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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약혼녀에게
작가 : 시쿠글
작품등록일 : 2019.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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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아니 너를 집착해(3)
작성일 : 19-11-10     조회 : 263     추천 : 0     분량 : 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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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6...

 

 1.

 그 '사건'의 시작일.

 

 사교계를 위한 대학연회 첫 날.

 

 "그럼 이런게 두 달 마다 열리는 거야?"

 

 나는 세아와 함께 살롱에서 머리를 세팅하며 대화를 주고받았다.

 

 "응. 두 달에 한 번 셋째주 주말에 이틀동안 열리는 연회지. 이틀 중 하루는 무조건 참가해야해."

 

 풍성하게 부풀어오른 자신의 머리카락을 만족스럽다는 듯이 쓰다듬는 세아를 보면서 나는 괜히 걱정이 되었다.

 

 "그럼 1학년부터 4학년 전부다 참가하는 건가?"

 

 "그렇다고 봐야지."

 

 "아...."

 

 등이 파인 새하얀 시스라인 드레스.

 

 머리의 뒤로 동그랗게 묶인 그녀의 금빛 머리카락.

 

 그 위에 꽂힌 하얀색의 진주가 알알이 박힌 머리꽂이.

 

 화장이 끝난 유리는 거울에 마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너무 예쁘셔요."

 

 그녀의 머리를 만져주던 시녀가 운을 떼자,

 

 화장을 해주던 시녀가 거들었다.

 

 "솔직히 뭘해도 잘어울리실 것 같아요."

 

 "....아. 감사합니다."

 

 유리는 멋쩍은 웃음을 내며 자신의 목을 살짝 가로 돌렸다.

 

 그녀의 아름다운 목선과 쇄골이 확연한 주장을 하며 자신을 드러냈다.

 

 "....이야."

 

 레번이 감탄사를 내며 그녀를 바라보았고,

 

 그런 유리를 바라보고 있던 세한은 괜히 붉어진 얼굴을 살짝 돌렸다.

 

 "이제 출발할 때가 된 것 같은데?"

 

 "...응."

 

 유리의 보조개진 웃음.

 

 그들의 첫 대학연회가 시작되었다.

 

 

 2.

 "우와...."

 

 "과연.... 솔리네대학의 연회답네."

 

 "...어"

 

 200여명이 들어찬 넓디 넓은 연회장은 은은한 꽃 향기가 퍼졌었고,

 

 모줄임 형식의 크리스탈 천장은 눈이 부시다 못해 멀 것만 같은 반짝임을 주었다.

 

 그리고 천장의 맨 안에서 부터 시작해서 뻗어나오는 빛이나는 샹들리에.

 

 "돈을 때려박았나봐."

 

 그 어떤 부분도 흠집을 낼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었다.

 

 웅성웅성.

 

 이미 연회장은 대화의 장이 열린 듯 했다.

 

 "오늘 여기서 뽕을 뽑아야겠군."

 

 세아는 귀엽게 말린 자신의 머리카락을 돌돌 말리며 웃었다.

 

 "학교에서 사교계라니...참 참신하단 말이지."

 

 느릿한 레번의 걸음걸이와 미소.

 

 그들은 천천히 들어가 한 명씩 한 명씩 대화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

 .

 .

 

 사교활동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세아와 레번, 그리고 세한과는 달리.

 

 "뭘 먹을까나...."

 

 나는 도착하자마자 연회장의 가에 있는 음식테이블에서 먹을 디저트를 고르는 중이었다.

 

 푸딩의 일종인 바바루아와 비스켓으로 둘러진 샤를로트.

 

 차가운 크림 위에 그을린 설탕이 올라간 크렘 브륄레까지.

 

 나는 디저트를 이것 저것 접시에 담기 시작했다.

 

 5-6개 정도의 디저트를 고른 나는 가벼운 아메리카노와 함께 탁자에 앉았다.

 

 분주한 친구들과는 달리 유리는 그저 음식만 먹을 뿐이었다.

 

 구지 사교활동을 넓혀봐야 남학생들이랑 친해지기라도 하면 루한의 집착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부풀어오를테니...

 

 구지 큰 사고를 만들고 싶지가 않은 유리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녀에게 먼저 말을 건 사람이 있었으니...

 

 

 3.

 "...안녕?"

 

 "안녕하세요...?"

 

 노란눈동자에 하늘색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는 남학생은 얼핏봐도 1학년은 아닐 것 같았다.

 

 "반가워. 난 '이그로겐 파란'이야. 올해 2학년이고."

 

 "아. 반갑습니다. 전 '유리 자안'이라고 합니다. 신입생이에요."

 

 디저트를 접시에 담은 그는 그녀와 같은 테이블에 앉아 타르트를 한 입 먹은 후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하... 이럴 줄 알았으면 영애들이 모여있는 곳에 갈껄 그랬나...

 

 하지만 그녀의 후회는 이미 되돌릴 수가 없는 것이었기에 유리는 고개를 들어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자안'가면 스피네제국의 후작가이자 검술가겠네?"

 

 "네. 파란가라면 세뇨라 왕국의 후작가시겠군요."

 

 난 가볍게 웃음을 머금은 뒤, 아메리카노를 한 입 들이켰다.

 

 "수업은 어때?"

 

 "글쎄요. 많이 어렵긴한데 그럭저럭 따라가고는 있어요."

 

 "이야. 따라간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걸. 그리고 넌 아우름(Aurum)이잖아."

 

 아우름(Aurum). 죽을지도 모르지만 졸업하고 나면 공작에 못지않는 인정을 받는 '용의 전사'를 배출하는 반.

 

 "하지만 아직 '용의 시험'을 치진 않았으니깐요."

 

 "그래도 대단해. 난 너가 잘 해낼 수 있을거라고 믿어."

 

 아직 자신의 반과 이안,루한을 제외하고는 그녀가 '용의 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었기에 이그로겐은 그녀의 걱정을 이해한다는 듯이 격려와 위로를 건넸다.

 

 자신을 칭찬해주는 이그로겐이 살짝은 부담스러웠던 유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머리를 접시에 고정시켰다.

 

 '하... 이 타이밍에 루한이라도 들어오면 진짜 망하는데...'

 

 요 근래에 루한의 애정표현은 점점 심해지고 있었기에 나는 그저 마른 침을 삼킬 뿐이었다.

 

 "아.. 그나저나 너 약혼자는 있어?"

 

 "네... 네?!"

 

 깜짝놀라 이그로겐을 쳐다본 나는 손사래를 쳤다.

 

 "어휴...아뇨. 무슨 벌써... 약혼남을..."

 

 "아.. 그럼 다행이고...나는 너가 약혼자가 있는 줄 알았거든."

 

 이 말을 마친 이그로겐은 수줍게 고개를 떨구었다.

 

 헐... 지금 이거 무슨 상황인거지...?

 

 지금 약혼남이 없다고 거짓말 쳤는데 대놓고 다행이라고 말한건가...?

 

 그리고 저 수줍은 볼은 뭐야?

 

 그녀의 직감에 따르면 '지금 당장 이 자리를 도망가라'였다.

 

 그렇지 않으면 망할테니...

 

 왜 망하냐고?

 

 이그로겐의 옆에 있으면 그는 계속 썸을 탈 계획으로 혼자서 망상에 빠질거고.

 

 그러다가 루한이 들이닥치기라도 하면 이제 난 스필리온대학으로 ...

 

 벌떡.

 

 "제가 갑자기 화장실이 가고 싶어서요...."

 

 "아. 그래? 혹시 내가 데려다...."

 

 "아. 아니요. 괜찮아요. 알아서 갈 수 있어요."

 

 

 4.

 나는 화장실까지 따라오려고 하는 이그로겐을 떨쳐버리기 위해 급히 화장실로 대피했다.

 

 또각.또각.또각.또각.

 

 맑고 경쾌한 구두소리가 화장실 안에 울려퍼졌다.

 

 으.... 무슨 화장실까지 데려다 준다는 거야..?

 

 나는 대리석으로 된 화장실의 타일조각을 밟으며 화장실 안에서 조금 있다가 다시 나왔다.

 

 "이젠...갔겠지...?"

 

 화장실에서 나온 나는 곧이어 화장실 옆의 파우더룸으로 들어갔는데,

 

 거기엔 몇몇 학생들이 모여 자기들끼리 수다를 떨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니깐... 루한공자가 유리영애의 기숙사에 들어갔다는 거야?"

 

 어... 저기서 지금 무슨 얘기를 하는거지..?

 

 방금 내 이름이 나온건가?

 

 난 너무 놀라 그들의 이야기를 엿들었다.

 

 세 명의 영애들이 자기들끼리 모여 우리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듯 했다.

 

 "그렇다니깐?"

 

 "말도 안돼. 공자님께서 왜...?"

 

 "나도 공녀나 황녀정도는 되야 만날 줄 알았는데."

 

 "그래도 그렇지 후작가라니...미르가에 비해선 너무 후진거 아니야?"

 

 "그니깐 내말이."

 

 "미르가면 대공가잖아. 물론 카르텔 미르공작이 가주는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공작직위를 가지고 있으니 아들인 루한공자께서도 당연히 공작이 되실테구..."

 

 "솔직히 난 유리 자안인가 뭔가하는 그 영애 별로야."

 

 "나도 솔직히.... 차라리 할리오제국에 마리아나 황녀님이 더 잘어울릴 것 같은데..."

 

 "솔직히 자안 후작가에서 '용의 전사'라니. 너무 도가 지나치지 않니?"

 

 "음...솔직히 그렇긴 하지. 왠만한 후작가들은 '용의 전사'탄생일은 오히려 기피한다던데..."

 

 "그게 자기 분수를 아는거지. 검 좀 휘두를 줄 안다고 '용의 전사'라니... 어이가 없어서.."

 

 거침없는 뒷담.

 

 그 뒷담에 내가 끼일 자리는 없는 듯 해보였다.

 

 '루한 이 자식은 도대체 얼마나 티를 내고 다녔길래...'

 

 지금 나 뒷담당하는 이유가 루한... 때문인건가?

 

 난 그저 태어났을 때부터 정해진 약혼남일 뿐인데....왜?

 

 그들의 뒷담은 끊이질 않았다.

 

 "솔직히 저번에 '세한'이라는 평민을 감싸준 것도 어이가 없어."

 

 "그니깐. 자기도 귀족이면서 평민을 왜 감싸?"

 

 "자기가 무슨 영웅이라도 되는 줄 아나보지."

 

 "내가 볼땐 그 집안 종특이야."

 

 "별꼴이라니깐."

 

 

 5.

 툭.

 

 투둑.

 

 난 급하게 뒤를 돌아 파우더룸을 나왔다.

 

 내가 자안가인게 꼴보기가 싫고.

 

 루한이 나를 좋아하는게 아니꼽고.

 

 내가 세한을 감싸고 돈게 집안 종특이라고?

 

 난 눈물을 흘리고 싶지 않았지만 급작스럽게 당한 뒷담에 놀라고 분하고 화가나서.

 

 내가 원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꾸 눈물이 떨어졌다.

 

 어짜피 내가 따져봤자 이기지도 못할 것 같아.

 

 다들 공녀나 후작영애들이었기에 싸우면 집안의 입지만 불안해질 뿐이었다.

 

 싸워봤자 아무도 내 말을 믿을 것 같지도 않고.

 

 난 그저 혼자서 눈물을 훔치며 밖으로 걸어나올 수 밖에 없었다.

 

 나....너무 멍청한건가...

 

 그 순간.

 

 탁.

 

 "야."

 

 싸늘한 음성.

 

 난 급하게 눈물을 닦은 뒤, 날 부르는 목소리를 쳐다보았다.

 

 검은색의 정장을 입은채로 푸른 머리카락을 뒤로 넘긴 루한.

 

 그의 얼음장같은 눈동자가 싸늘하게 얼어붙은 채로 날 바라보았다.

 

 꽉 잡힌 나의 팔목은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였다.

 

 "오빠. 아파. 이거 놔줘.”

 

 "지금 장난하냐?"

 

 "....어?"

 

 "넌 내가 만만하냐?"

 

 루한의 화난 음성.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고?"

 

 옆에 있는 붉은 머리카락의 이안은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으로 루한과 유리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야... 연회장에서 싸우면...."

 

 "넌 빠져. 나 지금 얘랑 할 말 있으니깐."

 

 너무 낯설게 변해버린 루한에 난 그저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꽁꽁 얼어붙은 그의 눈빛이 날 얼게 만들었다.

 

 "넌 약혼한 사람이 없어?"

 

 "...!"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럼 난 뭐냐?"

 

 파직.

 

 파지직.

 

 "난.... 뭐 사람도 아닌 거야?"

 

 퍽.

 

 파챙.

 

 "꺄악!"

 

 갑자기 전구가 폭발음을 일으키며 깨지자 학생들은 놀라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오빠. 그게 아니고...."

 

 사람들이 전구가 깨진 쪽의 바로 앞인 우리들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헐...루한공자랑 유리영애잖아?"

 

 "안 그래도 둘이 이상한 관계라고 소문이 자자하던데..?"

 

 "맞아. 얼마전엔 같이 기숙사까지 들어갔다고..."

 

 "근데....전구가 깨지다니...설마 여기에 '전기'특이 속성 보유자라도 있는거야?"

 

 "여기서 전기속성이 루한공자말고 누가 또 있겠어."

 

 웅성웅성.

 

 사람들이 우리의 싸움을 보기위해 몰려들었다.

 

 "그럼 이그로겐 그자식은 왜 그런 말을 한건데?"

 

 "그니깐...우리 약혼은...."

 

 "우리가 약혼한 사실을 왜 다른 사람한테 말을 안하냐고!!!"

 

 "어짜피 비밀이잖아. 그래서 지금까지 아무도 모르게 잘 지내왔으면서 왜 그러는건데?"

 

 "비밀인거지 없는 것도 아니면서 왜 약혼자가 없다고 했냐고!!!"

 

 루한이 자꾸 언성을 높이며 화를 내자 나도 같이 소리쳤다.

 

 "난 뭐 오빠랑 약혼을 하고 싶어서 한 줄 알아?! 나도 하기 싫어! 오빠랑 같이 있으면 다들 수군거린단 말야!!!"

 

 아까전부터 흘렀었던 눈물이 수도꼭지를 튼 것처럼 쏟아졌다.

 

 "난 '자안'가고 오빠는 '미르'가잖아. 난 맨날 오빠 가문에 밀려서 무시나 당하고 살아야 해?!"

 

 나의 눈물과 억눌린 감정이 튀어나오자 루한은 그런 날 가만히 내려다 보았다.

 

 "그게 뭐가 어때서. 누가 무시하던 욕을 하던 그게 약혼자가 없다는 사실과 무슨 상관인건데?"

 

 이해가 안된다는 듯한 표정.

 

 그래. 이해가 안되겠지.

 

 나도 이 상황에서. 오빠가 화낸 그 이유와는 다른 이유로 오빠에게 화를 내고 있는 내가 이해가 안되니깐.

 

 "아무튼 싫으니까 절로가. 내 앞에 오지마."

 

 "지금 장난하냐?"

 

 "지금 장난으로 보여?"

 

 내가 오빠를 날카롭게 올려다보자 루한은 숨이 멎을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아... 그니깐 넌 나랑 지금까지 약혼했던 사실이 그렇게 아니꼬왔다는 거네...?"

 

 “....어?"

 

 유리의 탁한 음성에 루한은 자신의 푸른 머리카락을 넘기며 유리를 노려보았다.

 

 "그런데 어쩌냐...? 이제 너랑 나랑 약혼했단 사실. 이젠 전교생이 다 알게 된 것 같은데?"

 

 그의 차가운 말투가 유리의 심장을 쿡쿡 찔렀다.

 

 "니가 그렇게 싫어하던 사람이 니 학교에 1년 꿇고 들어오고

 

 함부로 니 기숙사에 들어가니깐 넌 진짜 기분이 더러웠겠다...그지?"

 

 그가 나를 벽으로 밀쳐 앞길을 막았다. 그가 잡은 내 팔목은 이제 떨어질 것만 같았다.

 

 "내가 그정도로 싫었으면 일찍 좀 말하지 그랬어."

 

 결국 그의 서리같은 눈동자에 눈물이 맺혔다.

 

 ...99

작가의 말
 

 하...내 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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