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1.
"올해의 용의 축제는 평소보다 더 크게 치뤄진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그게 사실이었네."
용의 축제를 늘 봐왔던 이안은 덤덤한 표정으로 말을 했다.
하지만 세한과 이안을 제외한 나머지 학생들은 꽤나 놀란 분위기였다.
"와...이렇게 용이 많은 건 처음봐."
유리는 놀란 표정으로 하늘을 날아다니는 용들을 쳐다봤다.
일 년에 한 번 있는 축제인 솔리오라제국의 국가제인 '용의 축제'는 제 6신 사랑의 신의 자식인 드래곤을 위한 축제였다.
드래곤은 짝수신들의 부재 이후로도 제 6신을 숭배하는 솔리오라제국이 제 1신을 숭배하는 스피나제국을 이길 수 있는 이유였다.
인간을 향한 신들의 무관심과 드래곤과의 동화를 통해 강한 힘을 얻는 용의전사를 전문적으로 배출하는 솔리오라제국의 기술력.
스피나제국과 다른 국가들도 솔리오라제국처럼 용의 전사(용의 주인)을 배출하고는 있었지만 솔리오라제국만큼 제대로 된 용의 전사를 배출하기는 하늘에 별따기나 마찬가지였다.
그게 유리가 솔리네대학에 온 가장 큰 이유였다.
엄마가 마지막선물로 준 유하를 제대로 키우기 위해서.
[마마! 나도 날 수 있어!]
유하는 유리가 날아다니는 용들을 보며 감탄했다고 생각했는지, 그런 유리의 옆에서 유하가 빙빙돌며 칭찬해달라는 듯이 하늘을 날아다녔다.
"우리 유하도 진짜 잘 날지."
유리는 유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그러고보니 용의 전사들 중에선 축소마법을 안 한 사람이 더 많은 것 같아."
축소마법을 걸어두는게 용에게도 주인에게도 더 좋을텐데 왜 풀어두는거지?
그에 대한 해답을 이안이 말해주었다.
"용의 축제니깐 일부러 풀어둔 걸꺼야. 보통 저렇게 큰 용을 풀어놨다는 것은 그만큼 용과의 교감이나 유대감이 크다는 뜻이기도 하고."
"아..."
나도 빨리 유하랑 저렇게 다닐 수 있을까?
유리는 작아진 유하를 바라보며 속으로 조용히 생각했다.
'언젠가는 나도 저 용의 전사들처럼 용과 함께 날아다니며 세상을 여행해야지.'
유리가 바라보고 있던 용들은 다들 각자의 색을 띠고 있었다.
색색깔의 용들은 모두 다른 속성을 가지고 있을게 분명했다.
비아룬조각의 속성이 물,불,금속,풀잎,강화속성이 있듯이 용들도 마찬가지였다.
용과 비아룬조각을 다루는 인간과의 차이점이 있다면 용은 한 가지 속성에 몹시 특화되어 있고, 그들의 심장에서 나오는 마나는 용이 죽기 전까지 끊임없이 나온다는 점.
그게 바로 용의 전사가 귀한 이유였다.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비아룬 조각은 사용할 때마다 체력이 줄어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강력한 비아룬조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더라도 체력이 약하면 무용지물이었다.
이 문제점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용의 심장'이었다.
용의 심장은 마나의 덩어리였으니깐.
응축된 마나를 가슴 속에 품고 사는 용들이 인간보다 크고 단단하며 강한 것은 당연한 것이었기에 인간들은 그들을 숭배했다.
2.
"유리야."
".....어?"
딴생각을 하고 있던 유리는 놀라 자신을 부른 사람을 바라보았다.
오늘도 머리를 깔끔하게 올린 루한은 반지가 끼워진 손으로 유리의 반지가 끼워진 손을 맞잡았다.
"우리 이제 다른 애들이랑 따로 가자."
"....어?"
"오늘 데이트하기로 한거잖아."
루한이 말을 하며 손을 잡아끌며 흔들었다.
"어....그럴까?"
그런 루한을 한참을 바라보던 유리는 뒤에 있는 친구들을 바라보았다.
이미 그녀와 그의 사정을 알고 있던 유리의 친구들과 이안은 어서가라는 듯한 손짓을 했다.
"둘이서 어디 이상한데 가지 말고."
"그래. 건전하게 넓은 거리에서 놀아."
친구들의 짖굳은 장난에 어제의 일이 떠오른 유리는 얼굴이 화르륵 붉어졌다.
"걱정하지마."
그녀와는 다르게 덤덤한 루한은 유리의 손을 꾹 쥐고 앞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
*
*
"여긴 어디야?"
"어?...미르상단에서 운영하게 될 곳."
유리가 루한의 손에 붙잡혀 오게 된 것은 처음보는 대형 부띠끄였다.
입구에 들어설 때부터 머리를 깊이 조아린 시종들이 일렬로 서 있었다.
'왜 아무도 없지..?’
부띠끄의 안엔 일을 하는 시종들 이외의 사람이라곤 존재하지 않았다.
내부에는 아름다운 조각품들이 서 있었는데 모두 하나의 커다란 원석을 조각해 만든 듯 했다.
한 가지의 색으로 이루어진 조각품들에서는 어느 각도에서도 광이 나도록 세팅이 되어있는 듯했다.
"아직 완전히 오픈하진 않았어."
"음...그게 무슨 소리야?"
"....데리고 오는 건 네가 처음이란 소리지."
부끄럽다는 듯이 말하는 루한.
"...설마 이 건물 오빠...가 지은 거야?"
"어."
유리는 어이가 없어서 입을 다물었다.
3.
요 근래에 왜 그렇게 바쁜가 했더니 이젠 솔리오라제국의 수도 한 가운데에 대형 부띠끄를 차려놨다.
총 5층으로 되어있는 부띠끄는 1층엔 쥬얼. 2층엔 마석. 3층엔 여성복. 4층엔 남성복. 마지막으로 5층엔 사무실로 되어있는 듯 했다.
"이번에 스필리온대학에서 솔리네대학으로 옮기는 조건이었어."
"조건?"
"응. 너랑 내가 스피나제국에 묶여있지 않을 수 있는 조건."
유리는 자신을 지그시 내려다보는 루한을 바라보았다.
난 내가 거부해서 나온 건 줄 알았는데...
아버지와 카르텔 공작께서 허락해주신건 줄 알았는데...
"나 때문에 요즘 그렇게 바빴던 거야?"
유리는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조금씩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런 오빠한테 내가 약혼을 깰 거라는 말을 했던거야?
"나도 이렇게까지 빨리 완공하게 될 줄은 몰랐어."
"...."
루한은 계속 말을 이어서 했다.
"그래도 네 생각하면 힘이 나서 계속 일할 수 있었어."
"....중간에 나랑 싸우고 그랬는데도?"
루한은 고개를 푹 숙인채 고개를 끄덕거렸다.
"빨리 끝내야 마음 편하게 너랑 지낼 수 있을 테니깐."
"...."
유리는 그런 루한을 꼭 끌어앉았다.
새하얀 피부와 대조되는 까만 드레스와 정장이 붙어 한 덩이가 되었다.
유리가 루한의 팔을 당기자 루한이 허리를 숙였다
허리를 숙이며 좁아진 거리에 유리가 눈을 감았다.
"음....눈은 왜 감아?"
키득거리는 루한.
유리는 괜히 민망해 눈을 살짝 떴다.
"키스할....줄 알았지."
"그랬어?"
유리는 자신을 놀리는 루한이 괘씸해 까치발을 들어 루한의 입술을 깨물었다.
잘근잘끈 루한의 입술을 씹던 유리는 입술을 핥은 뒤 루한을 떼어냈다.
"그랬어."
새침한 표정으로 루한이 한 말을 따라하는 유리를 보며 루한이 낮게 웃었다.
"곧 있으면 황족들부터 시작해서 고위귀족들이 들이닥칠거야. 오늘부터 오픈이니깐."
"그렇구나.."
"그니깐 빨리 먼저 구경하자."
한참을 끌어안고있던 둘은 떨어진 다음 손을 잡고 부띠끄 안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이거 다 오빠가 디자인한거야?"
"....어."
난 유리창 안에 들어있는 반짝이는 보석들을 하나하나 바라보았다.
어느 한 곳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는 보석은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러다 발길이 멈춘 곳은 한 보석함 앞이었다.
루한이 보석함 앞으로 가 달칵하고 함을 열자 안에 두 개의 목걸이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이게....뭐야?"
"우리가 결혼식 때 매게 될 목걸이?"
"...."
유리는 심장이 아래로 쿵하고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냥...너한테 먼저 보여주고 싶었어."
루한이 뒤에서 유리를 끌어앉았다.
"널 위해서 만든거니깐."
반짝거리는 보석들이 앞다투어 박혀있는 목걸이의 중앙에는 적당한 크기의 하트로 된 마석이 박혀있었고 그 하트의 안에는 다른 색깔의 또다른 하트모양의 마석이 들어가 있었다.
"....고마워."
"알아."
"진짜...고마워."
"나도."
4.
저벅. 저벅.
저벅. 저벅.
그렇게 한참을 안고있던 둘의 사이로 한 남성의 발걸음이 들려왔다.
"부띠끄의 사장이 손님을 대하는 예절이 부족하군."
낮게 으르렁거리는 목소리.
목소리의 주인은 바로 이온이었다.
"누가 벌써부터 문을 열어준건지...한창 데이트중이었는데."
루한은 짜증난다는 듯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은회색의 머리카락에 구릿빛 근육을 가진 그에게선 살기에 가까운 아우라가 뿜어져나왔다.
"....오실 거라고 생각을 못했습니다."
조소가 어린듯한 목소리.
이온을 본 루한의 목소리는 살짝 딱딱해져 있었다.
"왜 생각을 못한거지? 초대장을 보낸 건 그대일텐데."
"그러니깐요."
태연스러운 루한의 태도에 유리는 괜히 자신이 더 겁나 눈을 꼭 감았다.
"그냥 제 것을 건드리지 말라는 경고였습니다."
“하. 지금 내가 모르고 온게 아닐거란 걸 알텐데.”
이온의 한숨 사이로 옅은 조소가 피어났다.
"그럼 나도 경고하나하지."
이온의 낮은 목소리 뒤로 들려오는 여자의 구두소리.
구두의 주인은 넋이 나갈 정도로 아름다운 미모의 여인이었다.
창백할 정도로 하얀 피부.
칠흑같은 검은 머리카락과 깊은 검은 눈동자.
오른쪽 눈동자 아래에 자리잡힌 자그마한 점.
"앞으로 말을 조심해야 할거야."
이온의 뒤에서 걸어오던 여자는 이온의 팔에 팔짱을 꼈다.
"반갑습니다."
나즈막하고 아름다운 음성이 유리의 귀에 박혔다.
느긋하고도 차분한 음성은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에 어울리는 음성이었다.
"솔리오라제국의 태황녀가 될 이레나 솔리오라입니다."
5.
이레나 솔리오라:<달저위.로행.바행.내마나>
그녀는 현 황제 크롬 솔리오라의 첫째 딸이었다.
크롬 솔리오라이 제 2황자로 황위계승 서열 2위이긴 했으나 황위에 관심이 없을 어린 나이에 빠진 첫사랑.
녹스.
녹스는 이름 그대로 하얀 피부에 까만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가진 여자였다.
말그대로 칠흑같은 여자.
크롬은 그녀에게 빠져들수록 헤어나올 수 없었다.
그녀를 사랑하고 있으면 심연의 늪으로 빠지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녀를 사랑한 뒤로 그는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활력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자신을 냉정하게 밀어내면 밀어내는 대로.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면 사랑해주는 대로 더 그녀에게 다가갔다.
처음에는 쌀쌀맞던 그녀가 서서히 마음을 열기 시작하자 그는 그녀를 자신의 궁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녹스."
"예. 황자전하."
크롬이 손가락으로 녹스의 턱을 살짝 들어올리자 녹스의 팔이 파르르 떨렸다.
평범한 평민이었던 그녀를 자신의 별당의 첩으로 삼은지 3년 쯤 되었을까.
"뱃속에 있는 아이가 아들이냐."
"...."
"그럼 딸이냐."
"...."
제 1황자인 르웬 솔리오라가 독살로 죽은 뒤, 황태자 즉위식을 올려야 했던 크롬 솔리오라.
형이 죽은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자신이 황태자가 되는 것을 보며 그는 깨달았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나를 황태자로 올리기 위해 형을 죽인 것이구나.'
황제의 총애를 받던 자신의 어머니 세일락 후작은 기어이 자신의 아들을 황태자로 만드는데 성공한 것이었다.
크롬 솔리오라의 어머니 세일락 후작은 늘 크롬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황후는 백작가의 영애이지만 나는 후작가의 영애다.
네가 제 1황자인 르웬에게 밀릴 이유는 단 하나도 없다.'
그렇게 황태자가 된 크롬에게 녹스의 배에 있는 아이는 더이상 사랑으로만 키울 수 있는 아이가 아니었다.
그리고 녹스도 그걸 알고 있었다.
늘 그렇듯이 크롬이 원하는 대답을 내놓지 않던 그녀는 처음으로 그에게 부탁을 했다.
"황자전하."
"왜 그러느냐."
"황자전하께서 저를 이곳에 앉히실 때 저에게 약조를 하나 하셨습니다."
"그래. 기억하고 있다."
너가 부탁하는 소원 하나를 무조건 들어주겠다고.
"....그 약속 지켜주실 겁니까."
"물론이지."
크롬은 녹스를 끌어당겨 입술을 집어삼켰다.
크롬은 녹스의 불러온 배를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그녀의 입 안을 휘저었다.
그들의 키스는 그 어떤 때보다 농밀하고 진득거렸다.
한참을 얽히던 혀들이 떨어지고 서서히 녹스가 새까맣고 풍성한 속눈썹을 들어올렸다.
짙은 키스가 끝난뒤, 크롬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그 부탁이 무엇이냐."
키스로 인해 붉어진 녹스의 입술이 느릿하게 움직였다.
"...전하와 저 사이의 아이를 황제로 만들어주세요."
...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