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 더보기
작가연재 > 판타지/SF
일곱 번째 기사
작가 : 프로즌
작품등록일 : 2016.4.24
  첫회보기 작품더보기
 
1권 시작된 연극(3)
작성일 : 16-04-24     조회 : 681     추천 : 0     분량 : 12648
뷰어설정열기
기본값으로 설정저장
글자체
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Chapter 2 - 두려움과 호기심(1)

 

 

 

 좀처럼 불지 않던 바람이 까칠하게 턱수염이 자란 얼굴을 한 번 스치고 지나갔다. 간혹 들리는 이름 모를 새의 울음소리가 신경을 더욱 거슬리게 만들었다.

 시야를 가득 메우는 거목의 몸통과 그 사이사이에 자리 잡은 억센 줄기가 얼기설기 꼬여 있는 관목들은 여전히 칙칙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그나마 며칠 전보다는 제법 ‘살아있는 나무’의 형상을 하고 있다는 게 위안이었다.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은 지운은 곰곰이 계산을 했다.

 “또 하루가 지나가는군…….”

 벌써 사흘이 지났다.

 하지만 지운은 여전히 숲을 벗어나지 못했다.

 성인 남성의 경우 보통 한 시간에 3, 4킬로미터를 걸을 수 있다. 물론 길이 좋은 평지의 경우나 그랬고, 산에서는 빠른 걸음으로 가야 3킬로미터를 겨우 걸을 수 있다. 그 역시 산길이라는 가정 아래서다.

 하지만 이 숲은 길이 없었다.

 간혹 짐승이 지나갔을 거라 추정되는 흔적이 나 있긴 했지만, 그건 말 그대로 흔적일 따름이지 인간이 다닐만한 ‘길’로는 절대 봐줄 수 없었다.

 그런 길도 없는 숲을 헤치고 질퍽한 늪지를 피해 지운이 낼 수 있는 속도는 어림잡아 시속 2킬로미터.

 결국 조금씩 쉬며 여덟 시간 정도를 걸었다고 가정하면, 사흘 동안 지운이 주파한 거리는 고작해야 40킬로미터를 넘을 듯 했다.

 3일하고 반나절 동안 40킬로미터.

 고작이라는 표현을 쓸 만도 했다.

 하지만 다른 의미로 그것은 ‘무려’라는 말도 됐다.

 말하자면, 이 숲은 ‘무려’ 40킬로미터 정도를 걸어왔음에도 아직 그 끝이 어디인지 도저히 알 수 없을 정도로 거대했다. 나침반이 없었으면 같은 곳을 뱅뱅 돌고 있다고 착각해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로 넓고 큰 숲이었다.

 찰칵!

 “후우……!”

 복잡한 심경만큼이나 뿌연 담배연기가 어지럽게 퍼진다. 좁은 나뭇잎 틈새를 헤집고 들어온 햇빛 속에서 담배연기는 잠깐 그 색을 보이더니 이내 어두움 속으로 사라져갔다.

 “대체 얼마나 더 가야 끝나는 거야? 젠장!”

 최대한 아낀다고 했지만 짐승의 고기는 이제 마지막이다. 오늘을 넘기면 더 이상 남는 게 없었다.

 식수라고 할 수 있는 건 끝까지 마시지 않은 이온음료 한 캔과 소주 팩 하나가 다였다.

 사실 사흘 동안 음료를 커피로 버틴 것도 거의 기적에 가까웠다.

 보통 사람 같으면 목이 타서 다 마셨을 양을 가지고 사흘을 버틴 데는 이유가 있었다.

 지운은 어렸을 때부터 물을 많이 마시지 않았다. 몸이 이상한 것도 아닌데 더운 여름에도 그다지 물을 많이 마시지 않는 특이한 체질이었다.

 ‘그러고 보면 나도 한 가지 특출 난 점은 있네.’

 뭐 하나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게 없는 지운이지만, 보통사람보다 ‘물을 적게 마셔도 살만하다’라는 스킬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자랑으로 여기기엔 좀 그렇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타고난 체질이 힘을 발휘한 탓인지, 사흘 동안 커피 두 캔만 마셨음에도 지운은 그다지 큰 갈증을 느끼지 못했다.

 억지로 물을 마시지 않고 버틴 적은 없었지만, 아껴 마신다면 남은 것으로도 일주일은 버틸 자신이 있었다.

 “마실 것은 둘째 치고 먹을 게 문제군.”

 먹을 것을 생각하자 지운은 다시금 암담해졌다.

 공복상태에서 담배를 피운 탓인지 배가 쓰라렸다. 배는 고픈데 먹을 것이 없다는 것은 정말 빌어먹을 일이다.

 얼마 남지 않은 고기를 바라보며 지운은 잠시 고민했다.

 ‘먹어 버릴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어차피 오늘이 지나면 상할 것이다. 아낀다고 상할 것이 뻔한 것을 먹지 않을 바에는 그냥 먹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리고 지운에겐 최후의 최후까지 아껴둔 컵라면이 아직 하나 남아있다.

 “휴우…….”

 모닥불을 뒤적거리자니 한숨만 나왔다.

 끝이 어딘지도 모르는 미로 찾기를 하는 기분이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첫날이 지난 후에는 잘 몰랐지만 며칠을 더 이동할수록 숲의 환경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토양이 처음 정신을 차린 곳보다는 좀 단단하면서도 더 부드러워졌다.

 오늘 오전까지만 해도 한 시간에 한번 씩은 만났던,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얕은 늪지대도 이제는 더 이상 찾아 볼 수 없었다.

 또 여전히 기분 나쁜 칙칙함을 내뿜고 있었지만 나뭇잎도 조금은 생기라는 걸 담고 있는 적록색이 많아졌고, 자주 불지 않던 바람도 지금은 꽤 시원함이 느껴질 정도로 불었다.

 ‘긍정적인 현상이지. 암…….’

 동물을 거의 볼 수 없다는 것이 여전히 걸리긴 했지만, 숲 자체가 이 정도로 눈에 띄게 바뀌었다면 곧 볼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지운은 그렇게 좋은 쪽으로 생각했다.

 지나치게 낙관적인 판단은 지양해야할 일이지만, 이런 어렵고 힘든 상황일수록 계속 힘을 낼 수 있을 희망을 절대 버려서는 안 된다.

 “하암…….”

 그렇게 생각하자 피곤이 밀려왔다.

 길게 하품을 한 지운은 모닥불에 나뭇가지들을 밀어 넣고 인도하는 대로 몸을 뉘었다.

 

 ******

 

 “하하…… 아하하하! 난 살았어! 살았다구!”

 미친 듯이 웃으며 지운은 껑충껑충 뛰었다.

 숲을 헤매고 다닌 게 사흘하고도 반나절. 50킬로미터가 넘을 거리를 헤매고 다닌 끝에 드디어 발견한 것이다.

 그것은 강이었다. 보물을 발견한 것 마냥 기쁨에 취해 괴성을 지르는 지운의 눈앞에 20여 미터의 폭을 가진 강이 흐르고 있었다.

 지운이 이 강을 찾아내게 된 것은, 지난 사흘 동안 야생에 의해 가다듬어진 후각과 청각이 가져다 준 그야말로 기적이자 쾌거였다.

 칙칙한 숲의 냄새를 뚫고 지운의 콧속으로 전해진 비릿한 물 냄새를 지운은 놓치지 않았고, 냄새의 근원지를 찾아 쉴 새 없이 나아갔다.

 그렇게 조금씩 나아가던 지운의 귓가로 적막하기만 한던 숲 저편으로부터 이질적인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촤아아아아!

 소리까지 들리자 지운은 미친 듯이 달려갔다.

 넝쿨에 전투복이 조금 찢어지고 나무둥치에 발이 걸려 넘어졌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전진했다.

 얼마를 그렇게 뛰었을까?

 지운은 드디어 ‘희망’을 보게 되었다.

 이 작은 강을 발견한 것이었다.

 “으아하핫! 강이다! 물이야 물! 으하하하하하!”

 첨벙거리며 강으로 뛰어든 지운은 온몸으로 느껴지는 강물의 차가운 기운에 흠뻑 취했다.

 하루 종일 굶은 것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지운은 맑은 강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오! 물고기다! 으하하!”

 투명한 강물 속에는 제법 큰 물고기들이 자유롭게 유영하고 있었다.

 급한 마음에 손으로 잡으려 했지만 물고기들은 요리조리 잘도 빠져나갔다.

 “제기랄! 아 그래, 창!”

 서둘러 물가로 돌아간 지운은 나무창을 들고 조심스럽게 강으로 들어섰다.

 손바닥만 한 물고기 몇 마리가 물길을 따라 움직이는 게 보였다. 지운은 냅다 창을 찔렀다.

 풍!

 속도가 제법 실렸는지 소리는 멋졌다. 하지만 헛수고였다.

 “이게…….”

 풍! 풍!

 딴에는 물고기의 움직임을 예측한답시고 녀석들이 움직이는 지점을 살짝 비켜서 찔러 넣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하긴 창으로 물고기를 잡는 게 이번이 처음인 그에게 잡혀 줄 멍청한 물고기가 있는 게 이상한 일이다.

 “빌어먹을……. 이것도 쉬운 일이 아니네.”

 창으로 물고기를 잡는 것은 포기했다.

 담배를 한 대 문 지운은 다른 방법을 강구했다.

 힘 들이지 않고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은…….

 “그거다!”

 다시 숲으로 들어간 지운은 질긴 넝쿨을 모았다. 넝쿨을 이용해 그물망을 만들려는 속셈이다.

 널린 게 관목에 엮인 넝쿨이니 금방 목표치를 채울 수 있었다.

 지운은 스위스아미 나이프을 이용해 열심히 손을 놀렸다. 이리저리 꼬고 묶고 다시 끊은 다음 꼬고……. 20여 분 간 작업을 하자 물고기 한 마리는 들어 갈 정도의 작은 망이 만들어졌다.

 만들어진 망 안쪽에 지운은 짐승의 고기를 담아 두었던 커피 캔을 집어넣었다. 아직 고기가 몇 점 붙어 있으니 훌륭한 떡밥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주먹만 한 돌멩이 두개를 집어 넌 지운은 몸을 일으켰다.

 “됐다. 자 그럼 어디.”

 전투화를 벗고 밑단을 걷은 지운은 천천히 물속으로 들어갔다.

 물고기 몇 마리가 유영하는 것이 보였다.

 지운은 조심스럽게 넝쿨로 된 망을 집어넣었다.

 

 “꺼억!”

 길게 게트림을 하는 지운의 주변에 물고기의 뼈다귀가 쌓여 있었다.

 지운이 만든 넝쿨그물은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쉽게 물고기를 낚았다. 열 마리 정도를 잡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배가 터지도록 물고기를 구워 먹고 담배를 물자 문득 식곤증이 몰려왔다. 하긴 꼬박 하루를 굶고 포식을 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러나 지운은 도리질을 치며 잠을 몰아냈다. 물을 찾고 배가 부르긴 했으나 아직 갈 길은 멀었다.

 “일단 좀 씻어볼까.”

 꼴이 말이 아니다. 전투복을 다 벗은 지운은 세면백에서 비누와 샴푸를 꺼냈다.

 “때가 장난이 아니구만.”

 비누를 사용해 몸을 씻자 맑았던 강물 한쪽에 구정물이 형성한 검은 띠가 가닥가닥 흘렀다.

 지운은 개의치 않고 머리도 감고 이빨도 닦았다.

 “후우……. 개운하다!”

 마지막으로 속옷 빨래를 하는 것으로 만족한 지운은 전투화가 대충 마르자 다시금 떠날 채비를 했다.

 아직 물기가 남아 있는 속옷을 가방에 잘 묶은 지운은 강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모든 생명체의 기원은 물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인류 고대 문명지의 대다수가 발생한 곳은 다름 아닌 강가다.

 여기라고 다를 바가 있겠는가 싶어 지운은 강을 따라 내려갔다.

 자갈밭이 한동안 이어지다 끊기고, 다시 힘든 수풀을 헤치고 걸어가다 보면 다시 좁은 자갈밭이 나타났다.

 강이 조금씩 넓어지는 것으로 보아 조금만 더 걸으면 작은 마을이라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지운은 힘을 냈다.

 “어?”

 바짝 솟은 수풀을 헤치자 제법 넓은 자갈밭 터가 보였다. 게다가 넓었던 물길이 조금 좁아지며 반대편으로 건널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지운은 서둘러 자갈밭으로 걸음을 옮겼다.

 물길이 좁아지는 통에 물살이 꽤 거칠었지만 충분히 건널 수 있을 듯했다.

 “좋아.”

 가방을 높게 든 지운은 망설이지 않고 물속으로 들어갔다.

 밖에서 보는 것 보다 훨씬 더 물살이 거칠어 중심을 잡기가 상당히 힘들었다. 가슴까지 와 걸음을 옮길 때 마다 변하는 물길이 지운을 위협했다.

 지운은 천천히 중심을 잡고 걸음을 옮겼다.

 그때였다.

 퓽!

 “어?”

 2미터 앞으로 무엇인가가 빠른 속도로 들어가면서 나는 소리였다.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정체가 무엇인지는 짐작은 가지 않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자신의 뒤쪽에서 날아왔다는 것이었다.

 지운의 목이 휙 돌아갔다.

 “어……?”

 자갈밭 뒤쪽의 숲 속에서 작은 인영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어두운 숲에서 움직인 데다 제법 멀리 떨어진 탓에 완전히 식별은 되지 않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 인영은 두발로 걷고 있었다.

 “사, 사람인가?”

 지운은 깜짝 놀란 나머지 자신이 서 있는 곳이 강물 속이라는 것도 잊고 서둘러 걸음을 옮기려 했다.

 중심이 무너지며 하마터면 물속으로 꼬구라질 뻔 했지만 가까스로 몸을 바로 잡을 수 있었다.

 제대로 중심을 잡은 지운은 두 눈 가득 반가움을 담고 인영이 움직인 쪽을 향해 다시금 시선을 돌리며 외쳤다.

 “여기! 여기 사람입니다! 여보세요! 거기 누구 있습니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지운은 왔던 강물을 되돌아가며 계속 외쳤다.

 “거기 누가 있습니까! 이보세요! 예? 여기 보세요!”

 그때 깊은 숲 속에서 무엇인가가 나왔다. 그것도 분명히 두발로 걸어서 나오고 있었다.

 사람이다, 사람이야.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반가움에 눈물이 맺혔다.

 지운은 물속을 헤치며 악을 썼다.

 “여기요오! 여깁니다! 이보세요!”

 그러나 그 ‘사람’은 별다른 미동이 없었다. 뭘 하려는 것인지 그 자리에서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때 숲 속에서 몇 사람이 더 나왔다.

 그것을 본 지운은 안도와 반가움 그리고 절규가 뒤섞인 외침을 토해냈다.

 “기다려요오! 여기! 여깁니다! 여봐요! 뭐라고 좀 말을 해주세요! 말 좀 해요!”

 멀리 떨어져 있지만 지운의 외침을 못 들었을 리가 만무했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런 말도 없었다.

 이윽고 10여 명으로 불어난 인영이 걸어왔다.

 그와 마찬가지로 지운 역시 급히 강물을 헤치고 그들을 향해 걸음을 옮……기다가 멈췄다.

 “헉?”

 가늘게 떴던 지운의 눈이 점점 커졌다. 더 이상 떠지지 않을 정도로 커진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를 향해 다가오는 것들은 ‘사람’의 형상이되 ‘인간’이 아니었다.

 누더기 같은 옷차림. 너나 할 것 없이 나무로 만든 몽둥이 같은 것을 들고 있고 개중에 몇 ‘마리’는 창으로 보이는 가는 것도 들고 있다.

 거기까지만 보면 20세기 전후까지 아프리카나 태평양의 작은 섬에 살고 있었던 원주민과 흡사한 모습이다.

 그러나 지운의 눈이 믿을 수 없다는 경악이 담긴 것은 다른 이유에 있었다.

 4등신의 몸매에 더럽고 기분 나쁘게 보이는 녹색 피부.

 대머리에 짧고 굵어 보이는 팔다리.

 그리고 인간보다 배는 됨직한 커다란 얼굴.

 판타지소설가인 지운은 그 괴물의 이름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그것들은…….

 “오, 오크?”

 

 오크(Orc).

 모든 판타지 소설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톨킨의 소설 ‘반지의 제왕’에 처음 등장한 이후 수많은 환상문학에 절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감초역할을 하는 종족.

 그 기원은 오크(Oak)나무에 기생하며 살던 도깨비, 혹은 중세 유럽을 침공해 모든 것을 쑥대밭으로 만든 동방의 야만인 군대에서 이름을 따왔다고도 하지만 확인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보통 오크는 인간 보다 낮은 지능에 햇빛을 두려워한다고 하지만 어떤 소설과 게임에서는 굉장히 강한 어둠의 종족으로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오크가 강하고 용맹하게 표현된 것은 소수고, 대체적으로 인간보다 약하고 멍청하고 떼로 몰려다니는 비열하기 짝이 없는 종족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지능이 낮거나 높거나, 피부가 녹색이거나 적갈색이거나, 사회를 이루고 있거나 없거나에 상관없이 오크하면 무조건적으로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사실은 단 하나다.

 오크는 인간에게 적대적이다.

 

 ******

 

 “퀘르륵!

 “췌에엑! 캬르르륵!”

 너무 놀란 나머지 지운은 움직일 생각도 못하고 강물 속에 그대로 얼어붙은 채 서 있었다.

 지운은 판타지 소설가다. 중세와 환상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전문가다.

 유럽의 각종 신화에 등장하는 괴물과 악마에 심취해 그것들을 연구한 적도 있었다.

 그런 그에게 오크?

 판타지세계를 구성하는 몬스터의 역학 피라미드에서 가장 하위에 있는 종족이 바로 오크다.

 오크 따위가 눈에 찰 리가 없다고 생각해왔다.

 두 눈으로 직접 보기 전까지는…….

 “퀘엑!”

 “으으……!”

 위협적인 모습으로 그를 향해 다가오는 오크 떼를 보며 지운은 극심한 혼란과 원초적인 공포에 휩싸였다.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다만 한 가닥 남아 있는 본능이 위험하다고, 도망치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가위에 눌린 듯 꼼짝도 할 수 없었다.

 풍!

 오크 한 마리가 던진 창이 지운의 팔을 스쳐가며 물속으로 박혀들었다.

 순간 느껴지는 저릿한 고통에 지운의 정신이 되돌아왔다.

 “으으……. 으아아! 으악!!”

 정신없이 강물을 헤쳤다.

 달아나야한다는 생각이 온몸을 지배했다.

 강물 속으로 꼬꾸라지면서도 지운은 필사적으로 강물을 헤쳤다. 목구멍으로 물이 들어왔지만 그딴 것을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

 뒤돌아 볼 틈도 없었다.

 아니, 돌아보기가 무서웠다.

 돌아본다면 오크의 창이 날아와 등을 꿰뚫을 것 같았다. 오크의 나무 몽둥이가 머리를 쪼개 버릴 것 같았다.

 “퀘에엑!”

 “츠웨에에에!”

 오크가 내지르는 괴성이 더욱 가깝게 들려왔다. 그에 비례해 지운의 팔다리가 더욱 바빠졌다.

 강 건너는 이제 곧 이다.

 첨벙거리는 물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지운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오크 떼가 강물 속으로 뛰어 드는 게 보였다.

 지운의 가슴께까지 오는 강물은 오크들에게는 머리까지 다 잠 길 것이다. 그러나 오크들은 그런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니면 전혀 상관이 없는지 기세등등하게 강물을 헤치며 지운을 추격했다.

 작달막해서인지 강물의 빠른 유속에도 불구하고 지운을 추격하는 오크들의 속도는 느려지지 않았다.

 지운은 온힘을 다해 물살을 헤쳤다.

 “흐허억! 허억!”

 강을 건넌 지운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미친 듯이 숲을 내달렸다.

 강 건너 쪽과는 다르게 이쪽 숲은 그리 울창하지 않았기에 지운은 전속력을 낼 수 있었다.

 스쳐지나가는 나뭇가지에 얼굴이 긁혀 피가 배어나왔지만 지운은 전혀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튀어나온 나무뿌리에 발이 걸려 넘어질 뻔했지만 용케도 중심을 잡고 내달렸다.

 “퀴에에에에엑!”

 한참을 달렸음에도 오크들의 울음소리는 여전히 들려왔다.

 “췌엑! 췌엑!”

 누가 오크가 멍청하다고 했나?

 누가 오크가 게으르다고 했나?

 누가 오크는 다리가 짧으니 잘 뛰지 못할 거라고 했나?

 오크들은 영악하고 끈질겼다.

 확실히 지운보다 뛰는 속도가 느렸지만 오크들은 지운에게는 없는 강점이 있었다.

 지운은 이 숲의 지리를 전혀 모르지만 오크들에게 이 숲은 안마당이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숲의 대부분을 형성하는 작은 관목들의 나뭇가지들은 지운에게 있어서는 시야를 가리고 눈을 찌를 듯 스치는 것이 적잖게 위험했지만 키가 작은 오크들에게는 아무런 해가 되지 못했다.

 결정적으로 일반적으로 쫓는 쪽 보다 쫓기는 쪽이 먼저 지친다. 그것은 평생을 약탈과 사냥으로 보내는 오크들이 본능적으로 깨우친 삶의 진리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지운을 쫓는 오크들은 자신들의 목표물이 곧 지칠 것으로 예상했다.

 간혹 겁도 없이 이 숲으로 들어온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조금만 더 쫓아가면 오늘도 성공적인 약탈이 이루어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췌에에엑!”

 오랜만에 맛 볼 인간의 야들야들한 속살이 생각났는지 한 마리의 오크가 날카로운 송곳니를 타고 질질 흐르는 침을 닦으며 기성을 내질렀다.

 하지만 한참을 뒤쫓았음에도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이상했다. 여태까지 그랬던 것처럼 저 인간도 진작 지쳐서 나자빠져야했다.

 그런데 분명히 다른 때 보다 오래 동안 추격했는데도 저 인간은 여전히 자신들의 시야에서 멀찍이 떨어진 채로 도주하고 있었다.

 보통 이 정도 시간이 흘렀으면 인간의 등에 창을 꼽고 머리를 쪼갠 다음 가슴을 갈라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인간의 심장을 놓고 동료들과 다투고 있어야 정상이었다.

 이상하다. 정말 이상했다.

 지운의 뒤를 쫓는 오크 무리의 리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

 

 특별히 싸움을 잘했거나 운동신경이 뛰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지운도 유일하게 남보다 뛰어났던 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지구력이었다.

 그리 빠르지도 않고 민첩하지도 않았지만, 오래 달리기에 있어서만은 타의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재능 아닌 재능을 보였던 지운이다.

 지운은 오래 걷고 오래 뛸 수 있다.

 학창시절에도 오래달리기는 항상 1, 2등을 다퉜고, 군대에서는 그 어떤 힘든 행군을 해도 절대 낙오하지 않았다.

 그런 지운이 오크들의 소원처럼 그리 쉽게 낙오할 리가 없었다.

 게다가 지금은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이다. 없던 힘도 쥐어 짜내야 할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지운도 사람이다. 지칠 수밖에 없다.

 지금 지운은 순전히 살고 싶다는 원초적인 욕망에 의거한 악과 깡으로 뛰고 있는 상태였다.

 “허억! 허억!”

 이미 숨은 목구멍까지 차올랐고 다리는 풀리기 일보직전이었지만 지운은 멈추지 않았다.

 팔을 흔들 힘도 없어 두 팔은 축 늘어졌지만 절대 창을 놓치지 않았다.

 창이 없으면 그는 그야말로 무방비 상태가 되는 것이다. 조잡하게 만든 창이지만 이것은 그에게 있어 최후의 수단이었다.

 “꺼억! 끄어억!”

 죽을 것 같이 힘들다. 이대로 쓰러져서 눕고 싶었다. 오크고 뭐고 그냥 쉬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멈추면?

 ‘죽는다! 진짜 죽는 거다!’

 “흐어억!”

 풀어졌던 다리에 다시 힘이 들어갔다.

 어딘지도 모르는 이런 세계에서 죽고 싶지는 않다. 오크 따위의 식사가 되려고 살아온 삶이 아니다.

 아무도 없는 숲 속에서 오크밥이 된다니!

 지운은 이를 악물었다.

 “흐아아악!”

 저도 모르게 고함을 지르며 지운은 눈앞을 막고 있는 관목가지를 향해 뛰어 들었다.

 막 가지를 헤치며 발을 뻗는 순간.

 확하고 쏟아지는 빛에 지운은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아야했다.

 “으악!”

 발밑이 허전해지며 지운은 그대로 중심을 잃었다.

 언덕을 데굴데굴 굴러 내려온 지운은 정신없이 몸을 일으켰다.

 쏴아아아!

 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팔뚝에 소름이 살짝 돋았다.

 강을 발견한 후부터 해가 떠있는 것을 볼 수 있었지만, 이상하게 주위가 훨씬 더 밝았다.

 지운은 눈을 크게 떴다.

 “없……다?”

 거짓말처럼 아무런 나무도 볼 수 없었다.

 지운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시리도록 푸르른 색감을 띄고 있는 초원이었다.

 숲이, 끝난 것이다.

 뿌우우!

 저 멀리서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흠칫한 지운은 자신의 현실을 인식하고 소리가 들린 쪽으로 달리고 또 달렸다.

 달리면서 살짝 뒤를 돌아봤다.

 “허억?”

 오크들의 모습이 보였다.

 숲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오크들은 지운의 뒤를 여전히 쫓아오고 있었다.

 뿌우우우우!

 뿔나팔 소리. 틀림없이 영화에서나 들어본 뿔나팔 소리였다.

 “사람 살려요! 살려줘요!”

 지운은 고함을 지르며 나팔소리가 들린 언덕아래를 향해 뛰었다.

 언덕 아래로 달려가면서 몇 번이나 굴렀으나 아프지 않았다.

 지운은 힘든 몸을 억지로 일으키며 소리 높여 외쳤다.

 “사람 살려요! 아무도 없어? 개새끼들아! 사람 살리라고! 으아아악!”

 그때, 언덕 아래로 이어진 숲의 단면을 헤치고 무엇인가가 나타났다.

 그것은 지운이 그토록 보기를 원했던 ‘인간’이었다.

 그리고, 그 인간을 필두로 10여 명의 사람들이 더 모습을 드러냈다.

 지운은 미친 듯이 그들을 향해 달려갔다.

 “이봐요!”

 공포와 안도감이 겹치면서 지운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들의 얼굴이나 복장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지금 지운에게 중요한 것은 그들이 자신과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제정신은 금방 돌아왔다.

 차아앙!

 “헉!”

 밝은 빛을 뿌리며 지운을 향해 뽑혀 든 것은 지운도 잘 아는 물건이었다.

 1미터 가량의 길이에 양쪽 날이 날카롭게 서 있고 끝은 뾰족한 기본적인 살상무기.

 그것은 검이었다.

 “헉!”

 정신이 돌아온 지운은 뒷걸음질 쳤다.

 검을 들이댄 남자가 지운을 향해 다가왔고 그 남자의 뒤에 서 있던 자들이 창을 들이대며 지운을 포위하였다.

 “Do……ve! Who……?”

 “뭐, 뭐야? 뭐라고 하는 거야?”

 낯선 언어에 지운은 당황했다.

 “Don’t move! I said again, who are you?”

 “그러니까! 그게 무슨 말…… 어?”

 영어다. 분명히 영어였다.

 아까는 너무 급해서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분명히 검을 들이댄 남자가 하는 말은 영어였다.

 “퀘에에!”

 “Orc!!!”

 오크의 괴상을 들은 남자들의 표정이 급변했다.

 검을 든 남자가 뭐라고 소리치자 다른 자들이 기민하게 움직였다.

 지운은 멍청히 서서 그것을 바라보았다.

 콧물과 눈물로 범벅이 된 지운을 그대로 지나친 남자들이 저 멀리에서 꽥꽥거리는 오크들을 향해 전진했다.

 한 무리의 병사들이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자 오크들은 분노에 찬 울음소리를 토하며 후퇴했다.

 숲속이라면 몰라도 평지에서 오크가 인간의 상대가 될 수는 없었다. 수적으로도 인간보다 딸리는데다 그 인간들은 하필이면 무기를 소지한 병사였다.

 오크무리의 리더는 지독히 운이 없음을 탓하며 무리를 이끌고 숲 속으로 도망쳤다.

 오크 떼가 숲 속으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병사들이 추격을 멈추고 돌아왔다.

 지운은 멍청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오크 떼를 향해 전진 할 때부터 지운은 완전히 제정신을 차렸다.

 ‘철퇴, 창, 검……. 사슬갑옷, 방패…….’

 그들은 중세 병사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검을 겨누었던 자의 외침에 지운의 상념이 깨졌다.

 그들 덕분에 오크는 물러갔지만 지운을 노려보는 그들의 얼굴은 한눈에도 호의적인 표정이 아니었다.

 검을 겨눈 채로 남자가 천천히 다가오더니 검면으로 지운의 어깨를 내리쳤다.

 “큭!”

 남자의 뒤편에 서 있던 병사들 중 두 명이 뛰어 나오더니 지운의 양어깨를 잡고 팔을 뒤로 꺾었다.

 팔이 꺾이자 지운의 무릎이 자동으로 굽혀졌다.

 지운의 양팔이 단단히 묶였다.

 “…… Back to……!”

 “Oooooh!”

 남자가 외치자 병사들이 함성을 질렀다.

 지운은 그들이 이끄는 대로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Back’이라는 단어로 보아 그들의 본거지로 돌아가려는 것 같았다.

 ‘오크에 중세의 복장을 한 병사까지……. 여기가 어디야? 설마…… 진짜 판타지 세계에 떨어진 것인가?’

 불안과 두려움이 밀려왔다.

 하지만 이율배반적이게도, 지운의 마음 한구석에서 호기심이라는 놈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오크라는 비인간적인 괴물의 위협보다야, 같은 인간들의 적대가 훨씬 나았다. 위험하고 두려운 상황인 것은 마찬가지지만 일단 그들은 같은 ‘인간’이니까. 그것도 분명히 영어로 들리는,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들이었다.

 그렇기에 마음이 조금 풀어져 호기심이 생겨난 것이다.

 짐작 할 수 없는 앞날에 대한 두려움.

 하지만 상상 속에서 썼던 판타지 세계를 직접 마주하고 있다는 현실이 주는 본능적인 호기심이 지운의 마음속에서 작은 소용돌이를 만들고 있었다.

 
 

맨위로맨아래로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12 1권 시작된 연극(9) 4/24 877 0
11 1권 시작된 연극(9) 4/24 782 0
10 1권 시작된 연극(8) 4/24 623 0
9 1권 시작된 연극(8) 4/24 678 0
8 1권 시작된 연극(7) 4/24 701 0
7 1권 시작된 연극(7) 4/24 782 0
6 1권 시작된 연극(6) 4/24 833 0
5 1권 시작된 연극(5) 4/24 617 0
4 1권 시작된 연극(4) 4/24 581 0
3 1권 시작된 연극(3) 4/24 682 0
2 1권 시작된 연극(2) 4/24 636 0
1 1권 시작된 연극(1) 4/24 1136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