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1.
"...설마...유하가..!"
뭐야... 설마 벌써...?
나는 몸을 급히 돌려서 알이 있는 곳으로 가려고 했으나 그 쪽으로 움직일 수 없었다.
"....아. 진짜...."
그의 불만어린 표정.
루한의 타박할 것만 같은 음성이 그의 손과 함께 나를 잡았다.
"...어.. 나 지금 저기 가봐야 할 것 같은데..."
어...그 나 저기 가봐야 하는데...
열심히 애절한 눈빛을 보내봐도...
"안돼. 계속 나 쳐다봐."
어림도 없었다.
그녀가 이제 막 태어나려고 하는 유하를 보기위해 다가가려고 하면 할수록 루한의 팔은 점점 더 그녀를 감싸왔다.
"루한. 이것 좀 놔주면 안될까?”
유리의 정중한 부탁에도
"싫다고."
루한은 완강히 거부했다.
그의 손가락 마디마디가 서로 겹치며 유리의 허리를 당겨왔고 유리는 빠져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자각하면서도 손에 힘이 풀린다는 느낌이 들어 빠져나가지 못했다.
"어짜피 오늘 태어날 것도 아니잖아...."
루한은 고개를 내린채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다.
하지만... 엄마가 선물해준 내 마지막 동생이란 말이야.
유리의 불만이 있는듯한 뒤척거림에 루한이 목소리를 낮췄다.
"태어나려면 알이 깨지고 나서도 4일 정도는 기다려야 하는 거 아니야?”
그의 화난듯한 눈동자에 괜히 그녀는 숨을 죽였다.
“어짜피 한 조각 깨진 것 가지고 지금 이 분위기를 망쳐야겠어?"
지금 분위기?
어... 그니깐...그게...
유리는 왠지 자신이 홀리듯이 그를 바라보았던 것이 들킨 것만 같아 얼굴이 붉어졌다.
'내가 너무 빤히 쳐다봤었나...?'
당황해하는 유리를 뒤로하고 루한은 유리의 목덜미에 머리카락을 부비며 칭얼거렸다.
"그냥 여기있어. 안 그래도 저 용 태어나고 나면 너가 나 많이 안봐줄 것 같아서 불안하단 말이야."
"그런게 도대체 왜 불안한건데?"
"불안하니깐."
그런 붉어진 유리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루한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무릎에 유리를 앉혔다.
"나 조금만 있다가 갈게."
루한이 유리를 포옥 끌어안았다.
'....으윽...'
유리는 속으로 신음을 흘렸다.
"그니깐 조금만 이렇고 있자."
하... 불편한데.
루한을 좋아하는 감정이 확실하지 않은 유리는 그저 '약혼남'일 뿐이었던 루한이 툭툭 선을 넘어올 때마다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 채워졌었다.
그냥....아빠 친구 아들.
그리고 귀족사회에서는 흔한 정략결혼.
루한과 집안 어른들의 기준에서는 약혼반지였으나 유리에게는 그저 아빠친구아들과 같은 돌반지를 꼈다는 느낌이었기에.
그가 '약혼남'이라는 이유를 내걸며 자신에게 농도가 짙은 스킨쉽을 하려고 할 때마다 마음이 불편해졌었다.
그러면서도 뭔가 묘하게 가슴이 두근되는게...
유리는 갈팡질팡하는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채 그대로 루한의 품에 안겨있었다.
"오빠는 요즘 왜 그런 식으로 날 쳐다보는 거야....?"
난 너무 어려워.
어릴 때도 지금처럼 오빠 무릎에서 놀았었는데 지금이랑 그 때랑 왜 다르지...?
유리가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하자 루한은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내...반려가 될 사람이라서?"
유리는 떨어질 것만 같은 심장을 부여잡고 말을 이었다.
'오빠는... 날 사랑하는거야?"
"당연한거 아냐?"
"난..."
읍.
유리의 말은 이어질 수 없었다.
루한의 입술이 유리의 입술을 덮었기 때문이었다.
유리가 루한의 어깨를 밀어냈지만 밀어내면 밀어낼수록 루한의 커다란 손은 유리의 뒷통수를 자신의 쪽으로 당겼다.
루한이 유리의 입술을 깨물고는 그녀의 입 안을 훑었다.
아릿한 움직임이 유리를 어지럽게 했다.
그저 부드러운 움직임에도 얼얼하게 어는 기분.
이미 키스를 해본 적이 있었던 그녀는 그저 잠잠히 그런 루한을 받아들였다.
유리의 떨어질 것만 같은 심장은 이제 자신의 것이 아닌 것 처럼 주인의 말을 듣지 않았다.
오빠가 날 좋아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는데....
일반적인 오빠 동생이 키스를 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는데...
그리고 우리가 약혼을 한 사이란 것도....
유리는 자그마한 손으로 루한의 바짓자락을 꾸욱 쥐었다.
붉어진 유리의 귓가를 쓸어넘기는 루한의 손길은 너무나 야했다.
"피하지만 마. 내가 끌어당길게."
우리 어릴 때와 같은 사이는 될 수 없는 걸까.
2.
그날 이후, 유리는 유하가 있는 알을 볼 때마다 루한의 생각에 잠기게 되 버렸다.
아니...도대체 왜 안겨 있었던 거야?
그 파란 눈동자에서 왜 시선을 떼지 못했던 건데...?
그리고 왜....
....안 피한거야.
아른거리는 전 날의 잔향이 그녀의 머리속을 헤집었다.
"....일단 유하 먼저 어떻게 하자."
유리는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리며 욕실에 가 따뜻한 물을 받아서 나왔다.
그런 뒤에 그녀는 따뜻한 물에 하얀색 긴 천을 담근 뒤, 꾹 짜서 알에 돌돌 말아주었다.
"이러니까 한결 편하지?"
유리의 질문.
톡. 토독.
그런 유리의 질문에 반응하듯이 알이 톡톡거렸다.
" 유하야."
유리는 부드럽게 알을 쓰다듬으며 말을 했다.
살짝 금이 간 틈 사이로 보이는 하얀 색의 용새끼는 알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마음 같아선 꺼내주고 싶은데....그러지 말라고 하네..."
유리는 입맛을 다시며 알을 그저 매만질 뿐이었다.
<드래곤 기초론>시간에 배운 사실.
알이 깨어나기 이전에는 알을 따뜻한 천으로 감싸줄것.
그리고 용이 사흘에서 일주일 정도 알을 깨고 못나와도 천천히 기다릴 것.
'인간들이 나비를 위해 누에고치를 대신 뜯어주면 나비가 스스로 날지 못하고 죽듯이, 용도 그렇기 때문이다.'
유리는 소르본 교수의 수업을 상기시켰다.
"바로 전 시간에 배운게 어떻게 이렇게 써먹히냐...."
유리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그녀의 알을 위해 노심초사하며 지켜보았다.
'그래도 벌써...'
그녀가 잘 돌보아주어서 그런지 유하의 알은 거의 다 갈라진 채로 모양만 간신히 유지하고 있었다.
"이번주 아니면 다음주 내로 나오겠네."
쓰담쓰담.
"빨리 나와야해."
유리는 부드럽게 알을 만지며 유하를 보듬어주었다.
3.
<변형술>
똑똑.
“들어오거라.”
“네”
문을 열고 들어간 사람은 다름 아닌 루한 미르였다.
'변형술'은 기본 속성 마법을 넘어선 특이 속성 마법을 의미했다.
"루한."
그의 특이 속성은 '전기'였다.
"네. 교수님."
루한이 깍듯이 대답하자 아카사 헤겔교수는 덤덤히 웃었다.
"어느덧 내가 너에게 교수라고 불릴 때까지 너가 컸구나."
헤겔의 뿌듯한 표정.
그는 진심으로 루한이 솔리네 대학에 온 것을 축하해주었다.
"네.선생님."
꼬꼬마 미남 소년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자신을 올려다 보던 때가 엊그제 같았는데....
"벌써 대학생이란 말이지..."
아카사 교수는 루한의 등을 쓰다듬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또래 친구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장난을 치며 놀 때 루한은 홀로 서재에 들어가 서재의 맨 첫 책장의 첫 권부터 시작해 차례차례 읽어나가는게 그의 삶의 전부였기에.
루한이 평범한 아이가 아님을 깨달은 카르텔 공작은 급기야 대학교수를 초빙해 선생으로 앉혀야 겠다고 생각했고,
루한이 서재의 책장에 중간 쯤을 넘어갈 무렵, 아내를 잃은 실연을 겨우 추스린 카르텔 미르는 루한의 선생님으로 아카사를 데려왔었다.
"안녕!"
이안과 루한 그리고 유리.
이렇게 셋은 방학 때마다 미르가의 대공저에서 함께 뛰어놀았었다.
그리고 매일 방학때마다 셋은 같이 수업을 들으며 신학과 마법학을 익혔었다.
'초등학교 이후로는 유리를 눈곱도 못봤지만....'
그래도 얼마 전 입학한 유리를 만난 헤겔은 어느새 부쩍 성장한 유리를 보면서 루한과 참 잘어울린다는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그래. 요즘 유리와는 잘 지내느냐?"
"아....네."
루한이 중학교에 올라갈 무렵, 그의 약혼녀에 대한 집착이 자신의 친구인 카르텔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을 법한 루한의 태도를 보면서 아카사는 혀를 내둘렀었다.
"그래. 약혼녀를 따라 대학을 옮겼으니 말다했지..."
아카사는 사람좋은 웃음을 지으며 루한을 응시했다.
"그래. 그래서 변형술은 어느 정도까지 익혔느냐?"
".....학교 전체의 전기를 끌 수 있을 정도는 되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해보긴 했나..?"
"스필리온대학에 재학 중일때 한 경험이 있긴 합니다만....솔리네 대학에서는 해보진 않았습니다."
",,,!"
생각보다 많이 발전했군.
아카사 헤겔은 언뜻 놀란 얼굴을 내비치며 그를 응시했다.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구나."
"물을 다루는 것보다는 전기를 다루는게 더 쉽기도 하고, 공격력도 강하니깐요."
루한의 덤덤한 말투.
헤겔은 그런 그의 얼굴을 보면서 사뭇 진지하게 물어보았다.
"그 정도면 이제 전기의 형태를 바꾸거나 '뇌우'를 사용하는 연습을 해야겠구나."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그래도 그정도면 충분하다."
헤겔교수는 침을 삼키며 말했다.
"일단 너를 위해서 마석을 준비했다."
딸깍.
켈리아-흡수마석
헤겔교수가 가방을 열자 켈리아가 쏟아져나왔다.
"여기에 매일 전기를 흡수시키도록 해라."
"여기에 마력을 담으면 다음에 쓸 수는 있는 겁니까?"
"....그렇겠지. 너가 연습한 후에 너가 가져가면 된다."
"이것만 하면 '뇌우'를 쓸 수 있는겁니까?"
"...글쎄. 네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려있겠지. 예전에 '뇌우'를 쓰던 마법사가 한 명 있었는데 그이가 이렇게 연습했다고 하더구나."
"....그렇군요."
루한은 회색의 마석을 던졌다 잡았다를 반복하면서 천천히 마석에 마나를 주입했다.
우웅.
회색의 마석이 푸른색으로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이 푸른색이 검은색이 될 때까지 마나를 주입하라고 하더구나."
"....어렵겠네요."
루한은 쉽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생각을 취소하며 말을 이었다.
"매일 하루에 하나씩. 하루도 빠지지 말고 연습하도록 하거라."
"네. 알겠습니다. 교수님."
4.
"그나저나 그렇게까지 열심히 '변형술'을 연습한 이유가 있을텐데...."
헤겔이 말의 끝을 얼버무리며 그를 지긋이 응시했다.
루한 미르: <엔남.달행.달료.달남>
비아룬 조각은 조각마다 속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달>은 안개비를
<엔>은 불꽃을
<남>은 수속성 강화조절을
<료>는 수속성의 마법을
<행>은 목속성의 정령을 의미했다.
루한은 수 속성의 조각이 6개였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강한 물의 마법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학생이였다.
그와 동시에 아카사 헤겔의 '변형술'에서 배우는 것은 전기.
'전기'는 아신을 포함하여 <달>조각을 2개이상 가지고 있는 자들만 쓸 수 있는 능력으로
<달>이 3개인 루한은 최대 '벼락'을 내릴 수 있을 정도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학생이었다.
물론 스스로 노력을 해야하는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벌써 이렇게나 성장했을 줄이야.
헤겔은 그의 성실함과 천재성에 감탄을 마지않았다.
"그래...그래서 너도 '용의 시험'에 참가하려고 하는 거냐?"
헤겔이 어느정도 예상하고 있었던 질문을 루한에게 던지자
"네."
루한은 한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루한의 아버지를 따라 '용의 시험'에 참가했던 루한의 어머니. 할렌 미르를 생각하며 헤겔은 웃음을 지었다.
"너의 어머니가 천국에서 보면 자기 자식이라면서 무릎을 치겠군..."
"....그렇습니까."
'어머니도....그러셨던거구나.'
용의 전사 카르텔 미르의 '용의 시험'에 따라가셨었구나.
루한은 희미하게 웃었다.
아버지가 그렇게까지 어머니를 사랑했었던 이유가 혹여 '용의 시험'때문이었다면
나도 유리를 따라 '용의 시험'을 통과하고 나면 유리가 나에게 느끼는 거리감이 좀 줄어들까...
"그래. 너와 너의 약혼녀 유리. 모두 건강하게 살아서 돌아오려무나."
"네. 반드시 그렇겠습니다."
헤겔교수의 격려에 루한은 결연한 눈빛을 다지며 마석에 마나를 주입하는 연습을 다시 시작했다.
난 반드시 너를 살려서 데려온 다음, 너와 결혼하겠어.
루한의 뒷 목에 박힌 마석이 우웅거리며 빛을 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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