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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의 1+1은 2가 아니다.
작가 : 요동치는하트
작품등록일 : 2016.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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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pter. 3 - 상처 (1)
작성일 : 16-09-15     조회 : 178     추천 : 0     분량 : 6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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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녀왔습니다.”

 

 교복을 입은 유나가 현관에 들어섰다. 그녀는 일주일에 한두 번씩, 출결이 자유로운 대안학교에 다녔다. 유나는 비인간권리 위원회의 인격인정시험을 통과한 1종 인공인격체로서, 정식 시민권을 취득하고 있었기에 평범한 학교에 다닐 수도 있었지만 일이 바빠 대안학교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거실의 소파에는 유미가 아빠다리를 하고 앉아있었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두꺼운 통기타를 퉁겼다. 통기타가 특유의 따뜻한 음률을 흘리고, 그 위에 허스키한 소녀의 콧노래가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창가에서 쏟아지는 햇빛이 소녀의 옆모습을 비춘다. 만년설(萬年雪)을 깎아 만든 듯한 콧날과 턱 선이 새파랗게 빛을 뿜었다. 길게 깔아 내린 속눈썹 위에는 동그란 눈꺼풀이 있고 단정한 눈썹이 자리하고 있다. 윤기가 흐르는 머리칼은 짙은 묵색으로 빛을 빨아들이며 얼굴과 상반되는 아름다움을 뽐냈다.

 

 마법에라도 걸린 듯한 기분이다. 유나는 멍하니 유미를 바라보았다.

 

 인기척을 느낀 유미가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입가가 정말 작은 미소를 만들어냈다. 있는 듯 없는 듯한 유미의 미소를 마주한 유나는 심장이 내려앉는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그제야 깨달았다. 유미가 말했다.

 

 “왔어?”

 

 유나는 화들짝 놀라 대답했다.

 

 “어...... 네! 네! 다, 다녀왔어요.”

 

 “그래.”

 

 유미의 시선이 다시 기타로 향했다. 그녀는 짧게 기타를 켜며 방금 전처럼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유나는 얼얼할 정도로 뺨을 몇 번 때리곤 침착하게 물었다.

 

 “수린언니는 가게 나갔을 거고... 주인님은요? 집에 짱 박혀서 게임이나 하고 있을 줄 알았더니.”

 

 “학원.”

 

 “치호 오라버님이 왔다갔나 보죠?”

 

 “응.”

 

 유나는 안 나간다고 때를 쓰다가 치호에게 목덜미를 잡혀 질질 끌려 나가는 유지의 모습을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저녁에 맛있는 거라도 준비해서 기분 풀어드려야지.

 

 그녀는 후후 웃으며 옷방으로 들어갔다.

 

 유나가 교복을 벗어 곱게 펴 옷걸이에 걸어놓는데 유미가 따라 들어왔다. 그녀는 입고 있던 팬티스타킹과 넉넉한 긴팔 셔츠 위에 치마와 가죽 재킷을 겹쳐 입으며 나갈 채비를 했다. 유나가 물었다.

 

 “어디 나가세요?”

 

 유미는 언제나 그렇듯 짧게 대답했다.

 

 “채홍다관(彩虹茶館).”

 

 “아, 봉인식 점검하시러 가는 거죠?”

 

 “응. 그리고 경희가 연구할 것도 있다고 해서.”

 

 “저도 갈래요. 그 이후에는 예정이 있으세요?”

 

 “아니.”

 

 유나는 유미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그리고 짓궂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럼 오늘 주인님은 그냥 버려두고 여자들끼리 놀까요? 맛있는 것도 사먹고 오랜만에 노래방도 가고...... 어때요?”

 

 유미는 살짝 고개를 끄떡였다.

 

 ***

 

 그로부터 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유나와 유미는 거리를 나섰다.

 

 유나는 기분이 좋은지 팔다리를 큼직하게 흔들며 걸었다. 반면에 유미는 신경질적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두 꽃을 향해 모여들던 꿀벌들이 시퍼런 안광에 질려 슬금슬금 물러난다. 유미가 불쾌함을 표현했다.

 

 “쓰레기들이 자꾸 이쪽을 쳐다보는데. 거슬려.”

 

 유나는 슬며시 웃었다.

 

 “아가씨가 귀여워서 쳐다보는 거예요.”

 

 유미는 입을 다물었다. 유나는 빙글빙글 웃으며 자신의 손길로 재탄생한 유미의 모습을 살폈다.

 

 대강 묶고 다니던 긴 머리를 곱게 빗어 양 갈래로 나눠 묶고, 가운데에는 동그란 빵모자를 올려두었다. 화장 따윈 필요 없는 얼굴 밑에는 여전히 목도리가 감겨있었지만 상의에는 트레이드마크인 검은 재킷 대신 부드러운 올로 짜낸 니트티가 걸쳐져있다. 허리에는 깜찍한 주름치마를 입고 검은 스타킹으로 감춰진 얇은 다리 끝에는 큼직한 부츠가 있었다. 전체적으로 팔 끝과 발을 일부러 큼직하게 연출해 가련한 몸매를 돋보이게 하는 옷차림이다.

 

 유미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보통 사람은 전혀 눈치 채지 못하겠지만 유나는 그녀의 미미한 표정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저 얼굴은 분명히, 부끄러워하는 표정이다.

 

 “귀엽다니... 그런 거 나랑 안 어울려.”

 

 “에이, 그런 말 하지마세요. 아가씨가 얼마나 귀여운데요.”

 

 “......”

 

 유미는 고개를 푹 숙였다. 언제나 나무토막 같이 서 있던 유미가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당장이라도 껴안고 머리를 쓰다듬고 싶다. 하지만 유나는 참았다. 유미는 고양이 같은 면이 있었다. 조금 약한 모습을 보인다고 우악스럽게 다가갔다간 화다닥 도망쳐서 다음부터 손끝도 못 건드리게 할 게 분명하다.

 

 유미가 불쑥 말을 꺼냈다.

 

 “나 보다는 다들 너를 보는 거 같은데?”

 

 “네? 저를요?”

 

 유나는 의아해하며 고개를 내려 자신을 돌아보았다.

 

 그녀는 어깨를 시원하게 파낸 커튼 풍의 오프숄더형 블라우스와 연회색 핫팬츠를 입고 있었다. 늘씬하게 뻗어있는 다리엔 발목을 넝쿨처럼 감싸는 샌들을 신고 있다. 수영복과 비교해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을 노출도의 복장이다.

 

 사슴 같은 목 아래에는 푹 파인 쇄골이 있다. 잡티하나 없이 매끄러운 어깨에서는 마법발동용 주문식인 방패와 칼 모양의 문신이 장신구처럼 빛을 발하고, 뽀얀 허벅지가 다 드러나 보인다. 유나가 스쳐지나갈 때마다 남자들의 눈이 번개처럼 회전했다. 하지만 유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목을 꺾어 종아리와 발목까지 확인했다. 그리곤 태연히 물었다.

 

 “어디에 뭐 묻어서 그런 거 아니에요?”

 

 “그게 아니고... 내가 봐도 네가 눈에 띄어.”

 

 유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요? 그냥 평범한데?”

 

 “그러니까...... 아니야.”

 

 “???”

 

 유미는 유나에게 ‘네가 옷을 너무 적게 입어서 그렇다’라고 말하려다가 관뒀다. 유나는 유지와 유미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둔했다. 유지가 옆에서 지긋이 바라보면 보지 말라고 펄펄 뛰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인다. 그리고 유미가 말을 관둔 제일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유나는, 원래 노출도 높은 옷을 좋아했다. 그리고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녀석이었다.

 

 둘은 그렇게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며 거리를 걸었다. 여러 대학들이 산재한 대학가라 그런지 비교적 이른 점심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거리는 활기가 넘쳤다. 길가에 세워둔 포장마차엔 꼬치를 굽는 젊은이가 있고, 바로 그 옆에서는 유리를 세공해 만든 저렴한 장신구를 팔고 있다. 널찍한 광장에는 사람들이 원을 그리며 뭉쳐있다. 가운데에선 힙합바지를 입은 청년들이 리듬에 맞추어 춤을 춘다. 양옆의 길가는 개성 넘치는 간판으로 가득하고 한껏 멋을 부린 학생들이 시끄럽게 떠들며 그 앞을 지나쳤다.

 

 채홍다관은 그 가운데에 조그맣게 자리하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방울소리가 들리며 진한 향긋한 차의 내음이 코를 간질였다. 벽에 걸려있는 스피커에서는 잔잔한 클래식이 새어나오고 천장에 달린 샹들리에가 은은한 빛을 뿌렸다. 다관 내부는 약간 어두웠지만 밝은 색의 벽지를 사용해 자극적이지 않은 포근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하나뿐인 카운터 위에는 종합운, 궁합, 손금, 관상 등의 메뉴가 있고 그에 필요한 가격이 나란히 적혀있다.

 

 카운터에는 현대식으로 개량된 반도 전통 의복을 걸친 묘령의 여성이 있었다. 대학교와 대학원을 조기 졸업한 뒤 사주카페를 운영하며 덤으로 퇴마사로 활동하고 있는 영리학자(靈理學者), 김경희다. 경희는 반갑게 그녀들을 맞았다.

 

 “어서와.”

 

 “안녕하세요.”

 

 해가 창창한 낮 시간인데다 커플이나 여성만 취급하는 가게라 그런지 사람이 없다. 유나와 유미는 카운터 앞의 의자에 앉았다. 경희는 둘을 보곤 가볍게 평을 했다.

 

 “유미는 오늘 귀엽게 입고 왔네. 평소에도 그렇게 하고 다녀. 예쁜 얼굴이 아깝잖아.”

 

 “......”

 

 “유나는 여전히 대담하고.”

 

 “뭐가요?”

 

 유나가 물었지만 경희는 그저 웃어 보일 뿐이었다. 그녀는 찻주전자를 불 위에 올리며 물었다.

 

 “유지는?”

 

 “학원가셨어요. 아니, 가셨다기보다는 끌려가셨겠지만......”

 

 “치호가 그랬겠지?”

 

 “네.”

 

 경희는 혀를 찼다.

 

 “잘 했네. 유지 그 녀석은 가만히 내버려두면 안 돼. 자기 마음대로하게 내버려뒀다간 썩어문드러진 백골이 될 때까지 집안에 처박혀 있을걸.”

 

 “......동감.”

 

 “으윽, 반박할 수 없다는 게 슬프네요.”

 

 경희가 찬장에서 과자를 꺼내어 차와 함께 내왔다. 그리곤 카운터 밑의 서랍에서 유미가 쓰고 있는 것과 똑같이 생긴 목도리를 꺼낸다.

 

 “봉인식 조정하러 온 거지? 자, 여기 예비.”

 

 유미는 목도리를 받았다. 경희는 엄지손가락으로 카운터 뒤의 쪽문을 가리켰다.

 

 “창고에 결계를 쳐놨으니까 가서 바꿔와.”

 

 유미는 경희가 시키는 대로 했다. 경희는 유미로부터 목도리를 건네받아 카운터 위에 길게 펼쳤다. 목도리의 표면을 찬찬히 살피던 그녀는 옆에 놓여있던 자그마한 주전자를 들고는 살짝 기울여 목도리 위에 물방울 몇 개를 떨어트렸다. 매일 아침 계룡산의 우물에서 공수해오는 정화수(井華水)다. 목도리에 닿은 물방울이 치익 소리를 내며 증발했다. 그러자 하얀 목도리 위에 금실로 박아놓은 글자가 떠올랐다. 목도리를 빽빽하게 채우고 있는 문자들은 조금씩 빛을 뿌리며 가볍게 일렁였다. 경희는 중간 중간에 일그러지거나 뭔가에 밀린 듯이 뭉개져있는 글자들을 발견했다. 그녀는 번개 맞은 복숭아나무를 깎아 만든 목침(木針)을 꺼냈다. 뾰족한 끝으로 금실을 움직여 망가져있는 문자를 조금씩 고쳐간다.

 

 “생각보다 손상이 심한데...... 1단계 이상 금제를 해제한 적이 있어?”

 

 “가끔. 2단계까지.”

 

 경희가 고개를 들었다. 표정이 조금 굳어있다.

 

 “......위험하니까 1단계까지만 쓰라고 말했잖아.”

 

 유미는 경희의 시선을 살짝 피하며 말했다.

 

 “어쩔 수 없어. 1단계로는 너무 부족해.”

 

 경희는 목침을 내려놓으며 한숨을 쉬었다.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쓸데없는 오지랖일지도 모르지만 일단 말할게. 솔직히 나는 네가 싸움자체를 안 했으면 좋겠어. 네 몸에 걸려있는 주박은 그리 만만한 게 아니야.”

 

 유미는 입을 꾹 다물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유나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경희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갔다.

 

 “네가 있던 실험실이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놈들이 보통 놈들이 아닌 건 확실해. 인류 최악의 무공이라고 불리던 걸 이 정도까지 개량해놨으니까. 하지만 아직 한참 부족해.”

 

 경희는 손가락을 들어 유미를 가리켰다.

 

 “놈들이 네 몸에 박아 넣은 무공, 아니 마공은 아직 미완성이야. 그러니까 너를 팔았겠지. 투기장에 있을 때는 항상 3, 4단계를 유지했다고 했지? 내가 보기에는 네가 아직까지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이야. 무리하게 계속 운용했다간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도대체 유지는 뭘 하는 거야? 동생이 이런 상태인데......!”

 

 “그만해.”

 

 경희는 말을 멈췄다. 유미는 경희를 똑바로 마주보았다.

 

 “모두 내가 선택한 일이야. 유지는 내 뜻을 존중해줬을 뿐이고.”

 

 “......미안해. 말이 지나쳤어.”

 

 경희는 살짝 몸을 뒤로 뺐다. 그리고 걱정스럽다는 듯이 유미를 바라보며 손으로 뺨을 만졌다. 조용한 카페 안에 묵직한 분위기가 감돈다. 유나는 묵묵히 입을 다물고 있는 경희와 유미를 곁눈질하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한참을 고민하던 경희가 천천히 말을 꺼냈다.

 

 “당분간 점심때마다 여기에 와줄 수 있어?”

 

 “왜?”

 

 “봉인식을 조금 개량해보게. 네 몸에 그려져 있는 술식을 분석하고, 네가 수라마경의 구결을 알려준다면 2단계 해방을 안정적으로 유지시키는 것 까지는 가능할지도 몰라.”

 

 유미는 유나를 돌아보았다. 서가삼랑의 일정... 아니, 사회적인 외부활동 관리의 대부분은 유나의 몫이었다. 유나는 당연하게도 고개를 끄떡였다.

 

 “미리 잡혀있는 의뢰들 빼고는 문제가 해결 될 때까지 점심시간 비워드릴게요.”

 

 허락이 떨어지자 유미는 다시 경희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경희는 다음은 없다는 듯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대신 그 이상은 진짜 나도 책임 못 져. 주화입마로 죽거나 폭주해서 마교도로 낙인찍혀도 모르는 일이니까. 알지?”

 

 “......고마워.”

 

 “그리고 네 칼도 빌려줘. 연구에 필요하니까.”

 

 유미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철벽같이 단단한 포커페이스가 무너진다. 그녀는 예상치 못한 일격을 당한 것처럼 칼을 품에 꼭 끌어안았다.

 

 “카, 칼을?”

 

 경희는 왜 저러나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미는 어울리지 않게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칼이 왜 필요한데? 꼭 필요한 거야?”

 

 “당연하지. 내가 만든 수라귀 봉인식은 다 수라귀를 영검(靈劍)에 빙의시키도록 구축되어 있는 칼집의 제어술식을 해석해서 만든 거니까. 봉인식을 개량하려면 조금 더 살펴봐야 돼.”

 

 유미의 얼굴에 짖은 어둠이 깔렸다. 그녀는 전 재산을 쏟아 부은 도박판에서 마지막 베팅을 남겨놓은 사람처럼 고민했다. 그러다가 무슨 생각을 떠올렸는지 갑자기 밝아진 표정으로 말했다.

 

 “그냥 연구가 끝날 때까지 내가 여기서 살면 안 돼?”

 

 경희는 지금 얘가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당연히 안 되지. 유지한테 이상한 병이라도 옮았니? 바보 같은 소릴 다하고.”

 

 “어......”

 

 그 후로 유미가 칼에서 손을 떼어 놓는 데에는 24분 32초가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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