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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의 1+1은 2가 아니다.
작가 : 요동치는하트
작품등록일 : 2016.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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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pter. 5 - 공주 (2)
작성일 : 16-09-24     조회 : 195     추천 : 0     분량 : 5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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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래가 수면아래에서 고개를 쳐들 듯 거대한 벽이 솟아올랐다. 전방뿐이 아니라 좌우는 물론이요, 닌자들이 따라붙은 뒤쪽에서도 나타난다. 순식간에 사방을 둘러싼 벽의 출현에 유지와 유미의 입에서 패배감 섞인 탄성이 한마디씩 튀어나왔다.

 

 “아, 이건 당했는데?”

 

 “제길.”

 

 차를 몰던 유나는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핸들을 옆으로 꺾었다. 갑작스러운 감속과 방향 전환에 차가 옆으로 돌며 회전 반경 안쪽의 바퀴가 허공에 떴다. 공회전 하는 바퀴가 지면을 긁으며 흙을 뿌린다. 차의 꽁무니가 빙그르 돌아 땅 속에서 올라온 벽에 처박혔다가 튕겨 나왔다. 격렬하게 흔들리는 차체에 자애가 비명을 질렀다.

 

 차 위에 올라서 있던 유미는 벽을 향해 빠른 속도로 튕겨나갔지만 팔을 들어 대충 충격을 막아내고 아무렇지도 않게 바닥에 내려섰다. 발을 미끄러트리며 속도를 줄인 유지가 유미의 옆에 선다. 그리고 유나가 굴러 떨어지듯이 차에서 내렸다.

 

 서가삼랑은 엉망진창이 된 차를 등지고 사방에 올라선 벽을 올려다보았다.

 

 험상궂게 일그러진 도깨비의 얼굴상이 그들을 굽어보았다. 표면에는 사람을 끓는 기름에 던져 넣고, 혀를 뽑고 살을 지지며 불구덩이에서 울부짖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러져있다. 벽면의 그림이 일렁이며 멀찍이서 구슬픈 비명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왔다.

 벽의 가운데에는 붉은색의 거대한 문과 황금으로 만들어진 문고리가 달려있었다. 그 너머에서 뿜어져 나오는 귀기(鬼氣)에 유나는 침을 삼켰다.

 

 소환술의 일종으로 보이지만 정확히 무슨 기술인지는 모르겠다. 유지는 눈을 굴려 벽의 크기를 파악했다. 높이는 대략 5미터, 폭은 10미터 정도로 보인다. 간단히 뛰어넘을 수 있는 높이긴 하지만 벽 위에는 살기등등한 기세의 닌자들이 나란히 서 있었다. 녀석들이 위에서 화력을 퍼부으면 우리에 갇힌 채 도망 다니는 새끼돼지와 비슷한 모양이 나올 것이다.

 

 ‘망했군.’

 

 유지는 곤란한 표정으로 뒤통수를 긁었다. 하지만 닌자들은 무슨 일인지 곧장 공격을 가해오지 않았다. 유지는 기회다 싶어서 얼른 머리를 굴려 이 사태를 뚫고나갈 수 있을 방법을 생각했다.

 

 그때, 한 닌자가 앞으로 나섰다. 우두머리로 추정되는, 두 눈에 괴상한 문양을 박아 넣은 놈이었다. 녀석이 말했다.

 

 “잠깐 대화를 하지 않겠나?”

 

 암살자답지 않게 점잖고 묵직한 목소리. 게다가 묘한 위화감이 있지만 매끄러운 발음의 반도어다. 예상외의 상황에 총구를 겨누던 유지와 유나가 움찔하며 손을 멈췄다. 상대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는 눈치다. 하지만 유미는 달랐다.

 

 “이제 와서? 웃기지 마시지.”

 

 싸늘한 비웃음과 함께 칼을 어깨높이로 들어올렸다. 직각으로 출검(出劍). 순식간에 수라귀구속제어술식 2단계를 해제하며 검집에서 이합귀검의 주술식이 발동되었다. 대력귀와 교룡귀가 합쳐진 적난이룡검이 칼집에서 뿜어져 하늘로 솟구친다. 닌자들이 발을 디디고 서 있는 벽을 향해 머리를 내리꽂았다.

 

 대력귀의 뼈로 뒤덮여 철퇴처럼 변한 교룡귀의 머리가 닌자들이 소환한 벽의 기왓장을 부수고 처마 밑에 매달려있는 도깨비의 얼굴을 박살냈다. 하지만 그 뿐. 벽을 깊숙이 파고들기는 했지만 파괴하기에는 한참 모자라다. 단번에 벽을 박살낼 생각이었던 유미는 상상이상의 강도에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마안의 닌자가 고개를 저었다.

 

 “아직도 기운이 넘치는군. 머리 좀 식힐까.”

 

 놈이 손가락을 튕겼다. 닌자들의 칼이 서가삼랑을 가리킨다. 수십 개로 중첩된 저위 마법에 사방이 마법진으로 뒤덮였다. 폭포수처럼 공격마법이 쏟아졌다.

 

 유나가 손을 뻗었다. 파란 문신이 새겨진 방어진식의 팔이 차량의 마나배터리에 닿았다. 그녀의 손에서 뻗어 나온 송곳 같은 연결기관이 마나배터리의 홈에 처박히며 마력회로가 동기화. 출력과 발동기관을 공유하며 이중으로 방어마법을 시전했다. 비전계열 3서클 마법 트리플 배리어가 이중전개. 여섯 겹의 배리어가 서가삼랑과 차량을 둘러싸며 서로 공진했다. 두터운 방벽과 빗발처럼 쏟아지는 포화가 충돌한다. 폭음과 진동이 울려 퍼지며 빛이 산란했다.

 

 유나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팔을 움켜쥐었다. 하얀 팔뚝 위로 새빨갛게 달아오른 마력회로들이 떠올라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고 있다. 몸의 통각은 차단할 수 있지만 영혼의 통각은 막을 수 없다. 그녀는 닌자의 자폭공격으로 파손된 왼팔의 빈틈을 메우기 위해 직접 마력을 생성하고 주문을 캐스팅해서 마법을 짜내는 중이었다. 실력을 뛰어넘는 무리한 운용으로 자연의 기운을 역행시키는 영속력이 순식간에 빨려나갔다. 타인에게 빌려운 반쪽짜리 영혼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른다. 망치로 머리를 두드리는 것 같은 환통(幻痛)이 저릿저릿하게 온몸으로 퍼져간다.

 

 사격이 잦아들었다. 마력이 충돌한 잔향으로 공간이 일그러져 보이며 보랏빛의 파편이 안개처럼 허공을 떠돌았다. 유나가 방어막을 해제하며 대장간의 금속처럼 달아오른 팔을 내렸다. 머리가 아팠다. 당장이라도 주저앉고 싶지만 적을 눈앞에 두고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 그녀는 고통을 눌러 참으며 유지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다음은 못 막아요.]

 

 유미가 다시 검을 뽑으려 했지만 유지가 어깨를 짚었다. 유지와 유미의 눈이 마주친다. 유지는 사나운 표정의 유미를 향해 살짝 웃으며 가볍게 손짓을 해 보였다. 유미는 얼굴을 찌푸렸지만 별 말없이 칼에서 손을 땠다.

 

 유지가 앞으로 나섰다. 백번 쪼는 쏙독새를 겨드랑이의 홀스터에 끼우고 싸울 의도가 없다는 표시로 양손을 든다. 마안의 닌자가 여유로운 눈빛으로 서가삼랑을 깔아보았다.

 

 “이제야 이야기를 할 생각이 좀 들었나?”

 

 “말해보셔.”

 

 유지가 고개를 끄덕이자 닌자가 손가락을 들어 서가삼랑의 차량을 가리켰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내가 원하는 건 너희들이 호위 중인 차 안의 여자다.”

 

 “그래서?”

 

 “난 더 이상의 소모를 원하지 않아. 너희들이 생각보다 성가셔서 말이야. 여자를 내놔라. 그러면 너희들은 그냥 보내주지.”

 

 “그건 좀 곤란한데. 이쪽 일은 신용이 꽤 중요하거든.”

 

 유지의 대답에 닌자의 눈매가 매서워졌다.

 

 “신용보다는 목숨이 더 중요하지 않나?”

 

 말과 동시에 은근히 살기를 뿜어서 위협을 해온다. 주변에 서 있던 닌자들이 그의 살기에 맞추어 검을 고쳐 쥐었다. 유지의 뒤에 서 있던 유미와 유나 역시 긴장감을 끌어올리며 각자의 무기에 손을 가져갔다. 하지만 유지는 어깨를 으쓱 해보이며 여상스럽게 대꾸했다.

 

 “글세, 그렇게 목숨이 아까웠으면 이런 일은 안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빙글빙글 웃으며 닌자를 올려다보았다. 닌자는 잠시 가만히 유지를 노려보았다. 그러더니 문득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유지에게 던졌다.

 

 “주인님, 조심......!”

 

 놀란 유나가 경고성을 냈지만 유지는 아무렇지도 않게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물건을 낚아챘다. 손에 든 물건의 정체를 확인한 그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금이었다.

 

 살짝 기를 실어 손아귀에 힘을 주어보자 물렁한 감촉이 느껴진다. 강도로 볼 때 합금은 아니다. 순수한 금으로 찍어낸 쇳덩이였다. 돈으로 환산하면 몇 천만 원은 될 것 같다. 유지가 떨떠름하게 물었다.

 

 “지금 이거나 먹고 꺼지라는 거야?”

 

 닌자는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문득, 유지의 입가에 장난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고작 이거 먹고 물러설 만큼 우리 몸값이 싼 게 아닌데......”

 

 “......”

 

 닌자는 짜증이 나는지 복면위로 한숨을 쉬었다. 다시 품속에서 금괴를 꺼내어 유지에게 던진다. 유지는 귀찮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날름 금괴를 받았다.

 

 “아, 그러니까 이런 거 몇 개로는......”

 

 또 다시 금덩이가 날아들었다. 하나, 둘....... 셋, 넷, 계속해서 날아든다. 유지는 어, 어 하면서도 재주넘는 곰처럼 가슴과 어깨로 금괴를 모두 받아냈다. 어느 샌가 그의 품에는 금괴가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유지는 물끄러미 쇳덩어리들을 내려다보았다, 누리끼리한 황금이 달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을 냈다. 못 해도 수억. 평범한 회사원이라면 수십 년을 뼈 빠지게 일해야 겨우 모을 금액이다. 유지는 식은땀을 흘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어...... 이거 어떻게 하지?”

 

 유미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유나는 투통이 심해지는지 손가락으로 이마를 꾹꾹 누르다가 이내 새빨개진 얼굴로 빼액 소리를 쳤다.

 

 “아니, 그게 뭐인 줄 알고 그렇게 넙죽넙죽 받아요. 빨리 버려욧!”

 

 “그게 아니라 이거 진짜 금 같은데......”

 

 유지는 금을 꼬옥 품에 안으며 어물거렸다. 하지만 유나가 눈을 새파랗게 뜨며 위협하자 투털투덜 금덩이를 바닥에 쏟아버린다. 그는 손아귀에 잡혀있는 마지막 금괴를 아쉽다는 듯이 쳐다보다가 입맛을 다시며 그것을 마안의 닌자에게 던졌다.

 

 “이건 돌려줄게.”

 

 놈의 옆에 서있던 닌자가 반응했다. 발사된 마법의 수리검이 금괴를 중간에서 맞추어 떨어트린다. 그리고 다음 순간, 금괴가 짜부라지며 그 속에서 시커먼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금조각이 튀며 검은색 폭발이 터졌다. 봉인에서 풀려나온 원령들이 비명을 지르며 연기처럼 공간을 떠돌다 사라졌다. 계속 품에 끌어안고 있었으면 유지는 분명히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악귀들에게 몸은 물론이요, 영혼까지 갈기갈기 찢어졌을 것이다.

 

 검은 연기가 걷혔다. 귀신의 형상을 한 벽 위에서 마안의 닌자가 말했다.

 

 “그래도 아주 바보는 아니군. 어떻게 알았지?”

 

 검은 천에 가려서 표정은 알 수 없지만 놈의 드러난 눈만큼은 확실히 웃음기를 띠고 있다. 유지는 총을 뽑아들며 말했다.

 

 “다른 것들을 던질 때는 동작에 묘한 망설임이 있었는데, 그거 하나 던질 때만 그런 게 없더라고.”

 

 그는 총구를 마안의 닌자에게 겨누고 익살스럽게 총소리를 내며 쏘는 시늉을 해보였다. 의기양양하게 말을 이었다.

 

 “그만한 의중을 읽을 수 있었다는 건 결국 내가 너보다 한 수 위라는 거지. 그런 내가 제안하는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얼른 도망치는 게 어때? 그냥 보내기에는 불쌍하니까 위로금은 넉넉히 챙겨줄게. 음... 내가 돈이 없어서 많이는 못주고. 이거면 되려나? 가는 길에 까까나 사먹으라고.”

 

 유지는 주머니에서 오백 원짜리 동전을 하나를 꺼냈다. 아무런 수작도 부려두지 않은 진짜 동전이다. 손가락을 튕겨 동전을 마안의 닌자에게 날려 보냈다. 마안의 닌자는 손을 들어 동전을 받았다. 그러더니 곱게 그것을 품에 집어넣었다.

 

 “고맙군. 가는 길에 입이 심심하지는 않겠어.”

 

 닌자의 안구에 새겨진 문자가 붉게 물들었다. 바닥을 기는 벌레를 보는 듯한 시선이 서가삼랑에게 향했다.

 

 “그럼 죽어라.”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닌자들이 칼을 들었다. 유지와 마안의 닌자가 대화를 나누고 있던 도중 계속 자아내어왔던 주문을 발동시키려했다.

 

 “아니, 죽는 건 당신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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