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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의 1+1은 2가 아니다.
작가 : 요동치는하트
작품등록일 : 2016.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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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pter. 2 - 극동도(極東島) (3)
작성일 : 16-09-06     조회 : 82     추천 : 0     분량 : 5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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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생이요?”

 

 남자와 소녀의 생김새는 많이 달랐다. 남자는 연한 갈색머리에 콧대가 큰 서구적인 인상이었고, 소녀는 흑단 같은 머리에 눈이 길게 찢어진 동양인의 얼굴을 하고 있다.

 

 질문의 의도를 깨달은 남자가 설명했다.

 

 “아, 이건 저희가 혼혈이라서 그렇습니다. 저는 어머니를, 자애는 아버지의 피를 많이 물려받았죠.”

 

 그 말을 듣고 보니 확실히 코나 갸름한 얼굴 등 이목구비가 전체적으로 비슷해 보였다. 특히 소녀 쪽은 동양인과 서양인의 특징이 아주 잘 이루어진 독특한 매력을 뽐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유지가 말을 이었다.

 

 “어쨌든... 두 분이서 같이 움직이시는 게 아닌가요?”

 

 “사정이 있어서... 따로 움직이게 됐습니다.”

 

 “전후사정을 구체적으로 들을 수 있을까요?”

 

 “알겠습니다.”

 

 남자는 자신의 이름을 인권도라고 소개했다. 그는 극동도에서 군인으로 있다가 10년 전에 벌어진 내전을 피해 어린 동생을 데리고 반도로 넘어온 불법이민자였다. 정식이민 절차를 밟을 수는 없었지만 그는 브로커를 통해 위조된 반도의 시민권을 얻었고 그 시민권으로 음식점을 열어 지금까지 살아왔다고 했다.

 

 하지만 최근, 재수가 없게도 요식업 영업허가증을 갱신하다가 위조된 시민권이 발각된 게 문제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청에서 사람이 찾아왔고 동도로의 강제추방 처분을 통보했다. 허나 지금 동도의 상황은 그야말로 최악. 있던 사람들도 못 참고 뛰쳐나오는 마당에 다시 그곳으로 들어가라는 것은 죽으라는 소리와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권도는 지금까지 모아두었던 돈으로 반도를 떠나 다시 한 번 다른 나라로의 불법이민을 시도하기로 마음먹었다는 것이다.

 

 대강의 상황을 파악한 유지가 물었다.

 

 “그래서 어디로 가십니까?”

 

 “암해리가 대륙으로 갑니다.”

 

 “그 쪽은 이곳보다 규제가 더 심할 텐데요.”

 

 “북쪽 지역이나 그렇지요. 남쪽은 이곳이랑 비슷할 겁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나의 정치권으로 통합되어가는 북 암해리가와는 달리 남 암해리가는 아직 여러 개의 정치세력들이 엎치락뒤치락 하는 와중이라 불법이민자들에게 신경 쓸 여유가 없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마냥 희망적으로 볼 수만은 없는 것이, 안정기에 접어든 지 오래되어 여유가 있다 못해 나태해진 반도의 정부에 비해 당장이 급한 몇몇 남 암해리가의 정치세력들은 자기 살을 갉아먹는 불법이민자들을 처리하기 위해 ‘이건 좀 심하다’ 싶을 정도의 강경책을 취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유지가 그것에 대해 묻자 권도는 막힘없이 대답했다.

 

 “그래서 제가 먼저 암해리가로 가는 겁니다. 자애가 쓸데없는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안전한 곳에 자리 잡기 위해서요.”

 

 “그럼 저희가 언제쯤 자애씨를 호위해 드리면 될까요?”

 

 “여러분께서 의뢰를 수락해주신다면 저도 바로 출발할 수 있으니 오늘부터 한 달 정도 뒤가 되겠죠.”

 

 권도의 이야기에 딱히 의심이 가는 곳은 없다. 하지만 느낌이 안 좋았다. 낭인처럼 자기 목숨을 걸고 장사를 하는 이들에게 직감은 중요한 판단기준이다. 논리적이지 않다고 해서 쉽게 무시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유지는 대놓고 수상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눈빛으로 ‘분명히뭔가있어그게뭔지는모르겠지만하여튼수상해빨리네진심을털어놔봐그렇지않으면이일못해......’ 라고 말했다.

 

 다행히 권도는 유지가 보내는 눈빛의 의미를 알아낸 듯했다. 그는 헛웃음을 지었다.

 

 “내가 수상해보일 수도 있다는 건 나도 압니다. 난 동도에서 제법 이름이 있는 군인이었고,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급전이 필요해 몇 번인가 더러운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이제 은퇴한지 10년이나 됐어요. 그동안 주방에서 생선이나 조물락거렸지 제대로 싸워본 적도 없단 말입니다. 한물 간 퇴물이죠. 그러니 그렇게 경계할 필요 없습니다.”

 

 잠자코 듣고 있던 자애가 권도의 옆구리를 찔렀다. 권도가 귀를 가져다대자 조심스럽게 귀엣말로 말한다.

 

 “아까부터 내가 전혀 모르는 이야기가 계속 나오는데 어떻게 된 거야? 오빠는 그냥 평범한 군인이었다고 했잖아?”

 

 나름 조심히 말한다고 한 것이겠지만 뛰어난 오감을 지닌 유지와 유미의 귀를 피해갈 수는 없다. 그것을 아는 권도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을 미뤘다.

 

 “나중에 이야기 해 줄게.”

 

 자애는 납득하지 못한 듯 했으나 그 이상 권도를 재촉하지는 않았다.

 

 유지가 말을 꺼냈다.

 

 “잠깐 저희들끼리 나가서 상의를 좀 해봐도 될까요?”

 

 “그러시죠.”

 

 유지는 유나와 유미를 데리고 응접실을 빠져나왔다. 그들은 복도에 서서 머리를 맞댔다.

 

 유나가 말했다.

 

 “주인님, 어쩌실 거예요?”

 

 유지는 유미에게로 화살을 돌렸다.

 

 “유미는 뭐 의견 있니?”

 

 유미는 긴 속눈썹을 내리깔며 대답했다.

 

 “난 아무래도 상관없어. 다만... 말해둘 건 있지.”

 

 “뭔데?”

 

 “옆에 있던 여자도 평범한 인간은 아니야.”

 

 생각지도 못했던 정보에 유나와 유미의 표정이 변했다. 유나가 조심스레 물었다.

 

 “왜요?”

 

 유미는 목도리를 끌어올려 턱을 파묻으며 말했다.

 

 “수라귀들이 여자를 보고 겁을 먹었어. 뭔진 몰라도 강력한 파마(破魔)의 힘을 지닌 인간이다.”

 

 유지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딱히 퇴마사처럼 보이지는 않았는데...... 용 같은 영수(靈獸)의 혼혈이라도 되나? 오빠 쪽은 어땠는데?”

 

 “그쪽은 몰라. 반응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혼혈이라고 해서 그 능력을 반드시 물려받는 건 아니잖아요.”

 

 “그건 그렇지. 영적인 능력은 사람마다 타고나는 능력이 천차만별이니까... 그냥 우연히 천재가 태어난 걸지도 모르고. 이건 그냥 참고만 해야겠는걸.”

 

 잠시 침묵이 흘렀다. 유나가 운을 뗐다.

 

 “그래서... 어떻게 하실 거예요? 저희가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도 아니고 소장님 지인이라는데 무작정 거절하기에는 좀...... 그런데요.”

 

 잠시 생각하던 유지가 곧 결론을 내렸다.

 

 “그럼 이렇게 하자. 일단 들어가서 의뢰비를 엄청 크게 불러. 그런데 별 말없이 오케이를 한다? 그러면 역시 뭔가 있는 거야. 그때는 ‘그냥 안녕히 계세요’ 라고 말하고 나오자.”

 

 유나가 쿡 웃었다.

 

 “그게 뭐에요? 돈을 많이 받으면 좋은 거잖아요?”

 

 유지는 근엄하게 말했다.

 

 “이유 없이 돈을 많이 주는 사람은 없어. 그것이 이 세상의 진리다.”

 

 “그딴 건 말하지 않아도 알아.”

 

 톡 쏘아붙이는 유미.

 

 “유미야, 이럴 때는 빈말로도 ‘어머. 재미있어라! 이런 센스쟁이! 오호호호!’ 라고 해주는 게 예의란다.”

 

 과장된 액션을 취하며 선생님같이 말하는 유지. 유미는 비웃음으로 대응한다.

 

 “웃기는군. 내가 왜?”

 

 “그건......”

 

 “그만, 그만, 그만!”

 

 유나는 말싸움을 이어가려는 두 사람을 떼어놓았다. 그녀는 현실의 이야기를 꺼내 주변을 환기시키는 작전을 썼다.

 

 “방금 주인님이 말씀하신대로 저희가 말도 안 되는 금액을 불러요. 그런데 저쪽이 안 된다고 하면 어떻게 하죠?”

 

 “그럴 땐... 그냥... 흥정을 잘 해야지?”

 

 “뭐에요. 그게 대체.”

 

 ***

 

 회의를 마친 셋은 다시 응접실로 들어갔다. 그들이 자리에 앉자 권도가 말했다.

 

 “이야기는 잘되셨습니까?”

 

 “네, 저희끼리 말을 좀 해봤는데 저희가 제시하는 의뢰비만 맞춰주시면 의뢰를 받아드리겠습니다.”

 

 “......얼마나 원하십니까?”

 

 다소 무례한 유지의 말 때문에 권도의 인상이 조금 찡그려졌다. 그는 대놓고 불쾌함을 표시했지만 유지는 천연덕스럽게 시치미를 떼며 물었다.

 

 “그러니까... 브로커와 이야기가 되어 있다는 항구가 어디였죠?”

 

 “예전에 산후시라고 불렸던 동해 끝자락의 항구입니다.”

 

 “그러면 그곳으로 가는 길목에 마교 잔당이 장악하고 있는 지역이 있는 것도 알고계시겠네요?”

 

 “압니다.”

 

 “그곳은 반도에서 가장 위험한 곳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죠. 그러니 그 위험수당이 좀 많이 들어갈 것 같네요. 그래서......”

 

 유지는 말꼬리를 늘임과 동시에 눈치를 보며 탁자 위를 살살 긁었다. 권도의 표정이 점점 사납게 변해갔다.

 

 일부러 그런다는 건 알지만 옆에서만 봐도 기분이 나쁘다. 유나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둘을 바라보았다.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녀의 주인님은 사람 열 받게 하는 데에 아주 탁월한 재주가 있었다. 갑자기 권도가 성질을 못 참고 주먹을 날리면 어쩌나 마음을 졸이고 있을 때, 유지가 말을 맺었다.

 

 “선금으로 천만 원, 의뢰 완료시 천만 원. 해서 총 이천만 원은 주셔야겠습니다.”

 

 유지는 대담하게도 그들이 평소에 받는 금액의 두 배 아니, 세 배는 될 가격을 불렀다. 셋이 모이면 절정고수도 상대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는 서가삼랑이라지만 하지만 끽해야 하루에서 반나절 정도 일하고 받는 보수라고 치기에는 누가 봐도 터무니없는 가격이다.

 

 유지의 제안에 권도는 똥 씹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인상만 썼을 뿐 바로 거절의 의사를 비치진 않는다.

 

 만약 유나가 방금 같은 제안을 들었으면 생각이고 뭐고 벌떡 일어나서, 아무리 바깥지역이 위험해도 그렇지 차타고 조금 왔다갔다하는 게 뭐가 그렇게 비싸요? 완전 도둑놈 심보 아니에요? 라고 쏘아붙였을 것이다. 그녀는 의심의 기색을 담아 권도를 관찰했다.

 그때, 자애가 벌떡 일어섰다.

 

 “아니, 아무리 바깥 지역이 위험해도 그렇지 차타고 조금 왔다갔다하는 게 뭐가 그렇게 비싸요? 완전 도둑놈 심보 아니에요? 더 들을 필요도 없어. 오빠, 가자!”

 

 자애는 권도의 팔을 붙잡아 끌었다. 권도는 어어 하며 엉거주춤 허리를 들었다. 유지가 번쩍 손을 치켜들었다.

 

 “잠깐! 성급하게 그러지 마시고...... 이런 건 진지하게 대화로 풀어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자애는 여성 특유의 억척스러운 눈빛과 어조로 말했다.

 

 “그 말은 무슨 의미죠?”

 

 “원하신다면 가격을 까, 깎아드리겠다는 이야기죠...”

 

 “그럼 방금 제시한 금액은 뭔데요?”

 

 유지는 장사꾼의 미소를 지으며 손을 싹싹 비볐다.

 

 “그건 그냥 한 번 떠본 거라고나 할까... 결코 바가지를 씌울 생각으로 그런 건 아니었고요... 하하.”

 

 자애는 불퉁한 표정으로 다시 자리에 앉았다. 생긴 건 꽃 한 송이 못 꺾을 것 같은 가녀린 소녀가 눈빛은 수십 년을 구른 아줌마처럼 위협적이다. 권도는 동생의 생경한 모습에 감탄어린 표정으로 혀를 내둘렀다. 자애는 턱을 치켜들며 고압적으로 물었다.

 

 “그래서, 얼마나 깎아주실 건가요?”

 

 마냥 순한 양 인줄만 알았는데 이제 보니 완전히 양의 탈을 쓴 늑대다. 예상치 못하게 목덜미를 물린 유지는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이러다가 본전도 못 찾게 생겼다. 그는 옆에서 지켜보던 유나를 돌아보았다.

 

 “유나야, 네가 나대신 흥정을 해주면 안 되겠니?”

 

 유나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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