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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의 1+1은 2가 아니다.
작가 : 요동치는하트
작품등록일 : 2016.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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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pter. 3 - 상처 (5)
작성일 : 16-09-18     조회 : 51     추천 : 0     분량 : 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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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지가 집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날이 저물어 있었다. 시기가 시기인지라 낮이 제법 길어졌지만 그래도 7시면 해가 진다. 문을 열고 들어선 유지가 맨 처음 본 것은 초조한 얼굴로 거실을 오락가락하고 있는 유나였다.

 

 “뭐해?”

 

 “앗, 오셨어요?”

 

 유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구세주를 만난 것처럼 반가워하며 다가왔다. 유나가 불안한 모습을 보이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유지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무슨 일 있어?”

 

 “그게... 아까 아가씨께서......”

 

 유나는 저녁 무렵에 유미에게 일어났던 일을 설명했다. 사람을 공격할 뻔하고 도망치는 것을 어찌어찌 따라잡아 집으로 데려오기는 했지만, 유미는 그냥 방에 틀어박혀버렸다. 유나는 어떻게든 유미를 달래보려 했지만 유미는 유나가 뭘 권해도 말없이 고개만 저었다. 우울해 하는 사람에게 쓸데없이 계속 말을 거는 것은 그다지 좋은 행동이 아니다. 그래서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참에 유지가 돌아온 것이다.

 

 “그래서, 유미는 지금 방에 있어?”

 

 “네. 주인님이 잘 말씀 좀 해주세요.”

 

 유지는 쯔쯔 혀를 차면서 유미의 방으로 걸어갔다. 방문은 굳게 닫혀있다. 유지가 가볍게 문을 두들겼다.

 

 “들어간다.”

 

 유미의 방은 제법 난잡했다. 벽면에는 몇몇 락 밴드의 포스터가 붙어있고 한켠에 놓인 진열장에는 귀면차자 시리즈의 피규어가 있다. 침대의 머리맡에는 털이 복슬복슬한 동물 인형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유미는 인형들 사이에 쪼그리고 앉아있었다.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귀에는 이어폰을 끼고 있다. 별로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유지는 조심스럽게 유미의 옆에 앉았다. 유지는 가볍게 한 마디를 던졌다.

 

 “밥은 먹었냐?”

 

 “......”

 

 대꾸가 없다. 대신 문밖에서 눈만 빼꼼 내밀고 있던 유나가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한창 성장기일 때 제대로 된 환경에서 자라지 못한 탓인지 유미는 이슬만 먹고 살 것 같은 외모와 달리 식탐이 있었다. 밥을 삼시세끼 꼬박꼬박 먹는 건 물론이요, 간식도 많이 먹는다. 무표정한 얼굴로 밥을 세 그릇씩 밀어 넣는 것을 보다보면 아무리 조각 같은 미모의 소유자라고 해도 조금 깬다... 라는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다. 농담 같지만 유미가 밥도 굶고 이렇게 처박힐 정도면 그만큼 상심이 크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슬픔이란 감정은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는다. 유지는 시계를 보았다. 지금쯤 슬슬 배도 고플 거고 마음도 제법 가라앉았을 거다. 유지는 슬쩍 운을 띄웠다.

 

 “지금 천년단고(千年蛋糕)를 사러 갈 건데. 같이 갈래?”

 

 천년단고라는 말에 유미의 귀가 살짝 움직였다. 고양이로 치자면 갑자기 귀를 쫑긋 세우는 행위다.

 

 천년단고란, 대륙 곤륜산에 위치하고 있는 영수(靈獸)들의 나라인 성령국(聖靈國)의 특산품으로 짧게는 수백 년, 길게는 수천 년까지 바라보는 영물들이 만들어낸 벌꿀과 젖 등을 이용해 만든 일종의 케이크였다. 물량이 적은 데다 제 맛을 유지한 채 공수해오는 것도 엄청난 고난이라, 평범한 재료를 잔뜩 섞어 진짜 영물의 체액성분은 눈곱만큼 들어간 최하급 물품도 한판에 십 만원이 넘는 고급 디저트다.

 

 유지는 살짝 유나의 눈치를 보았다. 별 생각 없이 꺼낸 말이라 잘못했다간 그의 용돈만 거덜 날지도 모른다. 다행히 유나의 OK사인이 떨어졌다. 돈을 대주겠다는 의미다.

 

 유미는 맨 처음 유지가 말을 꺼냈을 때 이후로 반응이 없었다. 여전히 웅크려 앉아 타인의 손길을 거부하고 있다. 하지만 유지는 유미가 천년단고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았다. 그의 눈에는 유미의 동요가 보였다.

 

 싸움이라는 것은 결국 커뮤니케이션의 영역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저 그 목적이 상대를 이해할 것인가, 배제할 것인가의 차이일 뿐이다. 상대방의 몸짓, 숨소리, 채취. 그리고 뭐라 특정 지을 수 없는 분위기 따위를 근거로 숨겨져 있는 상대의 의중을 읽어낸다. 과정은 복잡하지만 결과는 단순한 심리전이다. 유지는 다른 사람보다 유난히 빠르거나 강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심리전에 능한 무인(武人)이었다.

 

 그가 보기에 유미는 이미 천년단고에 마음을 빼앗겼다. 발가락을 꼼지락 대는 것만 봐도 안다. 다만 고작 먹을 것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계속 우울한 척을 할 뿐이다. 유미처럼 등껍질 속 거북이 같은 상대를 끌어내려면 작은 꼬챙이가 아니라 불이 필요했다. 조금은 거칠게 나갈 필요가 있는 것이다.

 

 유지는 침대에서 일어섰다. 그는 걸음을 옮겨 유미의 앞에 섰다. 허리를 굽혀 유미를 번쩍 안아들었다.

 

 “......!”

 

 놀란 유미는 반사적으로 유지의 목을 끌어안았다. 유지는 남자 중에서도 마른 축에 속했지만 그보다도 작은 유미는 유지의 품에 쏙 들어갔다. 그녀는 새빨개진 얼굴로 굳게 닫혀있던 입을 열었다.

 

 “무, 무슨 짓이야?”

 

 유미는 당황해 했지만 질색을 하며 발버둥을 치지는 않았다. 싫다기보다는 부끄러워 죽겠다는 반응이다. 유지는 낄낄 웃으면서 손이 많이 가는 동생을 안고 현관까지 걸어 나갔다. 그는 유미를 내려주고 신발까지 꺼내 발 앞에 놓아주었다. 한 발 앞서 문을 열고 나가며 가볍게 턱짓을 한다.

 

 “빨리 가자. 가게 문 닫겠다.”

 

 하지만 유미는 여전히 큼지막한 옷자락을 부여잡으며 밍기적거렸다. 그런 그녀의 등을 유나가 살짝 떠밀어주었다.

 

 “다녀오세요. 아가씨. 식사도 하셔야죠. 주인님께 맛있는 것 좀 사달라고 하세요. 그리고...... 힘내세요.”

 

 유미는 유나를 바라보았다. 살짝 고개를 끄떡인다.

 

 “......고마워.”

 

 “천만에요.”

 

 유나는 포근한 미소를 지었다.

 

 ***

 

 유미는 유지의 뒤를 따라 걸었다. 한적한 아파트 단지 사이로 반쯤 삭은 가로등이 연약한 빛을 뿌렸다. 해가 져서 온도가 조금 내려간 덕에 시원한 바람을 쐬기 위해 나온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담소를 나누며 천천히 단지 안쪽을 걸어 다녔다. 유지는 어슬렁어슬렁 걷다가 자신의 옷자락 끝을 붙잡고 있는 유미를 돌아보았다.

 

 “이건 뭐야?”

 

 “시, 신경 꺼.”

 

 유미는 뻘줌한 얼굴로 대답한 뒤에 유지의 눈길을 피해 고개를 돌렸다. 유지의 눈이 슬며시 굽어지며 악동 같은 얼굴이 되었다.

 

 “에비.”

 

 그는 손을 휘둘러 옷자락을 쥐고 있는 유미의 손을 쳐냈다. 유미는 손을 뻗어 옷자락을 붙들려 했지만 유지가 손목을 잡아 멈춰 세웠다. 그는 빙글빙글 웃었다.

 

 “어쩐지 이상하다 싶었어. 칼이 없어서 불안해졌구나? 경희한테 맡겼냐?”

 

 유지의 장난에 유미의 얼굴에 짜증이 떠올랐다. 그녀는 평소처럼 날카로운 얼굴이 되어 나지막하게 말했다.

 

 “유지는 몰라도 돼.”

 

 유지는 유미의 손목을 놔주었다. 유미는 아까 같은 실수를 반복할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다시금 유지의 몸 어딘가를 잡기 위해 손을 뻗었다. 유지는 가볍게 그녀의 팔을 걷어냈다.

 

 유미의 미간이 찌푸려지며 점점 표정이 사납게 변해간다. 그녀는 손을 뒤집어 유지의 손목을 움켜쥐려 했다. 유지는 팔을 굽혀 손목을 빼낸다. 유미의 반대쪽 손이 움직였다. 번개처럼 뻗어오는 손아귀. 유지 역시 한 팔을 놀리지 않고 유미의 팔을 내리눌렀다. 누르는 팔을 유미가 잡아챈다. 팔뚝을 잡힌 유지는 가볍게 어깨를 빼며 팔을 회전. 미꾸라지처럼 유미의 손아귀에서 벗어난다. 동시에 옆으로 돌면서 유미의 측면으로 이동. 역으로 유미의 팔을 잡고 반대방향으로 꺾었다. 하지만 유미역시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그녀는 공중으로 회전하며 몸을 통째로 돌려 꺾인 팔을 제 위치로 돌려놓고 나머지 손으로 유지의 팔을 쳐내어 구속에서 벗어났다.

 

 유미가 짐승처럼 이를 갈았다.

 

 “장난은 적당히 해.”

 

 “싫은데.”

 

 유미는 잇소리를 내면서 다시 달려들었다. 팔과 팔이 마주치며 톱니바퀴처럼 회전한다.

 

 투타타타타타타타타!

 

 옷자락이 펄럭이고 부딪히며 기관총 같은 소리를 낸다. 야수의 그것처럼 매섭고 난폭한 유미의 손을 유지는 부드럽게 흘려보내며 깃털처럼 거리를 벌렸다. 미리 짜놓은 합을 주고받듯 무시무시한 속도로 공방이 이어졌다. 남매의 때 아닌 무술 대결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우와 소리를 내며 시선을 모았다.

 

 마지막으로 유지와 유미의 손이 충돌. 공기가 터져나가며 가볍게 유지가 뒤로 물러선다. 유미는 약이 잔뜩 오른 얼굴로 씩씩 거리며 유지를 노려보았다.

 

 죽고 죽이는 살육전이면 몰라도 단순한 기술 대결에서는 유미가 유지에 비해 크게 뒤쳐졌다. 대결 종목이 상대방을 제압하는 금나술(擒拿術)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거기에 유지는 전혀 봐줄 생각이 없어보였다. 이대로 싸움을 계속해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아는 유미는 더 이상 손을 뻗지 못하고 이만 박박 갈았다.

 

 유지는 한 손을 내밀며 어딘가의 누구처럼 사악한 제안을 했다.

 

 “‘사랑하는 오라버님. 부디 제 손을 잡아 주시와요~’ 라고 말하면 잡아주지.”

 

 “미친. 내가 그런 말을 할 것 같아?”

 

 “싫으면 말고...”

 

 빠드득!

 

 이를 무는 소리인지 뼈가 부서지는 소리인지 모를 음향효과가 새어나온다. 평소 같았으면 길길이 날뛰며 죽인다고 칼을 뽑아들었겠지만 지금 유미의 손에는 칼이 없었다.

 

 자신감을 가진 구석이라곤 칼질밖에 없는 유미다. 자신감의 근원을 잃어버린 여자아이를 골려주는 건 누워서 떡먹기보다도 쉬운 일이었다. 매일 유미에게 욕만 얻어먹던 유지는 깨소금 맛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유미는 벌컥벌컥 뛰기 시작하는 가슴을 쓰다듬었다. 아까의 사건으로 불안감이 더 심해져서 유지가 눈앞에 있는데도 머리가 이상해질 것 같았다. 유미는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며 펑버짐한 티셔츠의 앞자락을 양 손으로 꼭 쥐었다. 눈을 꽉 감았다. 한참을 우물쭈물하다 겨우 입을 뗀다.

 

 “사...... 사랑, 하는, 오라...... 우욱, 버님......”

 

 하얀 얼굴이 수치심으로 가득 차 당장이라도 붉은 물을 떨어트릴 것 같다. 큼지막한 두 눈에는 그렁그렁 눈물이 차오르고 목소리에 울음이 섞였다. 유미는 한 마디 한 마디 힘겹게 말을 이었다.

 

 “부디...... 흑, 제 손을...... 잡아, 주세요......”

 

 말을 끝낸 유미는 젖은 눈을 살짝 들어 유지를 올려다보았다. 유지는 한쪽 귀에 손을 가져다대며 고개를 기울였다.

 

 “뭐라고? 잘 못 들었는데?”

 

 “~~~~~~~!!!”

 

 유미는 괴상한 비명을 지르며 유지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기습을 당한 유지는 억 소리를 내며 팔짝팔짝 뛰었고 분노가 머리끝까지 오른 유미는 반쯤 울며 욕을 바가지로 퍼부었다.

 

 “개자식! 쓰레기! 나쁜 놈! 죽어버려!”

 

 등을 미친 듯이 내려치고 배에 보디블로를 연타로 먹인다. 유지는 죽는 소리를 냈지만 유미는 인정사정 볼 것 없이 그를 팼다.

 그것을 구경하던 한 아이가 유미를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엄마! 저 누나 엄청 쎄! 격투기 선수 인가봐!”

 

 “아유, 저렇게 귀여운 아가씨가 무슨 격투기 선수를 하니. 사랑싸움이라도 하는 것 같은데.”

 

 화끈.

 

 유미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녀는 한손으로 유지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케엑. 수, 숨이......!”

 

 유지는 파랗게 질려서 유미의 손을 탭 했지만 유미는 쿨하게 무시하며 유지를 어깨에 들쳐멨다. 키 차이 때문에 유지의 발이 바닥에 질질 끌린다. 유미는 아주 조금만 기력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경공을 발휘해 빠른 속력으로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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