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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의 1+1은 2가 아니다.
작가 : 요동치는하트
작품등록일 : 2016.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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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pter. 2 - 극동도(極東島) (4)
작성일 : 16-09-13     조회 : 116     추천 : 0     분량 : 5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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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뢰비는 육백 오십 만원으로 합의가 되었다. 서가삼랑이 평소의 기준을 정해놓은 가격일람표에 따르면 이번일은 못해도 팔백 만원은 받아야 했지만 유지는 자애의 뚝심을 이기지 못하고 가격을 낮췄다. 그가 자꾸 자애의 가슴에 시선을 빼앗긴 것도 심적인 빚을 늘리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나마도 참다못한 유나가 나섰기에 망정이지 잘못하면 총알 값도 못 건질 뻔 했다.

 

 자애는 협상이 끝나자마자 고운 처녀로 돌아와 수줍게 인사를 하곤 권도와 같이 응접실을 빠져나갔다. 유지는 절세고수와의 대결을 끝낸 것 같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무서운 아가씨야. 저 성격에 저만한 가슴이라니... 완벽한 나의 천적이다.”

 

 “닥쳐요 좀.”

 

 “후우...”

 

 기나긴 말싸움과 기 싸움에 지친 셋은 잠시 노닥거릴 요량으로 사무소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사무실에서는 창식이 소파에 앉아서 접대용 탁자 위에 꽃과 가위를 늘어놓고 꽃꽂이를 하고 있었다. 창가와 사무실의 외각을 따라 난초와 꽃등이 담긴 화분이 줄줄이 놓여있다. 산만 한 덩치의 중년인이 꽃을 만지작거리는 모습은 어찌 보면 우스워보였지만 창식의 표정은 진지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그는 인생의 의미를 탐구하는 구도자처럼 꽃을 들어 꽃꽂이용 스티로폼에 꽂았다.

 

 유지가 맞은편의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형님, 방금 그 권도라는 분 정체가 뭡니까? 아무리 봐도 요리사로 보이지 않는데요?”

 

 창식은 시선을 떼지 않고 대답했다.

 

 “물론 평범한 요리사는 아니지. 극동도에 있을 때 국경방위선에서 주로 요괴들과 싸웠다고 하는데... 양팔이나 기도(氣度)로 따져봤을 때 아마 8단 이상의 철완류(鐵腕流) 공수도가가 아닐까 싶다.”

 

 한때 단혈철권(斷血鐵拳)이라고도 불렸던 권법가인 창식이다. 권각술에 조예가 있는 그의 예측이니 상당히 정확도가 높다고 봐야했다. 유지는 감탄했다.

 

 “세상에, 8단이요? 초고수네!”

 

 유미가 유나에게 물었다.

 

 “8단이면 어느 정도 수준이야?”

 

 유나는 과거 유미가 없을 때 유지와 같이 세계 곳곳을 돌며 낭인 일을 했었고 극동도에 간 적도 있었다. 때문에 그녀는 유미의 질문에 쉽게 답해주었다.

 

 “대륙식으로 치자면 절정고수죠.”

 

 “흠...”

 

 반도에서 총인구 삼백만이 넘는 이곳 대산시에도 절정고수로 취급받는 사람은 네 명밖에 없었다. 비율로 치면 0.0001% 밖에 되지 않는 최고급 인력이다. 직접 맞붙어 본적은 없지만 가끔 들리는 풍문에 따르면 그들 모두가 혼자서 작은 중대나 소대를 상대할 수 있는 괴물들이라고 한다.

 

 허나 유미가 보기에 권도는 고수이기는 했지만 그 정도로 강력한 상대는 아니었다.

 

 창식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은퇴한 건 사실이야. 적어도 내가 그를 안 8년 동안 그가 무술가로 활동한 적은 없었어. 그건 내가 보증하지.”

 창식은 실력뿐만 아니라 정직하고 올곧은 성격으로 얻은 인맥도 있었다. 그러한 인맥에서 자연스럽게 흐르는 정보량은 상당히 많아서, 이 도시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을 캐내는 데에는 웬만한 정보상보다 그냥 창식에게 물어보는 것이 훨씬 빠르고 정확할 정도였다.

 

 유미는 생각했다.

 

 권도는 자기가 은퇴한지 10년이 되었다고 했다. 창식은 8년 동안은 그가 활동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권도는 최소 8년에서 최대 10년 동안 싸움터 바깥에서 살아왔다는 말이다.

 

 실력이 녹슬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다.

 

 특히 철완류 공수도같이 근접 전투를 특기로 하는 기술을 사용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에, 손톱만한 차이로 승부가 결정 나는 접근전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감’이다. 그리고 그 ‘감’이라는 것은 적당한 수련정도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계속해서 목숨을 건 전장에 서가며 갈고닦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전성기 때에 절정고수 급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지금 자신의 상태를 퇴물이라고 부르는 것도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유지가 아깝다는 듯이 말했다.

 

 “그런데 왜 은퇴한 거죠? 그 정도 실력이면 어디를 가도 한 자리 꿰찰 수 있을 텐데.”

 

 창식은 계속 느릿하게 꽃꽂이를 이어가며 입을 열었다.

 

 “글쎄...... 자기 입으로 말한 적은 없지만 아마 동생 때문이 아닐까.”

 

 그는 전체적인 모양을 살피며 가위를 놀려 줄기와 쓸데없는 이파리 등을 잘라내 꽃을 다듬었다.

 

 “피 묻은 돈으로 동생을 키우고 싶지는 않았겠지. 전방에서 싸우는 건 위험하기도 하고.”

 

 유지는 그 심정을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떡였다. 하지만 유미는 싸늘하게 말했다.

 

 “어떻게 벌었든 돈은 똑같은 돈이지. 쓸데없는 감상이야.”

 

 창식은 도전적인 눈매로 자신을 쳐다보는 유미를 보고 살짝 미소를 지었다.

 

 “내 아내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지. 하지만 때로는 그런 쓸데없는 감상이......”

 

 그리고 남아있던 꽂을 마지막으로 꽂아 넣었다.

 

 “......무언가를 바꾸는 법이지.”

 

 창식은 완성시킨 꽃꽂이를 옆에 두었던 바구니에 담아 완성시켰다. 바구니가 풍성하게 차오르자 꽃이 제각각의 아름다움을 뽐낸다. 그는 바구니를 유미에게 내밀었다.

 

 “꽃을 옆에 두면 마음이 편해진다고들 하지. 가져가. 아저씨가 주는 선물이다.”

 

 “흥.”

 

 유미는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곤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을 나가버렸다. 유나가 공손하게 사과하며 대신 꽃바구니를 받아들었다. 창식은 유미가 빠져나간 사무실 문을 바라보다 너털웃음을 지었다.

 

 “녀석.”

 

 ***

 

 용우의 공방은 바닷가에서 멀리 떨어진 대산시 귀퉁이의 야산에 있었다. 공방은 창고식으로 지어진 조립식 판넬 건물이었다. 반쯤 타다가 남은 것처럼 외벽이 검게 그을려있고 벌집같이 구멍이 뻥뻥 뚫려 비는 피할 수 있을까 걱정스러운 몰골이다. 언뜻 보면 전쟁 통에 홀로 버려진 수십 년 된 폐창고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최고급 마공학 병기와 기기동(氣起動) 장비를 만들어내는 공방이자, 각종 화기를 취급하는 무기창고이다.

 

 진득한 기름과 매캐한 화약 냄새가 진동하고, 사방에 탄피와 제 모습을 갖추지 못한 쇳덩이들이 굴러다녔다. 그 잡동사니 사이에 천막으로 쳐놓은 간이 칸막이가 있다.

 

 그 안에 반쯤 벌거벗은 차림의 유나가 다소곳하게 앉아있다. 공방 안은 아지랑이가 피어오를 정도로 뜨거웠지만 그녀는 그늘아래에 있는 것처럼 편안해보였다. 검은 색의 스포츠 브라와 팬츠가 비정상적으로 깨끗한 피부의 몸을 단단히 조인다. 그 위로 부드러운 곡선이 나타났다. 풍만하지는 않지만 조형적으로 흠잡을 데가 없는 날렵한 몸매다.

 

 유나는 옆에 차곡차곡 쌓아둔 옷가지 위에 안경과 머리집게를 내려놓았다. 몇 번 고개를 저어 흐트러진 머리칼을 정리한 뒤, 준비해둔 머리끈으로 한데모아 가슴 앞으로 늘어트렸다.

 

 기름으로 떡칠을 한 작업복을 걸친 용우가 그녀에게 다가갔다.

 

 “팔 먼저 보여줄래?”

 

 “네.”

 

 유나는 양팔을 좌우로 벌렸다. 용우는 막대기 모양의 식별기를 들어 유나의 어깨에 가져다댔다. 식별기가 작동하며 빛을 뿌리기 시작한다. 터무니없이 복잡한 형태의 3차원 마법진이 허공에 떠올랐다. 얽히고설켜 본래의 형태를 알아볼 수도 없는 구조체 위를 용우가 만지작거렸다. 그는 마력식별 모듈 위에 손을 놓고 수인을 맺으며 짧게 인식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허공을 부유하던 구조체가 식별기로 빨려 들어가며 유나의 한쪽 눈이 빨갛게 물들었다.

 

 유나의 팔과 동체를 이어주는 어깻죽지에 실금이 그어졌다. 김빠지는 소리와 함께 증기가 분출. 기계의 내부구조가 노출되며 용우가 당기는 대로 팔이 떨어져 나왔다.

 

 용우는 똑같은 방식으로 나머지 한쪽 팔도 떼어낸 뒤 두 팔을 작업대 위에 올려두었다. 그는 우선 팔에 그려져 있는 파란색 방패와 빨간색 검의 문신 위에 뚫려있는 조그마한 구멍에 송곳을 찔러 넣었다. 철컥 소리와 함께 팔의 장갑이 열린다. 그가 장갑판 밑의 버튼을 조작하자 팔에서 각각 빨갛고 파란 덩어리가 튀어나왔다.

 

 그가 뽑아낸 것은 각자 납작한 막대기 형태로 깎아낸 루비와 사파이어로, 특수한 조합식으로 생성된 고가형 마나 배터리였다. 돈으로 환산하면 개당 2억은 쉽게 넘어갈 최고급품이다. 일반 마나 배터리와 달리 활성화 마력을 담을 수 있어 3서클 이상의 준 고위 마법도 사용할 수 있는데다 넉넉한 용량으로 저위 마법을 사용하는데도 유리했다.

 

 용우는 배터리를 충전기에 꽂아놓고 조그만 전자장비들을 가져와 팔의 상태를 점검했다.

 

 “일단 외견상으로는 문제없고... 동력선도 안전하네. 마력회로도 깨끗하고. 옛날에는 점검할 때마다 반파되어서 돌아오더니.”

 

 “그때는 점검 기간도 길고 하루가 멀다 하고 전쟁터에 들락거렸으니까요. 낭인일도 위험하지만 그 때보다는 나아요. 게다가 요즘은 아가씨가 전방에 서주시니까 저한테 돌아오는 부담도 적고요.”

 

 “그건 다행이네. 근데 유미는 안 왔어?”

 

 “아가씨는 차에 계세요. 살 것도 없는데다 공방은 냄새 나고 덥다고... 용우오라버님께 안부나 전해달래요.”

 

 용우는 사람 좋게 웃었다.

 

 “그래? 그럼 나는 잘 지낸다고 말 해줘.”

 

 양 팔의 점검을 끝낸 용우는 뽑아두었던 팔을 원래대로 만들어 끼워주었다.

 

 다음은 몸체의 차례다. 유나는 스포츠브라를 벗고 양팔로 가슴을 가렸다. 용우는 그녀의 등 뒤에 쪼그려 앉아 팔을 떼어낼 때처럼 잠금 마법을 식별기로 해제한 뒤 등 부분의 외피를 벗겨냈다. 동물의 가죽을 발라내듯 표면장갑을 끌어내리자 안에서 철조각을 원통형으로 짜낸 몸체가 나타났다. 몸체에는 정비용으로 만들어놓은 작은 화면출력기가 붙어있었다. 화면 위에 'Android Type Soullink Golem Mk.2' 라는 글자가 있고 옆에 ‘서유나’라는 이름이 작게 박혀있다. 용우는 화면 밑의 삽입구에 마력회로 탐지기의 연결 코드를 꽂아 넣고 화면출력기를 살폈다.

 

 가만히 있던 유나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전에 말씀 드렸던 건 조금 생각해보셨나요?”

 

 “뭐? 그런 게 있었나?”

 

 용우는 금시초문이라는 듯 위를 쳐다보며 과거를 되새겨보았다. 유나는 머뭇거리다 이내 부끄러워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작게 중얼거렸다.

 

 “그... 조, 조금 더 큰 가슴을 달아 주시는 거요......”

 

 그제야 그녀의 요청을 떠올린 용우는 껄껄 웃었다.

 

 “그건 안 돼. 그때도 말한 거 같은데. 가슴은 너한테 아무런 쓸모가 없는 부위야. 전투는 물론이고 일상생활에서도 그래. 움직이기만 불편하고 부피랑 무게만 늘지. 달아봐야 성능만 떨어질 걸?”

 

 그는 동체의 점검을 마치고 그녀의 등에 외피를 씌워주었다. 모서리를 맞추고 꾹꾹 눌러가며 주름이 잡히지 않도록 꼼꼼하게 끼워 넣는다.

 

 유나는 철저히 효율과 기술적 합리성만 생각하는 용우의 답변에 불퉁한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우... 저한테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라구요.”

 

 칸막이를 밀어젖히며 유지가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창... 아니 기둥에 비견될만한 장대가 들려있었다.

 

 “용우야, 이건 뭐야?”

 

 유나는 번개라도 맞은 양 화들짝 놀라더니 허리를 숙이며 빽 소리를 쳤다.

 

 “아직 안 끝났어요! 보지 마세요!”

 

 “앗, 미안.”

 

 유지는 퍼뜩 사과를 하며 다시 천막을 쳤다. 용우는 혀를 차며 작업을 속행했고 곧 등을 두들기며 다 됐다는 신호를 보냈다. 유나는 뾰로통한 얼굴로 옷가지를 챙겨 입었다.

 

 “하여튼... 주인님은 너무 무신경해요...”

 

 “난 유지의 그런 점이 좋던데.”

 

 “용우 오라버님은 친구니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예요. 동거인의 입장으로 보면 주인님의 무신경함은 거의 범죄 수준이라고요.”

 

 “그건 그럴지도.”

 

 용우는 마지막으로 그녀의 얼굴을 관찰하곤 고개를 끄떡였다.

 

 “좋아. 근육도 잘 움직이고 감정표현도 잘 되네.”

 

 그는 유나의 볼을 살짝 잡아 당겼다. 유나는 작게 우는 소리를 냈다.

 

 “아야야.”

 

 “통각신경도 정상. 다 끝났어.”

 

 “감사합니다.”

 

 옷을 챙겨 입은 유나는 머리를 틀어 올려 집게로 집고 안경을 썼다. 작업대 위에 올려둔 장비들을 정리하던 용우가 물었다.

 

 “예전부터 묻고 싶었는데 안경은 왜 쓰는 거야?”

 

 “그냥 그게 저한테 잘 어울려서 쓰는 건데요.”

 

 그녀는 몸을 비스듬히 세운 채 팔짱을 끼며 한쪽 손으로 안경을 고쳐 쓰는 포즈를 취했다. 그리곤 요염하게 웃어 보였다.

 

 “어때요? 이지적이면서도... 약간 날카로운 느낌의 미녀처럼 보이지 않아요?”

 

 용우는 눈을 멀뚱멀뚱 깜빡였다. 평생을 솔로로 살아왔고 지금은 기술자라는 직업까지 가진 철벽의 남자는 아무런 가감도 하지 않은 순수한 한마디를 건네었다.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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