요일:마석광물학, 약초학
목요일:드래곤중급론
금요일:드래곤기초론
<루한 미르>-1학년 사피아노 커런덤(Spiano Corundom)
월요일:비아룬어,신학
화요일:마석광물학,검술
수요일:비아룬어, 약초학
목요일:변형술론.마법학개론
금요일:선형대수학형마법진론
<이안 헤겔>-2학년 아우름(Aurum)
월요일:마법진이론,개인마법연습
화요일:논술형 신학,세계사
수요일:정령학,개인마법연습
목요일:드래곤중급론.
금요일:마법동물학,마법식물학.
루한은 살며시 웃으며 자신의 시간표와 유리의 시간표를 번갈아 보았다.
'검술','약초학'
같은 반이 아니기에 전공과 필수교양은 다른 수업을 듣더라도...
자신과 같은 교양으로 바꾼 유리의 시간표를 보며 뿌듯한 미소를 짓던 루한은 말했다.
"가자. 헤겔교수님한테."
".....미친 새끼."
"뭐라고?"
"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남의 시간표를 그렇게 함부로 정하면..."
"유리한테는 말하면 안된다."
그런 루한을 보면서 혀를 차던 이안은 루한을 따라 헤겔의 연구실로 들어갔다.
4.
"그래. 결국 솔리네 대학으로 온 것이냐..."
잠잠한 목소리의 헤겔교수는 이안의 아버지라는 것을 증명하듯이 적안에 적발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만나뵙게 될 줄 몰랐습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아카사 헤겔은 루한의 손을 다부지게 쥐었다.
"어느덧 많이 성장했구나."
아카사 헤겔의 눈에 들어온 루한은 더 이상 어린 소년이 아니었다.
자신의 비슷하게 자란 키와 어른스러운 분위기.
앳된 얼굴이라 미소년답다가도 대화를 해보면 더 이상 어리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법한 목소리.
그 어떤 귀족들보다 우위에 있다고 할 수 있는 가문인 미르가의 첫 공자답게 그의 분위기는 귀티로 점철된 듯 했다.
"감사합니다."
"그래. 어서 수업에서도 보고싶구나."
"안 그래도 신청해두었습니다."
"호오....그래? 그건 참 잘되었군. 늘 방학때만 되면 너희 저택에 가 가르친다고 나도 많이 힘들었는데 말이야."
"그런 줄 알았다면 더 일찍 올 걸 그랬습니다."
.
.
.
헤겔은 루한의 등을 토닥거려주며 연구실 앞까지 배웅했다.
"아빠! 나는?"
그런 이안을 무시하고 헤겔은 연구실의 문을 쾅하고 닫았다.
"하하...우리 아버지는 늘 나한테 참 까칠해 그치?"
이안의 질문에 동문서답을 하는 루한.
"나 이제 유리한테 가봐야하는데."
"야. 간만에 만난 친구가 반갑지도 않냐?"
이안은 그런 루한의 어깨를 툭툭치며 말을 이었다.
"간만에 시내에 나가서 술이나 한 잔 할까?"
"나 이제 유리한테 가봐야한다고."
"...그럼 이렇게 우리 헤어지자고...?"
"어. 나 이제 유리한테 가봐야해서."
망연자실한 이안은 허망한 표정을 지르며 루한을 붙잡았다.
"야. 우리 1년 만에 만났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간다고?"
"어. 간다고."
루한은 이안의 손을 가볍게 뿌리친 뒤, 쿨워터향을 뿜뿜 뿜어대며 고양이 꼬리를 흔드는 것 마냥 도도하게 걸어갔다.
루한의 구두에서 경쾌한 구두굽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이 나쁜새끼야!!!"
그에 질새라 이안의 커다란 목소리가 복도에 덩달아 울려퍼졌다.
5.
<검술시간>
유리는 자신의 롱소드로 호선을 그려가며 검을 휘둘렀다.
그녀의 칼은 그녀만큼이나 날카롭고 아름답게 흔들렸다.
가볍게 움직이는 발걸음이 붕뜨더니 다시 사뿐히 가라앉았다.
한바퀴를 빙 돌아 적을 베듯이 선을 그리던 그녀의 검에는 은빛의 마나가 일렁거렸다.
그렇게 벨 듯 베지 않고 흘릴 듯 흘리지 않는 자안가 특유의 검술을 한시간 쯤 한 뒤,
끝맺음으로 하늘로 살포시 올라갔다가 강하게 밑으로 칼을 내렸다.
칼이 내려가자 움직이는 검의 울림에 유리는 미소를 지었다.
"역시 자안가로군."
검술수업의 교수인 이코 룬은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수업을 안듣고 시험을 쳐도 최고성적이겠어."
그의 극찬에 유리는 빙긋 웃으며 감사인사를 했다.
"칭찬 감사합니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더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비랑 중 같은 비랑이 있느냐."
"...네"
유리가 떨떠름한 목소리로 말하자 이코교수는 웃으며 말했다.
"이런....내가 변형술을 가르쳐줘야 할 상황이 온 것 같군...."
순간 유리의 눈이 일렁거렸다.
"잘...부탁드립니다."
"나도 잘부탁한다."
교수와 유리의 눈이 얽힐 때 그들의 눈에선 서로에 대한 기대감이 어려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고있던 루한은 뾰루퉁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어차피 오늘 수업은 실습 안한다고 했는데 뭐하러 구지 연습을 해..."
그녀의 이마를 타고 흐르는 땀을 수건으로 닦아주며 루한은 반대쪽 손으로 물을 건넸다.
"어짜피 연습할 생각이었는데, 교수님이 봐주시겠다고 하셔서."
오늘의 검술연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기분이 좋아진 유리는 물을 삼키며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너는 또 왜 아직도 기다리고 있어. 애들이 다 돌아간지가 언젠데..."
그런 유리를 보면서 루한은 살며시 웃었다.
"오늘 너 교양 바뀐거 말해줘야해서..."
"음...교양?"
"일단 나가자."
루한은 반짝이는 웃음을 내보이며 그녀의 손목을 잡고 이끌었다.
"자...잠깐만..! 교수님한테 인사드리고 가야지."
"교수님. 안녕히계세요."
그녀가 말을 마치자 말자 뒤를 돌아 유리와 함께 인사를 한 루한은 유리의 손목을 잡고 끌며 연무장 밖을 나왔다.
"어디갈려고?"
"음....네 기숙사?"
"안 돼."
"어짜피 한 번 가봤는데 뭐..."
"그래도 안 돼."
"나 나쁜 짓도 안했는데..."
루한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유리를 뒤에서 안으며 말했다.
"안지마. 애들은 거의 다 모르잖아...!"
유리는 손에 힘을 준 채 루한의 품에서 벗어나서 말했다.
"내 방 침대는 차갑단 말이야...!"
루한은 되도 안되는 주장을 펼치며 징징거리기 시작했다.
'저건 도대체 무슨 소리야.'
유리는 차분히 머리를 쓸어넘기며 당황스러움을 애써 감췄다.
남들이 알기에는 누구보다도 차갑고 신중한 타입의 루한.
어릴 때만 해도 남들이 그런 식으로 루한을 평가하면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아니라고 말했었다.
유리가 아는 루한과 남들이 아는 루한의 접점을 찾기까지 유리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었다.
"오빠. 일단 내 시간표 좀 줘봐."
유리가 부탁하자 루한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너가 날 기숙사에 들여보내주면."
"오빠. 여기는 공작저가 아니라 학교고. 기숙사는 학교의 일부야."
유리가 애써 담담하게 여기가 '학교'임을 강조하며 그의 뜻을 꺽으려고 했으나 모두 무용지물이었다.
"난. 꼭. 너의. 기숙사에. 갈꺼야."
한마디 한마디 힘을 주며 주장하는 루한을 보며 한숨을 쉬던 유리는 결국 그를 자신의 기숙사로 데려오게 되었다.
띠리릭.
유리의 기숙사 문이 열리자 루한은 쏜쌀같이 달려가 유리의 방에 들어갔다.
"이제 시간표 주고 나가."
루한은 바보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그녀의 방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흔들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쿨워터향이 그녀의 방을 휩쓸고 지나갔다.
'잘생기긴 진짜 잘생겼는데...'
연보랏빛의 실크 셔츠에 검은색 바지를 입은 그는 머리카락은 만지작거리다가 한 쪽 손으로 주머니를 뒤적거려 그녀의 시간표를 꺼냈다.
"이거!"
동그란 눈으로 유리를 바라보며 꺼낸 그녀의 시간표.
꼬깃꼬깃.
그의 주머니에 얼마나 오래있었는지 꼬질꼬질해진 시간표가 그의 손에 올라가 있었다.
유리는 한숨을 쉰 뒤, 자신의 시간표를 챙기러 그에게 다가갔다.
그녀가 그의 손에 있는 시간표를 쥐려고 하는 순간, 루한은 부드럽게 그녀의 손목을 쥐고 자신의 방향으로 끌어당겼다.
폭.
유리는 그의 팔 힘에 이끌려 루한의 품 속으로 들어갔다.
".....놔라."
유리는 진지하게 말하려고 했으나 좀처럼 쉽지가 않았다.
유리의 코에는 상쾌한 쿨워터향이 그녀의 코끝을 간질였기 때문이다.
파란 머리카락에 파란 눈동자. 거기에 쿨워터 향.
모든 것이 그녀를 유혹하기 위해 준비된 선물같은 느낌.
유리는 침을 꿀꺽 삼키며 그의 새파란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홀린 듯 그의 눈동자를 바라보던 유리는 갑자기 나는 어떤 소리에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의 두 눈이 휘둥그래졌다.
"...설마...유하가..?"
...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