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 멈췄다. 유지가 뒷좌석을 돌아보았다.
“나카무라씨는?”
유미가 귀에서 이어폰을 뽑으며 대답했다.
“괜찮아. 기절하긴 했지만.”
유지는 창밖을 내다보며 동태를 살폈다. 밖에는 세 사람이 있었다. 얼굴에 큰 상처가 있는 대검의 사내와 거무튀튀한 금속으로 팔과 다리를 치환한 더벅머리의 사이보그. 그리고 마법 제어의 보주를 장착한 지팡이에 몸을 기댄 꾀죄죄한 중년 남자.
운전석에서 그들을 지켜보던 유나가 말했다.
“더 이상 공격을 안 하는 걸 보니 우리를 다 죽이고 차까지 뺏을 생각인가 본데요.”
“제치고 도망칠 수 있겠어?”
유나는 고개를 저었다.
“저 칼 든 인간이 막으면 힘들어요.”
중년 남자가 지팡이를 치켜들며 입술을 달싹였다. 지팡이 끝에 달린 보주가 빛을 내며 마법진을 형성. 검은색 안개가 뭉게뭉게 피어올라 차를 감싸기 시작했다. 장갑에 새겨진 방호마법이 발동. 상반된 마력이 충돌을 일으키며 스파크를 뿌렸다. 안개가 서서히 퍼져나가며 바닥에 내려앉자 땅이 검게 죽어간다. 그 뒤에선 사이보그가 양 팔에서 각종 총구와 포구를 꺼내어 그들을 겨누고 있었다. 돈이 될 만한 물건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독으로 몰아넣고, 참지 못하고 뛰쳐나오는 건 모조리 쏴 죽일 생각이다.
유지는 뒤통수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아, 이 친구들이 진짜... 가지가지하네.”
유미가 말했다.
“뭘 그렇게 고민해. 그냥 다 죽여 버리면 되는 걸.”
그녀의 두 눈이 살의로 물들며 푸른 불꽃이 튀었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바깥의 도적들을 뼈째로 갈아 마실 기세다. 유지가 손을 들어 제지하는 동작을 취했다.
“사랑하는 동생아. 네 말이 맞긴 하지만 흥분하지는 말자.”
유미는 흠칫 몸을 떨었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곤 작게 말했다.
“...알았어.”
유지는 ‘어쩔 수 없군.’ 이라고 중얼거리며 검지로 대검의 남자를 가리켰다.
“유미는 칼 든 놈을 맡아라.”
손바닥을 내밀고,
“유나는 뒤에서 엄호하고.”
마지막으로 팔을 빙 돌려 무언가를 찌르는 동작을 취했다.
“나는 옆으로 돌아서 마법사를 친다.”
유나와 유미는 고개를 끄떡였다.
“그럼 가자.”
유지가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의 계기판에 달려있는 버튼을 때렸다. 차가 진동. 마나배터리가 울부짖으며 원형의 충격파를 쏘아냈다. 마력의 파장에 독가스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유지, 유미, 유나는 동시에 밖으로 뛰쳐나갔다.
사이보그가 기다렸다는 듯이 반응. 어깨에 달린 모터가 맹렬히 회전하며 팔위로 삐죽삐죽 솟아있는 구멍들이 일제히 불꽃을 쏟아냈다.
“뒈져라! 이 돼지새끼들아!”
수많은 금색 탄두가 음속으로 공간을 가로지른다. 포화 속으로 유나가 뛰어들었다. 그녀의 검은 동공이 한쪽은 빨갛게, 한쪽은 파랗게 물들었다. 왼쪽 팔뚝에 박힌 방패 문신이 반짝였다. 유나가 왼손을 내밀었다. 비전(arcane) 계열 1서클 마법 ‘쉴드(shield)’가 발동. 순수한 마력으로 이루어진 반지름 80센티미터의 원형 방패가 허공에 출현했다. 빛의 방패가 비처럼 쏟아지는 탄막과 충돌한다. 유미는 쉴드의 뒤에 숨어서 오른쪽 손목을 까딱였다. 손목에 걸려있는 손가락 굵기의 검은 팔찌 속에서 주먹크기의 수류탄이 비어져 나온다. 손가락을 튕겨 안전핀을 뽑아내고 쉴드 너머로 투척.
수류탄을 발견한 사이보그가 한쪽 팔을 치켜들었다. 탄막으로 수류탄을 격추하자 허공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그 폭발의 한 가운데를 뚫고 유미가 돌진했다. 그녀는 대검의 남자가 있는 방향으로 내리꽂혔다.
옆에 있던 중년의 마법사가 유미를 막기 위해 주문을 외기 시작했지만 캐스팅 도중 자신을 향해 총구를 겨누는 유지를 발견. 주문을 취소하고 지팡이를 휘둘러 비전 계열 1서클 마법 ‘배리어(barrier)’를 고속으로 펼쳐냈다. 반구형의 방어막이 마법사를 감싸 안았다.
유지는 신경 쓰지 않고 기(氣)를 불어넣으며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마법사는 소총의 일점사도 막아내는 자신의 배리어를 믿고 재차 캐스팅에 들어갔지만 총알은 그 믿음을 가볍게 배신하며 배리어를 뚫고 마법사의 이마와 어깨, 가슴에 연달아 틀어박혔다.
“커억... 기, 기총술(氣銃術)?”
마법사는 신음을 흘리며 비척비척 뒤로 물러섰다. 배리어 덕분에 죽지는 않았으나 뭉툭한 쇠막대기로 찔린 정도의 충격은 있었다. 단련된 전사라면 아무렇지도 않겠지만 술과 도박에 찌들어 도적질이나 하던 중년 마법사의 연약한 몸은 그것만으로도 상처에서 피를 쏟았다.
틈을 놓치지 않고 유지가 총을 쏘았다.
“흥!”
대검의 남자가 검을 뻗어 총알을 튕겨냈다. 그렇게 계속 마법사를 지키며 캐스팅을 할 시간을 벌어주었으면 좋았겠지만 남자의 앞에는 유미가 있었다. 유미가 발검. 그녀의 허리춤으로부터 섬광 같은 일검(一劍)이 쏟아졌다. 남자는 자기 몸보다도 거대한 검을 가볍게 틀어 유미의 공격을 막았다. 두 개의 칼이 얽히며 서로를 밀어내려는 힘이 팽팽히 맞섰다.
유미와 검을 든 남자, 둘의 몸이 멈추자 사이보그가 유미가 있는 방향으로 총구를 돌렸다. 자기편이 맞든 말든 무작정 쏴 갈길 셈이다. 유나는 쉴드를 해제하며 손목의 팔찌를 만졌다. 작디작은 팔찌에서 사람 몸통만한 크기의 대물저격총이 뽑혀 나왔다.
검은 총신 위에 스코프와 함께 마법 발동용 보주가 달려있고 뒤쪽에는 개머리판을 겸용하는 마나배터리가 장착된 마공학(魔工學) 화기다. 유미는 서서 쏴 자세로 두 개로 나뉜 방아쇠 중 하나를 당겼다. 보주가 회전하며 원소 계열 1서클 마법 라이트닝 볼트가 짜였다. 총구가 번개를 내쏘았다. 광속의 번개가 사이보그의 팔에 적중. 항마(降魔)처리가 되어있는 금속을 사용했는지 번개는 금세 소실되었지만 사이보그의 움직임을 멈추는 데는 충분하다. 사이보그가 신경질적인 얼굴로 유나를 돌아보았다. 유나는 빠르게 앉아 쏴 자세로 이행하며 두 번째 방아쇠를 당겼다. 엄청난 격발음과 함께 소총탄은 비교도 안될 만큼 커다란 탄피가 사출. 현대의 마공학 전차는 무리지만 구식 전차의 장갑판 정도는 단번에 꿰뚫을 대형 탄두가 사이보그의 머리를 노렸다.
사이보그는 한쪽 팔을 변형시켜 방패로 썼지만 탄환을 비스듬하게 튕겨내는 게 고작이었다. 방패가 단박에 우그러들며 뒤편으로 쇳조각을 뿌렸다.
쾅! 쾅! 쾅!
유미가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인간을 초월한 근력과 무게를 가진 그녀의 몸이 들썩거렸다.
“이, 이런 개년이......!”
사이보그는 어찌어찌 방패로 유나의 사격을 버텼지만 방패는 순식간에 너덜너덜해졌다. 그는 더 이상 공격을 버텨낼 수 없다고 생각하고 옆으로 몸을 날렸다. 유나는 거짓말처럼 커다란 저격총을 팔찌 속으로 밀어 넣으며 그의 뒤를 따랐다.
칼을 맞댄 채 힘겨루기를 하던 대검의 남자가 유미의 얼굴을 보고 감탄했다.
“호오, 어린 계집이 실력만 있는 게 아니라 예쁘기도 하구나.”
유미는 말없이 남자를 노려보았다. 그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마음에 들었다. 오늘 밤의 만찬은 너로 하기로 하지.”
“웃기는군. 넌 여기서 죽어.”
유미가 쥐고 있던 칼이 요동쳤다. 남자는 그제야 유미의 검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그의 대검과 마주하고 있는 것은 납작한 철판때기가 아니었다. 살아있는 괴물을 압착기로 짓눌러 칼 모양으로 빚어내면 이런 형태가 될까 싶다.
괴검(怪劍)의 칼날을 따라 상어의 그것처럼 날카로운 이빨이 튀어나왔다. 검의 근육(?)이 펌프질을 하자 수십 개의 이빨이 톱니처럼 회전. 남자의 대검을 집어삼키며 거침없이 파고들어왔다. 남자는 깜짝 놀라 검을 빼며 뒤로 뛰었다. 보법(步法)을 발휘해 순식간에 거리를 벌린다. 유미는 추격하는 대신 검을 도로 검집에 넣었다. 그리고 다시 발검. 그녀가 뽑아낸 검이 뱀처럼 뻗어 남자를 습격했다.
“이건 또 뭐야?”
남자는 대경질색해 검을 들어 공격을 막았다. 그와 유미와의 거리는 10미터가 넘었다. 도저히 검으로 노릴만한 거리가 아니다.그가 검의 정체에 대해 생각하기도 전에 유미가 손잡이를 크게 휘둘렀다. 유미의 검은 채찍처럼 자유자재로 휘며 남자의 전신을 노려왔다.
남자는 반쯤 갈라진데다 너무 커서 다각적인 공격에 대응하기 힘든 대검을 변형시켜 처음의 장도로 만들었다. 그는 정신없이 날아드는 공격을 쳐내다가 유미가 휘두르는 검의 정체를 깨달았다.
그것은 ‘뱀’ 이었다. 몸의 양쪽에 자기 몸통보다 커다란 칼날을 단 가느다란 뱀이다. 생물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생김새지만 그 끝에 눈알 달린 머리가 있는 걸 보고나니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남자는 웃었다. 생전 처음 보는 기술을 연달아 접하자 짜릿한 흥분이 밀려왔다. 그는 내공을 끌어올리며 장도를 단단히 쥐었다.유미는 냉혹한 얼굴로 검... 아니, 채찍 검 형태의 괴물을 휘둘렀다. 둘의 검격이 가속. 불똥이 사방으로 튀며 둘 사이의 공간에 태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두 검사가 싸우는 사이, 유지는 재빠르게 움직여 마법사가 쏘아낸 불덩이를 피했다. 불덩이는 바닥에 부딪히며 폭발. 커다란 구덩이를 만들었다. 마법사는 땀과 피로 흠뻑 젖어서 숨을 헐떡였다. 그는 온몸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붉게 물든 옷 위로 동그란 총알구멍이 점점이 놓여 있었다.
조금이라도 연사를 멈추면 총알이 날아온다. 응축된 기는 마력을 분해한다는 ‘데어칼테 효과’ 때문에, 어설픈 배리어로는 기총술의 고수가 쏘아내는 기공(氣功) 실린 총알을 막아낼 수가 없다.
기공술(氣功術)의 사거리가 짧은 것이 다행이었다. 자연의 힘을 역행하는 ‘마력’과 달리 ‘기’는 자연의 힘에 순응한다. 기는 마력을 담고 있는 마나 배터리처럼 특정 물건에 저장하는 것도 불가능한데다, 모든 비과학 현상의 근원인 영속력(靈束力)을 지닌 시전자의 몸과 떨어지면 순식간에 허공에 흩어져버렸다. 과학과 마공학이 발전하고 수많은 개인화기가 발명 된 지금에 와서도 무공(武功)의 고수들이 냉병기를 이용한 백병전을 고집하는 것도 그 이유에서다.
총알에 기를 실어서 쏘는 기총술은 근래에 개발된, 나름 세련된 기술이었으나 그래도 유효 사거리는 20미터를 넘지 못했다.
어쨌든 이 이상 접근을 허락하는 건 위험하다.
마법사는 유지가 다가오는 것을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주문을 짜냈다. 1서클의 원소 계열 마법 ‘파이어 볼’이 다중으로 발사되었다. 수개의 불덩이가 공간을 매웠지만 유지는 매끄러운 움직임으로 몸을 흔들어 미꾸라지처럼 불덩이 사이의 빈틈을 빠져나갔다. 흔한 무술가들과 달리 빠르기만 한 게 아니다. 뭐랄까,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같은 몸놀림이다. 도저히 공격을 적중 시킬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미친 자식. 무슨 움직임이......’
마법사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하며 지금까지 조금씩 짜왔던 대형마법을 발동시켰다. 지팡이의 끝에서 화염이 분출. 순식간에 확장. 커다란 고리가 되어 주위를 휩쓸어갔다. 마법사의 몸을 중심으로 거대한 화염의 원이 퍼져나갔다. 땅 위에서는 피한다는 행위가 불가능한 광범위 마법. 원소(Elemental) 계열 3서클 마법 ‘파이어 서클(Fire circle)’이었다. 유지는 어쩔 수 없이 공중으로 비상. 덮쳐오는 불의 고리를 뛰어넘었다. 아무리 발이 빠르고 움직임이 좋아도 공중에 뜬 상태에서는 소용이 없다. 마법사는 허공에 뜬 유지를 향해 회심의 라이트닝 볼트를 쏘았다.
유지의 어깨에 달려있던 두 개의 공이 압축된 공기를 토해 냈다. 갑작스런 추진력이 발생. 그의 몸이 공중에서 회전하며 마법사가 발사한 번갯불이 하늘로 날아갔다.
“제기랄!”
저런 게 있었을 줄이야! 마법사는 재차 공격을 퍼부었지만 유지는 마공학 장비인 왼팔의 방패를 작동시켜 쉴드를 펼쳐냈다. 그는 쉴드를 앞에 세우고 어깨 위의 추진력발생기를 조작해 등 뒤로 분사. 순식간에 거리를 좁혔다. 유지의 총구가 마법사를 가리킨다.
마법사는 남아있는 모든 마력을 긁어모아 가능한 한 최속의 캐스팅으로 원소 계열 1서클 마법 ‘프로즌 쉴드(Frozen shield)’를 사용했다. 자연의 물리력을 이용하는 원소 계열의 방어마법은 순수하게 마력만을 원료로 하는 비전 계열의 방어마법보다 기공에 대한 저항력이 높았기에 한 선택이다.
주변의 수분을 긁어모아 저온으로 압축시킨 얼음의 방패가 마법사의 정면을 단단히 틀어막았다. 이 마법이면 기력을 담은 총알이라도 한두 발 정도는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퍼억!
마법사의 머리가 옆으로 꺾였다. 그의 관자놀이에는 시커먼 구멍이 뚫려 있었다. 마법사의 두 눈에 의문이 떠올랐다. 그가 앞에 세운 얼음의 방패에는 금이 간 흔적도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총알이 측면에서 날아왔는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그것이 마법사가 이 세상에서 품은 마지막 의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